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10점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21세기북스



구멍 

코요테 

아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강가의 개 

외출 

머킨 

폭풍 

피부 

코네티컷 


옮긴이의 말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127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로버트는 거의 10년 동안 내가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 가끔은 그에게 말을 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기를 10년이 되었고, 그 동안 우리는 유산, 파산지경 그리고 시부모님의 죽음을 지나왔다. 이제 나는 우리가 함께 헤쳐나갈 수 없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두려운 것은 그의 반응이 아니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그는 그 사실을 내면화하여 속으로만 삭일 것이다. 그 때문에 나를 미워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내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도 그는 아마도 내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을테고, 내게서 로버트에 대한 감정을 듣는다고 해도 내게 상처주지 않을 방법만 생각할 사람이다. 나는 것을 안다.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밣히는 것이 어떻게든 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은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문득 로버트를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다. 나는 간신히 그에 대한 기억을, 나의 가장 고통스럽고 내밀한 상실들이 저장되어 있는 마음 한쪽에 놓아둘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금도 그를, 우리가 함께한 짧았던 시간을 회상하노라면, 나는 우리 사이가 끝나기 직전의 어느 날 저녁으로 돌아간다. 초봄의 저녁이었고, 콜린이 친구들 몇 명과 시합 후 뒤풀이 자리에 가고 없던, 때아니게 추운 밤이었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말로 콜린과의 동반 참석을 피하고, 그가 나가자마자 로버트의 아파트로 걸아가 그가 내게 준 열쇠로 문을 열고 알으로 들어갔다. 그 열쇠로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와 사랑을 나누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의 아파트로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날 로버트에게 저녁 강의가 있다는 것과 9시무렵이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 위해 와인을 좀 마셨고 그런 다음 옷을 벗고 그의 침대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나는 그가 집 안으로 들어와 거기 있는 나를, 내 몸을 덮고 있는 시트를, 드러난 나의 맨 어깨를 보는 상상을 했다. 나는 그가 추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와 나를 발견했을 때 무슨 말을 건넬지 마음속으로 계획했다.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지, 나는 결심했다. 나는 로버트의 표정을 떠올려보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아주기를 바랐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나는 그가 그것을 이해해주기를 희망했다.

결국 나는 두 시간여를 그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방을 밝히는 것은 구석 자리 로버트의 책상 위에 놓인 등불뿐이었기에, 잠시 후 방은 차차 어두워졌고 나는 그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쩌면 저녁을 먹기 위해 아내의 집으로 갔을 것이고, 어쩌면 그곳에서 밤을 보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서히 이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그의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그러나 떠나기 전, 나는 와인을 한 잔 따르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식탁에 앉아, 눈 속에서 미식축구공을 던지며 노는 바깥 거리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 또래였지만, 그 순간 그들은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한 순간이었다. 결국, 어쩌면 몇 시간 동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나는 떠나야 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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