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10점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여름언덕



프롤로그 


비독서의 방식들 


제1장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 

제2장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제3장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제4장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 


담론의 상황들 


제1장 사교 생활에서 

제2장 선생 앞에서 

제3장 작가 앞에서 

제4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대처요령 


제1장 부끄러워하지 말 것 

제2장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제3장 책을 꾸며낼 것 

제4장 자기 얘기를 할 것 


에필로그






12 사실 자신의 그런 경험을 전하는 일은 상당한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데, 비독서의 좋은 점을 자랑하는 텍스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그런 점에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제 살펴보겠지만, 비독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일련의 내면화된 두려움에 부닥치게 하며, 그 두려움들 가운데 적어도 세 가지가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첫 번째 두려움은 독서의 의무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독서가 신성시 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13 두 번째 두려움은 정독해야 할 의무로 불릴 수 있는데, 이는 첫번째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읽지 않는 것도 눈총을 받지만, 후딱 잃어치우거나 대충 잃어버리는 것, 특히 그렇게 읽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눈총의 대상이 된다.

세 번째 두려움은 책들에 대한 담론과 관계된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어떤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임을 암묵적으로 전체하고 있다.


28 무질의 사서가 내게 현명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그의 그 "총체적 시각"이란 관념 때문인데, 나는 그가 도서관에 대해 말한 것을 문화 전체에 응용해 보고 싶다. 말하자면 책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교양에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독서에도 틀려먹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존재하는 책들의 수를 고려할 때, 우리로서는 사서처럼 총체적 시각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갈 것인지 하는 선택이 불가피하며, 전체를 통제한다는 측면에서도 모든 독서가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에너지 낭비인 것이다.


30 이 사서가 택한 방식의 기반이 되는 "총체적 시각"이라는 관념은 실천적 차원에서 상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것에 대한 직관적 인식은 그런 특혜를 누리는 일부 사람들에게 그들의 교양없음이 현장에서 발각될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큰 피해 없이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31 교양인들은 교양이란 무엇보다 우선 '오리엔테이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내부는 외부보다 덜 중요하다. 혹은, 책의 내부는 바로 책의 외부요, 각각의 책에서 중요한 것은 나란히 있는 책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건 교양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그 책의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고 하더라도, 종종 그 책의 '상황', 즉 그 책이 다른 책들과 관계 맺는 방식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의 내용과 그 책이 처한 상황의 이런한 구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별 어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덕택이기 때문이다.


32 어떤 책에 관한 대화는 겉보기와는 달리 대부분 그 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폭넓은 어떤 앙상블, 즉 특정 순간 특정 교양이 의거하는 결정적인 모든 책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37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훑어본다고 해서 책에 대한 평을 하지 못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책의 깊은 본성과 교양을 샆찌우는 책의 힘을 존중하면서, 그리고 세부 사실에 빠져 길을 잃게 될 위험을 피하면서 책을 제 것으로 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56 무질과 마찬가지로 발레리는 한권의 책이 아니라 집단 도서관의 어법으로 사유하도록 부추긴다. 문학을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진정한 독자에게는 어떤 책 한 구너이 아니라 다른 모든 책들이 중요하며, 어떤 한 책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런 총체적 시각과, 그 책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보다 폭넓은 어떤 구성에의 참여를 망실케 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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