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 | 09 루소의 사회계약론 1


사회계약론 - 10점
장 자크 루소 지음, 이환 옮김/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519_28 루소의 사회계약론 1

오늘은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루소 공부, 인간 불평등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왔는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내기 위해 사람들은 협력하는 계약이라는 것을 통해서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협력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후손을 생각하는 남과 함께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유전자는 본래 있었던 것인지를 공부하기 위해서 《협력하는 종》을 읽었다. 오늘은 《사회계약론》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일단 그 전에 《인간불평등기원론》을 간단하게 다시 정리를 하겠다.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제시한 불평등의 기원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서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면 안된다. 차별로 이어지게 되면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서 안정되고 합법화되는 것이 문제이다. 제도가 고정되면 사람은 그것에 맞춰서 진화해 간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다시말해서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불평등한 것, 즉 특권, 재산이라든가 명예, 권력 등을 실정법으로 정당화한다는 것이 불평등의 기원이다. 그렇다면 다 때려 엎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루소의 처방인가. 그건 아니다. 문명을 정교하게 잘 다듬자고 하는 것이 루소의 처방이다. 


국가가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명목상의 문제이지 존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실은 독일의 루터 종교개혁 이후로 독일에서 만들어진 독일의 국가신학, 정치신학 전통에서 나온 국가론이다. 그것이 독일에서 일본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로렌츠 폰 슈타인에서 배워가지고 메이지 헌법을 만들면서 국가를 신격화하는, 그 당시에는 천황을 신격화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동경 대학 교수들이 천황은 그냥 기관에 불과하지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국가론으로 들어왔다. 군사혁명 이후에는 살아있는 생명체인 인간이 죽어있는 기관인 국가를 섬기게 되는 것. 


그 연원이 종교개혁 이후에 독일 국가신학, 정치신학이다. 그것의 가장 최후의 버전이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이다. 그리고 헤겔도 무시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공헌을 했다.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국가는 그런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상황이니 뭔가 약속을 해서 하나의 공동체와 공동체의 룰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시작은 홉스부터 시작인데 루소와는 많이 다르다.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지난 번 《협력하는 종》에서도 우리가 보았지만 인간이 이기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존재로 이해하면 싸움은 그칠 수 없다. 그 지점이 홉스 지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는 것이 홉스다. 만인대 만인의 전쟁, 호모 호미니 루푸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 이것이 홉스가 가지고 있는 테제이다. 사실은 홉스가 신자유주의에 가장 적합한 학자이다. 이기심이 본성이니까 자기들끼리 싸우다 보면 공멸하니까 이기심을 억누르는, 즉 인간의 힘을 능가하는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맥퍼슨 교수가 쓴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보면 홉스를 초창기 자본주의의 정당화 이론에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다. 


루소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홉스와 루소는 전혀 반대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홉스는 그저 인간을 자연상태로 둔다면 형편없는 살육의 현장처럼 상정을 하고 국가라는 강력한 권력집단의 시스템 통치를 얘기하지만 루소는 보다 부드럽다. 루소는 이를테면 완전히 판을 바꿔야 생각하는 것.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이타적인 사회에서 살도록 강제하다 보면 그 사회가 괜찮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강제라는 말보다는 규범의 설정하는 것. 이 규범은 루소의 말에 따르면 다른 모든 법의 토대가 되는 신성한 법이기 때문에 자연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 사실 루소도 인간이 이타적인지 확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닌가 한다. 그리고 루소 시대에 서양 시대는 이타적이지 않았따. 자연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에 따른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convention 은 맹약, 맹세 이런 것들. 홉스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이기심에 근거해서 늑대처럼 싸우고 있으니 국가를 개입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끝없이 싸우고, 국가는 강력해진다. 루소는 그렇게 해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


루소의 사회계약은 뭔가 전체적으로 합의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서 사람들끼리 계약을 맺고 규범화하고 기본 규범 속에서 법들을 만드는 것.

아무리 당신이 이기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해도 일단 이 사회에서 살겠다고 결심을 한 이상 공공선에 따르겠다고 약속을 하라는 것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는 불평등의 기원이 소유권이 제도화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첫째는 소유를 공공선의 관점에서 통제한다. 토지 공개념 같은 것. 토지나 소유를 공공선의 관점에서 통제한다. 누구나 다 한 날 한 시에 결단을 하는 것. 그런 점에서는 칸트가 말하는 실천적 정언명법도 닮아있다. 그래서 칸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루소. 


공공선의 관점에서 통제를 하는데 통제를 누가 할 것인지의 문제는 결국 계약에 의해서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반의지에 의해서 수립되는 국가. 그런데 그 국가는 그 이전에 나온 것처럼 국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공공선의 집행을 위해서, 오늘날의 개념으로 말하면 복지국가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전혀 새로운 종류의 관계망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사실 국가의 역할이 그쪽 방향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 

 

근대 공화정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 아테나이도 민주정이었고, 공화정은 아니었다. 공공선 개념은 없었다. 그러나 루소는 모두가 평등한 입장에서 동의를 하고 그 동의에 의해서 룰이 만들어지는 공화정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민주적인 과정을 거치면 민주공화정이겠다. 루소는 적어도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공화국의 이념을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은 이런 국가의 성립에 동의를 함으로써 전적으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그것이 도덕적인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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