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역사주의의 빈곤(1) ─ 역자해설

 

2024.01.03 📖 역사주의의 빈곤(1) 

📖 역사주의의 빈곤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1902-1994),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69) 

❧ 역자 해설

    • 저작 출간 이력과 생애
      • 구상은 1919-20 겨울, 개요의 완성은 1935. 1944-45에 Economica에 연재 공표
      • 전후에 나온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의 하나 
      • Wien 대학에서 철학, 물리학, 심리학 전공. 철학박사 학위.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 1934) 출간 이후 영국에 초빙되어 강의.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 1937년 뉴질랜드로 망명, ⟪개방된 사회와 그 적⟫(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2 vols, 1945) 완성
      • 1949. London 대학에서 논리학과 과학방법론 교수, 1946.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에서 철학, 논리학, 과학방법론 강좌 담당
      • ⟪탐구의 논리⟫가 영문판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1959)로 증보 복간, 100여 편의 논문 가운데 중요한 것 20편을 뽑아 수록한 ⟪추측과 반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 1963), 논문 10편을 모은 ⟪객관적 지식⟫(Objective Knowledge, 1972) 발간

 

 

오늘부터는 칼 포퍼의 《역사주의의 빈곤》을 읽는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 중에서 내용이 여전히 읽어볼 만한, 논쟁점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늘날 시사점이 굉장히 강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한 책을 정리해서 읽는다고 말한 바 있다. 2023년에 레이몽 아롱의 《사회사상의 흐름》을 읽었는데 우선 올해는 칼 포퍼의 《역사주의의 빈곤》을 읽어보려고 한다. 

이 책은 아무리 의미가 없어도 버릴 수가 없는 책인 게 이 책 자체가 서지적으로 가치가 있다. 《역사주의 빈곤》은 우선 제 선생님께서 번역을 하셨으니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들을 버릴 수는 없다. 초판이 1975년에 번역되어 나온 건데 제가 가지고 있는 건 1981년이다. 《철학의 제 문제》를 출판했던 지학사의 책이다. 이 책은 당연히 고전적인 텍스트이고 그리고 버려서도 안 되는 그런 책이니까 포퍼의 이 책을 읽어보겠다. 이 책이 얇아도 여전히 읽어볼 만한 뭔가가 있다. 그래서 쉽게 끝나기가 어려운 그런 게 있다. 

먼저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된 경위를 보자면 돌아가신 이석윤 선생님께서 역자 해설을 붙여두셨는데 거기에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라는 정평을 받고 있으며, 1970년대 중반에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방면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에게는 저자의 다른 저작과 함께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책이다. 그러나 역자가 알기로는 그의 저서 중 우리 말로 번역되는 것은 본서가 처음이므로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는 이 기회에 저자의 약력과 사상을 간단히 소개해 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해설 165 원저는 전후에 나온, 사회과학방법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의 하나라는 정평을 받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그 방면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에게는 이 저자의 다론 저작과 함께 아미 많이 알려져 있는 책이다· 그러나 역자가 알기로는, 그의 저작 중 우리 말로 번역되는 것은 본서가 처음이므로, 일반독자들을 위해서는 이 기회에 저자의 약력과 사상을 간단히 소개해 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여기에 적혀 있는 것처럼 칼 포퍼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1975년에 출간된 《역사주의의 빈곤》이 처음이다. 물론 이제 다른 사람들이 이 무렵에 읽기도 하고 포퍼의 책이 그 무렵까지 출간된 게 《객관적 지식 Objective Knowledge》라든가 그다음에 《추측과 반박 Conjectures and Refutations》, 이 책은 지금은 번역되어 나와 있다. 그리고 《탐구의 논리》, 이 책 이후로 포퍼의 책 나온 게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 《끝없는 탐구》 그런 것들이 있고 그다음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나온 《개방된 사회와 그 적》이 1945년에 나온 것이다. 그다음에 《역사주의의 빈곤》은 1969년에 나왔다. 그러니까 사실 포퍼의 저작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인데 그것보다는 1969년에 출간된 이 책이 사실 학문적으로는 탁월하다. 지금 《역사주의의 빈곤》을 보면 국한문혼용이다. 아주 심한 국한문혼용이다. 그러니까 한글로 되어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모든 개념어가 다 한자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그 후 몇 차례의 구두 발표를 거쳐 1944년 45년에 처음으로 구두 발표 이런 것도 다 한자로 되어 있고 에코노믹카의 연재 공표된 것이다. 지금은 이한구 교수가 번역을 해서 《역사법칙주의의 빈곤》이라고 나와 있다. 역사법칙주의라는 말이 꼭 틀린 건 아닌데 굳이 역사주의라고 이미 이렇게 통용되는 말을 그렇게 쓸 필요가 있겠나 하는 얼핏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먼저 오늘은 역자 해설에서 저작 출간 이력과 생애를 간단하게 먼저 말하겠다. 이 책은 1919년에서 1920년 겨울에 구상이 되어서 개요가 완성된 것은 1935년이고 그다음에 1944-1945년에 Economica에 연재해서 공표를 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왔다. 그러니까 개요가 193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몇 차례 구두 발표를 거쳐서 1944-45년에 Economica에 공표되어서 나온 것이다. 포퍼의 생애를 먼저 보면 1902년생이니까 레이몽 아롱과 거의 동시대의 사람이다. 그리고 《역사주의의 빈곤》이 1969년에 출간되어 나왔으니까 아롱의 《사회사상의 흐름》과도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 책은 역사주의라고 하는 그 당시 마르크스주의가 아주 흥성하던 시기에 굉장히 강력한 학문적 방법론의 비판을 보여준 책이다. 그러니까 《역사주의의 빈곤》과 아롱의 《사회사상의 흐름》 이런 것들이 일종의 우파 쪽에서 나온 그런 저작들이다. 1969년에 이 책이 나왔는데 68혁명도 있던 때니까 그 시대에 유럽이라고 하는 곳은 사상적으로 격렬한 시기이다. 포퍼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포퍼라든가 비트겐슈타인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오스트리아 사람들인데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비단 유대인만이 아니라 그 당시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우리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을 나치 독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원래는 오스트리아가 합스부르크 제국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시골스러운 촌뜨기들 프로이센, 브란덴부르크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도이칠란트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하고는 다르다. 우리는 676년 신라 삼국통일 이래로 분열된 시기를 살아본 적이 없다. 지금이 오히려 아주 낯선 시기인데 도이칠란트는 그렇지 않다. 당장에 바이에른 지역만 해도 가톨릭 지역이고 그다음에 라인강 서쪽인 마르크스가 태어난 예나라든가 이런 데는 프랑스 쪽과 훨씬 가깝다. 그리고 작센 같은 데는 바이에른과 30년 전쟁 시기를 보면 철천지 원수로 싸움하던 때이다. 그 싸움이 끝난 지도 500년도 안 되었다. 1902년이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데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철학, 물리학, 심리학 공부했다고 하면 1차 세계대전을 겪고 어쩌고 하면서 빈에서 살았을 것이다. 칼 쇼르스케의 《세기말 비엔나》에 나오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히틀러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것은 좀 어렵다고 본다. 어쨌든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34년에 《탐구의 논리》를 출간했다.  《탐구의 논리》가 포퍼의 첫 번째 저작이다. 그런 것을 본다면 역자 해설에서 포퍼의 철학적 입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과학철학이다. 철학적 사색의 출발점부터가 과학철학적 문제에 있었다 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해설 166 Popper의 철학적 입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과학철학이다. 그의 철학적 사색의 출발점부터가 우선 과학철학적 문제에 있었던 것이다. 1953년의 논문 「과학: 추측과 반박」(Science: Conjectures and Refutations)에서 그는 자신의 사색의 행정을 회고하고 있거니와, 이 회고에 의하면 그는 1919년 가을 약관 17세에 이미 ‘이론은 어떤 때에 과학적인 것으로 분류되어야 하는가?' (When should a theory be ranked as scientific?), 또는 ‘이론의 과학적 성격이나 자격의 기준이란 있는 것인가?' (Is there a criterion for the scientific character or status of a theory?) 하는 문제의 해결에 고하였고, 그해 겨울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론의 과학적 결론의 기준은 그 이론의 반증가능성, 반박가능성, 또는 테스트가능성이다' (the criterion of the scientific status of a theory is its falsifiability, or refutability, or testability) 타고 하는 것이었다. 

 

《탐구의 논리》가 도이치어로 나왔는데 Logik der Forschung, Forschung이라는 탐구한다 라는 뜻이다. 영문판이 1959년에 증보되어서 복간된 게 바로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이다.  칼 포퍼가 가지고 있는 과학 철학적 입장이 가장 잘 있는 드러나 있는 방법론적 저서이다. 그런데 이 방법론적 저서를 바탕으로 해서 칸트의 비판적 합리주의 이런 것들이 성립하고 그런 비판적 합리주의를, 사회 문제에 대해서 포퍼가 굉장히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비판을 할 것인가, 어떻게 탐색을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나온 게 바로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으로 집약해서 생각을 한 것이다. 19세기의 역사주의의 대표적인 사람이 헤겔이다. 19세기 역사주의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굉장히 풍요롭게 많다. 에른스트 트뢸치의 역사주의도 있는데 어쨌든 역사주의를 지금 이제 읽어가면서 보면 된다.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역사 공부하는 사람은 역사주의자인가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일단 보겠다.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에 해당하는 것의 원조가 Logik der Forschung이다. 그것을 출간하고 영국에 초빙이 되었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오스트리아가 합병되고 그러면서 포퍼가 뉴질랜드로 망명한다. 거기에서 《개방된 사회와 그적》, 《열린 사회와 그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이라고 번역되어서 읽히고 있다. 해겔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는 책이다. 포퍼가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이렇게 3명을 역사주의자라고 그러니까, 이한구 교수의 번역 본 제목으로 따지자면 역사법칙주의자들이라고 간주해서 비판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포퍼의 비판이 굉장히 논리적인 허점이 많고 탐구방법론 자체가 굉장히 허술하고 그렇다. 여기에《개방된 사회와 그적》이라고 여기 적어둔 것은 역자 해설에 이석윤 선생님이 쓰셔서 있는 그대로 적어둔 것이다. 

나중에 하면서 다시 말할 것인데 존 스튜어트라는 학자가 엮은 《헤겔의 신화와 전설》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월터 카우프만이 칼 포퍼의 이것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라고 적어놓은 논문이 있다. 월터 카우프만의 논문을 참조하면 도대체 포퍼가 왜 이렇게 했는가가 잘 나와 있다. 이것은 《역사주의 빈곤》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 말하겠다. 여튼 《개방된 사회와 그 적》이라고 하는 책을 1937년에 뉴질랜드로 망명한 이후 1945년에 완성을 한다. 그다음에 전쟁이 끝난 다음에 1949년 런던 대학에서 논리학과 과학방법론 그리고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에서 가르쳤고 그다음에 1994년에 사망했다. 그런데 《과학적 발견의 논리》는 증보복간된 것이니까 《탐구의 논리》를 그리고 그다음부터 쓴 것들은 논문들을 뽑아서 이렇게 저렇게 만든 책들이다. 《추측과 반박》이라고 되어 있는데 요새는 《추측과 논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서 읽히고 있고, 그다음에 《객관적 지식》이 1972년에 나왔고 그 뒤로 《끝없는 탐구》,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이런 것들은 그냥 에세이이다. 포퍼가 1902년에 태어났으니까 1972년에 발간한 논문 10편을 모은 《객관적 지식》, 이때는 70살이니까이제 책 쓸 힘이 없었다고 봐야겠다. 그리고 한 가지 포퍼 책 중에 읽어볼 만한 게 《파르메니데스의 세계》이다. 포퍼가 파르메니데스에 대해서 연구한 것인데 제가 예전에 《철학 고전 강의》 할 때 파르메니데스를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이기도 하다. 파르메네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할 때 잘라서 읽어보는 몇 가지 각도가 있다. 그때 이제 포퍼가 읽은 방법을 보고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아주 아주 탁월한 책이다. 읽어보면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포퍼의 저작과 출간 이력, 생애는 대체로 이러하다. 

이제 말 나온 김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즉 《개방된 사회와 그 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존 스튜어트가 엮은 《헤겔의 신화와 전설》에 월터 카우프만이 쓴 "6. 헤겔 신화와 그 방법"이 있다. 이 사람도 유대인이어서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인데, 재미있는 게 Walter Kaufmann에서 Walter는 영어식으로 월터라고 읽고 Kaufmann은 도이치식으로 카우프만로 읽었는데 좀 이상하다. 도이치으로 읽으려면 발터 카우프만이다. 발터 베냐민을 월터 베냐민이라고 읽으면 안 되는 듯이 아예 영어식을 읽으려면 월터 커프만이다. 발터 카우프만은 원래 니체 전문가인데 한나 아렌트가 속된 말로 양아치다 하는 그런 얘기를 《문학의 미래》에서 한 바도 있다.

《헤겔의 신화와 전설》은 도서출판 b에서 헤겔 총서로 내놓은 것 중에 하나이다. 6장에서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적들》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고 있는 게 있다. 이것도 나중에 《역사주의 빈곤》 본문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들은 정리를 해서 얘기하겠다.  존 스튜어트의 이 책은 헤겔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한테는 학문적인 출발점으로서 괜찮은 부분이다. 어떤 점에서 괜찮은가. 헤겔 철학을 공부할 때는 학문적으로 요러요러한 영역들을 공부하는구나 그리고 또 공부를 할 때 이런 걸 조심을 해야 되겠구나, 일종의 학문적 인문서로서, 헤겔 철학 인문서로 《정신현상학》을 읽으면 그건 황당한 것이다. 헤겔이라는 사람이 워낙 방대한 사람이니까 어떤 영역이 있는가 그런 것들.   

《역사주의의 빈곤》이라고 하는 책은 역자 해설에서 이석윤 선생님께서 지적하고 계시듯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에 하나" 한마디로 말해서 이런 책이다. 레이몽 아롱도 그런 얘기하는데, 그것이 사회학자의 책으로서 그렇다면, 포퍼의 이 책은 철학자의 책으로서 사회과학 방법론, 학문 방법론을 탐구하는 것이 철학이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다. 자연과학 방법론을 따지는 게 과학 철학이고, 사회철학이라고 하는 학문 중에는 사회과학의 철학도 있다. 그러니까 사회과학 방법론으로서 적절한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 묻기도 한다. 그렇게 본다면 포퍼의 이 책은 마르크스나 콩트나 이런 사람들의 방법론을 비판한 것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첫 번째 의의는 그렇고 두 번째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은 사회과학 방법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이기도 하다. 역사목적론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신학이기도 한데, 그런 신학에 대한 비판, 신학을 비판하는 장면에서도 《역사주의의 빈곤》이 의미가 있겠다. 나중에 다시 또 거론할 얘기이지만 역사주의라고 하는 게 방법론으로서 꼭 나쁜 것인가. 저는 포퍼의 《역사주의의 빈곤》의 취지와 내용에 상당히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역사주의를 버릴 수가 있겠는가, 역사 목적론을 우리가 버릴 수가 있겠는가, 역사목적론이 학문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할지라도 포퍼가 지적한 것처럼 문제투성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목적론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힘을 과연 우리가 버릴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우리의 삶이 목적을 잃어버리면 현재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이 아무런 의미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순간순간에 집중한다는 것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필연적인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은 이것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라든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뭘 한다라든가, 이런 무엇을 위해서라는 목적론적 설명에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에 어떤 목적론적 설명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꿈도 없고 희망도 없다면 적어도 지금 이것에 대해서 내가 굉장한 미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라든가 그런 거라도 있어야 된다.  그런데 그런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역사주의이다. 역사주의라는 게 역사의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니까 그렇다. 삶의 목적, 역사의 목적. 역사의 목적은 너무나도 거대 담론이어서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하더라도 어쨌든 삶에도 목적이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그런 목적론, 역사주의를 비롯한 그런 목적론적인 것이 있어야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삶이 우연한 찰나의 어떤 것으로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흩어지지 않아야 인간관계도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게 하나의 사회적 지평일 텐데, 삶이 완전히 파편화되고 삶의 목적이 전혀 부여되지 않고 그러면, 실존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바로 그런 것인데, 인간의 삶의 지평이 좁아진다. 그러면 될대로 되라Que sera sera는 풍조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아주 자연스럽게 뒤르켐이 얘기한 아노미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도덕적 붕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양상이 생겨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그냥 눈앞에 보이는 직접적인 가장 확실한 것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없애려면, 눈앞에 보이는 손해와 이익에 아등바등 매달리는 것들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사람들에게 정신 교육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안정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사회가 안정된다는 것은 아주 통일된 건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에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두 힘을 합쳐서 노력한다는 것, 그런 정치적인 그런 메시지들이 있어야 된다. 그런 것들이 있을 때에 폭력도 줄어들 것이고 사람들이 여유 있고 넉넉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목적론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연대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실천적인 의미에서 목적론이라고 하는 것, 역사주의를 비롯한 이런 목적론이 아주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포퍼의 텍스트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 

첫째는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고 두 번째로는 그런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목적론이라고 하는 걸 완전히 버릴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이런 책을 읽는 계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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