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83 제35강(1) 괴테 《파우스트》

 

2024.01.23 문학 고전 강의 — 83 제35강(1) 괴테 《파우스트》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35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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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고전 강의》 제35강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는다. 삶과 앎과 자연의 합의를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인간 편력이라고 되어있다. 제35강 제목의 '낭만주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이 작품이 굉장히 훌륭하다 뭐 이런 걸 떠나서 하나의 괴테시대라고 하는 것, 이 시대를 드러내 보여주는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이게 참 복잡한데 괴테시대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되는데, 지금 제35강 349, 350, 351페이지 세 페이지에 걸쳐서 이렇게 써 놓았는데, 이걸 외워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책에 있는 내용은 차차 하기로 하고 괴테 시대라고 하는 것에 대해 두 번 정도에 걸쳐서 해두고 그다음에 책에 있는 내용으로 들어가면 어떻겠나 그렇게 생각을 해보고 있다. 제35강의 첫 번째 문단을 보면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근대 독일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 괴테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로 거론되곤 합니다. 그는 독일의 질풍노도,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여러 이념의 시기를 거쳐간 작가이고 그에 맞는 대표작들이 있지만 흔히들 괴테하면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35강 349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근대 독일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 괴테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로 거론되곤 합니다. 그는 독일의 질풍노도,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여러 이념의 시기를 거쳐간 작가이고 그에 맞는 대표작들이 있지만 흔히들 괴테하면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전주의 작가가 맞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게 괴테가 《파우스트》라는 작품을 60여 년에 걸쳐서 썼다. 그러니까 인생이라고 하는 게, 우리가 하나의 작품을 60년 동안 써왔다고 하면 온갖 게 다 들어가게 된다.  게다가 괴테가 살아간 시대 자체가 온갖 게 다 들어간 그런 시대에 해당하니까 괴테라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고전주의인지 낭만주의인지 이렇게 일단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얘기를 생각을 해야 된다. 독일 낭만주의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되는데 독일 낭만주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순서대로 얘기를 해보면 일단 페트라르카부터 얘기를 해야 한다. 페트라르카에 대해서는 「북리스트」[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에서 "페트라르카의 산문들"을 얘기한 게 있다. 그것을 얘기하면서 페트라르카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를 해놓은 게 있다. 일단 그것을 먼저 살짝 얘기해보면 페트라르카는 1304년에서 1374년, 14세기를 온전히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 문헌을 재발견하고 고전 문헌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한 사람이다. 시인이기도 하고 산문을 쓴 사람이기도 하고 동시에 고전 문헌학자이기도 하다 괴테는 그렇지 않은데 낭만주의 이후의 작가들은 대체로 작품을 쓴 사람이 문헌학자인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가령 《율리시스》, 《피네간의 경야》를 쓴 제임스 조이스가 문헌학을 했다는 얘기는 없다. 그런데 페트라르카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페트라르카는 고전 문헌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안을 방법을 창안했는데, 이 사람이 발견한 자기 이전 시대의 작가들이 베르길리우스와 키케로,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여기서 잘 생각을 해야 된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베르길리우스와 키케로, 물론 베르길리우스는 페트라르카 이전 사람인 단테(1263~1321), 즉 단테는 13세기 후반과 14세기 초반을 살았던 사람인데, 페트라르카의 청소년기에 단테가 만년을 살았으니까 같이 살았던 시기가 조금 겹친다.  베르길리우스, 키케로 이런 사람들을 발견해서 humanitas라고 하는 이념을 말하자면 응집시켜낸다. '사람다움', 인간적인 감정, 온정적 태도, 인간에 대한 사랑 그러니까 philanthrōpia을 제시하게 된다. 페트라르카의 산문들을 보면 그런 것들이 나온다. 산문집을 보면 《고독한 생활》이 있다. 고독한 생활이라는 것에서 강조한 게 여가이다. 종교적 여가, 고독한 생활, 여가otium는 고대 로마에서는 "행동으로부터 자유롭고 활동의 동반자인 집착에서 자유롭다"라고 하는, 이제 고요하다, 나대지 않는 것 그 정도를 얘기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의 기독교 사상가들은 수도원 생활이 여가의 진정한 구현이라고 주장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고대 로마에서의 여가otium라고 하는 것이 세네카에 오면 정신적 풍요를 만들어 내주는 삶의 방식으로 얘기가 된다. 그래서 세네카는 말하자면 고대 로마의 otium이라고 하는 이념을 집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페트라르카 시대, 르네상스 시대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얘기가 되었다. 하나는 vita activa 활동하는 삶, 그리고 페트라르카 이런 사람들이 강조한 게 vita contemplativa 관조적 삶이다. 르네상스는 어느 것이 더 지배적인 것이었다 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두 종류가 공존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는 하나로 규정이 되질 않는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르네상스적 인간을 얘기했던 것이 있는데, 마키아벨리를 강조하고 있으니까 이는 vita activa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페트라르카는 vita contemplativa, 활동적 삶이 아니라 관조하는 삶을 얘기하고 있다. 그런 차이가 있다.  하나는 관조하는 삶이고 하나는 활동하는 삶이다. 이 두 가지가 다 하나의 흐름으로 내려오게 된다. 각자의 흐름으로 내려오게 된다. 일단 페트라르카가 말하는, 그러니까 르네상스 인문주의라고 하면 도식적이지만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해둬야 된다. 이런 도식들을 기억을 해두고 접근해 둘 필요가 있는데,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일단 자기네들의 그 이념의 원천을 고대 로마의 세네카에 두고 있다. 즉 키케로라든가 세네카라든가 베르길리우스라든가 이런 사람에게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옆줄기로는, 거의 맞먹는 줄기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vita activa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건 페트라르카류는 아니다. 그렇게 약간 도식적으로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 또 하나의 인문주의가 생겨나는데 도이치 인문주의라고 하는 것이 생겨난다. 도이치 인문주의의 대표자는요한 요아힘 빈켈만이다. 이 사람은 인문주의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그러니까 흔히 독일 신인문주의 이렇게 부르는데 인문주의라고 말을 해버리면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독일 인문주의가 같은 용어를 사용하니까 같은 원천에 기대고 있다고 혼동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독일 인문주의다 이렇게 말하지 말고 독일 고전주의다 이렇게 말하는데 흔히 도이치 신고전주의다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도이치 신고전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그리스 로마를 고전이라고 부르니까, 이게 로마인가 그리스인가 혼동될 수가 있다. 페트라르카는 분명히 베르길리우스나 키케로나 세네카나 아구스티누스, 그러니까 로마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어차피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서는 인문주의라는 말을 써왔다. 그러니까 페트라르카는 인문주의라고 말을 하고 그다음에 도이치 고전주의, 여기서 고전이라고 하는 건 서구 근대 사람들은 고전이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니까, 이것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가. 빈켈만은 헬라스의 고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니까 도이치 신고전주의라고 말하면 혼동이 되니까 아예 용어를 못 박아서 도이치 신헬레니즘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좋다. 신헬레니즘 그러면 이 사람은 로마의 매력적인 달콤함이나 아름다움 이런 것이 아니라, 빈켈만의 가장 유명한 가장 유명한 그 책이 "그리스 미술 모방론"이라고 흔히 번역이 《모방론》(회화와 조각예술에서 고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 관한 생각)이다. 그러니까 도이치 신고전주의 또는 도이치 신인문주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그 고전의 원천을 따져서 도이치 신헬레니즘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당하지 않겠나 한다.  도이치 신헬레니즘은 루돌프 파이퍼가 《인문정신의 역사》에서 얘기하고 있다. 도이치 신헬레니즘 또는 도이치 신고전주의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용어를 통일해서 도이치 신헬레니즘 그렇게 하면 페트라르카의 인문주의하고도 구별을 할 수 있다. 같은 인문주의이긴 한데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두면 되겠다. 

빈켈만은 《그리스 예술 모방론》에서 헬라스 조각상들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순박함과 온화한 위대함 이것에 대해서 말하는데, 왜 이 사람은 모방론을 썼는가. 제가 생각하기엔 이렇다.  우리도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하고 싶은데 이탈리아에서 한 것을 흉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더 원조를 찾아가 보니까 헬라스더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빈켈만는 로마 문화는 헬라스 문화를 닮은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로마 문화를 끊어낸다고 생각했다. 도이치 신헬레니즘을 빈켈만이 창시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창시라기 보다는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빈켈만에 대해서 엄청난 참미를 보낸 사람이 그 사람이 바로 괴테이다. 괴테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 괴테가 1749년에서 1832년까지 살았고, 빈켈만과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난다. 괴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빈켈만과 그의 시대라고 말한다.  1805년에 이 얘기를 했기 때문에 꽤 나이를 먹어서 그 얘기를 했다. 그러면 일단 괴테는 독일 고전주의, 정확하게 말하면 도이치 신고전주의, 그리고 그 원천을 밝혀서 말하자면 도이치 신헬레니즘에 대한 찬양이 있고. 빈켈만을 찬양하면서 그것을 완성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빈켈만은 도이치 신고전주의 즉 정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도이치 신헬레니즘의 주창자이고, 괴테가 바로 그것에 대해서 굉장히 경도되어 있었다고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일단 괴테시대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시기는 일단 신헬레니즘 시기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괴테 시대에 들어오면서 클래식과 로마틱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에로스를 찾아서》를 강의할 때[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도 그렇고, 예술사조는 크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나눌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한다. 낭만주의는 도이치 낭만주의도 있고 영국 낭만주의도 있고 프랑스 낭만주의도 있고 굉장히 많다. 그런데 그러한 특정한 시기나 특정한 나라의 어떤 낭만주의 사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술은 고전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이 있다 이렇게 말을 한다.  그러면 도이치 낭만주의는 무엇인가. 도이치 낭만주의도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제가 말하는 이 구도, 고전은 그것 자체로 완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헬라스 고전주의도 있고 이탈리아 고전주의도 있고 그다음에 자쿠루이 다비드와 같은 프랑스 신고전주의도 있다. 고전주의는 완성된 것, 비례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 그게 플라톤주의이다. 비례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고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가령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우연한 것을 무시하지 말고 그냥 막 써라 그러면 그건 로만틱한, 낭만적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인데, 저는 완결된 글을 써야 한다 라고 말하면 고전적 글쓰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건 하나의 사유 방식이나 창작 방식에서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낭만주의는 무엇인가. 낭만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미완성이고, 생성되는 모든 것이 생성되는 과정에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낭만주의이다. 

괴테시대Goethezeit에는 일단 빈켈만에 의한 신헬레니즘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괴테는 굉장히 몰두를 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몰두가 있는 가운데에도 도이치 지역에서는 로마틱한 것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토요일에는 도이치 로만틱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고 괴테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얘기하고 그다음에 다음 주에 제35강 349페이지부터 351페이지 사이에 있는 내용을 본격적으로 또 읽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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