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치스: 성서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9


성서 - 10점
존 리치스 지음, 이재만 옮김/교유서가


1. 근대 세계의 성서: 고전인가 신성한 텍스트인가

2. 성서는 어떻게 쓰였는가

3. 성서의 형성

4. 신자들 세계의 성서

5. 성서와 비평가들

6. 탈식민 세계의 성서

7.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속의 성서

8. 정치 속의 성서

9.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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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 세계의 성서: 고전인가 신성한 텍스트인가

18 나는 성서 독자들 전부를 대변할 수도 없고, 성서에 관한 상이한 관점들을 공정하게 선정하여 제시할 수도 없다. 첫째, 제3장에서 실례를 들어 보여줄 것처럼 '단일한 성서'는 없다. 서로 다른 책들을 서로 다른 순서로 포함하는 복수의 성서들이 있을 뿐이다. 둘째, 성서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종교적(그리고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은) 공동체들에 속한다.


2. 성서는 어떻게 쓰였는가

23 이런 사실은 성서의 텍스트들이 형성된 기간에 기자들의 (정치적·문화적·경제적·생태적) 생활조건이 엄청나게 변천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목 생활을 반영하는 텍스트가 있는가 하면 군주정과 성전 제의를 확립한 사람들의 텍스트, 유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텍스트, 외국 통치자의 압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텍스트, 카리스마 있는 떠돌이 설교사들의 텍스트, 교양있는 헬레니즘 저자인 양 젠체하는 사람들의 텍스트도 있다. 성서가 기록된 기간은 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투퀴디데스, 소포클레스, 카이사르, 키케로, 카툴루스가 집필한 기간이기도 하다.


32 1장과 2장의 차이는 확연하다. 2장은 하느님을 솔직하게 인간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인간을 창조의 중심에 자리매김 시키고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말로 남성에 종속된 여성의 위치를 생생하게 상징한다.


34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학계의 중론은 이 이야기들이 네 가지 다른 문서 자료에서 유래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쳐져서 성서의 모세 오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36 가장 이른 자료는 기원전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늦은 자료는 기원전 5세기에 편찬되었고, 전반적으로 P의 견해를 반영하는 수정 사항을 포함했을 것이다. 이처럼 모세오경(유대인들은 토라 Torah라고 부른 다)은 600년 역사에서 취합한 자료들로 이루어져 있고, 종합해보면 하느님이 세계를 어떻게 창조했고 민족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포괄적으로 묘사한다.


50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입말 전승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텍스트들을 모아 놓은 성서에 그 흔적을 남겼다. 이 텍스트들은 모두 점진적으로 기록되었으며, 전체 집필 과정 자체가 단계별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성서의 책들은 다른 글말 모음과 문서를 토대로 삼거나 실제로 포함했을 것이다.


3. 성서의 형성

57 간단히 말해 신성한 텍스트들의 모음으로서의 성서(Bible)는 여러 형태의 그리스도교 경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처음 쓰였다. 그리고 나중에야 히브리 경전과 그리스도교 경전을 구별하기 위해 유대교 경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근래에 성서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다시 말해 유대교 성서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리스도교 성서를 가리키기도 한다.


59 앞서 확인한대로 그리스도교의 구약과 (중요한 변경을 수반한) 히브리 성서를 구성하는 글들은 900여 년에 걸쳐 집필되었다. 그 글들을 공동체에서 권위 있는 책으로 모으는 데에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59 율법서는 기원전 400년 무렵에, 예언서는 기원전 200년 무렵에 정경이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마지막 부분인 성문서의 확정 시점은 훨씬 덜 분명하다.


62 유대인 다수는 알렉산드리아처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도시에서 자랐고 그리스어 학교를 다녔다. 그들은 더 이상 히브리어로 말하지 않았다.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모세 오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고, 뒤이어 성서의 다른 책들도 수백 년에 걸쳐 그리스어로 옮겨졌다. 요컨대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어 번역 과정과 정경화 과정은 같은 시기에 나란히 진행되었다.


63 그리스어 역본은 보통 70인역(Septuagint)이라 부른다. 이 이름은 70을 뜻하는 라틴어 셉투아진타(septuagina)에서, 그리고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의뢰를 받아 유대교 원로 72명이 모세 오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했다는 이야기가 실린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부지런히 작업하여 단 72일 만에 번역을 마쳤다고 한다. 보통이 이야기는 전설로 간주되지만, 70인역이라는 용어는 살아남아 학계에서도 쓰이고 있다.


65 히에로니무스는 가능한 한 히브리어 원문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히브리 성서 텍스트의 초기 형태를 번역 대본으로 삼았고, 히브리어를 익히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그 덕분에 그리스도교 구약의 공식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Vulgata) 성서가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안정성을 갖추게 되었다.


66 제임스 왕이 임명한 학자 54명은 6개 위원회로 나뉘어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웨스트민스터에서 기존 영역본들을 비교하고 교정하여 잉글랜드 교회에서 표준 역본으로 쓰일 성서을 완성했다. 흠정역 초판은 1611년에 발간되었고 뒤이어 수차례 소소한 수정을 거쳤다.


66 70인역에만 들어있는 책들은 구약과 신약의 책들과 분명하게 구별되며 '외경'(Apocrypha)이라 불린다. '숨겨진' 또는 '감추어진'을 뜻하는 그리스어 형용사 '아포크뤼포스'에서 유래한 복수명사인 '아포크리파'는 1520년에 독일 종교개혁가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가 도입했다.


72 정경 형성의 첫 단계는 그리스도교의 글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2세기 초엽에 바울로의 편지들이 제일 먼저 모였다. 최초의 모음은 편지 10통이었다.


75 정경의 핵심인 4복음서가 정치적 타협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어떤 특정한 복음서도, 심지어 혼합 복음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런 타협의 배경에는 단일 서술로는 네 사람이 목격한 복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광범한 공통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마태오에 따른 복음서' 같은 4복음서의 제목에 반영되어 있다.


79 정경화란 곧 일부 책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한편 다른 책들의 권위를 부인하는 과정이다. 신성한 책들은 그것들을 신중하게 통제할 책무를 수반한다. 정경을 사용하는 공동체들에 정경은 힘과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잠재적 위협이다. 정경에 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들은 정경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4. 신자들 세계의 성서

88 정경이란 곧 신성하다는 뜻이므로 신자들이 마음속 깊이 의식하는 신성과 정경이 상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공동체의 경험과 신성한 텍스트의 세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불협화음은 화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공동체의 경험에 부합하도록 텍스트의 세계를 고치든지 텍스트에 부합하도록 공동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강력한 변증법이 성립된다.


110 성서는 깔끔하게 매듭지어진 닫힌 텍스트가 아니다. 성서에는 읽는 쪽에서 채워 넣고 해명해야 하는 빈틈과 모호한 측면이 있다.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은 성서 텍스트들 중 일부는 가장 모호한 축에 든다. 성서 텍스트의 정경 지위는 다양하고 풍성한 독법을 낳은 원인일 뿐 아니라 시사와 담론 자체가 재형성되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5. 성서와 비평가들

115 루터의 종교 개혁은 성서를 연구하는 교수의 운동이었다. 루터는 고대 성서 텍스트를 읽는 만만치 않은 실력을 발휘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토박이말로 번역했을 뿐 아니라 교회에서 두루 받아들이고 있던 성서적 세계관의 특히 예민한 지점에 도전하기까지 했다.


115 어떻게 보면 루터의 도전은 전체 그림에서 특히 개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의 역할과 관련된 특정한 측면을 조금 수정하는 문제일 뿐이었다. 중세 후기의 교리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하느님께서는 공정한 심판자이시므로, 비록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다 할지라도 모든 인간은 지상에서 각자 죗값을 치러야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심지어 죽은 뒤에라도 교회의 다양한 보속 예식을 통한다면, 마땅히 치러야 할 벌을 면하거나 경감 받을 수 있었다.


117 성서는 교회의 보속 규정에 복종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용서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종교개혁은 중세 교회의 속박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자 했다. 이제 그들은 '세속의 나라'에서 각자의 소명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었다. 이처럼 바울로 서간을 도발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독법은 중세 유럽의 권력 구조와 일반적인 에토스 및 태도를 대폭 변형할 근거를 제공했다.


6. 탈식민 세계의 성서

154 식민 시대와 탈식민 시대 성서 독법의 역사는 성서의 이용과 오용에 관한 연구에 대단히 유익한 자료다. 그 역사는 성서 텍스트의 엄청난 유연성과 다산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서는 가장 다양한 독법에 열려 있는 텍스트다. 동일한 성서 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한 집단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성서 이용을 아예 단념하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레싱이 200년 전에 숙고한 대로 성서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원천에서 등을 돌리는 위험을 무릅쓰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9. 결론

211 성서 자료의 다양성은 종교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근심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공동체의 신성한 글을 종교적·도덕적 규범과 계시된 진리의 원천으로 여겼다. 정경화 과정, 즉 권위가 있다고 인정받는 책들의 목록을 합의해서 확정하고 그렇지 않은 책들을 배제하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 내부에서 믿음의 다양성과 탈선을 제한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두 번째 정경인 신약을 집필한 것은 성서를 읽는 방법을 더욱 제한하려던 시도, 즉 신약의 렌즈를 통해 구약을 읽게 하려던 시도였다. 그렇지만 신약은 구약의 의미를 제한하는 동시에 거꾸로 구약에 의해 그 의미가 제한되었다.


211 더욱이 일단 정경의 경계가 정해지고 나면, 정경에 속한 책들은 적어도 그것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 안에서는 결코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읽힐 수 없다. 이제 권위 있는 경전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책들은 신의 말씀이라고 선언되고, 그러고 나면 용인될 수 있는 관점의 다양성에 제약이 걸린다. 어떤 텍스트가 정경이 되면 신자들의 기대치가 급등한다. 독자들은 '자비의 원칙'에 따라 그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즉 말이 되도록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외견상 모순이나 실제 모순을 해명하고 정경을 공인하는 권위자들의 가르침을 반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의 의미를 고쳐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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