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하우: 제국

 

제국 - 10점
스티븐 하우 지음, 강유원.한동희 옮김/뿌리와이파리

한국어판 서문
서론: 나는 오늘자 신문을 읽는다

1장 누가 제국주의자인가?
2장 육상제국
3장 해양제국
4장 제국의 종말과 그 이후
5장 제국을 연구하고 판단하기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그림 목록
더 읽을거리

 


 

옮긴이의 말

조선이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그것에서 벗어난 뒤 대한민국이 세워진 지 60년이 넘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식민지 시대와 관련된 용어들이 여러 사람의 입과 매체에서 자주 오르내린다. 날카로운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하며 서로 편을 갈라 악을 쓰고 싸우는 일까지도 벌어진다. 형식적으로 따지면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이다.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땅 위에 세워졌고, 더 나아가 그 일에 핵심적으로 얽혔던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이 그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이른바 '식민지 잔재'가 참으로 오래간다는 일종의 씁쓸한 감상이 떠오른다. 제국의 식민지였던 다른 땅에서는 사정이 어떠한가 하는 궁금증도 생겨난다. 이러한 궁금증은 앞서 떠오른 감상을 차분하게 정리해주고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료와 문헌에 대한 탐색으로 나가는 문턱일 수 있다.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가 잔혹한 것이었다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혜택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 둘의 견해를 동시에 집한 이는 어떤 것이 더 옳은지를 알아낼 잣대를 딱히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럴 때 상식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이 비교고찰이다. 근대 이후 유럽은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지 침탈(그들은 이것을 '경영', '문명화사명 수행'이라 할지도 모른다)에 나섰으며, 일본 제국의 식민지 침탈 역시 그것과 유사한 과정과 방식을 거쳐 수행되었으므로, 이러한 비교는 혼란한 상황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근대 제국이 더 이상 '식민지'라는 용어와 관련된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제국으로 부르며(러시아가 다시 제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중국의 움직임이 같은 경로를 향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이어도 침탈은 마찬가지라 말한다. 따라서 제국과 그것의 뒷면인 식민지에 관한 검토는 국제 정치 · 경제, 그리고 그것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국내 정치 경제 · 문화의 여러 측면과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는 어디에서 시작해야만 하는가? 당연히 기본적인 용어들, 즉 제국, 제국주의, 식민지, 식민주의, 탈식민지 등을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제국이나 식민지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그것의 역사는 얼마나 된 것인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어떠한 변천을 겪었는지, 제국의 행태를 뒷받침하는 정당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것에 기여한 이들은 어떤 의도로 무슨 짓을 했는지, 제국과 식민지를 통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잃었고 얻었는지 등을 전반적인 범위에서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런 고찰이 일반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다음에야 우리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관련 논의를 좀더 명료하게 볼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어떤 이들에게는 가문의 쇠락의 기원이나 다른 이들에게는 부와 영광의 원천(이들은 남의 눈을 피해 특정한 날이면 오늘의 기틀을 마련해 준 감사와 더 이어지지 않았다는 애도를 동시에 바치고 있을지도 모른다)이요, 어떤 이가 보기에는 한국 사회의 후진성과 전망 부재의 근원이나 다른 이가 보기에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고마운 학습의 교실이었던 일본제국과 식민지(이들은 '은혜로운 대일본 제국과 복 받은 땅'이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다)에 관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식민 지배에 관한 한국의 연구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그러한 연구의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솟아났으며, 이는 식민지 이후 시기까지도 포괄했다. 이른바 '재인식’ 이라는 태도를 혈서처럼 써들고 나온 일이 그러한 예 중의 하나이며, 이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여기서 생겨났다. '식민 지배를 받은 게 정말 그렇게 좋은 일인가, 우리만 좋았나 남들도 좋았나, 적어도 남들도 그랬다면 귀 기울여 들어보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이에 더하여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과연 과거의 제국주의와 어떤 점에서 비슷한지, 어떤 점에서 더 나쁜지, 그것에 무엇을 더한 것인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펴내는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제국의 여파로 튀어나온 현대의 사건을 정리하면서도 역사적 탐구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얇은 책이면서도 제국과 식민지에 관련된 핵심적인 사항들을 적절한 깊이에서 다룬다. 그러므로 이러한 용어들이 끼어들어간 논의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준비작업으로서, 일종의 참조로서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07년 8월
강유원 · 한동희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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