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75 제31강(2) 셰익스피어 《오셀로》

 

2023.12.20 문학 고전 강의 — 75 제31강(2) 셰익스피어 《오셀로》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31강(2)

- 오셀로의 의심, 자기 확신
이아고.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
No, sure, I cannot think it(3.3.38)

 

오셀로.
“귀여운 것! 파멸이 내 영혼을 사로잡더라도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그리고 그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시 혼돈이 오리로다.
Excellent wretch! Perdition catch my soul,
But I do love thee! and when I love thee not,
Chaos is come again.(3.3.90-92)

 

“자네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구.
곰곰 생각하는 그대로, 그리고 최악의 생각을
최악의 단어로 표현해 보란 말야.”
speak to me as to thy thinkings,
As thou dost ruminate, and give thy worst of thoughts
The worst of words.(3.3.131-133)

 

“난 의심하기 전에 보리라, 의심한다면 증명하리라,
그리고 증거를 잡으면, 이것뿐이다.”
I'll see before I doubt; when I doubt, prove;
And on the proof, there is no more but this(3.3.190-191)

 

“그리고 나의 구원은 
그녀를 혐오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 결혼의 저주로다.”
my relief
Must be to loathe her. O curse of marriage(3.3.267-268)

 

 

 

앞서 2막 1장에서 이아고가 대단한 일을 했다. 오늘은 3막 3장을 집중적으로 보겠다. 3막 3장에서 오셀로는 의심을 증명하겠다고 나서고 자신의 결혼을 저주한 다음 그러고 나서 결정적으로 이제 확증 편향의 단계로 들어선다. 그렇게 한 다음에 3막 4장을 거쳐가면 이제 오셀로는 끝난다고 보겠다. 자기가 자기의 예언을 하는 것, 자기 예언과 파멸, "나의 구원은 / 그녀를 혐오하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자신의 구원을 타인에 대한 위해로서 할 수 있는지, 저는 누군가를 저주함으로써 자신이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것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부정적인 말 자체를 뇌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뭐 뭐 하지 마라 말해봐야 되지 않는다. 뇌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뭐 뭐를 하라고 해야 되는 것이다. 

3막 3장은 일단 이아고와 오셀로와의 대화, 이아고가 시작을 한다. 캐시오가 퇴장하는데 오셀로가 딱 들어온다. 이런 장면들, "하! 저건 아니지.", "무슨 소린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군님. 아니 혹시, 난 잘 모르겠어요." "내 아내와 헤어진 게 캐시오 아닌가?" "캐시오요, 장군님?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 / 죄지은 놈처럼 슬그머니 사라졌지 않습니까, / 장군님이 오는 걸 보고요." "분명히 그였어",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 No, sure, I cannot think it" 이런 말들로 이제 이아고가 촉발을 하는 것이다.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이렇게 시작을 한다. 이아고는 오셀로의 마음속에다가 의심의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이제 오셀로는 이아고가 심어놓은 씨앗을 스스로 키운다. 자기가 키워 올린 어떤 거대한 것을 증거로 삼으니까 이게 확증편향이다. 물론 뒤에 가면 그 유명한 '손수건'이 나타난다. 그런데 의심을 자기가 쌓아 올린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바깥에 있는 것과 대조해서 정말 말 그대로 객관적으로 증명을 하지 않는 한은 답이 없다. 3막 4장에서 에밀리아가 질투에 사로잡힌 인간은 답이 없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에서 에밀리아만 올바른 얘기를 한다. 질투라는 건 자기 스스로한테서 태어나는 것, 나중에 객관적인 증거를 가지고 대조해 보는 것은 질투라고 하지 않고 의심한다고 말한다. 질투는 자기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아주 명백하게 오셀로는 자기 안에서 질투를 키워 올린다.  

오셀로가 질투를 키워올리는 씨앗은 이아고가 심었는데 이아고가 심었다 할지라도 '뭐 그런 헛소리를 하네'하고 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상황, 아주 지극히 사적인 생각이지만 오셀로는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열등감이라는 것은 사실 정체성 없는 허위의식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존재 자체로 의의가 있고 그것이 열등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열등감이라고 하는 건 공동체 생활 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어떤 이유에서건 열등감이 일단 심어지면 그 열등감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끊임없이 허위의식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런 허위 의식이 뭔가를 싹을 틔우고 강하게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앉아서 결국엔 누군가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자기도 파멸에 이르게 하고 타인도 고통 속에 빠뜨린다. 

그런 것이 심어졌는데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단답형으로 짧게 짧게 얘기한다. 이런 드라마를 읽을 때 단답형으로 짧게 가는 부분들, 소포클레스에서 오이디푸스와 테이레시아스와의 대화에서도 배웠다, 드라마에서 분위기를 건조하고도 강력하게 stark하게 만들어가는 효과가 있다. 데스데모나가 "오늘 밤 저녁 식사 때?", "아니, 오늘 밤은 안 되요.". "그럼 내일 저녁 때요?",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을 거요", "그렇다면, 내일 밤, 아니면 화요일 아침, / 화요일 점심, 아니면 밤, 수요일 아침━ / 날짜를 정해 주셔야죠", 오셀로는 그렇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한다. 게 이런 게 무서운 말이다.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할 때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겠다. 혼자서 차분하게 가라앉혀서 삭혀가지고 내가 지금 뭔가 좀 잘못했구나 착각을 했구나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혼자서 씨앗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서 분노를 더 키우는 사람이 있다. 오셀로는 혼자 있으면서 분노를 키웠다. 이 심정을 좀 이해할 것 같다. 자기만 괴로운 것이다. 자기의 인내심이라고 하는 건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에 자신의 인내심만 엄청나게 그러는 것이다. 

오셀로는 여기서 이제 얘기를 한다. "귀여운 것! 파멸이 내 영혼을 사로잡더라도 /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그리고 그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 다시 혼돈이 오리로다. Excellent wretch! Perdition catch my soul, / But I do love thee! and when I love thee not, / Chaos is come again" wretch는 좋게 말하면 가여운 사람이다. 나쁘게 말하면 비열한, 우리 식으로 말하면 비열한 놈 그런 것이겠다. perdition은 지옥에 떨어지는, 죽은 후에 영원히 벌을 받게 되더라도, 이런 말 쉽게 뱉으면 안된다. 이쯤 되면, 자기가 자기를 저주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그러면서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라고 했으니 그렇다. "그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 다시 혼돈이 오리로다" 이 얘기는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너를 사랑한다는 그런 서사를 내가 붙들고 있지 않으면 내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는 것, 일단 나는 그것을 참으로 전제하고 그 위에서 뭔가 내러티브를 해보겠다는 것, 내 인생의 드라마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걸 쓰고 있어 라는 말이다.  90행에서 92행까지가 사실 오셀로의 사랑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단 데스데모나를 저주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떤 의심을 가지고 저주를 하기 시작하고 그런데 저주하면서도 내가 파멸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을 받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일단 깔아둬야겠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증거를 찾는데 이아고에게서 찾는다. 그래서 이아고에게 "곰곰 생각하는 그대로, 그리고 최악의 생각을 / 최악의 단어로 표현 해보란 말야." 말한다. 이 부분에서 오셀로는 이제 도망 나올 수 없는 길로 들어간 것이다. The worst of words., 최악의 단어로 표현해 보라는 이 말에서 오셀로는 돌이키기 어렵다. 오셀로의 사랑은 이런 것이고 그러고 나니까 이제 "난 의심하기 전에 보리라, 의심한다면 증명하리라, / 그리고 증거를 잡으면, 이것뿐이다." 이렇게 나온다. 그런데 의심한다면 증명하리라고 하는 것은 지금 증명을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이제 이아고는 더 들쑤시고 떠난다. "장군님 아내를 잘 살피십시오.",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러고 떠났다. 

그다음에 이제 오셀로가 혼자 중얼중얼 하는 게 있다. 이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그리고 그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 다시 혼돈이 오리로다."와 아귀가 맞는 말이다. "그리고 나의 구원은 / 그녀를 혐오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 결혼의 저주로다. my relief / Must be to loathe her. O curse of marriage."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는 나의 이 고귀한 사랑을 팽개쳤으니 그녀는 혐오를 받아 마땅하고, 이러니 지금 온통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저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에밀리아가 말한 것처럼 질투라는 건 덧없이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것이 곧바로 오셀로를 저주로 몰고 갈 것이며 그렇게 몰려간 오셀로는 파멸에 이를 것이다. 이건 자기 예언의 실현이다. 자기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기 때문에 최악의 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우리가 읽고 항상 생각해야 한다. 

드라마니까 데스데모나에게 물어봐서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겠지 어쩌겠어'와 같은 대사가 나와버리면 사람들이 얼마나 어이가 없고 재미가 없겠는가. 이게 바로 드라마가 가져다주는 일종의 효과겠다.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이런 적이 있던가 나는 과연 어떠했던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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