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서론·철학백과 서론


논리학 서론.철학백과 서론 - 10점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김소영 옮김/책세상



제1장 논리학 서론

논리학의 일반적 개념

논리학의 일반적 분류


제2장 철학백과 서론


해제-사유와 존재, 이성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변증법

1. 헤겔의 생애와 사상

2. <논리학>과 <철학백과>의 탄생 배경

3. <논리학>과 <철학백과>의 주요 내용

4. <논리학>과 <철학백과>의 영향과 계보

5. <논리학>과 <철학백과>의 현대적 의미


용어 해설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헤겔의 사변 형이상학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개념들을 파악하였으므로 이제부터 《철학백과》 서론을 읽기로 하겠습니다. 1절부터 18절까지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는 철학적 사유, 사유가 무엇인가 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개념 파악적 사유에 대한 것입니다. 6절과 7절은 사유와 세계 그리고 경험에 대해 다룹니다. 즉 자연과학적인 의미에서의 경험은 무엇이고, 철학적 의미에서의 경험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경험을 매개로 사유와 세계가 어떻게 통일되는가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8절부터 12절까지는 개념 파악적 사유, 즉 사변적 사유에 대해 다시 다루면서 초월적 대상에 대한 인식, 사변적 사유와 칸트가 말하는 비판적 사유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사변적 사유의 원리, 변증법은 무엇인가, 사유는 어떤 식의 변증법적 과정을 밟아가는가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변적 사유 또는 정신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입니다. 13절, 14절, 15절은 철학사에 관한 부분입니다. 헤겔에서는 철학사가 철학 입니다. 철학사로서의 사유, 체계로서의 철학, 그리고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16절, 17절은 백과전서에 관해서, 즉 '전체의 학'을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18절은 이 백과전서의 분류, 즉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의 구분을 다룹니다.

━ 철학고전강의》, p403~404





《철학백과》 서론


§1

철학은 다른 학문들에는 이로움 장점, 즉 자신의 대상을 표상에서 직접 주어진 것으로 전제할 수 있고, [연구를] 시작하거나 진행하기 위한 인식 방법을 이미 승인된 것으로 전제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철학은 우선 자신의 대상을 종교와 공유한다. 양자 모두 진리를 대상으로 삼으며 그것도 ─ 신이 진리이고 신만이 오로지 진리라는 ─ 최고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나아가 양자 모두 유한자의 영역, 즉 자연과 인간 정신을 다루며 이들 간의 상호관계와 이들의 자신의 진리인 신과 맺는 관계를 논한다. 따라서 철학은 대상들에 대한 익숙함, 아니 여하튼 대상들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을 전제 수밖에 없다 ─ 의식이 대상에 대한 개념보다 표상을 시간상 더 일찍 만든다는 이유만으로도 사유하는 정신은 심지어 표상을 통해서만 또 표상에 의지해서만 사유하는 인식과 개념파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유하는 고찰의 경우에는 그 내용의 필연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대상의 규정들은 물론이거니와 존재 또한 논증해야 한다는 요구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앞서 말했던 대상에 대한 익숙함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전제하고 보증하거나 승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하나의 시원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시원이란 직접적인 것으로서 자신의 전제를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오히려 그 자체가 전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2

우선 철학은 일반적으로 대상들에 대한 사유하는 고찰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사유에 의해 동물과 구별된다는 것이 옳다면(물론 옳을 테지만), 모든 인간다움은 사유에 의해 실현됨으로써, 또 오직 그럼으로써만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사유의 한 고유한 방식, 즉 사유가 인식으로 그것도 개념 파악하는 인식으로 되게끔 하는 하나의 방식이므로, 철학의 사유는 인간다운 모든 것에서 활동하는, 실로 인간다움의 [참된] 인간성을 실현하는 사유와 어떤 구별성 또한 지닐 것이다. 설사 그것이 인간성을 실현시키는 사유와 일치하며 본래는 동일한 사유일 뿐이라 해도 말이다. 그 차이는 다음의 사실과 연결된다. 즉 사유에 의해 정초되는 인간의 의식 내용은 처음에는 사상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직관, 표상 등으로 ─ 다시 말해 [사상이] 형식으로서의 사유와 구별해야만 하는 그런 형식들로 현상한다는 것이다.


§3

어떤 종류의 것이든 우리의 의식을 채우는 내용은 감정, 직관, 심상, 표상, 목적, 의무 등과 사상, 개념의 규정성 Bestimmtheit을 형성한다. 이 점에서 감정, 직관, 심상 등은 느껴지든 직관 되든 표상되든 원하는 것이든 간에, 또 오로지 느껴만지든 사상과 뒤섞여 느껴지고 직관되든 완전히 순수하게 사유만되든 간에, 변함 없이 동일하게 있는 내용의 형식들이다. 이러한 형식들 중 어떤 하나에서 또는 여러 형식들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서 내용은 의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상성에서는 그 형식들의 규정성 또한 내용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이 각각의 형식에 따라서 어떤 특수한 대상이 생겨나는 듯하며, 본래는 똑같은 것도 다른 내용으로 보일 수 있다.


감정, 직관, 욕구, 의지 등의 규정성은 인지되는 한에서 대개 표상이라고 불린다. 따라서 철학은 표상의 자리에 대신 사상, 범주, 더 정확하게는 개념을 놓는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표상은 이러한 대체로 사상과 개념의 메타포로 간주 될 수 있다. 그러나 표상을 가지고 있다 해서 사유에서의 표상의 의미나 그 사상 및 개념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반대로 사상과 개념을 가지는 것과 이에 상응하는 표상, 직관, 감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별개이다 ─ 우리가 철학의 난해함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측면은 이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 어려움은 한편으로는 어떤 무능함에서 기인하는데, 이는 추상적으로 사유하는데, 즉 순수한 사상들을 견지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데 단지 본래부터 익숙하지 않음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에서 사상들은 손에 익은 감각적, 정신적 재료를 걸쳐 입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있다. 그리고 숙고나 반성, 추론에서 우리는 감정, 직관, 표상 등을 사상과 뒤섞는다. 그러나 사상 자체를 순수하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와 전혀 다르다 ─ 철학이 난해한 또 다른 이유는 사상과 개념으로서 의식에 있는 것을 표상의 방식으로 마주하려고 하는 조바심에 있다. 흔히들 자신이 파악한 어떤 개념에서 무엇을 사유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사실] 한 개념에서 사유될 수 있는 것은 개념 자체뿐이다. 그런데도 저처럼 무엇을 사유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의 진의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친숙한 표상에 대한 갈망이다. 의식은 마치 표상의 방식과 아울러 자신의 지반, 즉 전에는 확고하고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던 지반을 빼앗긴 양 생각한다. 의식은 개념의 순수한 영역으로 옮겨지면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 그러므로 독자나 청중에게 그들이 이미 암기하고 있는 것, 그들에게 친숙한 것 그리고 자명한 것을 귀띔해주는 작가, 목사, 연설가 등이 가장 이해하기 쉽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4

철학은 우리의 범속한 의식과 관련해서 우선 자신의 고유한 인식 방식의 필요성을 밝히든지 아니면 일깨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대상, 즉 진리 일반에 관련해서도 철학은 이와 같은 진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표상들과의 구별성이 드러나는 것과 관련해서, 철학은 그와 다른 자신의 규정들을 정당화해야 할 것이다.


§5 

앞서 말한 차이와 이에 결부되어 있는 통찰, 즉 우리 의식의 참된 내용은 사상과 개념의 형식으로 옮겨도 보존되며, 오히려 그때야 비로소 그 내용의 고유함이 밝혀진다는 통찰에 대해 잠정적으로나마 설명하기 위해 또 하나의 오래된 선입견이 상기되어야 한다. 이 선입견이란 바로 대상이나 이미 주어져 있는 것에서 또 감정, 직관, 사념, 표상 등에서도 참된 것을 경험하려면 숙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숙고라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최소한 감정, 표상 등을 사상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한다.


철학이 자신의 일의 고유한 형식으로서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사유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천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한,  §3에서 진술되었던 차이를 무시하고 이처럼 사상시켜버림으로써 앞에서 철학의 난해함에 대해 불평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나타난다. [즉] 이 학문은 빈번히 경멸 당한다. 즉 철학을 위해 애쓴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은 철학의 사정을 본래부터 이해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교양 수준에서 특히 종교적 감정에 기반하여 살아갈 지라도 철학할 수 있고 또 철학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는 헛된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학문들을 알기 위해서는 연구해야 함을 그리고 지식을 습득한 후에야 비로소 그 학문들에 대해 판단할 권리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구두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록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발 치수를 잴 자와 손을 가지고 있고 필요한 작업을 위한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배우고 익혀야만 함을 인정한다. 그런데 오직 철학함 자체에 대해서만 이와 같은 연구와 학습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 이런 안이한 생각은 최근 직접지 unmittelbaren Wissen, 즉 직관을 통한 앎이라는 이론에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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