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2 - 10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곽광수 옮김/민음사



SAECULUM AUREUM 

황금 시대 


DISCIPLINA AUGUSTA 

지엄한 군율 


PATIENTIA 

인내 


창작 노트 

자료 개괄 


작품 해설| 곽광수 

작가 연보







33 젊은 시절의 나는 젊은 시절의 알키비아데스와 같은 매력을 갈망하지는 않았다. 다양성을 두고 볼 때, 나도 즐기기는 그만큼 했고, 생각은 더 많이, 일은 훨씬 더 많이 했다. 어쨌든 나도 그처럼 사랑을 받는 기이한 행복을 누렸다. 알키비아데스는 모든 것을, 심지어 역사까지도 매혹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뒤에, 시라쿠사의 전차 경기장에 버려진 아테네인들의 시체 더미와 불안정한 조국과 어리석게도 그의 손으로 팔다리가 파괴된 네거리의 신상들을 남겨 놓는다. 그리고 내가 다스려온 세계는 그 아테네인이 살았던 세계보다는 한없을 정도로 더 넓다. 나는 그 세계에 평화를 유지해왔고, 수세기 동안 계속될 여행을 의장된 아름다운 배처럼 그 세계를 정비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신성에 인간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인간의 내부에 신성의 감각을 키우기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해 싸워왔다. 나의 행복은 나에게 하나의 보상이었다.

 

104 사람들은 영광을 말한다 : 심장을 부풀리는 그 아름다운 말.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한 인간의 자취가 그의 현존과 같은 것이라기도 하듯. 거짓되게도 영광과 불멸성을 혼동하려고 애쓴다. 또 사람들은 나에게 시체 대신에 빛나는 신을 보여 준다. 내가 그 신을 만들었고 또 나대로 그것을 믿고 있지만, 그러나 별들이 반짝이는 천공 깊이 자리 잡은 가장 빛나는 사후의 운명도 그 짧은 삶을 보상하지는 못한다. 신이, 잃어버린 산 인간을 대신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가성을 위해 사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꿈을 꿈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그 광포한 고집에,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살아 남아 있는 자로서의 의무를 격별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죽음은 만약 내가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냉각과, 침국과, 응고된 피와, 움직임을 잃은 사지의 현실 - 인간이 흙과 위선으로 그토록 재빨리 뒤덮어 버리는 - 에 나 자신을 붙들어 맬 용기를 가지지 못한다면, 헛된 것이 되고 말리라. 나는 약한 등불의 도움이라도 받지 않고 암흑 속에 더듬기를 택했다. 


142 이스라엘 이외의 어떤 민족도 전 진리를 유일한 신적 관념의 좁은 한계 안에 가두어 놓는 오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신의 다양성에 대한 모독이다. 그리고 어떤 다른 신도 그의 경배자들에게, 다른 제단들 앞에서 기도드리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불어넣은 적은 없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예루살렘을 다른 도시들과 같은, 여러 민족들과 여러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그런 도시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집착할 뿐이었다. 나는 모든, 광신과 상식의 싸움에 있어서 후자가 승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너무나 잊고 있었다.


171 나에게는 자식이 없다. 그리고 그것을 서운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물론, 자신을 포기하거나 피로하거나 심약한 때에는 때로 나의 뒤를 이어 줄 아들을 하나 낳으려고 힘쓰지 않은 데 대해 나 자신을 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너무나 헛된 회환은 똑같이 불확실한 두 가지의 가정에 근거하는 것이다 : 그 하나는 아들이 필연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연장이라는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선과 악의 그 기이한 축적물, 한 인격을 형성하는 그 미세하고 기묘한 특징들의 총체가 연장될 가치가 있다는 가정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나의 미덕들을 활용했고, 나의 악덕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특별히 나 자신을 어떤 사람에게 굳이 남기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인간의 진정한 연계성은 결코 피로써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 알렉산드로스의 직접적인 후계자는 카이사르이지, 아시아의 어느 성채 안에서 페르시아 공주에게 태어난 허약한 아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에파미논다스는 자손 없이 죽어 가면서, 그가 이룬 승리들이 자기의 자식들이라고 자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5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신전이 하나 있사옵니다. 갈매기와 먼 여행을 하는 철새 등, 모든 해조 떼들이 그 섬을 드나들어, 그 해조들의 바다 물기 가득 밴 날개들의 퍼덕이는 소리가 그 성전의 앞뜰을 항상 시원하게 해 주옵니다. 그러나 그 아킬레우스의 섬은, 적절한 말이옵지만, 또한 파트로클로스의 섬이기도 하옵니다. 그리하여 신전의 내벽들을 장식하고 있는 그 수많은 봉헌물들은, 어떤 것들은 아킬레우스에게, 어떤 것들은 그의 친우인 파트로클로스에게 바쳐져 있다온데, 왜냐하면 아킬레우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할 나위 없이 파트로클로스의 유덕 역시 소중히 여기고 숭배하기 때문이옵니다. 아킬레우스는 그 자신 그 인근의 해역으로 오는 항해자들의 꿈속에 나타난다는데, 그래서 디오스쿠로이가 다른 곳에서 그렇게 하듯,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위험한 뱃길을 경고해 준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파트로클로스의 망령이 그 아킬레우스의 옆에 나타난다는 것이옵니다. 

신이 폐하께 이 이야기를 사뢰옵는 것은, 그것이 신의 생각으로는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옵고, 또 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은 그들 자신 그 일을 경험했거나 혹은 믿을 만한 증인들한테서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기 때문이옵니다.... 아킬레우스는 용기와, 영혼의 힘과, 육체의 민활성과 결합된, 정신의 지식, 그리고 그의 젋은 친우에 대한 열렬한 사랑 등으로 신에게는 때로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고 여겨지옵니다. 그리고 또 신에게는, 그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그가 그 지극히 사랑하는 친우를 잃어버렸을 때에 그로 하여금 삶을 경멸하게 하고 죽음을 원하게 한 그 절망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는 듯이 보이옵니다.


208 나는 옛날 철학자 유프라테스에게 자살을 허락해 준 바 있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소용없는 것이 되는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 이보다 더 단순 명료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나는 죽음이 사랑처럼 맹목적인 열정의 대상, 갈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단검으로 자결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기 전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기를 나 자신에게 강요하기 위해 나의 단검에 견대를 동이게 될 그럼 밤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리아노스만이 공허와, 메마름과, 피로와, 죽음의 욕망으로 귀결되는 생존의 역겨움, 이런 것들과의 그 영광 없는 싸움의 비밀을 꿰뚫어 본 것이다. 


232 세계의 장래는 더 이상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로마의 평화가 어느 정도 오래 유지될지, 그 지속 기간을 나는 더 이상 불안한 마음으로 따져보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신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인간들의 정의가 아닌 신들의 정의에 신뢰를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거나, 혹은 인간의 지혜로움에 더 많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삶이란 잔혹한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바로 내가 인간의 조건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한 시대라든가 부분적인 진보라든가 다시 시작하고 계속하려는 노력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모두 나에게는, 악과 실패와 태만과 과오의 거대한 덩어리를 거의 보상해 주는 기적 같은 것들로 보이는 것이다. 재난과 파멸은 계속 찾아올 것이며, 무질서가 승리하겠지만, 때때로 질서가 승리하기도 할 것이다. 두 전쟁 시기 사이에 평화가 다시 자리 잡기도 할 것이고, 자유, 인간성, 정의 등의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우리들이 그 말들에 부여하려고 했던 의미를 되찾게도 될 것이다.


235 조그만 나의 영혼, 방황하는 어여쁜 영혼이여, 육체를 맞아들인 주인이며 반려인 그대여, 그대 이제 그곳으로 떠나는구나, 창백하고 거칠고 황폐한 그곳으로, 늘 하던 농담, 장난은 이제 못하리니, 한순간 더 우리 함께 낯익은 강변들과, 아마도 우리가 이젠 다시 보지 못할 사물들을 둘러보자... 두 눈을 뜬 채 죽음 속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하자...



창작 노트 

241 내가 1927년경 밑줄을 많이 긋고 많이 읽었던 플로베르의 서한집 한 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잊을 수 없는 문장을 다시 발견했다 : "키케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시기는, 이교의 신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아, 인간 홀로 존재했던 유일한 시대였다." 내 삶의 한 부분이 이 홀로 있는, 하기야 모든 것과 결부되어 있는, 인간을 정의하고 묘사하고자 하는 데 흘러가게 될 것이었다.


268 다른 모든 기록이 없더라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보낸 아리아노스의 흑해 주항에 관한 보고 편지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황제의 모습을 그 대체적인 육곽으로 재현할 수 있기에 충분할 것이다 :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군주의 세심한 정확성, 평화 사업들과 전쟁 대비를 위한 작업들에 대한 관심, 실물과 닮았거나 잘 만들어진 조상들에 대한 기호, 옛 시작품들과 전설들에 대한 열정 등. 그리고 또 어떤 시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이후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될 그 세계, 공손과 존경의 뉘앙스가 아무리 미묘하다고 할지라도 문사와 행정가가 아직도 군주에게 친구에게처럼 말을 하는 그 세계를 재현하기에도 충분할 것이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 고대 그리스의 이상으로의 우수로운 회귀, 잃어버린 사랑들에 대한, 또 살아남은 자가 찾고자 하는 신비적인 위안에 대한 은밀한 암시, 만지의 풍토와 미지의 나라들에 대한 강박적인 관심 등. 해조 떼들이 서식하는 그 인적 없는 지대에 대한 너무나 전기 낭만주의적인 묘사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궁, 빌라 아드리아나에서 발견되어 오늘날 테르메스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그 찬탈할만큼 아름다운 항아리를 생각나게 하는데, 그 항아리의 눈처럼 흰 대리석 표면에 한 무리의 야생 왜가리들이 그들밖에 없는 텅 빈 하늘을 열을 펼쳐 날아가고 있는 광경이 새겨져 있다.


272 그 기원 2세기가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마지막 자유로운 인간들의 세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들로 말하자면, 아마도 그 시대로부터 이미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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