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마지막)

 

2022.05.24 옥스퍼드 세계사(마지막)

오늘은 《옥스퍼드 세계사》 마지막 시간이다. 대다수의 우리 지식은 역사적인 지식에 근거하고 있거나 적어도 그것이 벌어지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우리가 역사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으로 요구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런 감각을 기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독서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인데 그러려면 역사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623페이지 새로운 세계 질서인가, 비대칭적 불안정성인가?,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들.629페이지가 13장의 마지막인데 읽어보면 여전히 세상은 알 수가 없다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아주 많은 부분이 에필로그와 겹치기 때문에 오늘은 에필로그를 정리해서 말하려고 한다. 답답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우리는 이 책의 논제들을 되돌아보고서 그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해볼 수 있다." 발산과 수렴. 발산과 수렴은 제1부의 주제였다. 발산은 퍼지는 것이고, 수렴은 모이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렴이 발산을 밀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고, 세계화의 외피 아래서 발산은 계속될 것이다." 문화하고 하는 것은 계속 지역적이고 그런 것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말이다. 세계사책을 읽고 나면 상식으로 알아야 할 것 중 하나. 인간 종은 서로 교배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생물학적 종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네안데르탈인과도 교배를 했다고 하니까, 현대 우리 인간에게 네안데르탈인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들과 다르게 정말로 서로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즉 생물학적 종으로는 별 차이가 없는데 문화의 차이는 굉장히 커서 같은 종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차이가 크고 심지어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집단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다르고 적대적이다. 그것이 정치적인 어떤 지지 이념의 차이 이런데서 생겨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다. 세계사 공부를 해서 제일 중요한 효과가 이런 것이다. 우리 인생이 짧고 이 동안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을 이룩하겠다는가 하는 겸손함을 갖게 되지 않나 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그것들을 쌓아올려서 이렇게 만들어내는 역사가 있구나 하는 인간 종의 위대함, 한 개인의 왜소함을 생각하게 된다. 종은 위대하고 개인은 왜소하구나라는 생각.

에필로그 631 우리는 이 책의 논제들을 되돌아보고서 그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해볼 수 있다.

에필로그 633 적어도 수렴이 발산을 밀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고, 세계화의 외피 아래서 발산은 계속될 것이다.


그 다음 두번째로는 "세계의 주도권은 부와 무력의 균형이 변화함에 따라 계속 이동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긴 한데 사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한다. 세계의 주도권이 이동하는 것은 지구의 대륙들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빠를지는 몰라도 그만큼 천천히 일어나는 일이다. 한때 중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지 않겠는가 라는 예측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있었는데 이 책에서 분명하게 몇 가지 이유를 들어서 곤란해 보인다 하는 얘기를 한다. "첫째, 한 자녀 정책의 결과로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다. 둘째, 지역 동맹이 부족하고 모든 인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데올로기 분쟁이나 영토 분쟁. 인접국이 중앙아시아 쪽도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 한국의 사이가 그리 안좋다. 정말 불행한 일이다. 그 다음 "셋째, 국내 통합이 공고하지 못하다." 특권적 지역과 시골의 이해관계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고, 대만을 비롯한 분리주의 운동이 있으며, 홍콩도 그렇다. 그런데 국내 통합을 하려면 몇 가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다. 여기 나와 있는 것처럼 핵심적인 이유는 악정을 편다는 것이다.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대담한 선정을 펼쳐 보이지 못한다는 것이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균형이 조정되지 못하고 있고, "일당 국가와 시장 경제라는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조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정이 그렇기는 하다. 청나라가 물려준 영토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또 그만큼 영토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도 미합중국 같은 경우는 그런대로 통합을 잘 유지하고 있다. 물론 미합중국은 양쪽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이 있기 때문에 어쨌든 그 안에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 지리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고, 중국은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다.

에필로그 633 세계의 주도권은 부와 무력의 균형이 변화함에 따라 계속 이동할 것이다.

에필로그 633 중국의 전망은 다음 네 가지 주된 원인 때문에 그리 밝지가 않다. 첫째, 한 자녀 정책의 결과로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다. 둘째, 지역 동맹이 부족하고 모든 인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셋째, 국내 통합이 공고하지 못하다. [...] 넷째, 중국의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일당 국가와 시장 경제라는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조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나친 계획과 무모한 규제 완화 사이에서, 전제정과 민주정, 전체주의와 무정부상태, 권위주의와 자유지상주의, 다원주의와 종족 중심주의, 이데올로기적 세속주의와 비이성적 종교 사이에서 허둥대고 있다." 정말 양극단이 있는데 이것들은 다 실패했던 극단들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과거에는 세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첫째는 체제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국가와 사회의 배열을 손질해 사람들을 유덕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정말 많이 시도했다. 유토피아에 대한 시도이기도 하고 정치사상이 이런 것들을 시도했던 것이다. 정치사상의 원대한 목표였다. 그런데 정치사상 중에는 항상 이루지 못한 것들만 있다. "대다수 사람들의 궁극적인 유토피아는 적이 없는 세계이며," 여기에 뼈아픈 말이 있는데 "그 세계를 구현하는 가장 빠른 길은 적을 몰살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종교를 통해 인류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이다. 여기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 종교의 효과가 미미해 보이고, 그 다음에 "텔레비전 전도자들의 추문, 또는 광신적 자살 폭탄 테러범들, 고문하고 참수하는 사람들의 잔혹 행위는 진심으로 받아들인 신앙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평화에 이바지하는 경우보다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종교라고 하는 것도 그렇게 믿을 만해 보이지 않는다. "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린치스코는 지난 50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도덕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했을 테지만, 그들의 권고는 신도 대다수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고, 성직자 태반에게 가 닿지 않았다." "도덕적 정체 상태를 끝내려면 선함 그 이상이 필요하다. 종교들이 염원할 수 있을 뿐인 어떤 기적이 필요하다." 정말 비관적인 상황이다. "셋째, 과학으로 인류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나치 독일의 우생학, 이런 것이 있었다. 로봇이라든가 이런 것도 그렇게 대단한 해결책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이 세계사 책을 읽고 나서 에필로그를 읽어보니까 마음이 우울하다. 그렇지만 어떻하겠는가. 우리의 삶을 그냥 내 손으로 끝낼 수는 없고 다시금 이 책을 읽으면서 실날 같은 희망이라도 잡아보려고 노력을 해야한다. 《옥스퍼드 세계사》은 이것으로 끝을 내고 이제부터는 예고했던 것처럼 《몽유병자들》을 읽으려고 한다.

에필로그 635 지나친 계획과 무모한 규제 완화 사이에서, 전제정과 민주정, 전체주의와 무정부상태, 권위주의와 자유지상주의, 다원주의와 종족 중심주의, 이데올로기적 세속주의와 비이성적 종교 사이에서 허둥대고 있다.

에필로그 635 과거에는 세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첫째는 체제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국가와 사회의 배열을 손질해 사람들을 유덕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에필로그 636 대다수 사람들의 궁극적인 유토피아는 적이 없는 세계이며, 그 세계를 구현하는 가장 빠른 길은 적을 몰살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636 둘째, 종교를 통해 인류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에필로그 636 텔레비전 전도자들의 추문, 또는 광신적 자살 폭탄 테러범들, 고문하고 참수하는 사람들의 잔혹 행위는 진심으로 받아들인 신앙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평화에 이바지하는 경우보다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에필로그 637 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린치스코는 지난 50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도덕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했을 테지만, 그들의 권고는 신도 대다수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고, 성직자 태반에게 가 닿지 않았다.

에필로그 637 도덕적 정체 상태를 끝내려면 선함 그 이상이 필요하다. 종교들이 염원할 수 있을 뿐인 어떤 기적이 필요하다.

에필로그 637 셋째, 과학으로 인류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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