강유원: 책

 

- 10점
강유원 지음/야간비행

 

 

머리말 : 책 사서 읽고 서평 쓰기 

인간과 철학 시리즈 

복거일 『현실과지향』『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소수를 위한 변명』 

장 클로드 코프만 『여자의 육체 남자의 시선』 

임영태 『비디오를 보는 남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미셸 라공 『패배자의 회고록』 

장정일 『장정일의 독서일기 2』 

카를로스 푸엔테스 『미국은 섹스를 한다』 

칼 뢰비트『베버와 마르크스』 

아이스퀼로스 『오레스테스』 

홍신자 『자유를 위한 변명』 

조혜정의 글들 

앨리스 워커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 

시오노 나나미 『바다의 도시 이야기』 

조셉 테인터 『문명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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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책 사서 읽고 서평 쓰기 

나는 선물 받은 책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이러쿵저러쿵 떠들 망정, 공개적으로는 서평━거창하게 서평이랄 것도 없는 독후감 나부랭이지만━을 쓰지 않는다. 돈 주고 사서 읽은 책에 대해서만 떠든다.

  증정을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책을 쓰는 사람이나 출판사를 경영하는 사람을 잘 모르는 탓에 '증정' 도장이 찍혀 있거나 서명이 들어간 책을 받는 것도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인데다, 그런 경우라 해도 대가를 바라지도 의무에 속박되지도 않는 사이여서 흔쾌히 주고 기쁘게 받는다. 지난해 어떤 저자로부터 서명이 들어간 책을 직접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난 이미 그의 책을 사서 읽고 몇 마디 떠들어 버린 다음이었다.

  책값이 몇 푼이나 한다고—몇 푼 더 하는 책도 많지만━그걸 거저 얻자고 혈안이 되나 싶기도 하고 책값 없으면 읽은 책 또 읽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이기도 하나, 실은 거저 얻은 책에 대해 떠드는 게 영 찜찜해서이다. 받아서 읽어 보니 좋은 책이어서 좋은 말 해 주자니 책 받아먹은 죄로 낯간지러운 소리 하는 거 같고, 책이 별로여서 쓴 소리 하자니 책 받아먹고 입 닦는 거 같다. 이건 책 문제가 아니라 돈 문제이고 돈에 관한 한 칼 같이 깔끔을 떨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책을 펴내는 출판사의 처지에서 보면 책은 분명히 상품이다. 애초에 팔아먹을 생각 않고 책 내는 곳도 있지만 거개는 팔아먹자고 낸다. 책이 상품이라면 '이 책이 나왔네. 좋은 책이네. 아니 끝내주는 책이네. 그러니 안 읽으면 창피해 버리네.'라고 선전을 해 대야 책이 팔릴 테니 출판사는 돈 될 만한 선전통로를 찾기 마련이다.

  상품 카탈로그처럼 책 목록도 별로 없고, 책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홈쇼핑 채널 같은 것도 없다 보니 한국의 출판사들은 대개 신문사와 잡지 사에서 보도자료라는 걸 돌리게 되고 그런 기관에서 그 분야를 맡아 일하는 사람들은 보도자료가 책과 함께 날라져 오니 책을 읽든 보도자료를 읽든해서 '보도'━서평이 아니다.━를 하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을 소개하는 건 건 그래도 서평으로 인정할 만하지만 보도자료에 근거해서 출판사에서 골라 준 맛있는 부분만 받아먹고 음식이 어떻다고 떠드는 셈이니 출판사로서는 횡재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영 못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관에 보도자료를 돌려서 그 서평이나 보도기사가 힘을 발휘하게 되는, 그리하여 책이 잘 팔리는 까닭은 원칙적으로는 담당하는 이가 제대로 평을 해서도, 보도자료가 잘 쓰여서도 아니다. '신문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다. 이는 결국 떠들어 주는 매체 자체의 위력에 기대고 있는 것인데 한국의 신문처럼 당파성도 안목도 없는 기관에서 뭘 골라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시답잖은 상황에서 이건 참으로 비루한 먹이사슬에 엮이는 것처럼 보인다.

  더러 전문가가 쓴 서평이 신문에 실리기는 하는데 이 경우 난 서평자가 그 책을 돈 주고 사서 읽었는지 아니면 거저 얻은 책인지부터가 궁금하다. 만약 후자라면 서평자는 아무리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을 하고 있다 해도 몇 푼 안 되는 책 받아먹고 게트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명망가라 해도, 그리하여 출판사에게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준다 해도 거저 얻어먹은 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향기롭지 못할 건 뻔한 이치다. 

  독자 입장에 서면 책은 상품이 아니다. 독자에게 책은 흔한 말로 지식의 창고요, 자신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주요한 계기이다. 책은 물건이 아니라 정신적인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독자가 정가를 주고 샀건 할인된 싼 값에 샀건 간에 책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뽑아내려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렇게 보면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는 책을 대하는 태도에 서로 어긋나는 점이 있고 바로 이 지점에 서평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서평자는 기본적으로 독지여야 한다. 책을 읽어야 서평을 하기 때문에 그가 독자라는 뜻이 아니라 돈 주고 사서 읽어야 독자의 처지에 설 수 있다는 말이다. 아주 단순하게 서평을 하자면 '책값보다 비싼 책'이라든가 '돈만 버렸다', 아니면 '똔똔이다'―이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영화평론가의 평을 읽고 독자가 '그래서 이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하는 푸념을 한다면 그 평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평가는 결국 그 값을 주고 책을 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를 판별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서평자는 단순한 독자가 아닌 감식가일 필요가 있다. 고미술품 감정가가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서 그 물건을 제대로 감정하지 않고 무조건 파는 사람편만 든다면 당연히 그는 사기꾼이다. 책은 이미 값이 매겨져 나오지만 서평자는 그 값을 제대로 따져서 독자에게 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책장수를 겸하는 저자들이 있다. 저자 입장에서는 책 많이 팔려서 돈 넉넉해지면 좋은 일이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직접 나서서 팔러 다니는 꼬락서니는 저자답지 못하다. 강의와 별 관계없어 보이는데도 자기가 쓴 책을 사게 하거나, 이미 등록금을 낸 학생들이니 복사해서 나누어 주어도 무방할 텐데 굳이 자기가 쓰거나 번역한 책을 강의교재로 채택해서 사게 하고 그걸 검사까지 해 대는 대학교수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 자기 책 자기가 파는건 아니지만 파는데 도움을 주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 친하게 지내는 사람, 돌봐 주는 사람이 쓴 책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침도 안 바른 소리를 하면서 밀어주고 다닌다. 이렇게 나대는 사람들이 만약 힘깨나 쓰는 사람이면 그 밑에는 원고 짊어진 뜨내기들이 모일 텐데, 이들은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추잡한 언어폭력을 저지르는 조직이라 해야 적당할 것이다.

  위의 두 가지 경우는 그래도 독자가 그 기미를 알아차릴 방도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책 팔아먹는 수작이 아주 감쪽같아서 영 갈피가 안 잡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저자, 기획자, 편집자 이렇게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잔머리를 쓰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 경우에는 처음부터 책을 상품으로서 기획하고 저자와 편집자가 아예 공동집필을 한다. 널리 알려진 저자의 경우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편집자는 말도 안 되는 저자의 문장을 낱낱이 고쳐 주거나 목차를 짜서 그대로 써 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야 팔린다'는 출판사 측의 판단에 저자도 순순히 따른다. 이런 일이 하도 자주 일어나다 보니 편집자가 저자에게 아주 깊숙한 차원까지 개입해서 '이래라 저래라'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고, 구걸 거절하는 저자는 꼴통 소리를 듣는 일도 있다.

  서평자는 이런 사정을 모두 꿰고 있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어렴풋하게나마 식별을 해 주어야 할 의무까지는 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워낙 한국 출판계의 저자와 편집자 사정에 어둡다보니 국내 저자의 책에 대해서는 내 눈으로 봐서 그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모두 아는 걸 빼고는 서평을 안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서평집에도 자연스럽게 외국 저자의 책이 대한 소개가 많이 실리게 되었다. 외국의 저자는 어떻게 책을 만들어 내는지 아예 모르니 신경쓸 것도 아니고, 적어도 제대로 된 번역인지만이라도 대조해서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서평자이면서 동시에 이 서평집의 저자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 책에 실린 글 들 중에 거저 얻은 책에 대한 것은 없다. 그러니 서평자로서의 기본 자세는 갖추었다고 자부한다. 누가 한 권 달라고 하면 "사서 보슈."라고 대꾸하겠다. 냉정한 감식안을 가진 서평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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