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양장) - 10점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홍성사

서문

스크루테이프가 보내는 31통의 편지

부록 1961년판 서문





19 이제는 내 말을 좀 알아 듣겠느냐? 수세기 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공작해 온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물의 일상성을 환자한테 주입해야 해.



23 교인이 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찾아오는 실망감이나 맥 풀리는 느낌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원수는 인간의 노력이 문턱을 넘으려 할 때마다 이런 실망감이 찾아오는 걸 허용하고 있다. 이 실망감은  <오디세이 이야기>를 듣고 매혹되었던 소년이 진짜로 그리스어를 배우려고 작정할 때 찾아오지. 연인들이 마침내 결혼하여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도 그렇고. 그러니까 실망감이란 삶의 모든 부분에서, 꿈으로만 간직해왔던 야심을 힘겨운 실천으로 옮길 때 나타나는 표시인 게야.


40 자신이 못 마땅히 여기는 명분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까지도 제 편으로 포섭해가는 경우가 자주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 인간들이 그 명분을 선한 것으로 믿었으며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길을 따랐다는 극악한 궤변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43 따라서 네 임무는 환자가 현재의 두려움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생각을 절대 못하게 하는 한편,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처하는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들 이야말로 제 십자가라고 믿게 만들거라. 그렇게 서로 어긋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은 환자의 뇌리에서 싹 지워 버리고, 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만 미리 마음을 굳게 다지며 인내심을 발휘하려고 애쓰게 하거라.


51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 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 없어.


55 원수는 피조물들이 제 힘으로 서게 내버려 둔다. 흥미는 다 사라지고 의무만 남았을 때에도 의지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게 하겠다는 속셈이지, 인간은 꼭대기에 있을 때보다 이렇게 골짜기에 처박혀 있을 때 오히려 그 작자가 원하는 종류의 피조물로 자라가는 게야. 그러니 이렇게 메마른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야말로 원수를 가장 기쁘게 할 수밖에.


60 환자에게 만사에 중용을 지키라고 말해 주거라.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믿게만 해 놓으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우리한테 무교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


74 종교적 의무를 행하기 전에는 그저 남부끄럽지 않은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조금 생각하고, 의무를 끝내고 나면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리겠지. 몇 주 전만 해도 환자의 기도를 비현실적으로 만들고 주의를 산만하게 하기 위해 네가 유혹해야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환자편에서 기도의 목적을 흐트러뜨리고 자기 마음을 무디게 만들어 달라고 애걸하다시피 두 팔 벌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게다. 그는 원수를 진짜 만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 기도가 비현실적인 게 되길 바라거든. 그의 목적은 되도록 양심의 가책을 일깨우지 않는 것이지.


86 원수가 때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목적은 환자의 마음을 자신의 가치에 관한 문제들에서 떼어 놓는 것이고, 네 목적은 환자의 마음을 그런 문제들에 붙들어 놓는 것이다. 원수는 아무리 죄 문제라 하더라도 환자가 너무 깊이 천착하길 바라지 않지. 일단 회개했으면 되도로 빨리 관심을 밖으로 돌릴수록 좋아한다구.


90 따라서 거의 모든 악은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 보지.


91 우리가 바라는 건 전 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 버리는 것이다.


133 우리는 이전 세대 때 자유주의와 인본주의 노선에서 그런 '역사적 예수'를 구성하도록 선동한 바 있다. 지금은 마르크시즘 노선과 파국적 혁명적 노선에서 새로운 역사적 예수를 제창하도록 조종하고 있지.


133 이 '역사적 예수'의 구성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어, 무엇보다 먼저, 인간을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게 헌신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 사실 '역사적 예수'들은 모조리 비역사적이거든.


136 '사회 정의는 원수가 요구하는 것이므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일단 믿게 한 후, '기독교는 그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므로 가치 있다'고 믿는 단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136 개인이나 국가가 훌륭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신앙을 부흥시키려고 생각하는 것은, 천국 계단을 제일 가까운 약국 가는 지름길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141 즐거운 집단과 지루한 집단의 차이를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로 착각하도록 가르치거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히 달라'라는 느낌 (물론 이런 느낌을 입 밖에는 내지 않게 하는 게 좋아)을 주어야 한다. 그럴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곧 '내 편'을 가리키게 만들라구. 물론 여기서 '내 편'이라는 건 '사랑과 겸손으로 나 같은 사람을 받아들여 준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따라 사귀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되어야지.


159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창조 행위 속에 인간의 자유 의지가 개입할 여지를 마련해 놓았느냐 하는 점은 정말이지 골칫거리 중에 골칫거리로서, '사랑'에 대한 원수의 헛소리에 숨어있는 비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는 문제는 조금도 어려울 게 없지. 원수는 인간들이 자유롭게 미래에 기여하는 바를 미리 내다보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없는 현재'속에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이거든.


166 우리한테 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는 원수가 허용해 준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를 보면 알 수 있어. 인간 중 다수는 유아기에 죽어버리고, 그나마 살아남은 인간도 상당수 청년기에 죽고 만다. 원수한테 인간의 출생이란 죽을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기에 중요하고, 죽음이란 오직 다른 종류의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에 중요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는 인류 중에서도 선택된 소수에게만 공작할 기회를 허락 받은 셈이야. 인간들이 '정상적인 수명'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보면 상당한 예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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