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앙드레 도리옹: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 10점
루이-앙드레 도리옹 지음, 김유석 옮김/이학사


한국어판 서문 


서론 

1장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 

2장 사료의 문제와 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문제” 

3장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 

4장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5장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6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소크라테스 

결론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1장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 

21 소크라테스의 생애에 관한 일화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해석 역시 미묘하여 무수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399년에 그를 겨냥해 열렸던 재판이다. 이 재판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동족상잔이자 아테네의 치욕적인 패배로 마무리된 펠로폰네소스전쟁(431~404년)이 끝나고 나서 5년 뒤에 열렸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전해진 고발 내용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도시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았고, 새로운 영적인 것들을 도입했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고 한다. 여기서 해석자들은 이 세가지 고발 항목이 소크라테스를 겨냥해 열린 재판의 진정한 동기였다고 간주하는 사람들과,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비롯하여, 사실은 정치적 성격을 띤 핵심적인 고발 동기들이 있음에도 앞의 항목들이 이것을 은폐하고 있으리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로 갈라진다.


28 소크라테스에 가해졌던 고발들 모두를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전해주는 바 그대로 살펴보면, 우리는 30여 년에 걸쳐 쌓여온 비난의 물결을 크게 세 가지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423년)에 담긴 공격들로서, 플라톤은 이와 관련해서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비난자들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변론> 18b 이하) 둘째는 멜레토스, 뤼콘, 아뉘토스가 공식적으로 제기한 고발장이다(399년). 셋째는 폴뤼크라테스의 문건(393년경)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성격의 고발들이다. 소크라테스를 겨냥했던 고발들과 그에게 부과되었던 재판의 치명적 결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수많은 소크라테스적 문학 양식의 원천이 되었다. 적어도 그 초창기에, 이 문학 양식의 첫 번째 목표는 그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과거, 현재, 나아가 미래의 모든 소크라테스의 비난자들에 대항하여 그가 덕의 모범이었음을, 또 그와 젊은 친구들이 나누었던 대화가 그들을 타락시기는커녕 정반대로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2장 사료의 문제와 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문제” 

30 모두가 알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생애와 사상은 직간접적인 증언들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직접 증언들은 그와 동시대의 작가들(아리스토파네스)이나 제자들(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쓴 저술들이며, 간접 증언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죽은(399년)지 15년 뒤에 출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이다. 그런데 이 증언들 간에는 수많은 불일치가 나타나기 때문에,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삶과 특히 그의 사상을 재구성하는 것이 하나의 증언을 통해 가능한 일인지, 아니면 그 중 몇 가지 증언을 통해 가능한 일인지, 그것도 아니면 모든 증언을 통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렇게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학설을 재구성하기 위해 철학사가들이 맞서고 또 해결하고자 몰두하는 역사적, 방법론적 문제를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문제"라고 부른다.


37 사실 그들의 소크라테스적 저술들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라고 부르는 문학 양식에 속해 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분명하게 그 존재가 인정된다. 또 이 양식은 그것이 갖는 성격을 감안하건대, 대화의 배경과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 즉 다양한 등장인물에 의해 표현되는 사상에 있어서도 - 대단히 자유로운 창작성을 허용한다.

소크라테스식 대화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료처럼 읽거나 해석할만한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에 결처 작가의 창작성을 담고 있는 문학이나 철학 작품처럼 읽거나 해설할만한 것이라면,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그 대상을 잃고 말 것이다.


42 소크라테스의 문제가 어느 쪽으로든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이상,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소개하기 위해 앞의 두 과정 가운데 어느 것에도 호소할 수 없는 처지다. 이 두 과정은 차라리 두 가지 수단이라고 말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 하나는 오직 한 종류의 사료적 원천만을 선호하는 대신, 다른 것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배척해버리는 것이다. 반면 다른 하나는 일종의 절충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며 여러 가지 원천으로부터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조립해"내는 대신, 사료들 간에 드러나는 수많은 차이에 관해서는 축소하려고 애쓰거나 심지어는 침묵하려 드는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문제란 결코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우리의 확신으로부터, 아울러 소크라테스의 직접 증언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그의 여러 가지 모습을 펼쳐보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우리의 주요 원천들이 그려내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다양한 초상을 소개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그 원천들이란 바로 아리스토파네스, 플라톤, 크세노폰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이다.



3장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 

44 우리의 판단이 맞는다면, 아리스토파네스는 그 중 가장 맹렬하게 소크라테스를 공격했던 희극작가였다. 그는 두 편의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를 조롱했을 뿐만 아니라, <구름>에서는 아예 작품 전체를 그를 공격하는 데 할애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온전하게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의 몇몇 행적을 조롱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그를 철학적 탐구에 몰두하는 선생의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54 <구름>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역사적 인물인가, 아니면 이런저런 특징으로 조합된 인물인가 하는 물음은 언제나 격렬한 논쟁만을 낳았다. 이 논쟁이 이런 의미로든 저런 의미로든 결정적인 해결책을 찾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이런 소크라테스의 초상이 아테네인들의 여론에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종종 고대 희극 작가들의 표적이 되긴 했지만, 플라톤이 <변론>(17b~d)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 것을 놓고 판단해보건대, 다른 어떠한 작품도 <구름>만큼 그를 심하게 왜곡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 섰을 때, 그는 399년에 자신을 고발했던 자들을 상대로 변론을 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최초의 고발자들"이라고 일컬었던 사람들에 맞서서도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다. 그들은 물론 희극작가들로서 지난 20여 년간 그를 괴롭혀온 온갖 비방의 책임자들이었다. 소크라테스의 고백 자체만을 놓고 보면, 이 최초의 고발자들은 두 번째 고발자들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상대였다. 왜냐하면 "여러분(즉 판관들)이 어렸을 적부터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런 비난을 나한테 쏟아부으면서 여러분을 설득했던 것입니다. 즉 소크라테스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지혜로운 자이자 '사상가'로서, 하늘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지하에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하며, 가장 약한 주장을 가장 강한 것으로 만든다고 말입니다." 그를 향한 "최초의 고발자들" 가운데 우두머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아리스토파네스였다. <변론>의 방금 인용한 대목(18b~c)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파네스와 그의 <구름>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는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작품들 속의 무수한 대목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른바 소크라테스식 대화들에 흔히 나타나는 옹호론적인 목표는 399년에 있었던 고발 항목들 및 폴뤼크라테스의 문건(393년)을 겨냥하는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목표는 다양한 희극 작품 속에서 생전의 소크라테스를 대상으로 삼았던 공격들을 상대하는 데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작품들 가운데 으뜸은 <구름>이었던 것이다.



4장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64 무지의 선언

신탁은 소크라테스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고 선언하는데, 정작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는 사실에 신탁의 역설이 있다. 이 무지의 선언은 사실상 대화편에서 일관되게 반복되는 동기이면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와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를 가장 크게 대립시키는 분명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 무지의 선언은 수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는데, 지금까지도 주석가들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골몰해왔다. 과연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변론>에서 가지는 조금도 지혜롭지 않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할까? 어찌됐든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아테네에 살았고, 크산티페와 결혼했으며, 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무지는 모든 것에 다 해당되지는 않는 셈이다. 


70 <변론>이 소크라테스가 펼친 도덕적 앎의 목록을 남김없이 제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음의 것들을 확신한다. 영혼이 신체보다 훨씬 더 귀중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훌륭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일이며(<크리톤> 49a), 악과 불의를 저지르며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고(<고르기아스> 470e), 불의를 저지르느니 차라리 당하는 게 나을 뿐만 아니라(<고르기아스> 469b~c), 최선의 방어는 어떠한 불의도 행하지 않는 것이며(<고르기아스> 522d), 정의가 불의보다 더욱 강력하다(<국가> I531a)등.


80 III. 논박술(elenchos), 자기에 대한 앎 그리고 영혼의 보살핌)

신탁 이야기는 소크라테스가 지혜롭다는 명성을 누린 사람들에게 던졌을 질문에 관하여 여러 가지 암시를 준다. 그 탐구들은 사람들이 "논박술(elenchos)"이라 부르는 매우 구체적인 형식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논박술이란 질문자와 답변자가 문답법적인 대화의 틀 안에서 전개하는 일종의 논증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박술의 목적은 답변자가 동일한 주제에 관해 모순된 주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질문자가 드러냄으로써 답변자를 논파하는 데 있다.


83 정화淨化를 수행하는 요인으로서 엘렝코스는 요컨대 일종의 교육적인 장치이며, 특히 도덕 교육에서는 특권적인 중요성을 갖는 도구인 셈이다. 분명 엘렝코스는 덕을 전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덕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왜냐하면 덕의 획득이란 엘렝코스를 통해 거짓된 앎을 사전에 박멸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만일 답변자가 자기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면, 소크라테스는 토론 주제와 관련하여 답변자가 참된 앎을 갖고 있는지 시험해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대목에서 소크라테스가 대화자들에게 생각하는 바를 솔직히 말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답변자가 자신이 말하는 것에 솔직한 태도로 임하지 않는다면, 엘렝코스는 자신의 표적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화자가 변증법적인 탐구에서 자기의 진정한 의견을 슬쩍 빼돌린 이상, 논박은 대화자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그저 "임자 없는" 의견들만을 다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의 엘렝코스가 "실존적 차원"에 머문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탐구는 명제들을 다룬다기보다는 삶의 영역을 다루는 데 더 큰 비중을 둔다. 아니, 오히려 소크라테스의 탐구는 명제들을 매개로 하여 삶의 문제를 다룬다고 볼 수 있겠다.


96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산파술이 엘렝코스와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청년기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지식을 갖고 있다고 믿는 대화자들에게 다가간다. 이는 물론 그들이 사실은 무지하다는 것을 밝혀주기 위한 것이다. 반면에 <테아이테토스>에서 소크라테스가 대화자들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스스로 무지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어떤 점에서 그들이 사실은 지혜로운가를 밝혀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엘렝코스를 통해 상대하는 대화자가 실제로는 무지함에도 정작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믿는 자라면, 산파술이 노리는 것은 반대로 스스로 무지하다고 믿는 대화자들에게 알고 보면 그들이 지혜롭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107 VI. 소크라테스의 역설

우리는 공공의 의견에(doxa) 반하여(para) 소크라테스가 옹호했던 윤리적 입장을 일컬어 "소크라테스의 역설paradoxes"이라고 부른다. 그 주요 역설들은 다음과 같다. 1. 덕은 일종의 앎이다. 2. 누구도 고의도 악을 행하지 않는다. 3. 여러 덕은 하나의 단일성을 형성한다. 4.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게 더 낫다. 5. 불의에 불의로 화답해서는 결코 안 되며, 어떤 일이 있어도 타인에게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 타인이 우리에게 악을 행했다 하더라도 말이다.(<크리톤> 49c~d)

덕이 일종의 지식이라는 입장은 덕의 본성 및 그 전수 방식과 관련하여 광범위하게 퍼진 의견들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덕을 신에게 부여 받은 것 내지는 천성적인 것이라고 간주하거나, 혹은 아예 반대로 훈련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처럼 덕이 하나의 앎이며, 덕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획득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적어도 친숙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자식이야말로 도덕적인 사람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확신했다. 다시말해서 필연적으로 또 확실하게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덕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124 소크라테스가 <변론>(23c)에서 한 보고에 따르면 많은 젊은이가 그가 소위 지혜롭다고 잘못 알려진 저명한 또는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무지를 백주 대낮에 드러내는 것을 보면 즐거워했다고 한다. 우리가 몇몇 대화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 곁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은 그가 가짜 지식인들을 엘렝코스로 굴복시킴으로써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가 동일한 논박으로 굴복시킨 젊은이들 사이에서 어떤 욕망을 일깨웠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좀 이상하고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기는 해도 대부분 그가 그들을 상대로 행사했던 논박술에 기반을 둔 것이다.



5장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130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적 저술들(<회상,<향연>,<경영론>,<변론>)이 갖는 흥미로운 점은 이것들이 우리에게 소크라테스에 관한 "대안적인" 초상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소크라테스 추종자들에게서 유래한 초상들 가운데 유일하게 플라톤이 제시한 것과 대결시켜볼 만큼 완전한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적 저술들의 복권을 반대할만한 것도 더 이상 없다. 우리가 이 저술들에 쏟아졌던, 그리하여 지난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것들을 가려버린 주요 비판들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 비판들이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의 문제에 대한 답을 탐구하는 장에서, 크세노폰의 증언이 갖는 신뢰성을 깎아내리는 데 열중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이 사실상 해결될 수 없는 (잘못 제기된) 문제인 이상, 우리는 이 질문을 폐기 처분함으로써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적 저술들에 가해진 대부분의 비판을 무효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134 분명히 소크라테스x는 플라톤의 동명이민(소크라테스p)만큼 도발적이거나 교묘하여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그런 철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절제에 기초하여 검박한 삶을 열망했던 참된 철학자였다. 이런 식으로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낯섦이 우리에게 이것은 철학에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x가 소크라테스p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들의 학설이 서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저 피상적인 일치에 만족하지만, 이는 보다 근본적인 불일치를 은폐할 뿐이다. 


아직까지도 소크라테스x가 지닌 특수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두 소크라테스가 갖고 있는 주된 차이점들을 일부나마 다뤄보도록 하자.

1. 소크라테스x는 도덕과 관련된 주제에 관하여 단 한 번도 자신의 무지를 주장한 적이 없다. 아울러 그는 덕을 규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었다.

2. 소크라테스x는 자신이 교육의 전문가이며 가르침을 준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인정한다.

3. 소크라테스x는 자신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젊은이들에게 정치에 관한 교육을 시키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4. 소크라테스x가 보기에 정치학은 여타 기술들과 다르지 않다. 다시말해 그것은 명성을 떨치는 스승 밑에서 배워 얻을 수 있는 기술적 능력에 불과한 것이다.

5. 소크라테스x는 경제 일반, 특히 물질적 풍요의 조건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한다.

6. 소크라테스p는 당시 아테네의 위대했던 정치 지도자들, 특히 페리클레스와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와 반대로 소크라테스x는 그들에 대해 가장 큰 경의를 표했다.

7. 명예와 명성에 무척 민감했던 소크라테스x는 명예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격려해 마지않는다.

8. 소크라테스p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특수한 종류의 반어법을 소크라테스x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9. 소크라테스x가 보기에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고유한 뒤나미스, 다시 말하면 기술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역량이 어디까지 펼쳐지고 또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자각하는 것이지 "자신"이 곧 영혼임을 자각하거나, 그럼으로써 신체적으로 외적으로 좋은 것들보다는 영혼에 좋은 것들을 위해 살아야 함을 자각하는 것은 아니다.

10. 소크라테스x는 덕이 훈련의 과실이라고 생각한다.

11. 소크라테스x는 신체적인 힘이 덕의 획득과 훈련에 필수 불가결한 것인 이상, 신체를 돌보는 일에도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며, 소크라테스p와는 반대로 영혼을 돌보는 일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12. 소크라테스x는 전통에 동의하여 인간의 덕이란 친구를 이롭게 하고 적을 해롭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13. 소크라테스x는 엘렝코스에 의지하는 일이 거의 없다.

14. 소크라테스p가 그의 대화 상대자들을 당혹케 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만드는, 이른바 해괴한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소크라테스x는 예측 불가능하게 구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에우튀데모스와 나눈 첫 번째 대화(<회상>)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대화자들을 결코 당혹감에 빠뜨리지 않는다.

15. 소크라테스p는 자신이 델피의 신에게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이 임무란 바로 철학하며 사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16. 소크라테스x는 영적인 신호가 주는 충고의 도움을 받는데, 이 신호는 그와 그의 친구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가 해야 할 일과 피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17. 소크라테스x는 신들이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반면, 소크라테스p는 신들이 악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6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소크라테스 

155 앞의 세 명의 증인(아리스토파네스, 플라톤, 크세노폰)과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접 증인이 아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죽은 지 약 15년 뒤에 태어났고, 그가 아테네에 정착한 것은 서기전 367년이 지나서였다. 자료 면에서 볼 때 그의 증언들 역시 극히 소수만 추릴 수 있는데,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작품들에서는 34개의 짤막한 대목을, 그리고 소실된 작품들에서는 7개의 단편만을 뽑아낼 수 있다. 


157 우리의 주된 관심은 그의 증언이 소크라테스가 철학에 이바지한 것에 대한 최초의 비판적 평가 사례라는 데 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크라테스를 언급하며, 그를 비판대에 세워놓고 검토했던 최초의 작가였다. 물론 플라톤이 이미 소크라테스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취했을 수도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몇몇 논제를 비판했을 수도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가 창조한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대화편들을 거치면서 주목할만한 진화를 겪는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다.


결론 

170 소크라테스의 여러 초상을 담고 있는 화랑은 고대 세계와 더불어 끝나지 않는다. 중세기에 일정한 단절기를 거치고난 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화랑은 더 이상의 단절 없이 풍요로워졌다. 그런 점에서 "각각의 시대는 자기에게 고유한 소크라테스를 재창조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하겠다. 몽테뉴, 헤겔, 키에르케고르 그리고 니체와 같이 결정적인 사상가들이 소크라테스라는 인물과 잇달아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그가 현대철학에 있어서도 매우 특별한 영감의 원천임을 증언해준다. 아울러 혹시라도 역사적 소크라테스 사상의 재구성 가능성을 단념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고대로부터 전수된 소크라테스의 초상들이야말로 결코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원천의 전형이며, 거기서 철학적 사유가 자신의 가장 큰 이익을 위해 그 스스로 영감을 길어 올린다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부디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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