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토마스 아퀴나스 ━ 새길에큐메니칼문고 4


토마스 아퀴나스 - 10점
박승찬 지음/도서출판 새길


머리말 

시대적 배경 _ 13세기 스콜라 철학의 황금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및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기초 및 전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관과 윤리학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의의 

부록 - 추천할 만한 참고문헌 소개




시대적 배경 _ 13세기 스콜라 철학의 황금기 

10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 ~ 1274)가 활동했던 13세기는 고대 철학의 꽃을 피웠던 기원전 4-5세기와 견줄 수 있을만한 서양 중세 문화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이 황금기는 저절로 또는 갑자기 찾아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탐구 할 수 있는 풍부한 대상의 발견, 이를 효과적으로 연구 할 수 있는 체계적 구조, 이를 완성시킬 수 있는 훌륭한 연구자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성과이다. 13세기에 중세 스콜라 철학이 황금기를 맞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 대학 설립, 수도회의 학문적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16 신학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전히 위대한 스승으로 인정받았지만,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아주 단순하게 '철학자(philosphus)'라고 불리게 될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논증과 토론의 최선의 안내자일뿐만 아니라 모든 학자들의 최고 스승이었다.


18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에 따른 12세기의 강력한 이성화 단계를 거쳐서 발전되었다. 이 단계를 통해서 인본주의적이고 문학적인 흥미와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규정된 세상에 대한 해석은 밀려나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및 <신학대전> 

35 아퀴나스는 이 훌륭한 멘토 대 알베르투스 밑에서 공부하며, 그로부터 자신의 평생을 좌우할 매우 개방적인 정신을 물려 받았다. 그는 스승 알베르투스의 정신에 따라 새로운 철학들과 전통적인 그리스도교를 성공적으로 종합해내는 데 가장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39 아퀴나스는 1323년에 가톨릭 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었으며, 1879년에는 그의 사상이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에 의해 가톨릭 교회의 공식 학설로 인정되었다.

 

40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으로 대표되는 플라톤적 그리스도교적 전통과 당시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그리고 이와 함께 도전적으로 다가온 아랍 철학을 놀라운 방식으로 종합하는 데 성공했다.

 

41 아퀴나스는 머리말에서 이 방대한 작품을 인문학부에서의 기초 교육을 마치고 상위 학부인 신학부에 진학한 신학의 초보자들에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교육에 알맞도록 제시하기 위해 저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42 아퀴나스 자신은 『신학 대전』을 3부로 나누는 것을 이렇게 해명한다. "거룩한 가르침의 주된 의도는 신에 대한 인식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신 그 자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사물 가운데서도 특히 이성적 피조물의 원천과 목적인 바 신에 대해서 다루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로 신에 대해서 고찰하고, 두 번째로 신을 향한 피조물의 운동에 대해서 고찰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신학 대전』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 제Ⅰ부(prima pars) : 신과 신의 업적으로서의 창조물 : 신론

▶ 제Ⅱ부(secunda pars) : 인간, 특히 신을 원천으로 삼고 있는 동시에 목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의 움직임 : 인간론, 행위론, 윤리학

▶ 제Ⅲ부(tertia pars) : 구원의 실제적 역사.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로서 인간이 신을 향해 갈 수 있는 범례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론, 교회론, 성사론

 

43 『신학대전』은 총 512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의 제자에 의해 보충된 99문까지 포함한다면 전체 611개의 문제로 구성되어 있는 방대한 작품들이다. 문제들은 다시 여러 개의 세부 문제인 절(articulus)들로 나뉘어 있다. 이 절들이 『신학대전』의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고, 한결같이 고정된 틀 안에서 전개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기초 및 전개 

52 아퀴나스가 자주 강조했듯이 계시된 진리와 이성의 진리는 두 개의 다른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철학적 진리는 상호 경쟁적이지 않으며 상호 보완적일 뿐이다. 그들 중 하나가 강화된다고 해서 다른 것이 약화되기는커녕, 그 발전의 도움을 통해서 더욱 충만해진다.


63 이들 결론이 제시하고 있듯이 다섯 가지의 길은 분명히 넓은 의미에서는 논증이며 우리들의 지성을 필연적으로 신이라고 불리는 무엇인가의 존재를 긍정하도록 이끌고 있지만 결코 단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신이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진리를 최종적, 결정적으로 증명하고자 함은 아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63 아퀴나스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 길이 『신학대전』 안에서 어떠한 위치에 배치되어 있는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64 아퀴나스는 우리가 신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신은 무엇이지 않을까?, 어떻게 존재하지 않을까?'를 고찰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64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신 존재증명은 『신학 대전』 전체의 서문에 해당하며 이를 많은 이들이 오해한 것처럼 그리스도교의 신에 대한 엄격하고 필연적인 논증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해석한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원동력으로 하는 지적 탐구는 인간의 자성이 알고자 하는 본성적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켜주는 대상과 만나게 되는 데까지 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그러한 대상이 바로 모든 이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라는 것이 아퀴나스의 생각이다.

 

72 아퀴나스가 인간 언어의 제한성을 자각하면서도 단순한 침묵으로 도피하지 않고, 그 불완전함을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진리로 다가간 것과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 이성은 철저한 자기 반성을 통해서 인간 이성과 언어의 취약점을 자각한 채, 인간 이성이 저지를 수 있는 위험과 오류를 끊임없이 수정해 가야 한다. 이와 같은 부단한 수정 노력 안에서야 우리는 무한한 심연이신 신의 이름을 참되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관과 윤리학 

76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된 생명이란, 단지 수동적이며 외부에서 움직여지기만 하는 현상에 대립되는 어떤 것이다 (『신학 대전』 Ⅰ,18,1). 따라서 아퀴나스가 잠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영혼의 정의는 그것이 '살아있는 존재자들 안에 있는 생명의 제일 원리'라는 것이다.

 

78 아퀴나스의 견해는 이렇다. 인간의 영혼은 질료의 능력을 초월하는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영혼 자체가 질료적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자기의식 및 자유선택은 인간 정신의 비질료적인 성격의 표시다.

 

78 인간에게 고유한 인식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작용 근거는 여타의 살아있는 신체의 영혼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퀴나스는 이러한 근거를 '지성적 영혼'이라고 부르며, 이것은 비물질적이고 자립적이라고 봤다.


80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를 요구하거나 사용하기만 하는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생물이요 자연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아퀴나스는 비록 영혼이 이해함의 작용에서 육체에 대해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예외가 있더라도 인간의 다른 모든 작용을 별개의 두 실체가 행하고 겪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지성적 영혼과 육체가 형상 질료로서 단적으로 하나로 합일된 인간의 행위라고 파악한다.

 

81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지성적 영혼, 즉 인간의 고유한 활동의 원천적 근거가 인간 존재 전체를 매개해주는 육체의 본질형상이기도 하다.

 

92 그리스도교 신학자라는 주체의식을 뚜렷이 가지고 있던 아퀴나스는 인간의 개별 영혼이 불멸적이기에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존속할 수 있고, 마지막 부활의 날에 다시 육체와 결합될 것이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97 그리스도교가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아퀴나스가 살던 환경에서 사람들은 이미 영혼의 불멸성을 믿고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학자인 아퀴나스가 첫 번째로 관심을 가진 것은, 육체가 죽은 뒤의 영혼의 존속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에게 중대한 문제는 그가 신의 은총에 힘을 합쳐서 나아가 스스로의 초자연적인 목적에 도달 하느냐 또는 못 하느냐 하는 것이지, 단순히 인간이 육체를 떠난 일종의 정신으로서 생존을 계속 하느냐 안 하느냐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육체와 분리되는 영혼의 자립성이 불완전함을 강조하는 곳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99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 영혼에게는 육체와 분리되어 있는 것보다는 합쳐져 있는 것이 더 좋다. 이렇게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는 사고 방식은 마지막 날에 육체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로 나아간다. 그때 모든 영혼은 다시 자기 몸과 합쳐지게 되고 '결합체'로서 구만 또는 영벌을 받게 될 것이다.


105 아퀴나스는 결코 인간이 지닌 이성적 본성이나 영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생명과 감각의 기반이 되는 육체가 필요한 개별적 실체성, 인간의 고유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설명 할 수 있는 틀을 찾아냈다.

 

107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 제 Ⅱ부에서 존재 자체로서의 신이 학문적 탐구뿐 아니라 인간 삶 전체의 목표라고 밝힌다. 모든 존재 사물의 근원을 찾는 "제1철학 전체는 최종 목적으로서의 신의 인식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신의 인식은 모든 인간 인식과 작용의 최종 목적이다."(『대이교도 대전』 Ⅲ,25) 신의 인식은 단순히 지성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포괄하는 덕행의 실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09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이 세상에서의 인간적 행위에 대한 윤리학이었던 반면에, 아퀴나스는 내세에서만 얻어 질 수 있는 '지복직관'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윤리학을 전개해 나갔다. 비록 신 이외의 선은 행복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지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 할 수 있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을지라도, 윤리학에 내세와 신의 직관을 도입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는 관련이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의의 

119 아퀴나스가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발전시키고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그의 방향성은 앞에서 언급했던 "신이주는 은총은 피조물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기는 것이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라는 명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20 일차적으로 신학자인 토마스에 따르면 철학적 진리는 인간의 구원 필요성의 관점에서 볼 때는 부분적이며 불완전한 진리만을 드러내기 때문에 전체적이고 궁극적인 진리인 그리스도교의 계시에 의해 보완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토마스는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며 계시 진리와 이성의 진리가 이 분화된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등장하는 '이성적 이해를 간과하는 신앙주의'와 '궁극적 진리를 거부하는 독단적 이성주의' 모두를 극복하기 위한 초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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