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 더 클래식 하나 ━ 바흐에서 베토벤까지

 

더 클래식 하나 - 10점
문학수 지음/돌베개

 

프롤로그

 


첼로 한 대가 펼치는 음악의 황홀경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왕의 뱃전을 수놓은 리듬과 화성 - 헨델, 수상음악
샤콘느의 선율 속으로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커피숍에서 울려 퍼진 음악 - 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 D장조
음으로 그려낸 계절의 풍경 - 비발디, 협주곡 ‘사계’
100년 만에 부활한 오라토리오 - 바흐, 마태수난곡
음악적이거나 수학적이거나 -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국왕을 매혹시킨 오라토리오 - 헨델, 메시아


유럽을 매혹시킨 터키 스타일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
먹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수수께끼의 화음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웃음과 눈물의 이중주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한숨과 위로의 안단테 -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클라리넷이 그려내는 삶의 희로애락 - 모차르트,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서 -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
청중의 잠을 깨운 팀파니의 타격 - 하이든, 교향곡 94번 G장조 ‘놀람’
하이든의 마지막 협주곡 -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E플랫장조


신이여 황제를 지켜주소서 - 하이든, 현악4중주 77번 C장조 ‘황제’
만민아 소리 높여 찬양하라 - 하이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20대를 보내며 쓴 청춘의 애가哀歌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
베토벤도 때로는 달콤하고 따뜻하다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봄’
사랑의 시간이여, 멈추어 다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c샤프단조 ‘월광’
파국을 향해 내달리는 열정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A장조 ‘크로이처’
고난을 뚫고 전진하라! - 베토벤, 교향곡 3번 E플랫장조 ‘에로이카’
화강암 바닥 위에서 타오르는 불길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열정’


베토벤은 오직 한 명뿐이다 -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숲길을 걸으며 평온을 얻다 - 베토벤, 교향곡 6번 F장조 ‘전원’
당당하게 전진하라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황제’
평생토록 나눈 우정의 답례 - 베토벤, 피아노3중주 7번 B플랫장조 ‘대공’
디오니소스처럼 마시고 춤추라 -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피아노 한 대로 그려낸 교향악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B플랫장조 ‘함머클라비어’
백만의 사람들이여 포옹하라 - 베토벤, 교향곡 9번 d단조 ‘합창’
그래야만 할까? 그래야만 한다 - 베토벤, 현악4중주 16번 F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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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음악을 듣는 일입니다. 지난 1년간, 그러니까 전작이었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한 이후, 전국 곳곳의 강연장에서 내내 강조했던 말은 그것이었습니다. 강연장에는 적게는 20~30명, 많을 때는 약 400명의 청중이 모이곤 했지요. 연령대는 주로 30~40 대였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밖에도 어린이와 중고등학생, 또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찾아와 클래식 음악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엄마와 함께 온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고, 어느 지방 도시에서는 머리가 하얗게 센 70대 의사분들이 단체로 강연장을 찾아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모든 분들이 제 입에서 무슨 말이 흘러나올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지요. 그런데 저는 노상 찬물부터 끼얹었습니다. "음악을 듣고 싶은가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왔나요?" 그러면 대부분 "예!"라고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호응해주시는 분들에게 저는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래야 저도 힘이 나니까요. 하지만 거기서 질문을 끝내면 안 됩니다. 한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무선마이크를 손에 든 채 청중 속으로 들어가서 "정말 듣고 싶은가요? 간절하게?"라고 다시 묻습니다.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면서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대답 소리가 갑자기 작아지지요. 그 질문과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많은 분들이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정말 음악을 듣고 싶은 걸까?' '내 시간과 돈을 쓰면서, 능동적으로 음악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나한테 정말 있는 걸까?'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클래식 음악에 호기심을 느끼지만 실제 삶 속에서 음악을 벗하며 지내는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중의 하나로 클래식 음악을 '어려운 음악' 혹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즐기는 고급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음악을 학습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고, 스스로를 멋지게 드러낼 수 있는 '고급 교양'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한데 정말 그럴까요? 클래식 음악은 그렇게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 할 만큼 어려운 것이고, 나 자신을 유사 상류층으로 만들어줄 '명품 브랜드’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클래식 음악이 왕궁과 귀족의 성城에서 벗어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입니다. 음악사적으로 보자면 하이든 후기와 모차르트의 시대였지요. 그때부터 클래식은 부르주아의 음악, 다시 말해 시민계급의 여흥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시민들이 콘서트홀 객석의 다수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악보 출판과 악기의 개량 · 보급이 속속 이어지면서 보통 사람들이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은 사회 체제의 변동과 함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화합니다. 다시 말해 어려운 음악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만 즐기는 고급 음악도 아닙니다. 18세기 후반부터 따지자면 세월이 벌써 20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뭔가 찜찜하지요?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클래식 음악은 '나'와는 왠지 거리가 먼 것처럼 자꾸 느껴지지요? 그렇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왜 그럴까요? 클래식 음악이 자꾸 멀게 느껴지는 이유! 그것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알려져 있듯이 한국인의 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긴 축에 속합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해도 생계가 빠듯한 게 현실입니다. 과거보다 많이 버는 것 같지만 실제로 손에 쥐어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일 외에도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술도 먹어야 하고요, 스마트폰으로 SNS도 해야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외식을 하거나 등산을 가거나 골프도 쳐야 합니다. 그밖에도 할 것들이 주변에 널렸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조용히 혼자 있을 시간이 거의 없는데다가, 심지어 현대인들은 그 혼자 있음을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눈치 채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음악을 들으려면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여유, 그로부터 비롯하는 마음의 빈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노상 쫓기는 나날,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한 나날이 이어진다면 음악이 들어와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에 비해 '음악의 길이'가 길고 구조도 좀 복잡하지요. 적으면 30분, 길게는 3시간에 달하는 음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한데 실제 현실 속에서 그것이 녹록치 않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자꾸만 멀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아이러니한 질곡이 있습니다 이른바 '풍요로움'이라고 불리는 매체의 발달이 바로 그것이지요. 쉽게 말해서 이제 클래식 음악은 도처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FM 라디오는 이미 고전적인 매체이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도 언제나 음악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 움직이면 언제라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데 이렇게 풍요로워 보이는 현실이 음악에 대한 향수를 확장시켰을까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풍요로움은 우리의 삶을 한편으로는 매우 단순하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정신없게 만들어 놓았을지언정 음악에서 느끼는 감동의 폭과 깊이를 키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궁핍함이야말로 간절함의 근거라고 믿습니다. 한 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돈을 아끼고, 그래서 몇 장의 음반을 직접 사거나 큰 맘 먹고 콘서트홀을 찾아가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음악의 감동은 커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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