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산본마쓰: 탈근대 군주론


탈근대 군주론 - 10점
존 산본마쓰 지음, 신기섭 옮김/갈무리

감사의 말씀 

서문 


1장 좌파를 낭만화하기

2장 방언으로 말하기

3장 장식적인 이론

4장 프랑스 이데올로기

5장 군주와 고고학자 

6장 탈근대 군주

7장 메타인문주의


맺음말 


옮긴이 후기 

인명 찾아보기 

용어 찾아보기




43 1960년대와 70년대 초의 신좌파와 대항문화(counter-culture) 운동은 근대 기술 중심 사회의 소외와 위선, 폭력에 맞서는 열정적이고 뿌리 깊은 낭만적 외침, 한마디로 근대성 자체에 대한 반역을 대변했다.


43 지금 우리가 단순히 ‘60년대라고 부르는 시절은 체계적이고 뿌리 깊은 권력구조에 맞서는 상상력 풍부한 문화적, 정치적 반역을 대표했다.


45 첫째, 신좌파는 사회에 대한 ‘도덕적 반란’, 개인적 자기표현에 뿌리를 둔 반란을 강조했다. 둘째, 사회의 전체 문화적, 정신적 구성을 세밀하게 해명하는 모습을 띠면서 맑스주의의 훨씬 폭넓고 깊이 있는 비판을 포괄했다. 셋째, 훨씬 전통적인 정치 참여 영역을 회피하면서 대신 직접행동 전술을 강조했다. 넷째, 신좌파의 지지자들은 일반적으로 풀뿌리 또는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운동은 전반적인 “구조와 행동의 탈집중화와 다양성”에 헌신했다.


45 신좌파에게 결여된 것은, “미국 사회의 구조 분석, 미래 사회의 전망, 한쪽으로 다른 쪽으로 이끌어 가는 변혁을 촉발할 방법과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종합’이었다.


47 찰스 테일러는 (유사한 용어인 이사야 벌린의 ‘표현주의’expressionism를 따라서) 표현주의(expressivism)라는 용어를 써서, 18세기 말 낭만주의의 도래와 함께 나타난 유럽 문명의 큰 변화를 문학적.문화적.정치적 순간으로 묘사한다.


50 낭만주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1960년대 운동의 정치적.문화적 표현은 위대한 내부적 열기와 정열로 타올랐다. 감정은 이성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겨졌고, 실천(praxis)은 정서적이고 종종 미적인 용어를 통해서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포에이시스(poeisis) 또는 ‘창출’의 기획으로 표현됐다.


51 시오도어 로셔크는 1968년에 내놓은 연작 논문에서,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초기 자본주의 근대성의 영적 공허함에 도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좌파와 대항문화의 말기 낭만주의자들도 근대 사회의 소외와 비인간성 곧 삶과 경험과 자연을, 합리화한 절치와 관료주의 그리고 이익추구로 환원하는 데 반대했다고 봤다.


54 사회학자 알랭 투랜은 당시에 대해 분석하면서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썼다. “5월운동은 몇 주간의 집단 행동 이후 정치 생활을 변혁시키거나 사회 혁명을 폭발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운동은 에너지 상당 부분을 폭력 또는 자기표현 곧 말들에 소모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5월 한 달의 최대 성과는 이 자기표현이라고 여겼다. 이 견해는 내 생각이 아니다.


93 그러나 표현주의에도 대가가 따랐다. 표현주의는, 소비주의에 주관적인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확장을 억제하던 부르주아적 문화 규범들이 맹렬한 기세로 자본주의의 족쇄를 푸는 걸 방치했다. 선진자본주의 문화 내부에서 대항논리로 개발된 것들이, 후기포드주의의 새로운 논리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94 이런 주관적 공간-시간의 압축감은 서구 경제와 문화가 새로운 상품 생산 체제를 향해 폭넓게 이행하던 것(하비가 “모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이라고 한 것)에 부합했다.


94 표현주의적 감정 구조의 두 번째 결과는 신좌파가 자신의 이념을 명료화하고 성장 가능한 형식을 구성하는 걸 가로막은 것이다.


95 신좌파가 지나간 자취에는 그 어떤 일관된 실천의 사회이론도 확실히 남지 않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102 피히테와 헤르더에게 인간의 언어적 차이는 국민들간의 문화적 그리고 실체적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피히테는 독일 국민의 독특한 특성을 옹호하면서 언어가 "[한] 국민의 실제 일상생활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 그는, 한 국민 사이에 끼어 사는 외국인은 더 넓은 유기적 문화를 변혁시키는 대신 자신들이 변화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논했다. 피히테의 말을 빌리자면, "그래서 그들이 언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언어가 그들을 형성한다." 짧게 말해 언어가 인간 현실을 구성한다. 데일리는 이 개념을 가져다 자신의 여성주의 메타윤리학의 기반으로 삼았다.


104 낭만주의자들과 반율법주의자들은 이성을 의심하고, 특권을 부여받은 신화만들기와 예술을 과학과 경험적 지식 위에 놓았다. 정체성 정치 담론에선, 이와 비슷하게 역사도 신화적 또는 신화생성적 목적을 위해 불려 나왔다. 자아창조는 감각보다 감수성에, 이성보다 표현에 가치를 두는 걸 뜻한다.


107 사이보그는 차이와 '유사성'의 새로운 정치의 조화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이보그는 포스트모더니티 그 자체를 대표했다. 사이보그는 포스트모던적 조건의 다각적인 변위, 정체성과 문화의 지속적인 동요와 전환을 상징했다.


119 정체성의 정치와 반본질주의를 동시에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이런 이론의 변화는 서서히 그리고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타났다. 1980년대에 많은 실천 영역에서 실천은 '침묵 깨기'와 동일시 됐다.


134 1980년 이후 서구에서 좌파 사회 운동이 전반적으로 기울고 혼란에 빠짐으로써, 이론과 실천의 분리가 나타났다. 이어서 이 분리 현상은, 주로 학계로 물러나 웅크리고 있던 서구의 비판적 사상을 새로운 제도 및 정치 환경에 취약하게 노출시켰다.


139 솔다니의 물병처럼 장식적 이론은 기술적으로는 정교하고, 형식적으로는 창의적의고, 미학적으로는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장식적 층위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사회를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조명하는 데 있어서의 '유용성'은 줄어드는 듯 하다. 


139 장식적 이론은 사실 자신의 본래적 사용 가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비판적' 지식의 형식일뿐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규범이 되는 역사적 비판과 전략적 안목의 방식으로서의 '사용가치'와 학문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서의 '교환 가치'라는 두 꼭지점이 뒤집힌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140 사물화는, 상품화와 합리화의 이중 압력 아래서 주체가 객체가 되고, 객체는 표면상 '주체'가 되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과정이다.


141 경쟁자로 붐비는 '사상의 시장'에서 다른 지식 상품들 사이에 자리를 잘 잡아 두드러져 보이게 하려는 판촉 계획에 따라 책들을 치장했다.


167 비판적 이론이 추세 혁신으로 기울면, 이론적 지식-상품의 회전율이 빨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사상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169 이론의 '교환가치'는 투자비용 증가 곧 교수직, 특히 인문학께 교수직의 재생산과 유지에 드는 자본과 노동시간의 증가와 반대로 감소했다. 그 와중에 학자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소요되는 개인적 조직적 비용과 관료적 고정비용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182 신좌파의 쇠퇴 이후 정처 없는 처지가 된 많은 지식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몰려들었는데, 그건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치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이론은 더 이상 실천과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고, 그 자체가 이제 남은 유일한 의식적 실천인 듯해 보이기 시작했다.


215 헤겔의 정신이 인간 존재의 의식적인 자유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역사를 통해 행동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비판적 이론가 자신이 역사의 행위자가 되고 담론의 경로를 교차하고 근대성의 관에서 '억압된 지식'을 즐겁게 끌어내온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비밀목적론적인 서술을 이용해 스스로를 변화의 선구자로 제시한다.


228 나날의 의미와 정치적 선택으로 구성되는 이 세계의 부패와는 표면상 무관해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망은, 매클루어와 스콧 같은 비평가들이 믿듯이 단지 정치와 전략의 죽음만을 확인시켜주는 게 아니다. 언제나 권력에 맞서 엉터리 위안만 주는 이념인 관념론은 어디에도 쓸모 없음을 오직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262 그람시에게 성공적인 대항헤게모니 투쟁은, 특정 계급 또는 사회적 집단이 다른 다양한 사회 구성 요소들에 대해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동의의 바탕을 꾸준히 가꾸어가는 데 달려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유명한 비유에서, 군주는 여우와 사자의 특성을 차례로 보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도자는 '반인반수'의 괴물 켄타우루스의 모습 속에서 완력과 교활함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이 두 가지를 이용해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이런 개념을 자신의 헤게모니니 이론에 통합시켰다. 헤게모니는, 민주적 동의와 교육(여우)이라는 계기와 억압 또는 완력(사자)이라는 계기, 둘 모두와 관련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근대 군주는 정치 논쟁, 합리적 논의, 의식 고양과 관련될 때는 '여우'처럼 정치 투쟁을 전개하고, 자신의 목표가 특정 인민 또는 사회에 새로운 규범과 가치 체계를 부과하는 것인 한 '사자'처럼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70 페다고지와 지도력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노골적인 적대감은, 마침내 이론에 사변적이고 '장식적인' 징후가 나타나는데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화이론 비평가들은 이론을 '방언'으로 해석해줌으로써 보통 사람들이 사상을 접할 수 잇게 해준 게 아니라, 대중 문화의 방언을 고급 라틴어로 번역하는 길을 택했다. 그람시적인 지식인이 인민들에게 군주의 길을 가르침으로써 혼란에서 벗어나게 돕는 해설자(exegete)라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들에게 혼란의 씨를 뿌리고 실제의 사회 관계들을 신비화함으로써 잘못 인도하는 지식인들 곧 '거짓선지자'(eisegetes)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285 그람시의 근대 군주론은 겉모습이 없는 행동은 모호한(in obscura) 행동, 의미하는 바가 없는 몸짓임을 상기시켜준다. 정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겉모습의 공간에서 서로에 대해 대등한 잠재성을 지닌 존재로 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286 '탈근대 군주'도 전 세계에 걸쳐 이미 존재하는 해방운동들의 분산된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서 단일한 세계 역사적 운동의 형태를 부여하게 되는 '집단 지성'일 것이다.


321 근대 군주가 대변하는 것은 (리처드 벨라미의 말을 인용하자면) "다수의 분산된 의지들, 이질적인 목표들이 평등한 세계라는 공통의 개념을 바탕으로 삼아 단일한 목표로 결합하는 걸" 추구하는 노력이다.


330 근대 군주의 역사적 구실은 해설자 곧 폭력적인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 세상의 무의미를 이해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안내자다. 그람시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단지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군주 신화를 반복하는 것일 뿐 아니라, 바벨탑의 신화적 모습과 그것이 대변하는 보편적 언어의 꿈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람시가 인식한 근대 근주의 책임은 탐을 어떻게 쌓을지 인민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 군주의 책임은 인민들을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어 가서 공통 언어를 가르침으로써, 그들의 비밀 결사체가 건설 방법을 깨닫게 유도하고 자신들이 건설하고픈 게 뭔지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랄 수 있다.


338 마키아벨리에게 있어서 새로운 정치 형식은 인민의 국가 의식 계발을 위한 운송수단에 비유되는 군주 상이었다. 우리의 탈근대 군주는 어떤 모습일까? 옥타비오 오캄포의 작품인 세자르 차베스 상이 새로운 급진적 정치형식 이론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Octavio Ocampo: Cesar Chavez Foundation Portrait of La Causa

옥타비오 오캄포 작, <세사르 차베스: 이상의 초상>



361 탈근대 군주는 사회적 총체성이 갑자기 '배경'으로 보이게 만듦으로써, 기존의 해방 운동들을 겉모습의 영역으로 이끌어내어 하나의 '형상'으로 보이게 한다. 사회적 비판들의 수렴이 이뤄지면 총체성 그 자체가 사회적 구조물로 보이게 된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전체는 각 개별 '측면', 개별 운동에 빛을 비추고 그것을 일관된 억압과 지배 체제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384 포이어바흐와 맑스가 실재하는 감각적인 존재로부터 자신들의 비판적인 철학을 구성하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단지 우리만 감각적인 존재인 건 아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숙고하는 건 게을리 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옳다면, 다시 말해 공감은 보편적인 데에 다가가기 위해서 고통의 총체성을 탐구해야 한다면, 우리는 모든 타자들, 모든 고통받는 존재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385 맑스를 포함해서 과거의 모든 인문주의에 담겨 있는 문제는, 오직 인간의 고통만 '본다'는 것이다. 인간 주체를 의미와 가치의 유일하고 독창적인 바탕으로 여긴다. 이런 형이상학적 자만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 속에 거친 형태로 존재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394 메타인문주의는 서구 문화의 중심에 자리잡은 존재론적 범주 오류 곧 다른 주체들과 다른 세계내존재 양상들을 대상의 자리로 전락시킨걸 극복하려는 시도를 대변한다. 

 

401 메타인문주의를 통해서, 탈근대 군주는 제 자신의 바탕이 단지 역사적이거나 '유물론적'인 게 아니라, 예컨대 자본주의 구조 내 모순들의 명백한 드러냄 같은 것에 국한하지 안혹, 존재론적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탈근대 군주의 바탕은 자유와 사랑을 추구하는 모든 생명 있는 유기체들의 델로스(궁극의 목적)에 있다.


408 <옥중수고>를 가지고 그람시는 우리에게 이런 희망의 탑을 건설하라고 열심히, 참을성 있게, 그러나 아무런 보장도 없이 권한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세울지 보여주는 청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건설할지에 대해 곧 어떻게 서로 다른 '방언' 또는 역사적 경험의 방식들을 번역할지, 어떻게 함께 땅을 디딜지, 어떻게 진정으로 보편적인 기획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지탱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깊이 기반을 세울지에 대해 약간의 실천적 제안을 남겼을 뿐이다. 역사의 황혼이 드리우는 중엔 어떤 전략들을 추구해야 할지 보기 어렵고, 우리가 건설할 필요가 있고 아마 건설하길 갈망할 탑의 모양을 식별하기는 더욱 어렵다. 역사적 경험이 우리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불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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