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카시러: 괴테와 플라톤


괴테와 플라톤 - 10점
에른스트 카시러 지음, 추정희 옮김/부북스


괴테와 플라톤 - 7

에이도스와 에이돌론- 플라톤 대화편에서 나타난 미와 예술의 문제 - 51

괴테의 판도라 - 99





괴테와 플라톤

「괴테와 플라톤」(1922)은 1932년에 출간된 『괴테와 역사적인 세계』(Goethe und die geschichtliche Welt)속에 포함된 것으로, 괴테의 사상과 거기에 미친 플라톤의 영향을 논하고 있다. 이 논문은 특히 괴테의 자연사상을 표현하는 “변형론”, “원상적인 것과 전형적인 것”, “근원현상”과 같은 관념들이 플라톤의 사상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관념들이 괴테의 시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고 있음을 논하고 있다. 카시러는 괴테와 플라톤의 사상적인 연관뿐 아니라 대립을 논함으로써 이와 같은 관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논문 역시 함부르크 판 카시러 전집 중 제18권 『논문과 저술』(Aufsatze und kleine Schriften(1932-1935))에 수록된 것을 번역했다.


19 플라톤의 경우 좋음(Gute)의 이데아가 이데아 왕국의 정점에 있으며, 최고 지식을, 모든 존재와 동시에 모든 인식의 최종적인 근원을 나타낸다. 좋음의 이데아 속에서 존재와 인식의 우주가 그 자체로 완성되기 때문이며, 모든 특수한 것이 최고의 궁극 목적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그 의미와 중요성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괴테의 모든 자연고찰은 다시금 삶을 전적으로 포괄하는 하나의 이념 속으로 합류한다. 그래서 플라톤이 좋음을 분명하게 "존재의 피안"으로 밀어내면서, 삶의 한계를 초월하는 곳을 가리키지만 괴테의 경우에 삶의 현상에 대립하는 어떠한 피안도, 어떠한 "초월"도 있을 수 없다.

 

23 플라톤은 감성적인 사물들의 모순으로부터 순수한 개념의 왕국으로 달아났는데, 순수한 개념들 안에서 존재하는 것의 진리를 인식하기 위함이었다. 로고이의 왕국, 즉 "형체 없는 형상들"의 왕국은 유일하게 감각과 상상력의 기만에 대해서 보호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있어서 예지적인 것으로의 이러한 전향, 즉 현상 전체를 초월하려는 이러한 도피는 거부된다 ━ 왜냐하면 예술가가 생성의 가상을 인식하고 알게 될 때도 역시 그에게 있어서 생성의 가상은 "진정한 가상(wahrer Schein)"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자신의 고유한 내적인 정신적 세계를, 형성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려 한다면, 진정한 가상은 그가 틀림없이 달라 붙어있는 것이자 다시금 되돌아 갈 곳이다.

 

48 "우리는 신적인 것과 동일한 진정한 것을 직접 인식 할 수는 없고 그것을 반영, 일례, 상징 속에서, 개별적이고 유사한 현상 속에서 바라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파악하기 어려운 삶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파악하고자 하는 소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소망은 파악할 수 있는 모든 현상에 적용된다. (……)" 이러한 괴테의 문장은 얼핏보면 아마도 순수하게 플라톤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엄밀하게 고찰해보면, 결정적인 차이가 발견된다. 괴테의 경우 "파악하기 어려운 삶"은 직관을 통해 결국에는 도달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러한 삶은 플라톤의 세계 이데아와 삶의 이데아, 즉 이러한 가시적인 우주를 형성하는 데 척도가 되는 "예지적으로 살아있는 것"과는 독특한 차이를 지닌다.

 

49 괴테가 고수했던 근원현상은 플라톤의 경우에 최고 고찰이자 최고 인식이며, 예지체(Noumena)의 왕국에서의 최종적인 것이다.


에이도스와 에이돌론- 플라톤 대화편에서 나타난 미와 예술의 문제

「에이도스와 에이돌론」은 카시러가 몸담았던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연속간행물에 출간하였다. ‘본다’라는 시각성과 관련하여 플라톤의 미와 예술에 대해 논하고 있다. 카시러와 동시대에 같이 활동했던 미술사가 파놉스키의 『이데아』와 이 논문은 사상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다. 실비아 페레티(Silvia Ferretti)는 카시러의 이 논문과 파놉스키의『이데아』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미술사학자에게 이 논문은 파놉스키로 인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 논문은 총 26권으로 이루어진 함부르크 판 카시러 전집(Ernst Cassirer Gesammelte Werke. Haumburger Ausgabe, herausgegeben von Birgit Recki, Hamburg: Felix Meiner Verlag, 1998-2009) 중 제16권 『논문과 저술』(Aufsatze und kleine Schriften(1922-1926))편에 수록된 것을 번역했다.


57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근본적인 개념과 근거 속에 독자적 미학을 위한, 예술의 화을 위한 어떤 여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예술은 사물들의 감성적인 현상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인데, 현상에 의해서는 엄밀한 지식이란 있을 수 없으며, 항상 단지 상상이나 잘못 생각하는 것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인격 전체를 고려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러한 결정은 역설적으로 보인다. 그 대신에 이데아론을 객관적 역사적 운명에서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객관적 구조에서 고찰한다면, 이러한 역설은 더욱더 커진다. 왜냐하면, 미학이 고유하고 독자적이며, 동일한 권리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 체계보다 강력하고 포괄적인 미학적인 결과들을 산출했던 철학적인 이론은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이제까지 철학사에 나타난 모든 체계적 미학이 플라톤주의였고 플라톤주의로 존재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결코 지나친 주장이 아니다.

 

59 플라톤에게 있어서 전적으로 근본적인 의미가 있는 두 개념, 말하자면 플라톤의 사유를 계속 순환시킴으로써 두 가지 쟁점을 형성하는 두 개념의 대립에서 시작한다면, 플라톤 자신에게 있어서 여기에서 고려하고 있는 모티프들의 투쟁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에이도스(Eidos)와 에이돌론(Eidolon), 즉 형상(Gestalt)과 상(Bild)이라는 이러한 하나의 개념 쌍은 플라톤의 세계 전체를 포괄하고 그 세계의 양극단을 나타낸다.

 

59 에이도스와 에이돌론이라는 두 개의 명사는 동일한 어근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는 행위라는 하나의 근본 의미로부터 전개된 것이다.

 

61 플라톤에 이르러서 비로소 그러한 방식으로 순수한 존재개념을 감성적으로 도식화하는 것이 단연코 극복된다. 이제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것들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의 세계가 분명하게 단절된다. 즉 현상들의 단순한 존재가 순수한 형식들의 내용과 진리에서 분리된다. 이러한 원리를 여전히 감각계 그 자체에서 찾거나 그 원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감성적인 결정에 붙들려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한 감각계의 고유하면서도 진정한 근원, 즉 "원리"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95 모든 진정한 에로스는 창조적인 에로스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사랑론의 근본 사상이다. 인간들의 모든 진정한 정신적인 힘은 어떠한 방향으로 가든지 혹은 사유 속에서, 행위 속에서, 상들 속에서 작용하든지 간에, 어쨌든 생산하는 힘이다. 진정한 에로스가 목표로 삼는 것은 소유도, 미의 단순한 직관도 아니고, "미의 산출"이다.


96 이제 예술은 더는 형성된 세계의 재생이나 모사가 아니라 형상화 자체의 원동력으로, 원리로 되돌아 간다. 그래서 영원한 원상으로서 이데아를 관조함으로써 감각 세계를 탄생시킨 신성한 데미우르고스와 함께 진정한 예술가는 일련의 흐름 속으로 들어선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마르실리우스 피치노, 지오르다노 부르노, 샤프츠베리와 빙켈만을 통하여, 이러한 근본적인 전망은 더욱더 근대의 정신적인 공유 재산이 되었다. 이제 르네상스 이래로 의학과 예술 이론의 새로운 형식이 나타난다. 그것들은 플라톤 자체에 기초를 두고 지속해서 플라톤을 떠올리면서 플라톤이 예술에서는 승인하지 않았고 그의 이론의 체계적인 전제에 의해 예술에 승인할 수 없었던, 그러한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정당화"를 예술 세계에서 쟁취한다.


괴테의 판도라

「괴테의 판도라」는 1921년에 출간된 『이념과 형상』 속에 포함된 것으로, 괴테의 미완성 시 「판도라」를 논하고 있다. 이 논문은 『파우스트』의 헬레나와 같은 모티프로서, 괴테가 판도라를 미의 이상으로 그리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시러는 미의 이상을 관념적으로 그리는 데 머물지 않고, 지상에서 실현하고자 한 괴테의 관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 시의 1부만 완성되고 2부는 시놉시스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그는 상상력을 발휘해, 완성되었을 2부를 구체화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그가 노년으로 막 접어든 괴테의 체념과 슬픔을 구체화함으로써, 그리고 괴테의 예술가적인 의식의 발전과정과 시적 형상화를 살펴봄으로써 성취할 수 있었다. 카시러는 여기에서도 역시 플라톤의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이 논문은 『이념과 형상』(Idee und Gestalt. Goethe, Schiller, Holderlin, Kleist, Darmstaf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994)에 수록된 논문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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