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서양문명의 기반 ━ 철학적 탐구

 

서양문명의 기반 - 10점
강유원 지음/미토

서문

1.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2.역사 연구의 방법
3.고대문명
4.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명
5.고대 세계의 두 인물: 알렉산드로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6.중세사회
7.동양세계와 실크로드
8.르네상스
9.근대의 규정과 물질적 토대
10.근대의 혁명
11.근대의 여러 모습
12.20세기를 규정하는 세 원리
13.근대인의 자기 정체성 문제
14.근대의 파국적 완성으로서의 파시즘

에필로그

 


서문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는 '자유'의 이념을 근본 원리로 삼아 세계사를 조망한다, 정말로 그러한 조망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헤겔학도들의 관심사일 터이니 장황한 논의는 집도록 하되, 과연 이념의 눈으로 역사를 읽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어떤 이념을 군본 원리로 삼아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역사를 증거로 삼아 그 이념이 근본적인 것임을 확증하려는 시도이다. 실상 역사를 완전히 객관적인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역사로써 이념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그 이념을 역사의 목적으로 정립시키려는 목적론적 역사주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역사를 이용한 이념 증명의 어떠한 시도도 독단론이 되기 십상이다. 더욱이 현대는 역사의 의미 자체가 의문시되는 시기이다. '세계정신世界精神'과 같은 하나의 이념을 역사의 목적으로 설정하고 모든 것을 그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용납되지 않을 뿐더러, 이러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가속화된 세계감각 탓일지도 모른다. 속도감 있게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과거는 무용한 것이 되고, 그에 따라 진지한 반성 위에서만 성립하는 역사라는 거대구조를 망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핍진적乏盡的세계 경험'이다. 어떤 사태가 일어나면, 그것이 실시간으로 전달됨으로써 과거로서 의식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처럼 의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에게 역사의 종말이 운위되기 시작한 것은 가속화된 세계 변형의 출발점과 맞물리다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다시금 역사를 철학적인 눈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시도는, 죽은 헤겔을 되살려보겠다는 식의 어이없는 짓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이라는 명분 아래 또 다른 독단론을 세우겠다는 과욕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이미 현대는 역사를 하나의 정보 더미로 보고 있다. 역사는 사실의 집합이고, 그것은 단지 과거의 것일 뿐 우리의 현재의 삶을 비추어주는 적절한 지표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판단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최근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역사책들이 많은 기여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최근 실로 많은 역사책들이 우리 앞에 등장하였다. 특히 미시사, 생활사에 관한 한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등과 같은, 역사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담론과 웅장한 비전을 보여주던 책들은 이제 멀리 제쳐지고 있다. 반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다양한 이름의 역사 기행 등이 이와 어우러져 마침내 역사의 대중화라는 흐름까지 만들어 내었다. 일면 긍정적인 점이 없지는 않으나 다른 면으로 보면 이는 역사를 호기심 충족의 대상으로 국한시켰고, 더 나아가 취미 생활의 한 부분으로 머물게 하였다. 그것이 역사의 전부는 아니라는 항변은 과연 고루한 것일까? 우리는 역사를 그렇게 보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 이러한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을 역사철학으로 향하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향한 시선이 시선에서 그친다면 그것 역시 취미로서의 역사탐구에 그치고 말 것이니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뭔가 다른 의미로 읽어야 하겠거니와, 여기서 다시금 우리는 헤겔이 말한 '자유'의 이념을 떠올리게 된다. 헤겔은 역사를 인류의 자유 의식의 진보라고 말한다. 그는 역사의 발전의 증거가 모든 사람의 자유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는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그 당시만해도 굉장히 혁명적인 역사관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헤겔의 역사관은 '자유, 민권' 중심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자유의 구체적인 실현이라는 문제이다. 자유는 말로만 외친다고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실현되려면 정치적인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물질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헤겔에 있어서 자유는 오로지 정신적인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정신 속에 내재적, 즉자적으로만 존재하는 자유의 개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제도화되는가의 문제였다.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바도 바로 이 지점이다. 흔히 그의 역사관을 유물사관이라하여 노동과 자본의 투쟁만을 강조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는 헤겔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유의 개념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실현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그 결과 그가 내놓은 것이 바로 현실의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혁명 프로그램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헤겔과 마르크스의 시각에서 본다는 것은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검토하고 그것이 과연 몇 사람의 자유를 위해 기여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역사의 저변을 이루는 물질적 생산의 구조, 그것이 정신적 활동과 맺게 되는 관계, 그러한 교호작용 속에서 인간이 성취해내는 자아실현과 사회적 제도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핵심에 놓여 있는 인간 자신의 의식, 즉 자각적 의식 등이 우리의 주 관심사가 된다는 것이다.



   앞서 역사에 관한 헤겔과 마르크스의 이론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강의를 시도한 것은 그들의 이론을 강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종의 불만에서였다. 과거에 철학과 전공과목 중에서 '역사철학'을 강의했었는데, 그 강의는 역사에 관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채워졌었다. 그런데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를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역사에 대한 철학적 이론이 아닌 역사 자체를 소재로 삼아 역사철학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틈틈이 역사 책들을 읽어오면서, 기회가 되면 헤겔과 마르크스의 관점을 기본으로 하여 서양의 역사를 정리해보려 했었고, 마침 2003년 봄 학기의 교양 강의시간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이 강의노트는 내가 강의 시간 중에 떠들었던 것을 학생들이 정리하고, 다시 또 몇 명의 학생들이 재정리한 것이다. 강의노트를 묶어서 책으로 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강사의 노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없다. 강의는 강사와 학생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산물이고, 그 과정이 없으면 강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의를 묶은 이 책 역시 강사인 나와 다른 학생들 구체적으로 네 명의 학생들과 나의 공동 저작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역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도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역사에 대한 해석을 시도했다는 것 역사의 의미를 찾는다고 하는 역사철학 본래의 과제에 집중하기 보다는 일종의 체계적 이해를 위한 시도에 그쳤다는 것, 그리고 학생들과의 공동 저작을 취했다는 것 — 이러한 취약점들을 가진 이 책은 시도 자체를 제외하면 평가할 만한 점이 없을 것이다. 많은 질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면 본문에서 인용되거나 주석에 소개된 책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2003년 10월
김재석, 나현영, 신기철, 안은호 학생들과 함께
강유원 적음



1.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지금 우리가 다루려는 주제는 많은 논쟁이 있는 과제들이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무엇 하나를 끄집어 올려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역사연구의 방법이라는 주제를 제외하고는 논의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나름대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역사를 연구해 보니 그것이 나에게는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다'는 대답이 가능할 터이고, 그것은 곧바로 연구의 목적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백지상태에서 출발할 수 없으니, 우리의 연구의 출발을 위해서라도 잠정적으로 어떤 규정을 내려둘 필요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수정해 나가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출발점으로서 마르크 블로크의 논의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마르크 블로크는 아날학파의 창시자답게 한 사회의 '기반'을 이해하는 것이 그 사회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는 근본임을 주장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논지를 앞에 두고 '기반'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뒤에서 역사 연구의 방법을 논할 때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역사란 무엇인지, 역사의 쓸모, 역사 탐구의 대상 등을 그의 논지에 따라 살펴보기로 하자.

   블로크에 따르면 "역사는 본질적으로 변화의 학문"이다. 이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역사는 시간 속에서 변화해 가는 인간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가 변화하는 사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역사 연구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달리 보면 역사는 블로크의 말대로 "실험과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험과학으로서의 역사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사물의 원인과 그 변화과정"이다. 이것을 알게 되면 내일을 예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독단적인 형이상학적 목적이 전제되지 않고 그 결과가 열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분석과 비교를 통해서 더 나은, 일종의 '법칙'에 이르려는 것이 역사가 하는 일이요, 역사의 쓸모라 할 것이다.

   역사가 실험과학이라 해도 그것은 자연과학적인 의미에서의 실험과학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역사는 인문학의 영역에 속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인문학의 궁극적 탐구 대상은 '인간'이므로 역사가 인문학에 속하는 한, 역사의 탐구 대상 역시 인간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제의 일'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해보면 '과거에 인간(또는 인간 집단)에게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역사가 다루는 것의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일어난 일'의 범위를 한정지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역사를 들여다보면 오로지 인간 그 자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인간과 인간 집단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다루기도 하고, 사회제도가 중심 주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어찌 보면 인간과는 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에서 문제되는 이유는 바로 인간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언뜻 보기에는 순전히 자연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그것이 인간 개인, 인간 집단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면, 일단 인간의 일로 편입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의가 있는지가 역사가의 비판적 시각으로써 판단되어야 한다.

   이 점을 알아보기 위해 블로크가 예로 든 것을 한번 들춰보자. 블로크에 따르면 페스트의 병원체는 유럽의 인구를 감소시킨 원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페스트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것이 급속하게 전파된 것은 특수한 사회적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바로 인간의 정신에 의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연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것에 대응해 나가고, 그에 따라 인간 고유의 결과가 생겨난다면, 그 사태는 역사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단순한 반응체로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은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을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못하다. 사실상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역사적 사건의 원인에 대해 즐겨 말하곤 한다. 그런데 '원인'이라는 말처럼 모호한 것은 없다. 역사에서의 '원인'은 자연과학에서의 그것처럼 인과적 필연성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크로체 같은 이는 역사에서의 원인 개념을 부인하기도 했다. 그는 단순하고 근본적인 진리인, 원인의 개념은 역사 밖에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원인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비롯되었고, 이 이 영역 안에 자신의 임무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게 되면 우리가 역사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만델바움은 느슨한 인과관계 개념을 도입하여 원인을 '사건들 사이의 의존적 유대'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다 해도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자연과학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설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유사━인과적 설명'의 도식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이 도식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행위의 결과에 대해 선행하는 원인적 요소를 말할 때 후자는 전자와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있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자연과학적 설명이 될 것이다. 오히려 그 선행하는 요소는 어떤 행위를 유발하고 그 행위에 의해 결과가 나타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때 선행하는 요소가 행위를 유발한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 역사적 설명이다. 블로크는 모든 것을 '원인'에 귀속시키기 보다는 '원인'과 '조건'을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조건은 "약간 특수한 것이긴 하지만 어떤 항구성을 지니고 있는 선행 여건"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행 여견, 즉 사건을 낳는 각종 힘 가운데서 이른바 차별적 요소를 드러내는 선행여건에 '원인'이란 명칭이 부여된다." 그런데 블로크의 이러한 구별은 사실 모호한 것이다. 분명히 원인은 선행여건, 즉 조건 속에 들어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차별적 요소"를 드러내는지를 판별할 기준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로서는 이 둘을 특별히 구별할 방도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며, 이는 역사 연구의 방법을 논하면서 상세히 언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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