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 10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공감 

얼굴 

삶의 비극 

운명의 의미 

도스토옙스키의 작중 인물들 

사실주의와 환상 

건축술과 열정 

한계의 초월자 

신에 대한 고뇌 

삶의 승리






삶의 비극

21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우리의 첫 인상은 늘 공포이며, 그다음에야 비로고 그의 위대성이다. 그의 운명 역시 얼핏 보면 농부같고 비범함이라곤 없는 그의 얼굴처럼 대단히 비속해 보인다. 우선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60년이란 세월은 온갖 고통의 수단으로 그의 허약한 육체를 고문했기 때문이다. 궁핍이라는 줄칼은 그의 청춘과 노년의 단맛을 빼앗고, 육체적 고통의 톱날의 그의 뼈마디를 갈았으며, 결핍이라는 나사는 그의 자율신경까지 파고든다. 그런가 하면 신경의 타오르는 전깃줄은 끊임없는 사지를 경련으로 괴롭히며, 쾌락이라는 예민한 가시는 지칠 줄 모르고 그의 정열을 자극한다. 도무지 고통과 고문이 그치질 않았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함과 광포한 적개심이 일단 그의 운명처럼 다가선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의 운명이 영원한 것을 조각하려 했기에 쇠망치가 될 때까지 혹독하게 단련되었으며, 그래서 그의 운명이 그렇게나 강렬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 무엇으로도 한계를 측량할 수 없을 지경인데, 그의 삶의 행로는 19세기의 다른 모든 작가들이 시민으로서 걸어간 순탄한 넓은 포장도로와 전혀 닯은 점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강렬해지고자 스스로 시험하는 어두운 운명의 신의 욕망을 항상 느끼곤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운명은 구약성서처럼 영웅적이며 근래의 시민적인 어떤 것이 전혀 아니다. 그는 야곱처럼 천사와 영원히 씨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원히 신에게 반항하며, 수난자 욥처럼 영원히 굴종해야 했다. 안정을 누릴 틈이 전혀 없었고, 태만할 수도 없었다. 그를 사랑하기에 형벌을 주는 신을 늘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원한 길을 가기 위해 한순간도 행복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간혹 그의 운명을 지배하던 악마는 그가 분노를 터트리면 멈추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길을 가도록 허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다시 무시무시한 손을 뻗어서 그를 숲으로, 그것도 불타는 가시덤불 속으로 밀쳐 버린다. 그가 높이 내던져진다면, 이는 그를 더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며, 그에게 황홀과 절망을 알게하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 같으면 환락에 젖어 힘없이 무너질, 그런 소망의 높이까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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