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이글턴: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 10점
테리 이글턴 지음, 황정아 옮김/길



서문 7 


1.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 13 

2.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적으로만 괜찮다? 23 

3.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다? 39 

4.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69 

5. 마르크스주의는 만사를 경제로 환원한다? 105 

6. 마르크스에게 세계는 물질 덩어리였다? 123 

7.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사라진 노동계급에만 집착한다? 151 

8.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폭력적인 정치 행동을 선호한다? 167 

9. 마르크스주의는 전권을 가진 국가를 믿는다? 181 

10. 마르크스주의는 최근의 급진적 운동에 기여한 바 없다? 193 


결론 216 


옮긴이의 말 : 다시 마르크스에서 출발하는 길 218 

찾아보기 225




18 마르크스주의의 신빙성을 떨어뜨린 것은 자본주의가 타고난 성질을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이다. 체제에 관한 한, 모든 것이 늘 해오던 대로이거나 심지어 더 심해졌다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주의를 격퇴하는 데 기여했던 것은 그것이 주장하는 바에 신뢰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주변부로 밀쳐졌지만 그렇게 된 이유는 그것이 맞선 사회 질서가 더 온건하고 자애로워지기는커녕 예전보다 한층 더 무자비하고 극단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사회 질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은 더더욱 절실해졌다. 


28 이상적으로 보자면, 사회주의에는 숙련되고 교육받고 정치적으로 세련된 대중과 활동적인 시민 조직, 상당한 수준의 기술, 계몽된 자유주의 전통과 민주주의 습관이 필요하다. 우울하리만치 모자라는 고속도로를 그나마 고칠 여력도 없다거나 뒤채 우리에 든 돼지 말고는 질병과 기아를 막을 어떤 보장 정책도 없는 상태라면,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갖춰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37 한 줌의 상업적인 무뢰배들이 고작 자신들의 은행 잔고에 유리한 네안데르탈인 수준의 정치적 견해로 대중의 정신을 마음 놓고 타락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느낌으로 되돌아볼 수 있을 때, 그때에야 우리는 사회주의가 자리를 잡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44 그의 사상에서 정말 독창적인 것은 그가 이 두 관념, 즉 계급투쟁과 생산약식을 한데 묶어 실제로 진정 새로운 역사적 시나리오를 내놓은 점이다. 이 두 관념이 정확히 어떻게 함께 가느냐 하는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고 마르크스 자신도 이에 대해 그리 달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 독특한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면 여기서 멈추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장기적인 역사적 변화에 대한 이론이자 실천이다.


103 진정한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대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두의 서로 다른 필요를 고르게 돌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르스크가 기대한 사회도 이런 것이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 전부가 서로 통약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것들을 모두 같은 잣대로 측정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에게 모든 사람은 자기실현의 평등한 권리가 있고 사회적 삶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평등한 권리가 있다. 따라서 불평등의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각자 독특한 개인으로서 번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에게 평등은 차이를 위해 존재한다. 사회주의는 모두가 같은 작업복을 입자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본주의야말로 너 나 할 것 없이 트랙슈트니 트레이너니 하면서 똑같은 유니폼을 입힌다.


160 마르크스 자신은 육체노동을 해야 노동계급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례로 [자본]에서 그는 사업노동자를 산업노동자와 같은 층위에 놓았으며 프롤레타리아트를 상품을 직접 제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이른바 생산직 노동자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계급은 노동력을 자본에 팔 수밖에 없고 자본의 억압적 규율 아래 신음하며 자신의 노동 조건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사람들 모두를 포괄했다. 소극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몰락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사람이라 묘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임금과 고용 불안을 겪으며 노동 과정에 결정권을 거의 갖지 못하는, 대개 비숙련 노동자인 하층 화이트칼라 노동자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산업 노동계급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노동계급도 있고, 어떠한 자율성이나 권위도 갖지 못하는 수많은 기술・사무・행정 노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계급이 추상적인 법적 소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능력의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16 그러니 결론은 이러하다. 마르크스는 개인에 대한 열렬한 믿음과 추상적 교리에 대한 깊은 불신을 품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사회라는 개념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고, 평등이란 관념을 경계했으며, 우리 모두가 등에 사회보험 번호가 찍힌 작업복을 입는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그가 보고 싶어 했던 건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이 역사의 무력한 노리개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국가에 대해서는 우파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적대적이었고, 사회주의란 민주주의 심화이지 그 적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가 가진 바람직한 삶의 모델은 예술적 자기표현이라는 생각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그는 어떤 혁명은 평화적으로 완수될 수 있다고 믿었고, 사회 개혁에 결코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육체노동계급에만 편협하게 주목하지 않았다. 선명하게 양극화된 두 계급이라는 견지에서 사회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는 물질적 생산을 물신화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것을 될 수 있는 한 없애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이상은 여가이지 노동이 아니었다. 그가 경제적인 것에 그토록 지칠 줄 모르는 관심을 보였다면, 그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 인류에게 끼치는 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유물론은 도덕적・정신적 확신과 온전히 양립 가능하다. 그는 중간계급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사회주의가 자유와 시민권과 물질적 번영이라는 중간계급의 위대한 유산의 계승자라고 보았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그의 관점은 대부분 놀란 만큼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그의 작업이 낳은 정치운동보다 여성해방, 세계평화, 파시즘에 대한 저항이나 식민지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더 굳건히 옹호한 것도 없었다.


이토록 곡해된 사상가가 일찍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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