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7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 4
- 강의노트/책을 읽다보면 2017-18
- 2018. 5. 21.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책세상 |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421_25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 4
지난 시간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현대 문화인류학이나 또는 역사사회학 등의 논의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상태라는 것이 정확하게 규정하기 쉽지 않다.
자연상태라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서부터 문명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사실 인간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문명단계에 들어섰다. 인간은 모든 행위가 문명의 산물이고, 문화적인 학습과 훈련의 산물이다. 흔히 수렵채집하는 사회가 불평등이 없고, 정착 농경사회에 들어서부터 불평등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 어떤 방식으로 먹고사느냐 하는 것은 불평등의 핵심 요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채집 사회라고 해서 타고난 능력의 차이가 있고, 개인 능력의 차이가 있고, 그에따라 얻게 되는 보상의 차이가 있다. 채집 사회는 즉각적인 이루어지는 사회이고, 타고나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불평등이 있다. 그 정도는 루소도 용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그에 비하면 농경사회는 농토에 곡식을 심고, 그것을 돌보고 식량이 자랄 동안에 저장 식량으로 연명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니까, 지연보상이 일어난다. 1년을 기다려서 보상을 얻는다. 수렵 채집사회는 신체적 차이만 있으면 차이가 보이는데 정착농경사회는 땅이 있어서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수렵 채집사회가 되었든 정착 농경사회가 되었든 보상이 얼마나 지연되는지 당장 이루어지는지 차이가 있지만 불평등은 있다. 그러니까 수렵 채집사회를 이상화해서 돌아가자, 또는 단순한 경제로 돌아가자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루소는 개인들 사이의 성취가 차이가 있는 것은 인정하고 그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대접받는것, 차이나는 지위를 불가치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얻은 지위를 세습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도적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 점을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다.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서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실제로 사람들을 구별시키는 차이 가운데 몇 가지는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습관의 산물이거나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채택하는 여러 가지 생활 양식의 산물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여기서 습관의 산물이거나 생활 양식의 산물이라는 말에 주의를 해야 한다. 습관이라는 것은 관습, 관행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인 관행과 사회적인 생활방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적인 불평등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루소가 보기에는 사실은 사회적인 관습과 생활방식에서 나온 것.
90 실제로 사람들을 구별시키는 차이 가운데 몇 가지는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습관의 산물이거나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채택하는 여러 가지 생활 양식의 산물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서 허용되는가?"라는 것이 원래의 질문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힘이 약하니까 그것이 자연법이야라고 말했는데, 루소는 사실은 그것은 사회적인 관습에 불과하다는 것. 자연법에 의해서 허용되는 불평등은 수렵채집사회에서 신체적인 차이에서 일어나는 보상차이 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이러한 관습의 산물, 습관의 산물, 생활양식의 산물이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을 전개를 찾아보는 것이 제2부의 내용이다.
제1부에서는 자연스러운 불평등이 아니고, 웬만한건 다 양식과 습관과 생활양식에 의한 거야 라는 시야를 넓히는 작업을 해주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것이 2부의 시작이다.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 사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말뚝을 뽑아버리고 토지의 경계로 파놓은 도랑을 메우면서 동류의 인간들을 향해 "저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소유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신들은 파멸할 것이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죄악과 싸움과 살인, 얼마나 많은 비참과 공포에서 인류를 구제해주었을 것인가?"로 시작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뚝을 박아서 소유권을 창설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루소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대개 루소와 마르크스를 연결지어 읽는 독법들이 유행해서 루소가 소유권을 반대했다는 것으로 읽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루소는 소유권은 어디서 기원을 따져야 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핵심적인 것은 사회가 어떻게 그 소유권을 정당하고, 그 소유권의 세습을 어떻게 프로파간다로 만들어 내고, 그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매도하는가에 대해서 루소가 관심을 가졌다. 여기서 중요한 구절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사실은 제도의 창시자이다.
95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 사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말뚝을 뽑아버리고 토지의 경계로 파놓은 도랑을 메우면서 동류의 인간들을 향해 "저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소유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신들은 파멸할 것이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죄악과 싸움과 살인, 얼마나 많은 비참과 공포에서 인류를 구제해주었을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 생존과 보존의 욕구가 있고, 그렇지만 인구가 증가하고 어떤 종류에 대한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도 생겨나다. 그러다보면 경쟁이 생겨난다. 그래서 안락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데 뭔가 보상을 얻으려면 두 가지가 있는데 동료들에게 협동해서 의지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끊임없이 경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동료들에게 의지한다 해도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기들의 독점적 이익을 위해서 생겨날 수도 있고, 아니면 항상 원초적으로 경쟁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어느 정도 사회가 발전하면서 두 가지 방식이 생긴다. 하나는 자기의 이익을 안락하게 추구하려는 사람이 있고, 오로지 나의 이익을 위해서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람들은 그런 것을 제도화해서 귀족제도가 된다. 그 다음에 공공선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양보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98 인간은 안락의 추구가 인간 행동의 유일한 동력임을 경험으로 배웠다. 이제 그는 공통의 이해 관계 때문에 동포들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는 드문 경우와, 경쟁을 통해 그들을 경제해야 하는 더 드문 경우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종의 사회적 진화를 통해 그런 사람들이 생겨난다. 자연적 진화가 아니라 협력하는 종이 태어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들만의 독점적인 이익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먹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불안하고, 양을 더 추구할 수 있는 것 같아 라고 생각하는 협력하는 종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회적인 압력이 거의 본능화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회를 만드느냐에 달려있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이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그 갈림길에 서있는 것이 그때의 문제가 그 유명한 사슴 사냥 게임이다. 루소가 말하는 사슴 사냥 게임이라는 것이 공공선을 위해서 행동하도록 개인에게 압력을 강하는 사회인가 그래서 그것을 좀 더 발전시켜서 신뢰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눈 앞에 놓인 이익을 즉각적인 보상을 얻기 위해서 갈 것인가에 갈증에 서있는 갈림길 얘기가 제2부를 읽다보면 여기에 온다.
99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상호간의 약속과 그로 인한 이득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현재 눈앞에 보이는 이득이 그것을 요구하는 경우에만 국한되었다. 당신은 인간들에게 앞일을 내다본다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먼 장래의 일을 걱정하기는커녕 당장 내일의 일도 생각지 않았다. 가령 사슴을 잡으려고 할 경우 각자가 자신의 위치를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만일 토끼 한 마리가 그들 중 어떤 사람의 손이 미치는 곳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토끼를 쫓아가 붙잡아버렸다. 그 때문에 자기 동료가 사슴을 놓치게 된다는 사실은 분명히 아랑곳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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