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딕슨: 과학과 종교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3


과학과 종교 - 10점
토머스 딕슨 지음, 김명주 옮김/교유서가


1. 과학과 종교의 논쟁에서 실제로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2. 갈릴레이와 과학철학

3. 신은 자연 속에서 행동할까

4. 다윈과 진화

5. 창조론과 지적설계

6. 마음과 도덕


머리말/ 감사의 말/ 참고문헌/ 독서안내/ 역자 후기/ 도판 목록




1. 과학과 종교의 논쟁에서 실제로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19 요지는 과학 지식이 자연세계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그러한 관찰에 의해 검증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감각기관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보다 휠씬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심지어 과학자라 해도, 당신이 아는 것의 아주 작은 일부만이 자신의 직접적인 관찰에 기반한다. 그리고 이때도 그러한 관찰들을 이해하는 것은 수 세기 동안 축적되고 발전해온 현존하는 사실들과 이론들의 복잡한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23 밤하늘에 대한 이러한 감정적이고 종교적인 반응은 현대 우주론의 관점에서 달과 별들을 지각하는 경험이 그렇듯이 역사와 문화에 의해 매개된다. 종교 교육을 받지 않으면 당신은 성서를 인용 할 수 없을 것이고, 신에 대한 정교한 개념을 떠올릴 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현대 과학의 관찰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종교적 경험도 앎을 찾는 공동의 시도와 그것을 위한 오랜 협업 과정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23 종교의 경우, 당신의 망막에 닿는 빛과 신의 영광에 대한 당신의 생각들을 매개하는 것은 특정한 성서의 오랜 역사와 그 성서에 대해 인간 사회들이 연속적으로 시도해온 독해와 해석이다. 그리고 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동의 노력에서 얻은 한가지 교훈은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의 스승들은 과학의 스승들만큼이나, 관찰된 것 뒤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 그들의 불안정한 직관과 믿음을 뒤집어 놓을지도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35 이 분야에 대한 대다수 연구에서 그렇듯이, 이 책에서도 종교는 대체로 기독교를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브라함을 근원으로 하는 일신교 전통들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내에서는 일반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 철학적, 신학적 공통점이 충분히 존재한다. 이 논의를 일신교외의 종교 전통들이나 성서를 갖고 있지 않는 전통들로 더 확장하는 것이 가능한지 또는 바람직한지는 다른 문제이고, 이 문제는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2. 갈릴레이와 과학철학

38 갈릴레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모든 당사자들 사이에는,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통해 세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발견하려는 것과 믿음의 근거를 성서에서 찾는 것이 둘 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일이라는 합의가 있었다. 경험 과학과 권위주의적인 종교가 갈등을 빚은 것이 아니라, 자연과 성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톨릭 교회 내의 서로 다른 견해들이 특히 서로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갈등을 빚었던 것이다.


50 지구가 움직인다는 견해를 성서를 토대로 반대하는 것을 미리 막아보고자 갈릴레이는 1615년에 『크리스티나 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자연 지식과 계시된 지식이 부딪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혔다. 여기서 그는 가톨릭 교회의 교부들, 특히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에 크게 의지했다. 이 견해의 핵심은 조절의 원리였다. 이 원리는, 성서는 신의 계시가 처음 내려진 비교적 덜 교육받은 사람들의 제한적인 지식에 맞춘 언어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51 또 하나의 일반 원리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서는 구원과 관련한 문제들에서만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연 지식과 관련한 문제들에서는 만일 성서에 적힌 말이 현존하는 최고의 과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성서의 구절을 재해석 할 필요가 있었다. 이 모두는 실제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4세기에 성서에 대해 취했던 접근법과 일치했다.


58 역사가들은 과학과 종교의 충돌로 기억되는 갈릴레이 사건이 실제로는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오래된 정치적 질문과 관련된 분쟁이었음을 밝혀냈다. 로마에서 반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30년 전쟁으로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가톨릭 세력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서로 경쟁하는 지식의 원천들에 대한 질문을 그 자신의 해석과 추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갈릴레이의 주장은 극도로 건방진 태도이자 교회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보였다.


62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현대의 논쟁들은 주로 과학의 성공을 설명하는 문제를 다룬다. 실재론자들은 만일 전자 같은 실체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부여한 속성들을 실제로 갖고 있지 않다면 양자물리학 같은 ━ 관찰 불가능한 실체들을 상정함으로써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고, 자연에 개입해 새로운 효과를 내고, 더 자세하고 정확한 예측을 하는 ━ 과학 이론들이 성공한 것은 기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62 반시실론자들은 이에 대해 두 가지로 반론 할 수 있다. 첫째로, 과학의 역사는 한때 가장 성공적인 이론이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실체들을 상정했던 폐기된 이론들의 무덤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세기의 연소 이론이 그런 경우다. 이 이론은 어떤 것이 연소할 때 '폴로지스톤'이라는 성분을 방출한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예는 19세기 물리학이 주장했던 '에테르'다. 전자기파의 확산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졌던 물리적 매개다.


3. 신은 자연 속에서 행동할까

80 자연적·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사례들에서만 신의 흔적을 발견하는 루르드의 의학위원회와, 진화론의 약점을 토대로 설계자 논증을 펼치는 '지적설계'의 옹호자들은 모두 현지식의 틈새에만 존재하는 신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드러먼드의 비판을 면치 못할 듯하다. 드러먼드가 청중에게 물었듯이 "이러한 틈새들이 채워지면 우리는 어느 곳을 쳐다봐야" 할까? 한편, 모든 곳에 편재하는 드러먼드의 신과 자연 세계의 창발적인 복잡성에서 신의 활동을 보는 현대 신학자들의 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만일 신이 모든 자연 과정에 동등하게 존재하고, 인간의 모든 행동과 역사의 모든 사건에도 동등하게 존재한다면, 신이 악하거나 무관심하기보다는 선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혹은 신이 인간의 삶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주장 할 수 있을까?


84 과학철학자 낸시 카트라이트가 말했듯이, 현대 과학이 증명해 보인 것은 우리가 모든 시공간에 적용되는 단 한 세트의 체계적인 자연 법칙들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갖가지 질서가 창발하는 또는 창발하게 만들 수 있는 "얼룩덜룩한 세계"에서, 서로 다른 과학 이론들(물리학에서부터 생물학과 경제학에 이르는)을 짜깁기한 조각보를 이용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각보를 이루는 각 세트의 법칙들 가운데 어느 것도 모든 영역에 두루 적용할 수 없다.


86 양자이론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고전적인 뉴턴 역학의 기본 가정들을 뒤엎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양자이론은 물리학이 안정된 물질 입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결정론적 상호 작용으로 환원 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양자이론에 따르면, 양자나 전자 같은 실체들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파동처럼 행동할지 입자처럼 행동할지는 실험 장치가 이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한 양자의 운동량 또는 위치를 알 수 있지만 둘 다 알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양자이론에서는 관찰자가 단지 데이터를 입수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기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90 그 끝은 물질, 미스터리, 또는 형이상학적 필연일 것이다. 그것은 뚜렷한 정체가 없는 제1원인일 수도 신일 수도 있다. 어디서 설명의 여정을 끝내든, "왜?" 또는 "하지만 그것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라고 물을 여지가 항상 존재할 것이다. 종교적 사례든 세속적 사례든 모든 사례에서 그 대답은, 어떤 식으로든 그냥 그렇게 되었다이다. 신학자에게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우주의 제1원인을 상정하는 것과 그 미지의 원인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어떤 다른 종교적 전통의 인격적인 신과 동일시하는 것 사이의 커다란 틈새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이다.


98 헨리 드러먼드가 말했듯이 "신은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주기적으로 사라진다. 신은 특별한 위기에 등장했다가 이내 퇴장한다." 과학과 철학은 우리에게 결정론을 믿거나 기적의 가능성을 부정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의 딜레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신이 행동하지 않는 것은 신이 행동하는 것만큼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4. 다윈과 진화

101 지난 150년 동안 종교적 이유로 다윈주의에 저항한 사람들 중 일부는 그것이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 의미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자유의지, 도덕적 책임, 이성적이고 불멸하는 인간의 영혼 같은 개념들과 양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진화론을 거부했다.


106 변이와 자연 선택이 지적 설계처럼 보이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둘째로, 그는 정글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더불어 자연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잔인함과 폭력을 보았다. 그는 그것이 자비 롭고 전지전능한 신의 뜻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신은 왜 맵시벌을 창조했을까? 맵시벌은 알에서 부화한 새끼가 숙주를 산 채로 먹도록 애벌레 안에 알을 낳는다. 신은 왜 둥지에서 의붓자매들을 쫓아내는 뻐꾸기를 창조 했을까? 신은 왜 다른 종의 개미를 노예로 부리는 개미를 창조 했을까?


130 우리에게 친숙한 신다윈주의라는 현대적 진화론의 틀이 확립된 것은 1930년에서 1940년대 사이의 일이다. 신다윈주의는 멘델 유전학과 자연선택설을 결합했고, 마침내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든지, 내부의 진화를 추동하는 어떤 생래적 생명력에 호소하는 진화 이론들을 거부했다.


131 19세기 이래로 가톨릭 교회가 서서히 확립해온 공식 입장은, 인류가 과학이 기술하는 방식으로 물리적으로 진화했음을 받아들이지만, 각 개인의 영혼은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며 단순히 물질주의적 진화의 산물로만 설명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132 교황의 경고는 과학으로서의 진화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세계에서 의미와 목적을 박탈하는 포괄적인 견해로서의 진화 개념을 채택하는 것에 대한 경고 다. 가톨릭 교회는 진화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 창조론과 지적설계

139 역사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그동안 미국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보수적인 기독교 유권자들이 공립학교에서 종교에 기반한 반진화론적 개념들을 가르치게 하기 위해 힘써 왔으며, ID 운동은 그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가장 최근의 시도라는 점이다. 진화와 ID에 대한 논쟁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충돌이 아니라, 누가 교육을 통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 사이의 충돌이다.


144 '창조론'은 진화에 대한 모든 형태의 종교적 반대를 지칭하는 데 쓸 수 있는 느슨한 용어다. 그러한 반대는 과거에 여러 가지 형태를 띠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창조론자들이 공유하는 믿음은 우주와 지구상의 생명이 신에 의해 직접적이고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으며,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종들이 현재의 형태로 제각기 따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창조론자들은 모든 동식물이 공통 조상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를 반대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히브리 성서든 기독교 성서든 코란이든 자신들의 성서다. 예컨대 『창세기』를 보면, 신이 엿새동안 각 종류의 생물들을 따로 창조하고, 남자와 여자를 자신의 모습대로 만들었으며, 인간을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우위에 놓은 다음에 7일째 되는 날 쉬었다고 쓰여있다.


150 브라이언의 증언이 보여준 창조론의 두 번째 일반 특징은 과학과의 이중적인 관계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지구 역사가 6000년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브라이언이 수용한 이유는 그것을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 때문이었다. 그러면 왜 그는 성서에 적혀있는 것처럼 이브가 아담의 갈로 만들어졌고,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가 진화론보다 우선한다고 믿었을까?


151 어떤 지점에서 창조론자들은 과학적 증거를 믿기를 멈추고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할까? 그리고 왜 그렇게 할까?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진화론에서 가장 큰 불안을 야기한 것은 인간의 진화라는 문제였고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이 선을 그어야 한다고 느낀 곳은 인간의 조상이 동물임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160 ID에 대한 두 번째 반론은 그 부정적인 성격에 대한 것이다. 이 점에서 ID는 과학적 창조론과 차이가 있다. 이전의 창조론자들은 성서에 기반한 과감하고 틀린 주장이긴 했어도 대안 이론을 제시했다. 즉, 지구가 수천 년 밖에 되지 않았고, 지질학적 증거는 최근에 일어난 전 세계적인 홍수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조상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61 ID 이론은 진화 과학이 이러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외에는 어떤 새로운 예측도 하지 못한다. ID 이론가들은 어디까지가 진화로 설명 할 수 있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지적설계자가 필요한 것인지 명료한 선을 제시하지 못한다.


6. 마음과 도덕

180 신경과학이 종교적 믿음에 도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한 또 하나의 반응은 '이원론'의 형태를 띤다. 다시 말해, 인간 안에는 마음과 육체라는 두 가지 별개의 성분 또는 속성이 존재하면서 서로 상호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원론자들은 신경과학자들이 발견한 뇌와 마음의 상관관계를 마음이 뇌활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라 마음이 뇌와 상호 작용한다는 증거, 또는 마음이 뇌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증거로 해석한다. 17세기에 르네 데카르트가 주창 한 견해가 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받았지만, 현대에도 철학자들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이 견해를 이어받은 계승자들이 많이 존재한다.


180 이원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물질적 존재와 비물질적 존재가 어떻게 인과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과, 마음의 속성들은 곧 뇌의 속성이라는 더 간단해 보이는 물리주의보다 이원론이 어째서 더 나은 이론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183 인류 진화의 역사와 뇌 활동에서 비물질적인 영혼의 자리를 찾으려고 시도할 때 생기는 문제들보다 이 한 번의 거대한 기적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리주의와 육체의 부활을 믿는 것이 그들로서 수용 가능한 최선의 선택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영혼의 재생이나 육체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체적 불멸성이라는 개념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 현대세계에서는 그러한 도덕적 의미들을 만드는 일에서 과학과 기술과 의학이 점점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악행을 바로 잡지 않으면 신의 분노와 대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는 과거 종교적 선지자들의 경고 대신 우리는 부도덕한 성적 행위, 탐식, 탐욕을 멈추지 않으면 성병, 비만, 재앙적 수준의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 화재, 파멸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내용은 바뀌었지만 본질적인 구조는 똑같다. 과학과 의학은 미래에 대한 무시무시한 새 비전들을 제공하고,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그러한 비전을 이용해, 과거에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 늦기 전에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 잡으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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