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과 세계 | 050 ‘중생’眾生


2018년 5월 28일부터 KBS 라디오 강유원의 책과 세계에서 진행되는 선생님의 라디오 방송을 듣고 정리한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6843


20180803-050 ‘중생’眾生

산스크리트 어 sattva의 번역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킴과 동시에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윤회전생하는 것




중생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중국의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사용되던 단어였다. 이를테면 유가의 경전인 <예기> 제의편에는 제사 지내는 의례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고, 죽어서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 중생필사 사필귀토라는 문장이 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중생은 말그대로 모든 생명체를 가리켰다. 그저 사물을 지칭하는 아무런 가치판단이 들어있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산스크리트 어 sattva의 번역어로 중생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나중에는 중생 대신에 有情이라는 번역어가 사용된다. 


중생이 유가의 경전에서나 중국인의 일상에서 모든 생명체를 가리켰다면 불교의 용어로 사용되면서부터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킴과 동시에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윤회전생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생이라는 말이 본래 어떤 의미였고 불교 용어로 사용되면서 뜻이 달라졌음을 알지 못한다 해도 중생이라는 말을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덜떨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물론 발음도 중요하다. "중생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중생아" 하는 식 말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라는 말도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있다. "사람이 참 괜찮아" 이렇게 말하면 좋은 판단처럼 느껴지지만 "인간이 왜 그래" 이렇게 말하면 이 어조에서 곧바로 우리는 경멸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인간이나 중생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인간다운 인간, 즉 당위로서의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이 있으며, 중생이라는 말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모든 단어에 그런 당위가 은밀하게 들어있지는 않겠지만 더러는 그런 당위를 아주 당연하게도 포함하고 있는 그런 말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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