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틸리히: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 ━ 종교와 철학의 관계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 - 10점
폴 틸리히 지음, 남성민 옮김/비아

들어가며

I. 기본 개념들
II. 인간 실존 그리고 존재 물음
III. 성서에 나타나는 인격주의의 토대
IV. 인격주의와 신-인 관계
V. 인격주의와 신적 현현들
VI. 성서에 나타나는 인격주의 관점에서 본 인간
VII. 성서 종교의 주관적 측면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론적 문제들
VIII. 성서 종교의 객관적인 측면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론적 문제들

해설: 폴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폴 틸리히 저서 목록

 


10 저를 비판하는 이들이 내린 결론, 즉 신학은 철학 용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고, 신학의 자기기만과 낙후를 낳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오히려 저는 성서의 상징들이 불가피하게 존재론적 물음을 유발하며, 신학이 제시하는 대답은 필연적으로 존재론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 대답을 발전시키는 일은 이 강연에서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완전한 응답은 오직 온전한 신학 조을 제시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들은 인간이 계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계시의 수용적인 측면을 가리키는 이름이 '종교’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시가 구체적 상황에 있는 인간, 인간 정신의 특별한 수용 능력, 인간 사회의 특별한 조건, 특별한 역사적 시대를 향해 말할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남을 잊고 있습니다. 계시는 그 주장이 아무리 보편적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일반적일 수는 없습니다. 

27 인간은 물음을 물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지요. 이 말은 우리가 물음의 대상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지는 않음을 뜻합니다. 그 대상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를 불완전하게나마 소유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이는 물음의 대상조차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언가에 관해 물음을 묻는 이는 물음의 대상을 소유하고 있는 동시에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존재 물음을 묻는 존재인 인간은 존재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존재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존재에 속해 있으면서도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존재에 속해 있습니다. 존재의 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를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존재의 힘은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의 혼합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유한다는 말의 뜻입니다. 

82 성서에서 인간의 윤리적 실존과 사회적 실존은 그의 종교적 실존에 근거합니다. 이 종교적 실존을 성서는 '신앙'faith이라고 말하지요. 신앙은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오직 우리 존재, 의미의 근거인 것에만 우리는 궁극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신앙은 우리 삶의 궁극적인 기원과 목적에 관한 관심입니다. 이는 온 인격을 발휘해 기울이는 관심입니다. 신앙은 인격으로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이며 다른 관심들을 결정하는 관심입니다. 이 책에서는 오직 이러한 의미로만 '신앙'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신앙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신앙을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에 사로잡힙니다. 성서 용어를 빌려 말하면 우리 영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영이 신앙을 빚어냅니다. 

84 성서적 관점에서 신앙은 온 인격의 행위입니다. 지성, 감정, 의지가 신앙에 참여합니다. 신앙은 자기포기self-surrender, 순종, 동의의 행위입니다. 신앙에는 이 요소들이 있어야 합니다. 동의와 순종 없는 감정의 포기는 인격의 중심에서 나온 행위가 아닙니다. 이는 결단이 아니라 강요에 의한 행동입니다. 감정의 참여 없는 지적 동의는 종교적 실존을 비인격적인 지적 행위로 왜곡합니다.  

90 인간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서 있습니다. 자신이 유한함을, 그러면서도 무한에 속해 있음을 인간은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존재 물음을 던집니다. 인간은 존재에 관해 무한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존이 이 물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신앙 역시 무한한 관심입니다. 신앙은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궁극적 실재에 대해 질문하는 인간과 신앙의 상태에 있는 인간, 이 두 인간은 그들의 관심이 무조건적이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93 신앙은 신앙 자체와 신앙 안에 있는 의심, 이 둘 사이에서 계속 일어나는 긴장입니다. 이 긴장이 언제나 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늘 잠복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앙과 논리적 증거, 과학적 개연성, 전통주의적 자기 확실성, 질문을 가로막는 권위주의를 구별합니다. 신앙은 무조건적인 것에 대한 깨달음과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을 감내하는 용기를 모두 아우릅니다. 신앙은 '부정'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긍정'을 말합니다. 

128 신앙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에 대한 의심 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예수이면서 예수를 부정합니다. 성서 종교는 존재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이를 긍정합니다. 이러한 긴장 가운데 고요하게, 동시에 용기 있게 사는 것, 그리하여 끝내 자기 영혼 깊은 곳에서, 신성한 삶 깊은 곳에서 성서 종교와 존재론의 궁극적 일치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인간사유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 사유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 사유의 위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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