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노 시게키: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 - 소크라테스에서 샌델까지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 - 10점
우노 시게키 지음, 신정원 옮김/교유서가

프롤로그

제1장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
제2장 로마의 정치사상
제3장 중세 유럽의 정치사상
제4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제5장 17세기 잉글랜드의 정치사상
제6장 18세기의 정치사상
제7장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제8장 19세기의 정치사상
종장 20세기의 정치사상

 


+ 강유원 선생님의 「정치사상사 토론」의 참고도서이다. 2022년 내내 읽을 예정이다.

 

프롤로그

이 책은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민주주의에서 출발해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무슨무슨 ''주의'(굳이 말하자면 '이데올로기')라는 여러 사상이 펼쳐지는 19세기까지의 정치사상사를 다룬 것이다. 분량은 적지만 20세기도 다룬다.

   정치사상사인 만큼 책의 구성 또한 역사적 순서에 따랐다. 말하자면 먼 과거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계속 읽어 나갈수록 새로운 시대의 이야기와 마주하는 것이다. 사상가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저작물을 기본 대상으로 삼았으므로, 앞부분부터 읽다보면 대학의 '서양 정치사상사' 강의에서 다룰 법한 주요 사상가들에 관해서 얼추 일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상을 역사순으로 소개하는 일에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을 펼쳐든 독자는 어쩌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정치사상가란 정치에 관한 근원적 고찰을 통해 모종의 정치적 '진리'를 발견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본래 '진리'라는 것은 역사를 초월해 타당한 것을 가리키지 않는가. 한 시대에 '진리'였던 것이 다른 시대에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는가? 만일 그런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진리'가 아니었던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는 분명 일리 있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다루는 사상가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이 있다. 정치를 둘러싼 '진리'는 수학적 진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일의적으로 증명 가능하며, 정치에 남겨진 과제는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느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다양한 정치사상가의 생각을 역사순으로 검토하는 이 책은 참으로 무용지물일 것이다. 이런 생각도 있고 저런 생각도 있다며 장황하게 설명한들, 뒤엉킨 이야기로 독자는 혼란에 빠지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치를 둘러싼 본질적 문제(진리)는 수학적 증명 같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존재한다. 정치는 구체적 시대상황이나 사회배경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구체적 역사의 전개를 제쳐두고 정치를 이야기하기란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사상가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간이나 사회를 둘러싼 진리는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고 주장한 헤겔 같은 사상가도 있다. 각각의 시대에 속한 개인이나 집단은 눈앞의 과제를 달성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저마다의 행위는 반드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헤겔이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야 날아오른다"고 표현했듯이, 시간이 흘러서야 의미를 알 수 있는 일도 있는 것이다.


'자유'의 발전으로서의 역사?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사상사'라는 과목이 있다는 것 자체가 헤겔식의 사고법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헤겔식의 역사관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헤겔은 인류의 역사를 자유의 발전으로 파악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황제 한 사람만 자유로울 뿐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에 지나지 않은 사회도 있었다. 반면에 폴리스라 불린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처럼 특정 도시국가 시민의 아들로 태어난 모든 성인 남성에게 동등한 자유를 인정한 사회도 있었다(다만 여성과 노예는 시민 자격을 누리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동등한 자유를 실현하는 일이 그후 역사의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 헤겔의 관점이다.

   이처럼 헤겔에게는 '자유'가 키워드였는데, 마찬가지로 역사란 '민주주의'가 실현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식의 이해도 있을 수 있다(이 대목에서 '자유'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의문을 해소하려면 먼저 이 책 전체를 다 읽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인류의 역사를 인간 이성이 개화하는 과정, 경제활동과 산업이 발전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이도 있었다(지금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여기에는 '역사란 어떤 것이 실현되어가는 과정이다'라는 인식이 공통으로 깔려 있다. 이 '어떤 것'에는 무엇을 관련지어도 상관없다. 어쨌든 역사에는 모종의 실현되어야 할 목표 또는 이념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란 그러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요컨대, 역사를 진정 하나의 목표나 이념을 지닌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고자 할 때 당연히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와 캐스팅이다. 이야기의 줄거리가 와닿지 않으면, 독자는 당황하고 만다. 그래서 주된 스토리라인에 놓일 수 없는 것은 되도록 제쳐두는 편이 낫다. 주인공은 누구이고 적은 누구인지, 또 조역은 누구인지도 생각해둬야 한다. 배역의 수에는 제한이 있는 만큼 엑스트라로도 낄 수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란 정말로 그러한 종류의 것일까?

   애당초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이념이 더는 예전만큼의 광채를 띠지 않게 된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역사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과정이다'라고 한들, '민주주의가 그렇게도 좋은 것이냐'라거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헤겔처럼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목표나 이념을 향해 나아가는 장대한 '이야기'로 그리는 데는 아무래도 저항감을 갖는 이들이 있다. 이와 같은 감각이야말로 현대라는 시대가 지닌 특징 가운데 하나다.


'글로벌 히스토리' 시대의 정치사상사
헤겔식의 역사관에는 다른 문제도 있다. 앞에서 캐스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인류 역사에는 각 시대마다 주역을 맡는 개인이나 민족아 존재한다고 헤겔은 생각했다.

   앞에서 언급한 '자유'를 들어 살펴본즉, 오직 한 사람만이 자유로웠던 시대의 주역이 '동양적 'oriental 제국이었다면 소수의 사람만이 자유를 누리는 시대를 열었던 것은 고대 그리스이며, 그후 고대 그리스 문명을 계승한 유럽이 역사의 주역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헤겔의 캐스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우선 '동양적'이라는 개념이 그러한 예인데, 헤겔은 '동양적 전제'oriental despotism 라는 말을 종종 썼다. 거기에는 '동양'=전제, '서양'=자유라는 이항대립적 사고방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대체 '동양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포함해서, 지금은 이런 식의 이해에 대한 비판이 거센 편이다.

   또한 유럽이 고대 그리스 문명을 계승하며 유럽인이 인류 역사의 주역을 차지했다는 역사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고대 그리스나 로마 문명이 후대의 인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고대 문명을 계승했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중요한 것은 오히려 이슬람 쪽이다. 유럽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슬람권을 통해 고대 문명을 다시 익혔기 때문이다. 헤겔식의 역사관에는 이 대목이 쏙 빠져 있다.

   중국 문명에 대한 이해에도 문제가 있다. 오늘날의 역사연구에서 드러난 것처럼, 근대 유럽은 중국의 영향을 줄곧 받아왔다. 그럼에도 헤겔의 역사관에서 중국 문명은 '동양적 전제'로 치부될 뿐이다.

   근래 들어 '글로벌 히스토리'라는 말이 곧잘 등장하곤 한다. 지금까지 '역사'라 하면 대개는 현재의 국경을 근거삼아 엮은 각국사를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와 같은 틀을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고대 그리스를 근대 유럽에 직선적으로 이어놓고 이를 역사의 본류main stream로 파악하는 역사관도 재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정치사상사 역시 재검토에서 예외일 수 없다. 지금까지의 정치사상사 연구가 유럽 중심 사관의 영향 아래 발전해온 것도 사실이다. 과연 21세기에 걸맞은 정치사상사가 가능하긴 한 것일까?


'정치적 인문주의'와 '공화주의'
이러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 이 책 나름의 과제다.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21세기의 정치사상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몇 가지 방침에 따라 집필되었다.

   첫째로, 현재의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정치적 인문주의'나 '공화주의'라는 사고법을 도입하고자 했다. 각 개념에 관해서는 뒤에 가서 상세히 논하겠지만, 중요한 점은 읽기를 중시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사상사에는 '고전'classic이라 불리는 일련의 텍스트들이 존재한다. 이 경우에 '고전'이란 단순히 '오래된 책'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부단히 읽히며, 줄곧 참조의 대상이 되어온 텍스트'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사상사란 '고전'을 끊임없이 읽어온 역사라하겠다. 이 책에서 다룰 사상가들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고전'을 선택했고 그것을 깊이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나름의 사상을 형성했다. 다시 말해 '고전'을 읽고 거기에서 얻은 관점이나 사고법을 바탕으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현실과 겨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저작은 새로운 '고전'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인문주의 'humanism 란 본래 이처럼 '고전'을 독해하는 지적 영위의 전통을 가리키는데, '정치적 인문주의'civic humanism 란 특히 정치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거기에서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가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경우에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개념을 낳은 고대 그리스를 당연히 중시하지만, 로마가 지닌 중요성도 그리스 못지않다. 특히 공화정republic 시대의 로마가 지닌 권위는 막강했으며, 거기에서 강조된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념을 계승하는 지적 조류는 흔히 '공화주의'republicanism라 일컬어진다.

   오늘날에는 정치적 인문주의'나 '공화주의에 관한 많은 연구서가 나와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성과들을 가능한 한 반영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정치사상사를 곧장 '자유나 '민주주의'가 발전한 역사로 단정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 '고전'이 어떠한 배경에서 꾸준히 읽혀왔는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역성'
둘째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대에 걸맞은 정치사상사를 구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례에서도 드러나듯이, 아쉽게도 이 책의 서술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해 중세 유럽을 거쳐 근대 유럽과 미국으로 향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고대 그리스에서 근대 유럽에 이르는 역사를 직선적 발전으로 파악하고 이를 곧바로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는 발전사관을 그대로 계승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책에서는 유럽 사회가 지닌 역사적 개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좀더 강하게 말하자면, 유럽의 '지역성'locality을 중시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인즉, 유럽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척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인데, 한가지 예를 들자면 '유럽'의 일체성이다. 지금도 유럽연합EU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진행중이고, 어디까지가 '유럽'인지에 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 '이라는 지역이 엄연히 있고, 그곳에 역사적·문화적 일체성이 존재함을 의심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유럽'의 역사에서 극히 짧은 예외적 시기를 제외하면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오늘날 '유럽'이라 불리는 곳은 일찍이 로마제국이 지배했던 영역의 일부인데,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 통일한 권력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에 가톨릭교회가 이 지역의 일체성을 오래도록 지켜왔다.

   세속의 권력과는 별개로 종교조직이 발전하고 둘 사이의 관계가 팽팽한 긴장을 보였다는 점이 유럽의 특징이다. 이는 그곳에서 생긴 '정교분리'라는 원칙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이 원칙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더없이 역사적인 개성과 '지역성'을 띤 유럽 그곳에서 등장한 정치적 이념 가운데 무엇이 어느 정도나 '보편성 'universality을 획득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분명히 하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나 그곳에서 탄생한 이념이 곧바로 보편적 의미를 지닌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서 근대 유럽의 정치사상은 여전히 인류에게 가장 일반성 있는 틀을 제공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인식을 전제로 한다.


정치철학과의 가교
마지막으로는, 정치사상사와 정치철학 사이의 가교 역할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정치철학이란 무엇이고 정치사상사란 또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지면상의 제약도 있어서 길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사상사의 전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고전을 읽고 거기서 얻은 관점이나 사고법으로 자기 눈앞의 현실에 맞서는 일이다. 그런 만큼 정치사상사 연구가 현대사회에서의 정치의 양상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연결되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다만 정치사상사와 정치철학이 온전히 같을 리는 없다. 정치사상사에는 정치사상사의, 정치철학에는 정치철학의 고유한 사고법이 있기 마련이다. 양자를 안이하게 연결시키려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정치사상사 연구에서는 고전의 위치에 있는 문헌에 대한 정밀한 독해, 그리고 그 고전이 쓰인 시대상황이나 사회배경을 이해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 없이 고전에서 읽은 것을 자기 눈앞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 든다면 시대착오anachronism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달리 정치철학 연구에서는 현실의 정치적 과제에 대해 철학적 기초를 지닌 해답을 제시하는 일이 중시된다. 이 경우에는 현실을 읽어낼 몇가지 개념이 필요한데, 그러한 개념은 대개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가져오게 된다. 물론 경제학을 포함해 그 밖의 전문분야에도 유효한 개념이 있다면 얼마든 가져다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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