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7 도시, 문명의 꽃 4
- 강의노트/책읽기 20분 2016-18
- 2017. 10. 25.
도시, 문명의 꽃 - 앤드류 리즈 지음, 허지은 옮김/다른세상 |
책읽기 20분 | 도시, 문명의 꽃 [ 원문보기]
제2장. 위대한 도시로 가는 길 Great Cities, 500 BCE-300 CE 고대
–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 아테네, 로마
안전을 확보하고 도시 네트워크를 통해 지배력 행사. 건축, 정치기구, 문학, 철학 등의 문화가 발전
– 알렉산드리아: 여러 중요한 지적 자산이 도시의 명성에 기여
제3장. 새로이 피고지는 도시들 Decline and Development, 300-1500 고대부터 중세까지
로마의 쇠퇴에 따라 서구 중세의 도시들은 쇠퇴
– 바그다드: 규모, 화려함, 많은 학자, 위대한 인물, 종교적 관용에 따른 다양성
– 당나라의 장안: 제국의 수도로서 문화적 다양성
– 중세 말 피렌체의 쇠퇴
오늘은 2장과 3장을 읽겠다. 제2장은 위대한 도시로 가는 길, 제3장 새로이 피고지는 도시들로 되어있다. 첫시간에 말했는데 번역본에는 연대가 쓰여있지 않다. 제2장 위대한 도시로 가는 길은 고대도시들이고, 제3장 새로이 피고지는 도시들은 서기 300-1500, 대체로 근대라고 부르는 시기 이전인 고대부터 중세까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시가 어떤 발전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잘되어있는데 조금 더 추상적인 얘기를 하는 부분은 모자라지 않나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도시라는 것은 사실 문명이 만들어지는 곳인데, 문명이 형성되면 그것으로부터 어떤 사상이 형성되는 것이고, 그런 도시와 문명과 사상을 이어주는 흥망성쇠의 법칙과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기대가 과하지 않았나 한다.
지중해 연안의 도시문화가 활짝 꽃피던 시기인 서기전 1000년 후반기와 그 후 몇 세기까지는 우리가 잘알고 있는 도시인 아테네와 로마가 있다. 도시국가 아테네는 그 자체로는 아테네 제국을 만든 건 아니지만 로마는 제국을 만들었다. "도시국가 아테네와 제국의 도시 로마는 도시 네트워크를 만든 후 그 안에서 안전을 확보"했다는 얘기가 있다. 도시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안전이다. 안전을 확보하고 "다른 여러 지역에 있는 도시들을 지배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두 곳은 고대 지중해 지역의 선두격인 중심 도시로 떠올랐다." 항상 안전이 있고 그 다음에 안전을 바탕으로 해서 여러 지배지역을 아우르게 되고, 건축, 정치기국, 문학, 철학분야에서 문화적인 것들이 생겨난다. 이런 것이 사상이다. 이런 순서들이 있다.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 점은 스파르타다. 라케다이몬이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아테나이를 제압하고 강력한 패권을 형성하게 되는데, 전해지는게 없고, 미쳐발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스파르타 문화라는 것이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나라가 강성하고 안전이 확보되고, 어느정도 지배력까지 갖춘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문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마도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아테나이에 비하면 독창성이 떨어진다. 어떤 특정 국가의 강성함이 그 국가가 가진 문화적인 잠재력을 만들어내는데도 어떤 영향이 있지 않나 한다. 항상 책을 읽으면서 의문을 가지는 점이 이런 점이다. 문화적 융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형성되는가. 사람이 살기 편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인가. 그런 사상들은 어디에서 형성되어 나오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7 기원전 1000년 후반기와 그 후의 몇 세기까지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 문화가 활짝 꽃피던 시기였다.
37 도시국가 아테네와 제국의 도시 로마는 도시 네트워크를 만든 후 그 안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다른 여러 지역에 있는 도시들을 지배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두 곳은 고대 지중해 지역의 선두격인 중심 도시로 떠올랐다.
아테네의 패권이 페르시아에 맞서기 위해서 형성된 다음에 이른바 페리클레스의 시대가 되어서 이 책에도 나와있는데 "아테네의 이미지가 좋아진 데는 민주정치로 쌓은 명성이나 강한 군사력 외에도 건축을 비롯한 여러 문화적인 업적이 큰 몫을 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유명한 페리클래스의 장례식 연설에서 많이 거론된다. 자기네 나라가 독창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이어받은 현재의 희랍이 그렇게 탁월한 것도 아니다. 도시의 흥망성쇠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40 아테네의 이미지가 좋아진 데는 민주정치로 쌓은 명성이나 강한 군사력 외에도 건축을 비롯한 여러 문화적인 업적이 큰 몫을 했다.
이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들이 세운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는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단지 건축물 때문이 아니라 그 도시가 보유하고 있는 여러가지 중요한 지적 자산들 때문에 더욱 뛰어난 도시로 평가받았다." 어떤 도시 자체가 굉장히 강성해서 그 도시의 위용을 드러내 보이는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도시는 결국 중요한 지적자산들이 우리에게 기억을 남겨준다. 물론 건축물들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적자산이 아닌가 한다.
44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많은 도시들 중 하나로 기원전 332년 이집트 북부에 항구 도시로 계획되어 건립되었다.
46 알렉산드리아는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단지 건축물 때문이 아니라 그 도시가 보유하고 있는 여러가지 중요한 지적 자산들 때문에 더욱 뛰어난 도시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로마가 있다.
중국의 사례를 들어서 주나라 왕조 후기에 밀집한 도시 네트워크가 생겨났는데 한나라 때 장안과 낙양이라는 대단한 도시들이 형성되었다.
57 기원전 500년경 중국인들은 주 왕조 후기에 인구가 밀집한 도시 네트워크를 건설하여 상업과 행정중심지로 활용했다.
57 한 왕조의 도시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 장안과 뤄양은 각각 한나라의 수도 역할을 담당했고, 궁전·영모·종교 건축물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세계적으로 도시가 도시답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300년에서1500년 사이이다. 대표적인 도시가 콘스탄티노플과 장안, 바그다드와 같은 도시이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중세가 되면서 로마가 쇠퇴하면서 중세는 전반적으로 도시가 쇠퇴했다고 하겠다. 오늘날에도 쇠퇴는 오늘날에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다. 최근에 용인시가 인구 백만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우리는 백만이 엄청 큰 도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2세기의 로마 인구가 백만이었다. 그것이 로마 인구의 절정이었고 700년경에는 5만명으로, 11세기에는 3만명으로 줄어들었다. 그 이유가 "안전을 위해" 도시를 빠져나갔다. 중세 유럽은 "기독교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후세계가 강조되자 시민들은 도시의 세속적인 활동에 참여하기를 꺼려 했다." "주교의 관할 구역이 도시의 중심부 역할을 하면서, 기독교 교회가 로마인들이 건설한 격자 형태의 도시를 넘겨받았다고 볼 수 있다." 중세는 사실 도시의 시대는 아니다. 또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속세의 생활에 대한 강렬한 집착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구 유럽에서 도시가 발전한다고 하는 것은 정신세계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 시작하면서 원리적인 설명이 부족하지 않나 살짝 불평을 한 점이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생각해본 점은 도시가 발전한다고 하는 것, 그리고 도시가 쇠퇴하고, 문화가 생겨난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초월적인 것에 생각, 정신 세계의 경향성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나 한다. 물론 오늘날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울의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정신세계가 쇠퇴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62 안전을 위해 도시를 빠져나간 로마인들은 시골의 작은 마을이나 성, 수도원 등을 거처로 삼았다. 기독교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후세계가 강조되자 시민들은 도시의 세속적인 활동에 참여하기를 꺼려 했다.
62 주교의 관할 구역이 도시의 중심부 역할을 하면서, 기독교 교회가 로마인들이 건설한 격자 형태의 도시를 넘겨받았다고 볼 수 있다.
63 2세기만 해도 약 100만 명에 달하던 로마의 인구는 700년경에는 5만명으로, 11세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3만 5,000명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서부 유럽에서는 도시의 활력이 쇠퇴하면서 유럽의 동쪽으로 넘어가면서 발전한 도시가 콘스탄티노플이다. "콘스탄티노플이 이토록 번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국의 수도라는 정치적 입지와 더불어 국제교역으로 구축한 부가 크게 작용했다." 십자군 원정을 위해서 이 도시에 들렀던 서부 유럽의 사람들은 얼마나 촌사람들인데 굉장히 놀랐을 것.
63 도시의 활력은 유럽의 동쪽으로 넘어갔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비잔티움이라는 그리스 마을을 새로운 수도로 정했다.
64 콘스탄티노플이 이토록 번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국의 수도라는 정치적 입지와 더불어 국제교역으로 구축한 부가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인 바그다드. 11세기 중엽의 바그다드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이 세상에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혹은 얼마나 많은 학자나 위대한 인물이 모여 있는가라는 점에 비추어 볼때, 바그다드와 견줄 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어떤 이슬람 학자의 글이 있다. "바그다드가 다른 도시들보다 뛰어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시내의 각 구역이 널찍널찍하고, 도시의 규모가 크고, 집들과 왕궁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거주하는 훌륭한 저명인사들과 아량 있는 서민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도시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하는 게 저명인사, 개인주택, 공공건물 이런 것이다.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가 있어야 도시가 발전한다. 《직업의 지리학》에서 도시가 발전하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로 거론하는 것이 대학의 발전이다. 대학이 발전할 때는 일종의 슈퍼스타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바그다드의 사례를 살펴보면 "바그다드는 페르시아인·투르크인·아랍인·이슬람교도·기독교도·유대교도·조로아스터교도가 혼재하는 가운데 통치자들의 야심까지 더해져서 범세계적 도시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과학과 교육의 활기 넘치는 중심지가 되었는데, 통치자들은 바그다드를 제국의 정치적 수도이자 학문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이 구절이 아주 중요하다.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종교적 관용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런 관용이 있어야 과학과 교육의 활기가 넘쳐나게 된다. 그리고 통치자가 보인 관용도 있다.
67 11세기 중엽, 이슬람 학자이자 지도자인 알-카티브 알-바그다디는 바그다드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했다. 이 세상에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혹은 얼마나 많은 학자나 위대한 인물이 모여 있는가라는 점에 비추어 볼때, 바그다드와 견줄 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그다드가 다른 도시들보다 뛰어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시내의 각 구역이 널찍널찍하고, 도시의 규모가 크고, 집들과 왕궁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거주하는 훌륭한 저명인사들과 아량 있는 서민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68 작가가 보기에 수많은 '저명인사'들과 훌륭한 개인주택 및 공공건물들은 몇 백 년 전에 이미 파급되기 시작한 이 도시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69 바그다드는 페르시아인·투르크인·아랍인·이슬람교도·기독교도·유대교도·조로아스터교도가 혼재하는 가운데 통치자들의 야심까지 더해져서 범세계적 도시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과학과 교육의 활기 넘치는 중심지가 되었는데, 통치자들은 바그다드를 제국의 정치적 수도이자 학문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그리고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 《장안의 봄》 정말 좋은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좋다. 장안이 어떻게 중국에서 세계적인 제국의 수도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 관용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70 제국의 수도 중에서 가장 비범한 도시는 장안으로, 이 도시는 바그다드의 번영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와 거의 비슷한 때에 중국의 지리적 중심지라는 위치에 올랐다.
또 15세기의 피렌체가 있다. "지롤라모 디 사보나롤라라는 과격 신자가 득세하고,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략하면서, 또 예술가들이 점점 로마로 빠져나가면서 예술과 인문학의 패권을 잡았던 피렌체의 위대한 시대는 막을 내렸다. 1600년 작곡가 자코포 페리가 현존하는 오페라 형식으로 최초의 작품을 쓰는 등, 피렌체에는 여전히 문화적 활기가 살아있었지만 전처럼 월등하게 높은 위치를 고수하지는 못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보나롤라는 알고 있었는데 그 도시의 쇠퇴라는 것과 연결 지어서 이렇게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 형의 작은 도시들은 관용이 중요하다. 사실 사람 수가 적으면 관용이 어려울 수 있다.
82 15세기 후반 이후, 지롤라모 디 사보나롤라라는 과격 신자가 득세하고,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략하면서, 또 예술가들이 점점 로마로 빠져나가면서 예술과 인문학의 패권을 잡았던 피렌체의 위대한 시대는 막을 내렸다. 1600년 작곡가 자코포 페리가 현존하는 오페라 형식으로 최초의 작품을 쓰는 등, 피렌체에는 여전히 문화적 활기가 살아있었지만 전처럼 월등하게 높은 위치를 고수하지는 못했다.
"서기 300년에서 1500년까지, 로마 제국의 쇠락과 몰락으로 서구의 많은 도시들이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며 번성해나갔다." 그 성장과 번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책을 다 읽어봐도 그 얘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83 서기 300년에서 1500년까지, 로마 제국의 쇠락과 몰락으로 서구의 많은 도시들이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며 번성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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