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열하일기 2


열하일기 2 - 10점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돌베개



태학관에 머물며―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열하에서 만난 중국 친구들―경개록傾蓋錄 

라마교에 대한 문답―황교문답黃敎問答 

반선의 내력―반선시말班禪始末 

반선을 만나다―찰십륜포札什倫布 

사행과 관련된 문건들―행재잡록行在雜錄 

천하의 대세를 살피다―심세편審勢編 

양고기 맛을 잊게 한 음악 이야기―망양록忘羊錄 

곡정과 나눈 필담―곡정필담鵠汀筆談 

피서산장에서의 기행문들―산장잡기山莊雜記





17 자리에 있던 또 한 사람은 이름이 왕민호이며, 거인이다. 그가 내게 묻기를,

"조선은 땅의 크기가 사방 얼마나 됩니까?"

라고 하기에 나는,

"전하는 기록에는 5천 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단군조선은 중국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며, 기자조선은 주나라 무왕 때에 봉해진 나라이고, 위만조선은 진나라 때 연나라 백성들을 인솔해온 나라인데, 모두 한 지방에 치우쳐 터를 잡았으므로 5천 리도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합병하여 고려가 되었으니, 동서가 1천리이고, 남북이 3천 리였지요. 중국 역대의 역사 기록에는 조선에 대한 민정과 물산, 가요과 풍속이 실제의 사적과는 자못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기자, 위만 조선 시대의 기록이지, 지금 조선의 사적이 아닙니다. 

중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외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소략하게 기록하기 때문에 예전의 기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풍속은 시대마다 그 시대 나름의 제도가 있게 마련입니다. 고려 시대 이래로 우리나라는 오로지 유교를 숭상하고 예약문물이 모두 중국의 제도를 본받았기에, 예로부터 작은 중국이라는 뜻의 소중화라는 호칭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세운 법도나 사대부들의 처신이나 범절이 모두 조광윤이 세운 송나라와 같았습니다."


133 이른바 학문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삼가고, 분명하게 논변하며, 자세히 묻고, 널리 배우는 것을 말한다. 성인이란 한갓 타고난 덕성만 가지고 존숭하기엔 부족하다고 하여, 다시 학문을 추가하여 성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임금은 선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에게 절을 하고,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 사용했다. 안연은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으며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을 성인으로 인정하기에는 오히려 마음이 거칠다고 논란을 하였으니, 그것은 학문의 지극한 공력에 약간의 비이성적인 객기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객기를 제거하려면 모름지기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위 극기복례를 해야한다. '자기'라고 하는 것은 사적인 인간의 욕망을 말한다. 만약 하나의 터럭처럼 작은 것이라도 '자기'라는 생각이 마음에 붙어 있다면, 성인은 이를 마치 도적이나 원수처럼 여겨서 반드시 잘라 내고 깎으며, 죽이고 없애고야 말려고 하였다. 이긴다는 의미의 극은 바로 그런 것이다.


168 내가 열하에 이르러 묵묵히 천하의 형세를 살펴본 것이 다섯가지였다. 황제는 해마다 열하에 잠시 머무는데, 열하라고 하는 곳은 곧 만리장성 밖의 황량한 벽지이다. 천자는 무엇이 '괴로워'서 이런 변방 밖의 쓸쓸한 벽지에 와서 거주하는 것일까? 명분으로서는 피서를 위한 것이라 하지만, 그 실상은 천자 자신이 몸소 나서서 변방을 방어하려는 목적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몽고의 강성함을 알 수 있겠다.

황제는 서번(티베트)의 승왕을 맞이하여 스승으로 삼고 황금전각을 지어 거기에 거처하게 하고 있다. 천자는 무엇이 '괴로워'서 이런 격에 넘치고 사치한 예우를 하는가? 명목은 스승으로 모시면서도 기실은 황금전각에 그를 감금해 두고 세상이 하루하루 무사하기를 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본즉 서번이 몽고보다 더 강성함을 알 수 있겠다. 이 두 가지 일은 황제의 심정이 이미 '괴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을 쓰면서, 비록 그것이 평범하고 몇 줄 안되는 편지 쪽지라도 반드시 역대 황제들의 공덕을 늘어놓고 지금 세상의 은택에 감격한다고 쓰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한족 문인이다. 아마도 그들 자신은 망한 명나라의 백성으로서 항상 걱정을 품고 회의를 받을까 경계하면서도 입만 열면 찬미하고 붓을 잡으면 아첨함으로써, 마치 자신들은 지금의 세상에 초월한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리라. 이로 보면 한족들의 마음도 이미 '괴로운' 것이다.

남의 나라 사람들과 필담을 할 때는 비록 평범한 내용을 주고 받았더라도 말을 마친 뒤에 즉시 종이 쪼가리 한 장 안 남기고 모두 불에 태워 버린다. 이는 비단 한족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만주족은 더욱 심하다. 만주족은 모두 황제와 가까운 직위에 있으므로 법령이 엄하고 가혹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족의 심정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심정도 '괴로울' 것이다.

시장에서 파는 벼루 하나의 값이 백금을 넘지 않는 것이 없다. 아하! 천하가 소란할 때는 구슬과 옥이 굴러다녀도 거두어들이지 않더니, 나라 안이 태평할 때는 땅에 묻힌 기왓장과 벽돌 같은 것도 반드시 파내게 된다. 부귀한 자들은 당연히 구하여 보게 되고, 빈천한 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주워 모은다. 취미로 감상을 하는 자는 어쩌다가 한번 문질러 매만져 보고, 우둔한 자는 발에 못이 박히도록 쏘다닌다. 그리하여 밭 갈다가 얻은 것, 고기 잡다가 건져 낸 것, 무덤 속에서 갓 파낸 송장 냄새가 밴 것까지 이것 저것 모두가 천하의 보물이 된다. 천하의 진기한 보물을 완상하는 심정 또한 '괴로운 '심정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 조각 돌덩이로도 천하의 대세를 엿볼 수 있을 터인데, 하물며 중국 사람들의 '괴로운' 심정이 돌을 감상하는 사람의 '괴로움'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음에랴. 이제 필담을 하다가 불태워 버린 나머지에서 반선에 관계되는 것들을 모아 '황교문답'이라고 한다.


219 지금 열하의 지세를 살펴보니 열하는 천하의 두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황제가 북으로 열하에 연이어 가는 것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다. 두뇌를 깔고 앉아서 몽고의 숨통을 조이려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몽고가 이미 매일같이 출몰하여 요동을 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요동 지방이 한번 흔들리면 중국 천하의 왼쪽 팔뚝이 잘려 나가는 것이다. 천하의 왼쪽 팔뚝이 잘려나가면 중국의 오른쪽 팔뚝인 청해성 지방만 가지고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본 서번의 여러 오랑캐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해서 감숙성과 섬서성 지방을 엿볼 것이다. 

우리는 다행히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어서 중국 천하의 일과 무관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인지라 앞날에 벌어질 일을 미쳐 보지 못할 것은 당연하지만, 앞으로 30년이 지나지 않아서 천하의 근심거리를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금일 하는 말을 의당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내가 본 오랑캐와 여러 종족을 여기 기록해 둔다.


391 곡정이

"우리 선비들은 근세와 와서 지구가 둥글다는 학설을 자못 믿고 있습니다. 대저 땅은 모나고 움직이지 않으며, 하늘은 둥글고 돈다는 이론이 우리 유가에서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긴 것인데, 서양 사람들이 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소이다. 선생께서는 어떤 학설을 따르는지요?"

라고 묻기에 내가,

"선생님은 무엇을 믿으십니까?"

하니 곡정은,

"비록 제 손으로 우주 밖을 더듬어 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만, 자못 지구가 둥글다고 믿습니다."

한다. 나는

"하늘이 창조한 물건은 모가 난 것이 없습니다. 비록 모기의 넓적다리와 누에의 꽁무니, 빗방물과 눈물, 콧물 같은 것도 처음부터 둥글지 않은 게 없습니다. 지금 저 산과 강, 대지, 일월성신은 모두 하늘이 창조한 것이지만 아직 모난 별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지요. 제가 비록 서양인의 저술을 본 적은 없으나, 일찍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의심할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저 지구란 그 형체는 둥글고 그 작용은 모나며, 일의 효과는 동적이며 그 성질은 정적입니다. 만약 허공 가운데에 지구를 붙박아 놓고, 움직이지도 돌지도 못하게 하여 우두커니 공중에 매달아 둔다면, 바로 물을 썩게 만들고 흙을 죽게 해서 즉시 썩어 문드러져 흩어지는 현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오래도록 정지하여 머물면서 허다만 물건들을 실을 수 있으며, 강물을 쏟아지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지구의 곳곳마다 각자의 세계를 열어 별의별 종류들이 발을 붙이고 하늘을 이고 땅에 서 있는 모양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서양인은 지구가 둥글다고 인정하면서도 둥근 것이 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 알았지, 둥근 것은 반드시 회전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에는 지구가 한 번 돌아서 하루가 되고, 달이 지구 주위를 한 번 돌아서 보름이 되며, 태양이 지구를 한 번 돌아서 한 해가 되고, 목성이 지구를 한 번 돌아서 12년이 되며, 북극성 같은 붙박이 별이 지구를 한 번 돌아서 1회(10,800년)가 됩니다. 저 고양이 눈동자를 보아도 땅이 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눈동자는 열두 때의 변화가 있으니, 그 한 번 변하는 즈음에 지구는 7천여 리를 운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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