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이스 윌켄: 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

 

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 - 10점
로버트 루이스 윌켄 지음, 배덕만 옮김/복있는사람

옮긴이의 글

0. 서문
1.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기독교 사상의 토대
2. 놀랍고 피 없는 희생제물: 기독교의 예배
3. 현재를 위한 하나님의 얼굴: 성경
4. 항상 그의 얼굴을 구하라: 삼위일체
5.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그리스도 인성의 비밀
6. 처음에 주어진 끝: 천지창조 이야기
7. 믿음의 합리성: 인식의 길
8. 하나님이 주님인 백성은 복이 있도다: 지상과 천상의 나라
9.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행동: 초기 기독교 문학
10. 이것을 다르게 만들다: 초기 기독교 미술
11. 하나님 닮기: 윤리의 삶
12. 감각적 지성의 지식: 영의 삶

에필로그
감사의 글

 


서문
19 기독교는 불가피하게 예전적(물로 장엄하게 씻음으로써 사람들이 교회에 받아들여진다)이고, 비타협적으로 도덕적(마태복음 5:48에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이며, 변증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적(베드로전서 3:15의 말씀처럼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이다.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들과 달리, 기독교는 일군의 경건한 실천들과 도덕법전 그 이상이다. 즉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에 대한, 세계와 역사에 대한 하나의 사유방식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각하는 것은 믿는 것의 일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썼듯이 "사람은 먼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 믿어지는 모든 것은 생각이 먼저 진행된 후에 믿어지는 것이다 ······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으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생각한다. 믿음 안에서 생각하고, 생각 안에서 믿는다." 처음부터 교회는 생기 있는 지적 생활에 양분을 공급했다.

이 책의 목적은 교회사 형성기에, 곧 교회가 모양을 갖추어 갈 때에, 기독교 사상의 유형을 서술하는 것이다 나는 이 주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특정한 역사적 기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공통된 전통의 일부로서 개인과 사상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교부들은 세상을 떠난지 오래되었지만 교부들의 토대는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 사상사만이 아니다 삼위일체와 그리스에 대한 장이 있지만, 기독교 시에 대한 장과 도덕적 삶에 대한 장도 하나씩 포함되었다. 나의 목적은 특정한 가르침들이 어떻게 출현하고 발전했는지를 기술하기보다는, 어떻게 기독교의 지성적 전통이 존재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해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20 교회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자극하고 그들의 감정을 사로잡은 새로운 사랑,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주었다. 이것은 다른 것들과는 전혀 다른 사랑이었다. 예수는 지혜로운 교사였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며, 심지어 학대와 중상을 받고 비참한 죽음을 당한 자애로운 인간일 뿐 아니라, 그의 죽음 이후 하나님께서 죽은 지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신 존재였다. 그는 한때 죽었으나, 지금은 실아 있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 경건의 중심적 사실이며 모든 기독교 사상의 토대다 부활은 고립된 사건이나 유별난 기적이 아니라, 유대 역사의 틀 안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또한 그것은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탄생시켰다. 기독교는 하나의 메시지일 뿐 아니라, 공동체 생활, 사회 혹은 도시로서 역사속에 들어온다.  공동체 생활의 내적 훈련과 실천, 제의와 신조, 그리고 제도와 전통은 기독교 사상의 토대를 형성했다.



1장
29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동료 유대인들에게 왜 자신들이 로마인에게 처형된 한 남자를 존경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예수의 죽음 이후 수십 년 내에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율법을 더 이상 준수하지 않게 되면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의 고대 전통을 버렸다는 비난에 대답해야 했다. 후에 그리스에서 바울이 유대인의 영역을 넘어 이방인들과 만나기 시작했을 때, 아테네 시민들은 유명한 아크로폴리스 서쪽의 언덕 아레오바고로 바울을 데려와 그의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었다.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 인지 알고자 하노라" 행17:20.

비록 기독교가 팔레스타인 유대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이어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 곧 시리아와 이집트,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와 지중해를 지나 아프리카 북부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회심자들 중 많은 수가 유대인들이었다. 하지만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사람들이 그 새로운 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유대교와도 거의 접촉한적이 없었던 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수세대 동안, 심지어 수세기 동안 실천해 온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가족과 이웃을 묶어 주었던 사회적 끈을 끊어 버린다는 뜻이었다. 기독교는 새롭고 낯선 삶의 방식이었다. 그것은 전통과 관습을 무시하고, 최근까지 생존했던 한 남자에 대해 지나친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독교는 과거의 지혜를 버린 것 같았다.

30 하지만 초기 기독교 사상은 비판지들의 비난에 답변하거나 외부인들에게 신앙을 설명하는 것만큼, 그리스도의 신비 속으로 깊이 침투하고 교회 안에서 믿고 전수된 것을 알고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무엇인가를 확립하려고 시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해하고 싶은 욕망은 믿는 것을 실천하고 싶은 욕구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믿음의 일부였다. 이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기독교 사상이 계시의 사실들에 반응하면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것의 특징이 성경의 언어와 이미지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의 삶과 예배가 기독교 사상에게 고대 철학에 없는 사회적 차원을 어떻게 부여했는지에 대해 살펴볼 기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인들이 제기한 질문들에서 먼저 시작해야겠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비판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 새로운 종교를 독특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반응 속에서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도 기독교에 대한 독특한 특성을 부여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대단히 날카롭게 파악했기 때문이다.


51 기독교는 신경의 상실과 이성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독교 계시가 회의주의를 종식시켰고 사람들에게 이성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심어 주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감각을 결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라고 말했던 아우구스티누스를 읽든 안 읽든, 혹은 육적인 것을 무시하기로 작심한 정신은 약화되고 좌절할 뿐이라고 말했던 다마스쿠스의 요하네스를 읽든 안 읽든, 역사적 계시의 지도하에 이성은 자신의 출발점을 더 많이 확신하고, 더 큰 자신감을 가지며, 덜 추상적이고, 목적의식이 더욱 깊어진다. 자신의 한계를 존중하지만, 이성의 범위도 팽창되고 확장된다. 역사 속에서와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이 인식된다는 사실은 경험의 가치를 승인했다. 그것은 기독교 사상가들이 거룩한 사람들 특히 순교자와 성인들의 삶,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간증으로서 교회 경험에 호소하도록 허용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 앞에서 그들에게 "예수와 부활에 대한 기쁜소식"을 이야기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우리에게는 낯설게 들리니, 우리는 그 의미를 알고 싶다." 교인들 앞에서 행한 설교뿐 아니라 외부인들에게 쓴 글에서, 가장 초창기의 기독교 사상가들은 "그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예배와 관행 기도와 교리 교육, 성경의 말씀과 이미지와 이야기 속에서 전해진 것이 확고한 지적 토대 위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것이 요점이다. 즉, 기독교의 이야기는 일군의 사상이나 원리로 축소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개념체계도 복음주의 역사를 대체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5세 로마의 감독이었던 대 레오가 썼듯이, 기독교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신비 위에 세워진 종교"다. 기독교 사상은 어떤 독창적 사상에서 발원한 것이 아니며, 어떤 중요한 영적 통찰력에 의해 양분을 공급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의 한 인간의 삶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났고, 유대에서 살았으며,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고 죽었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죽음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이 역사가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역사라는 사실이 이것을 덜 역사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눈으로 본 것이 보아야 할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교회가 기도하러 모였을 때 본 것이 앞으로 보게 될 것의 전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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