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정치학 - 10점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옮긴이 서문 2천년 넘게 읽혀온 국가와 정치 그리고 행복의 문제 

일러두기 


1권 국가 공동체의 본질 

2권 이상국가 

3권 시민과 정체에 관한 이론 

4권 실제 정체와 그 변형들 

5권 혁명과 정체 변혁의 원인들 

6권 민주정체와 과두정체는 어떻게 구성해야 가장 안정성이 있는가 

7권 이상국가와 교육의 원리 

8권 공교육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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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모든 국가(polis)는 분명 일종의 공동체이며, 모든 공동체는 어떤 선을 실현하기 위해 구성된다. 무릇 인간 행위와 궁극적 목적은 선(善 agathon)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공동체가 어떤 선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모든 공동체 중에서도 으뜸가며 다른 공동체를 모두 포괄하는 공동체야말로 분명 으뜸가는 선을 가장 훌륭하게 추구할 것인데, 이것이 이른바 국가 또는 국가 공동체(politike koinonia)다.


20 여러 부락으로 구성되는 완전한 공동체가 국가인데, 국가는 이미 완전한 자급자족이라는 최고 단계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국가는 단순한 생존(zen)을 위해 형성되지만 훌륭한 삶(eu zen)을 위해 존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전 공동체들이 자연스런 것이라면 모든 국가도 자연스런 것이다. 국가는 이전 공동체들의 최종 목표(telos)고, 어떤 사물의 본성(physis)d은 그 사물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말이든 집이든 각 사물이 충분히 발전했을 때의 상태를 우리는 그 사물의 본성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 밖에도 사물의 최종 원인과 최종 목표는 최선의 것이며, 자급자족은 최종 목표이자 최선이 것이다.

이로 미루어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zoion olitikon)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사고가 아니라 본성으로 인하여 국가가 없는 자는 인간 이하거나 인간 이상이다.


21 또한 국가는 본성상 가정과 개인에 우선한다. 전체는 필연적으로 부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몸 전체가 파괴되면 손이나 발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석상의 손에 관하여 말할 때처럼 이름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죽은 손은 석상의 손보다 나을 게 없기 때문이다. 사물은 그 기능(ergon)과 능력(dynamis)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사물이 더 이상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그것이 같은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되고, 이름만 같은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분명 자연의 산물이고 개인에 우선한다. 왜냐하면 고립되어 자급자족하지 못하면 개인은 전체에 대해 다른 경우 부분이 전체에 대해 갖는 관계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29 그러면 몸이 혼과 다르고, 들짐승이 인간과 다른 만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인간들, 말하자면 몸을 사용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되 그럴 경우 최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인간들은 모두 본성적으로 노예이며, 이들은 모두 앞서 말한 원칙에 따라 주인의 지배를 받는 편이 더 낫다. 남에게 속할 수 있고 그래서 실제로 남에게 속하는 자는, 그리고 이성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성을 갖지 못하는 자는 본성적으로 노예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동물들은 이성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감성에 복종한다. 그러나 노예와 길들인 동물의 용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둘 다 생필품을 조달하도록 주인에게 몸으로 봉사하기 때문이다. 


151 정체와 정부(politeuma)는 사실상 같은 뜻이다. 정부는 국가의 최고 권력기구(to kyrion)인데, 최고 권력기구는 필연적으로 한 사람, 소수자 또는 다수자에 의해 대표된다. 한 사람, 소수자 또는 다수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하는 정부는 올바른 정부다. 그러나 한 사람, 소수자 또는 다수자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정부는 잘못된 정부다. 국가가 제공하는 이익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는 시민이라고 불리지 말든지, 시민이라고 불리면 당연히 이익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통치하는 정부들 가운데 공동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부를 우리는 보통 왕정(basileia)이라고 칭하며, 한 사람 이상의 소수자가 통치하는 정부를 귀족정체(aristikratia)라고 칭한다. 그런 정부가 그렇게 불리는 것은 가장 훌륭한 자들(hoi aristoi)이 통치한다는 의미에서, 국가와 그 구성원을 위해 최선의 것(to ariston)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다수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할 경우, 정부는 모든 정체에 공통된 명칭인 '정체' 또는 '혼합 정체'라고 불린다. 당연한 일이다. 한 사람이나 소수자가 탁월함에 뛰어나기는 쉬워도, 다수자가 모든 탁월함에서 완벽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적 탁월함은 예외로, 다수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혼합 정체'에서는 전사들이 최고 권력을 가지며, 중무장할 재력이 있는 자들이 시민권을 가지는 것이다. 

앞서 말한 정체들 중 왕정이 왜곡된 것이 참주정체, 귀족정체가 왜곡된 것이 과두정체, '혼합 정체'가 왜곡된 것이 민주정체다. 참주정체는 독재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1인 지배 정체(monarchia)고, 과두정체는 부자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민주정체는 빈민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어느 정체도 시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167 모든 학문과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agathon)이다. 이 점은 모든 학문과 기술의 으뜸인 정치(politike)에 특히 가장 많이 적용되는데, 정치의 선은 정의이며, 그것은 곧 공동의 이익이다. 다들 정의는 일종의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윤리학]에서 내가 설명한 정의의 철학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정의는 특정한 사물들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것을 조정하며, 평등한 사람등레게는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무엇에서 평등 또는 불평등인가 하는 말이다. 이 역시 하나의 난제로, 정치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필요하다.

아마도 다른점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고 남들과 같다 해도 어떤 점에서 시민들 사이에 차이가 난다면 공직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차이가 나면 정의와 평가도 차이가 나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맞는다면, 어떤 사람이 피부색이 좋다거나 키가 크다거나 그 밖에 다른 장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권리를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잘못이 아닐까? 다른 학문이나 기술과 비교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재능이 대등한 피리 연주자가 여러 명 있을 때 집안이 더 좋은 자에게 더 좋은 피리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집안이 좋다고 해서 피리를 더 팔 연주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일을 더 잘하는 자에게 더 좋은 도구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373 우리의 이런 주장이 옳다면, 그리고 행복이란 잘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해야 한다면, 국가 전체를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활동적인 삶이 최선의 삶일 것이다. 그러나 활동적인 삶이라고 해서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듯 꼭 타인과의 관계를 포함하는 삶일 필요는 없다. 또한 행위에서 결과를 얻기 위한 우리의 생각만이 활동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하고 그 자체가 목적인 관조(theoria)와 사색이 더 활동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사색의 목적은 훌륭한 행위이며,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활동(praxis)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향적인 활동의 경우에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사색을 통한 그러한 활동을 주도하는 자들이 행동하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로 덜어져 혼자서 살아가기로 작정한 국가들도 반드시 비활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의 부분들 사이에도 활동이 가능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는 개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면, 신도 우주 전체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 고유의 활동 외에 어떤 외적인 활동도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최선인 삶이 국가와 인류에게도 최선의 삶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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