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27 제11강(1) 구약 성서 〈욥기〉

 

2023.06.17 문학 고전 강의 — 27 제11강(1) 구약 성서 〈욥기〉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11강(1) 
제11강 신의 전지전능과 인간 도덕의 한계
제12강 경건한 사람, 욥
제13강 인과불명의 고난에도 입술로 죄를 짓지 않는 욥
제14강 자신을 저주하다가 신에게 반항하는 욥
제15강 말의 잘못을 회개하고 신에게 무릎 꿇는 욥

 

지난 화요일까지는 《오뒷세이아》를 읽었다. 오늘부터는 구약 성서 〈욥기〉를 읽는다. 《문학 고전 강의》에서 11강부터 15강까지 다섯번 강의를 했다.  11강 신의 전지전능과 인간 도덕의 한계, 제가 《문학 고전 강의》 책을 쓸 때 첫째 강의 제목이 이것에 대한 저의 해석의 집약이라고 늘 얘기했다. 신의 전지전능과 인간 도덕의 한계, 사실 신의 전지전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다고 정해둔 것이지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 없다 이런 것을 따져 물을 필요가 없다. 〈욥기〉라고 하는 텍스트는 꼭 유대 기독교적 전통의 어떤 일정한 정도에 공감을 하는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번 《오뒷세이아》와 비교를 해보면 《오뒷세이아》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이 겪어가는 고난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보려는 그런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것을 알 수 없다, 사람이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인지 능력의 한계, 그것을 〈욥기〉는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는 이게 꼭 종교적인 텍스트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읽어보는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건 고통이다 라고 여기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  그리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난이 주어지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 걸 저런 걸 따져보면서 읽어보면, 이게 아직 세상을 많이 안 살아보고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에게는 이 텍스트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름 나도 고생 좀 해 봤어 하는 사람에게는 또는 쓰라림에 대한 어떤 그런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텍스트가 굉장히 와닿을 것 같다.

 

제12강은 경건한 사람, 욥인데 이게 이제 출발점이 그러하다. 나는 굉장히 경건하게 살았다.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또는 플라톤의 《국가》에 보면 케팔로스처럼 빚지지 않고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겠다. 그런데 이제 자신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욥은,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라고 하는 건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래도 거기까지는 견뎌봤는데 그 이상이 밀려오니까 자신을 저주하다가 드디어 이제, 이게 나 때문일 거야 라고 하다가 신에게 반항을 하게 되는 그런 게 되는 것. 이거 읽어보면 진짜 못된 신이다. 못된 신이 등장하는 것이다. 마침 오늘 오전에 제가 누군가의 부고를 들었다. 그러면서 오늘 〈욥기〉를 생각을 해보니까 오늘 오전에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은 정말 남에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인데, 저보다 저보다 많이 어린 사람인데,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마음이 없이 우울하다. 이것을 녹음해서 올려놓고 빈소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각별하다면 각별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은 아니었을지언정, 원인을 알 수 없는 누구나 다 세상살이를, 한 번 태어나면 죽는 게 인간의 이치인데 왜 그런 그렇게 남들만큼 최소한의 것도 누리지 못한 채로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이제 한번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도대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러고서 이 텍스트를 〈욥기〉를 읽어 나아가다 보면 뭔가가 좀 터득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찬찬히 자신의 삶의 과정을 이 텍스트에다 투영하면서 한번 읽어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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