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마루 요시오: 근대 천황상의 형성


근대 천황상의 형성 - 10점
야스마루 요시오 지음, 박진우 옮김/논형


목차

한국어판 서문 


1장 과제와 방법 

2장 근세 사회와 조정.천황 

3장 민속과 질서의 대항 

4장 위기의식의 구조 

5장 정치 카리스마로서의 천황 

6장 권위와 문명의 심벌 

7장 근대 천황상에 대한 대항 

8장 근대 천황제의 수용기반 

9장 코멘트와 전망 


천황제와 젠더 바이어스 

이와나미 현대문고판의 후기에 대신하여 


저자후기 

역자후기 

저자주 

인용문헌 일람 

찾아보기



관련 공부 글 보기

강유원의 책읽기 20분 | 2014 | 일본 근현대사 | 02 민권과 헌법 1

강유원의 책읽기 20분 | 2014 | 일본 근현대사 | 02 민권과 헌법 2

강유원의 책읽기 20분 | 2014 | 일본 근현대사 | 02 민권과 헌법 3

강유원의 책읽기 20분 | 2014 | 일본 근현대사 | 02 민권과 헌법 4

강유원의 책읽기 20분 | 2014 | 일본 근현대사 | 02 민권과 헌법 5

강유원의 책읽기 20분 | 2014 | 일본 근현대사 | 02 민권과 헌법 6

강유원의 책읽기 20분 | 2014 | 일본 근현대사 | 02 민권과 헌법 7




한국어판 서문 

7 현대 천황제는 헌법 제1조의 규정을 축으로 하면서도 갖가지 회로를 통해서 현대 일본에 적응하는 변형된 천황제이며, 그것이 바로 압도적 다수의 일본인에게 수용되고 있는 상징천황제일 것이다.


7 현대 일본에는 얼핏 온화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극히 강인한 권력질서가 관철되고 있으며, 그러한 질서를 집약하는 정점에는 역시 천황제가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유나 권리나 국제협조는 국민국가적인 공공권의 틀 안에 의존하고 그것을 전제로 하는 한에서는 존중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 배제와 동조를 강요하는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외견적으로는 온화하고 문화적이지만 강하게 침투한 내셔널적인 감각이 그것을 지탱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또다시 위기상황이 도래하면 권력주의적인 통합이 일거에 강화될 가능성이 강하다는 점 등은 냉정하게 관찰해 보면 결코 오인할 리가 없는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7 천황제에는 갖가지 측면과 유래가 있어 어느 한 가지 측면만으로는 논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 책은 그것을 근대국민국가의 편성 원리라는 측면에서 중점을 두고 논한 것이다. 근대 세계는 여러 국민국가가 서로 겨루는 경기장으로서 존재하며, 국민국가들은 이 경기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제각기 독자적인 편성 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일본의 경우 그것이 천황제였다고 보는 것이 이 책의 입장이다.



1장 과제와 방법 

20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천황제를 고대부터 연속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 황위의 만세일계를 강조하거나, 다이조사이를 오랜 전통을 지키는 의례로 보고 황위계승 의례의 핵심에 두는 입장이 그 전형이다.


21 이러한 역사학자의 입장을 단절설이라고 한다면 나는 단절설의 입장에선 역사학자의 한 사람이며, 우리가 천황제라고 할 때 흔히 통념적으로 연상하는 것들도 실은 메이지유신을 경계로 하는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물론 천황제와 관련되는 제도나 관념에는 오랜 유래를 가지는 것도 적지 않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근대 천황제를 구성하는 소재로서 이용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22 근대 천황제에 관한 기본 관념을 우선

1) 만세일계의 황통: 현신인(現人神) 천황과 여기에 집약되는 계통적 질서의 절대성과 불변성성

2) 제정일치라는 신정적(神政?) 이념

3) 천황과 일본국에 의한 세계 지배 사명

4) 문명개화를 선두에서 추진하는 카리스마적 정치지도자로서의 천황

으로 요약해 보자


24 천황제라는 용어는 일본공산당이 지도한 정치운동 과정에서 1928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31년 테제와 32년 테제를 거쳐 근대 일본의 국가권력을 집약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26 그러나 봉건적인 중간 세력의 저항력이 약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중성국가관의 결여, 권력과 권위의 일체화, '국체'의 정신적 내면으로의 침투, 권력의 방자화등을 강조하는 마루야마 학파의 경우 일본 근대화에서의 전근대적 요소에 대한 파악은 강좌파 마르크스주의와도 크게 다르며, 그 전근대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4 근대 천황제를 구성하는 네 가지 기본 관념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조망해보면, (…) 18세기 말 이후 근대전환기의 일본사회가 극히 강대한 위력에 의해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았으며, 그것이 또한 내적인 질서의 동요와 결합하여 내외의 위기가 상승적으로 항진함으로서 이윽고 일본사회 전체의 질서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불안과 공포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34 막번제 국가는 지배의 또 하나의 축으로서 강력하게 외부의 적대적인 세력을 배제하여 국가의 평화영역을 확보해 왔지만, 그 지배축이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으면서 내외의 위기가 결합하여 사회체제 전체가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체제적인 위기의식이 구성되는 것이다.


37 천황제를 논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은 근대전환기에 있어서 천황제를 둘러싼 일본인의 정신적인 동태를 해명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2장 근세 사회와 조정.천황 

43 최근의 중세 천황제 연구에 의하면, 15세기 중엽부터 세속권력으로서는 물론이며 서임권이나 제사권조차도 상실한 천황가가 귄위적인 존재로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센고쿠시대에는 오히려 그 권위를 상승시키고 서임권의 주체나 정치적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시켜 왔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47 내가 주의한 것은 무가권력이 장악한 '천하'의 의미인데, 이상 설명한 부분에서 '천하'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무위를 배경으로 실현되는 일본 전 국토에 대한 권력적인 지배질서

2)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관위제 등의 의례적 질서

3) 기성의 사원 및 신사나 삼교일치적인 신국론 등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우주론적인 질서



6장 권위와 문명의 심벌 

167 메이지 유신이 천황을 권모술수의 수단으로 삼고 ‘玉’이라고 부르면서 ‘옥을 품는다’거나 ‘옥을 뺏는다’ 등의 노골적인 은어를 사용한 지사들에 의해 수행되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근대 천황제는 18세기 말 이래의 존왕론과 국체론의 발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직접적으로는 이러한 권력정치의 와중에서 성립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골적인 권모술수를 숨기기 위해서라도 누구도 정면으로 반대할 수 없는 초월적인 권위로서의 천황을 전면에 내세우고, 권위에 가득 찬 중심을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170 그러나 천황의 지고한 권위성을 정면에 내세운다고 해도 그것이 화장을 한 흰 눈썹의 15세 소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천황의 권위는 개인 카리스마로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전통 카리스마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신성을 계승한다는 점과 제정일치를 통하여 천황의 신권적 권위성이 강조되어야 했다.


175 1868-69년 단계에서의 메이지 정부는 아직 삿초 세력을 중심으로 한 배타적인 권력이 아니라, 유력한 번들의 발언권을 중심으로 잡다한 제반 세력이 서로 각축을 벌이는 과도적인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다양한 세력의 위에 선 ‘정령일도(政令一途)’에 의한 초월적 권력임을 추구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천하공론’과 ‘공의여론’을 강조하고 공의소를 세우거나 관리의 공선입찰 등을 통해서 공론?공의에 의한 정당화를 꾀했다.


199 국민국가적인 통합의 중심에는 항상 초월적인 군위로서의 천황이 있으며, 천황의 권위는 또한 항상 국체론과 신국론으로 인증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각기의 '자유'를 이러한 귄위 있는 중심심과 결부시킴으로서 자신의 욕구나 원망에 정통성과 보편성을 부여하여 스스로를 격려하며, 권위 있는 중심은 또한 갖가지 사회적인 세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매개로 한 헌신을 받아들임으로서 더욱 유효한 통합을 실현해 간다. 대일본제국헌법의 얼핏 애매하게 보이는 '신교의 자유' 규정에는 근대 일본에서 있어서 권위와 자유의 이러한 관계가 거의 집약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7장 근대 천황상에 대한 대항 

222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일본의 근대화=문명화라는 과제하에서 '민속적인 것'은 가치와 질서의 정반대편으로 평가절하되고 분할되어 영락해갔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근대화란 '민속적인 것'으로서 구성되어 있던 민중의 생활 세계 속에 문명화된 질서라는 일상적인 뿌리를 내려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장 근대 천황제의 수용기반 

233 일반 민중의 반질서?탈질서적인 에너지에 위협 받으면서 지역사회에 안정된 질서를 수립하려고 노력하는 촌락지배자들은 그들이 실현하려는 질서를 정당화 할 수 있는 더욱 보편적인 권위와 원천을 추구하고, 여기에 의거함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권위지을 필요가 있었다. 반질서?탈질서의 에너지는 봉기나 소동에서 집약적으로 표출될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는 생활 곤궁의 원인이 되는 낭비나 도박 등의 일탈적인 행위와 제례나 와카모노구미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질서란 이러한 다양한 반질서?탈질서에 대항해서 구축되는 일정한 합리화를 말한다. 이 합리화는 아마도 18세기 말까지의 이데올로기 상황 속에서는 막부와 번의 권력과 결합하여 유교적인 인정관仁政觀을 전제로 한 질서상이라는 형태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막연하게나마 대외적 위기를 점차 자각하게 되면서 지역사회 측에서 요구하는 질서상은 점차 민족적인 색체를 띠게 되며, 결국은 귄위있는 중심을 추구하여 천황 숭배나 국체론과 결합하게 되었다.


261 학교 교육과 청년단, 재향군인회 등을 통해서 천황 숭배와 국체관념은 점차 깊숙이 국민의식 속에 파고 들어가게 되며, 근대화 과정의 성과는 천황의 권위와 결부되어 국민의 통념적인 부분을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9장 코멘트와 전망 

269 지역사회도 군대도 기타 어떤 조직도 근대 일본의 거의 모든 집단은 천황이라는 권위를 매개로 하여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중간지배자를 두고 존재하고 있으며, 거기서는 종종 마루야마가 말하는 '무한책임'의 원리가 작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천황에게 권위 중추를 두고 국민국가로서의 통합과 발전을 꾀한다는 지상의 과제에 근대 일본은 전체적으로 포섭되고 있었던 것이며, 생활자로서의 민중도 또한 갖가지 중간지배자 층을 매개로 그러한 과제를 다하도록 규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269 일본과 같이 후발형 근대화를 강박적으로 수행하는 사회에서는 여기서 사회적 전체성이라고 부르는 것의 거의 대부분이 국민국가라는 틀을 매개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이외의 사회적 차원의 자율성이 상실되어 버린다는 점에 있다.


272 근대 천황제는 이러한 국민국가 일본의 형성 과정에 등장한 편성 원리며, 그 성립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직도 유약한 형성도상의 국민국가에서 살아온 인간들의 정신적 드라마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원리의 중핵에 있는 것은 천황이라는 절대적인 권위를 내세움으로서 안팎에서 밀려오는 위기에 대응하여 권위적인 질서를 유지하면서 근대화=문명화의 과제를 실현해 가는 일이었다. 유교?불교?기독교와 서양의 근대문명은 어느 정도 보편원리를 내세움으로서 세속적 질서를 상대화하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이윽고 일본 사회를 카오스에 빠뜨릴 가능성을 잉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 만세일계의 천황제는 세속적 질서의 불변성?절대성을 표상하는 신권적 권위로 제시된 것이었다. 세속적 사회 질서의 붕괴를 피하면서 근대화=문명화의 과제를 달성해 간다는 점에 대해서는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는 물론이고 신도가나 국학자에서 민간의 저널리즘이나 민권파, 지역사회의 갖가지 차원에서의 지도자 등을 포함하여 넓은 사회적 합의가 있으며, 그 반대편에서는 계몽의 대상으로서의 일반 민중이 있었다.


284 실제로 쇼와 천황의 죽음에 즈음해서 조기 게양과 묵도를 거부하거나, 천황의 장례식 당일 밤에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흥청거리며 놀기는 어려웠다. 천황제는 질서와 권위에 따르는 '양민'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수단으로서 지금도 충분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대 일본에서는 기업이나 각종 단체와 사회나 개인은 자유롭게 욕망이 향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유도 실로 국가에 귀속하여 그 질서 속에 안주하는 것을 교환조건으로 한 자유이며, 국가는 또한 이 자유를 매개로 국민의식의 심부에 닻을 내리고 거기서 활력을 조달하여 통합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업이나 갖가지 집단과 국가는 상호 간에 서로 요구하고 보장함으로써 병존하고 있으며, 어떤 일본인도 이러한 틀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천황제는 이러한 기본적인 틀 속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터부적인 차원을 집약하고 대표하는 질서의 요체로서 지금도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개별적인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신에 달라붙어 우리들을 얽어매고 있다. 그것은 우리 개개인이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외관과 환상의 밑바닥에서 얼마나 깊숙이 민족국가 일본에 귀속되어 있는 가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며,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희구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굴욕의 기념비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