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기본개념들 | 03 진리와 인식 2 - 비판과 종합


필사본이 있어서 별도로 강의 내용을 요약하지 않았다.



강유원의 철학의 기본개념들 3

강의 교재:  소광희.이석윤.김정선 <철학의 제문제>

강의 목차:  

                1강 : 철학의 개념 - 철학과 종교, 그리고 과학

                2강 : 진리와 인식 1 - 진리의 기본 개념, 합리와 이성

                3강 : 진리와 인식 2 - 비판과 종합

                4강 : 존재의 탐구: 형이상학과 존재론

                5강 : 보편과 개체, 물질과 생명

                6강 : 가치란 무엇인가

                7강 : 선의지와 공리주의, 미와 예술

                8강 : 사회철학과 역사철학의 기본개념들


도서 목록: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 비판





풀로엮은집, 2006년 가을강좌

철학의 기본개념들

강사: 강유원

필사: 임경준


3. 비판과 종합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것을 정리해보겠다.

근대철학은 진리의 규준과 근거를 신에게서 구하지 않고 인간 자신에게서 구한다. 이러한 학적 태도를 데카르트는 네 가지의 규칙을 통해 정식화한다. 확실성의 규칙, 분할의 규칙, 순서의 규칙, 열거와 개관의 규칙이 그것이다. 이러한 검증을 통해 데카르트는 신으로서의 실체를 궁극적 원리로 삼아 모든 존재자 - 그냥 세상 만물 정도로 이해하면 됨 - 를 연역해 낸다. 이는 합리론자인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로부터 출발한 근대철학은 인간중심의 철학이며, 그런 까닭에 인간의 이성에서 진리의 규준과 근거를 찾고 있기는 하나, 그것을 보편타당한 진리로서 보증받기 위해 신으로부터 모든 존재자를 연역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점을 드러내고 만다. 세상만물의 근거를 신에게 두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나 그러한 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결국에는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 셈이다. 


합리론자들이 이처럼 존재자의 확실성과 필연성을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앞에 두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확실성과 필연성이 아니라 그저 개연성에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와 같이 합리론자로 거론해야 할지도 모를 파스칼을 보면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바로 불안이다. 파스칼의 <<팡세>>는 광할하고 영원한 우주 앞에서 벌벌 떨고있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이점에서 조가경 선생은 <<실존철학>>에서 실존철학이 파스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어찌되었건 그러한 불안과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결국은 신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은 합리론의 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험론은 합리론에 비하면 신을 완전히 의식하지 않는다. 경험론자들은 인식의 확실성은 경험만이 보증한다 믿는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시공간 상에서 감각적으로 경험된 것만이 사실이고 실재이며 그 이외의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이르면 경험론은 실증주의가 된다. 경험론이라고 하면 굉장히 인간중심적이고 인간에게 진리의 규준과 근거를 맡겨두려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과연 경험이란 것이 얼마나 확실한가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경험론자들은 자신의 경험이 얼마나 확실한가에 대해 확신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즉 인간에게서 진리의 규준과 근거를 찾으려 한 태도를 끝까지 견지하기는 했으나, 그것의 확실성과 필연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어 종국에는 자멸적 회의주의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합리론과 경험론이 봉착한 난관을 뚜렷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철학과 사상을 이해할 때는 그 사람의 사상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어떤 전개과정을 거쳐서 결국 어떤 한계에 직면하여 끝을 맺었는가의 전체적인 양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먼저 합리론자들을 살펴보자. 데카르트와 합리론자들이 인간의 이성을 진리인식의 규준과 근거로 내세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 데에는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한 의도가 있다. 막연히 추측해 보자면 30년 전쟁이 한 계기가 될 것이다. 신 때문에 30년 동안이나 전쟁을 치뤄야 했으니 신에 넌더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진리인식의 규준과 근거로 삼았으나 어떻게 인간의 이성의 확실성과 필연성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온다. 합리론자들은 기하학의 방법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세계가 틀림없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끝내 불러내지 못하고 신적 세계가 가진 확실성과 필연성에 기대고 만다.


경험론자들은 인간의 경험을 진리인식의 근거로 삼아 끝까지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 합리론자보다는 좀더 인간중심적이라 하겠다. 그런데 과연 내가 겪은 경험을 나 자신이 믿을 수 있을 만한 확실한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제 이들이 직면한 난관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그들처럼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따름이다. 흄은 자기동일성(self identity)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은가? 양자가 틀림없다고 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근대철학자들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출발했다는 점과는 상이하게, 의외로 자연과학적이다. 이때 자연과학적이란 곧 기계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을 기계적으로 파악한다. 영혼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인간의 의지적 측면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당연히 사회적인 제도화에 신경쓰게 된다. 이는 어떤 인간이든지 제도 속에 들어오면 합리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면 '계몽의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제도를 통해 사회를 합리화하겠다는 것, 이러한 태도가 극단화되면 사회가 인간과는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얼마 전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 비판>>(문예출판사)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어렵지 않은  책이고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주제와 연관된 것이기도 하니 다들 읽어보기 바란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합리론의 여러 함축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합리론은 진리인식의 타당성을 기하학의 방법론으로부터 빌어 오는데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기하학적으로 살 수 있는가? 대충대충 넘겨 짚으면서 사는 거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세상살이를 기하학적으로 극단화시키는 것을 궁극적인 이상으로 생각하면 비인간화, 탈인간화가 되는 것이고 그런 서구의 상황을 비판한 것이 호르크하이머의 이 책이다. 인식론으로서의 합리론과 그것의 자연과학적 태도, 세계를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묶여져서 계몽의 기획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더욱 진전되어 나아가면 호르크하이머가 말하는 도구적 이성이 된다. 이성이라는 말은 사태의 선과 후를 따져서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성을 찾자'라는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치판단을 하자는 뜻도 포함한다. 따라서 이성이라는 것은 양자를 모두 취하는 것이라 하겠으나, 근대철학은 이성을 도구적 이성에 국한시킨다는 점을 호르크하이머는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철학이 낳아놓은 긍정적인 측면들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철학은 우선 제일철학을 의미했다. 제일철학은 여러 개별학문에서 성취한 인식을 최고의 궁극적인 인식으로 끌어 올린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제일철학을 '종합학'이라 부르기도 했다. 종합학이기는 했으나 제일철학인 한에 있어서 그리스의 철학은 순수한 학적인 운동에서 움직였다. 이 운동에 일반적인 문화발전에 근거한 다른 계기들이 흡수되면서 그리스 철학은 몰락했다. 이른바 코스모폴리탄의 문화, 헬레니즘의 문화가 생겨났을때 그리스 철학은 다른 목적과 요구에 봉사하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제국의 성립과 더불어 개인들의 삶은 극도로 혼란해졌다. 이 상태에서 개인은 행복과 만족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삶의 생생한 관심이 전면에 나섬으로써 지적인 충동은 희미해졌다. 철학은 삶의 실용적 가치에 봉사하는 한에서만 그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거니와 이로써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철학이 성립하였다. 순수한 지知를 실용아래 예속시키는 것은 이 시대의 일반적인 특징인 까닭에 스토아Stoa 학파에 있어서 철학은 처세술이요, 수신술이었다. 학이 더이상 자기 목적을 가지지 않고, 다른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외면적 객관적 세계가 황폐해지고 그에따라 인간의 이상은 속세로부터 피안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중세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스 철학의 논리적 도식, 형이상학적 개념체계는 종교적 신심에게 인식의 표현을 부여하는 한에 있어서만 의미있는 것이 되었다. 이 시대에 철학은 신학의 시녀로서, 길고도 힘든 "게르만 민족의 수업시대"(Wilhelm Windelband, "Was ist Philosophie")를 살아간다. 지식에 대한 순수한 욕구는 종교에 대한 신심으로 녹아들고, 그 자체의 권리를 갖지 못하였다. 근대 사상의 뿌리는 종교적 의식의 독재로부터의 해방에 놓여있다. 지식욕은 자유롭게 되었고, 자기의 고유한 가치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은 더이상 과거 그리스 시대의 철학처럼 풍부한 외적 범위를 가지는 종합학일 수가 없다. 오히려 개별적인 특수과학이 새로운 과제와 방법을 정립함으로써 자기의 길을 가고 철학은 순수지의 이상을 되찾는다. 철학은 윤리적, 종교적 규정을 벗어버리고 세계에 관한 총체적인 학이 되려하여 가장 고유한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후원을 받는 신학에 반대하여 성립한 새로운 철학은 어떻게 자신의 새로운 지知를 산출할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할 과제를 갖게 되었다. 철학은 학의 본질, 인식의 과정, 대상과 사유의 일치에 대한 탐구, 즉 인식론에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철학은 인식의 방법에 관해서만 묻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한계에 대해서도 묻는다. 근대의 철학은 이러한 적극적 소극적 물음들을 거쳐 이제 칸트Imanuel Kant(1724-1804)에 이르렀다."


앞의 문단은 내가 이책 저책의 내용들을 엮어 붙여 플라톤에서 칸트에 이르는 서양철학사를 한 문단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런 식으로 압축적으로 써보는 것도 괜찮다. 이 문단을 통해서 나는 칸트란 철학자가 칸트 이전의 철학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거론되는 철학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뿐이다. 중간에 자질구레한 애들은 뺏다. 일진만 언급한 것이다. 내가 헤겔을 전공하긴 했지만 누군가 내게 어떤 철학자를 좋아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칸트라고 답하겠다. 철학사적인 의의를 따지자면 헤겔은 칸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사상사적 의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헤겔의 문제의식 자체가 칸트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으며, 가라타니 고진 같은 이는 마르크스와 칸트가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단의 앞부분에서 제일철학을 언급한다. 제일철학이란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알아볼 것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자리에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과 세계의 궁극적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즉 내용을 갖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일철학, 존재론, 형이상학 이 세가지가 거의 비슷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제일철학은 제일원리에 대한 탐구를 말한다. 즉 제일철학은 탐구의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고 존재론과 형이상학은 학문의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 시간에 설명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적 관심이 잡다하다. 정치학, 자연학, 형이상학, 심지어 시학에 이르기까지 뻗어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개별학문들이다. 이것들은 그 영역에만 해당되는 특수한 원리들을 탐구한다. 각각의 개별학문의 원리들을 끌어모아 그 원리들의 원리들을 뽑아내면 그것이 제일철학이 된다. 가장 저변에 놓여있는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제일철학이다. 각각의 개별학문에서 성취한 의식을 종합하여 그것들의 근본적인 원리를 찾는다는 뜻에서 종합학이라 부른다.


그런데 철학은 종합학이기는 하나 제일철학인 한에 있어서, 다시 말해 근본원리를 탐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것들을 모두 배제하는 순수한 학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박홍규 선생의 <<후기 형이상학 강의>>에서 티마이오스 편을 읽어보면 머리에 쥐가 난다. 지칭하는 대상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도로 추상적인 차원에서만 얘기들이 오고간다. 학적인 차원에서만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이 몰락했다는 것은, 곧 그리스가 헬레니즘 시대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가서 20년 동안 공부를 했다. 플라톤이 죽자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리케온 학원을 세운다. 마케도니아가 망하자 다시 아테네로 돌아간다. 이때 아테네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인이라고 죽이려 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에 이어 아테네인들이 철학에 두 번 죄를 짓게 할 수 없다며 아테네를 떠난다. 좀 멋진 말을 한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만큼 사회가 혼란했다. 그래서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는 철학이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다. 로마 시대의 최고의 정신적 문헌이란 것이 키케로의 <<우정론>> 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 정도이다. 철학적으로 대단한 문헌들이 아니다. 대단히 소박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떠올려 보라. 로마는 굉장히 실용적인 사회이고, 그런 까닭에 순수한 학적인 통찰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인문학이 위기라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철학에 위기가 없었던 적이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극단적인 실용성이 우리의 모든 삶과 제도를 지배하고 있는데 어찌 순수한 학문이 위기가 아닐 수 있겠는가. 오히려 다른 목적에 철학이 봉사하게 된다.


'안심양명의 철학' 즉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철학이라는 말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어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헬레니즘 시대에 시작된 이 같은 모습은 중세철학까지 이어진다. 헬레니즘을 거치면서 외면적 객관적 세계는 황폐해진다. 당연히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뭔가 성취하려고 하지 않고 피안의 영역에서의 성취를 바라게 된다. 이같은 작업을 적극적으로 해낸 이들이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초대 교부들이다. 이로써 중세가 시작된다. 그리스 철학의 논리적 도식, 형이상학적 개념체계는 종교적 신심에게 인식의 표현을 부여하는 한에 있어서만 의미있는 것이 되었다. 즉 중세시대의 철학은 중세적인 신앙체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는 일종의 도구적 학문으로 전락했다는 말이다.


신칸트학파에 속하는 철학사가 빌헬름 빈델반트가 말하듯이 "이 시대에 철학은 신학의 시녀로서, 길고도 힘든 "게르만 민족의 수업시대"(Wilhelm Windelband, "Was ist Philosophie")를 살아간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문맥을 빌려왔다. 중세는 게르만족의 시대였으니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하여 지식에 대한 순수한 욕구는 종교에 대한 신심으로 녹아들고, 그 자체의 권리를 갖지 못하였다. 근대 사상의 뿌리는 종교적 의식의 독재로부터의 해방에 놓여있다. 이것이 근대사상의 출발점이다. 지난 시간에 합리론에서 읽었듯이 중세의 계시적 진리로부터 벗어난 근대인이 나타난 것이다. "지식욕은 자유롭게 되었고, 자기의 고유한 가치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은 더이상 과거 그리스 시대의 철학처럼 풍부한 외적 범위를 가지는 종합학일 수가 없다. 오히려 개별적인 특수과학이 새로운 과제와 방법을 정립함으로써 자기의 길을 가고 철학은 순수지의 이상을 되찾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Fagan 이교도. 이 말은 화형대에 매달아야 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세의 종교적 독재에서 벗어난 이들을 부를 때 쓰이기도 한다. 중세의 계시적 진리로부터 벗어나 인간중심의 철학을 세우고자 할 때, 자신이 이교도임을 천명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다. 근대인은 그만큼 자기자신을 내세운다. 이렇게 사상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되찾은 것은 굉장한 의미라 할 수 있겠으나, 철학은 과거처럼 광범위한 안목을 갖는 종합적 학이 될 수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철학은 종합학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과 자연학, 하다못해 시학까지 철학의 하위범주로 묶여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모든 학문들은 철학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근대에 철학은 개별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들을 특수과학에 내어주고 이제 철학은 순수한 인식의 문제만을 다루게 된 것이다.


"철학은 윤리적, 종교적 규정을 벗어버리고 세계에 관한 총체적인 학이 되려하여 가장 고유한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후원을 받는 신학에 반대하여 성립한 새로운 철학은 어떻게 자신의 새로운 지知를 산출할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할 과제를 갖게 되었다. 철학은 학의 본질, 인식의 과정, 대상과 사유의 일치에 대한 탐구, 즉 인식론에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철학은 인식의 방법에 관해서만 묻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한계에 대해서도 묻는다. 근대의 철학은 이러한 적극적 소극적 물음들을 거쳐 이제 칸트Imanuel Kant(1724-1804)에 이르렀다." 이제 철학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놓여진다. 1) 철학은 이제 앎 자체, 지식 자체에만 한정되어야만 한다. 2) 지知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가 합리론과 경험론에서 펼쳐지고 여러 한계점을 드러내어 칸트 앞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칸트에게 철학이란 더 이상 고전적인 종합학일 수 없고, 그렇다고 중세적인 도구적 학이 될 수도 없다. 그것을 넘어서고자 시작된 근대의 학문들은 각각의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에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한계를 뚜렷하게 살펴보고, 즉 비판함으로써 근대에서 인간을 어떻게 살필 것인가에 대한 독트린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게 칸트 철학이 직면한 문제들이다. 근대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칸트의 대표적인 세 저서는<<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다. 모두 비판kritik라는 말이 들어간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비판이란 말을 쓴 이후로 철학자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비판이란 말을 쓰는 일을 능사로 삼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 비판>>이다. 비판은 칸트가 재정립한 단어인데, '한계를 분명하게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대상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비난하는게 아니라 상대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뚜렷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주장을 잘 정리해야 한다. 즉 어디까지 왔느냐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그러니 정리만 잘 해도 비판인 셈이다. 칸트 이후에 등장하는 '비판'이란 단어는 대개 칸트적인 의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이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순수이성비판>>의 목적은 무엇인가? 제목대로 풀어보면 순수이성의 한계를 밝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순수이성은 무엇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의 한계점은 어디인가를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순수이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인식을 말한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능력으로서의 순수이성을 말한다. 결국 이 책의 제목을 풀어보면, 인간의 이성이 대상세계에서 무엇을 인식할 수 있고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느냐의 한계를 밝혀주는 것이 목적이라 하겠다. 책의 제목을 해명하니까 책의 내용이 드러난다. 제목을 아무렇게나 지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칸트의 저작제목을 정확하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순수이성비판 – 순수이론이성비판 – 이론적 인식

실천이성비판 – 순수실천이성비판 – 도덕철학


<<판단력 비판>>은 워낙 복잡한 문헌이라서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내 지도교수께서 번역하셨는데, 언젠가 "<<판단력 비판>>이란 어떤 책입니까"하고 여쭈었더니 선생님께서 "그걸 내가 어찌 아나"라며 답변을 회피하셨다. 여하튼 논란이 분분한 책이라는 것만 기억해 두길 바한다.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그러므로 개념을 감성화하는 것(즉 개념에 대하여 그 대상을 직관에 있어서 부여하는 것)은 직관을 지성화하는 것(즉 직관을 개념 아래에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오성은 아무 것도 직관하지 못하며, 감성은 아무 것도 사유하지 못한다. 양자가 결합함에 의해서만 인식은 나올 수 있다." (칸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이 문단은 짧지만 만만히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우리가 라이프니츠를 가리켜 독일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는 라틴어로 책을 썼다. 독일어로 최초의 철학책을 쓴 이는 칸트 이전의 철학자인 크리스티앙 볼프다. 따라서 우리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쓸 때 독일어가 학문적인 언어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독일인들이 괴테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괴테가 나옴으로써 독일어가 언어가 된 것이다. 철학에 국한시켜 말한다면 독일어가 칸트 전까지는 원시적인 언어였으나 칸트에 이르러 이제 학문의 언어가 된 셈이다. 단테가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써서 이탈리아어가 언어가 된 것과 같다. 어쨌든 칸트는 철학을 라틴어로 배웠을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개념을 독일어로 옮기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똑같다. 나같이 독일철학을 전공한 이는 '감성'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 독일어 Sinnlichkeit를 먼저 떠올린다. 칸트도 자기 머리 속에 떠오르는 라틴어 개념들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있었을 것이다.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 여기서 감성Sinnlichkeit이라는 말은 뭔가를 받아들이는 수용성.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순한 느낌일반, 감각경험과는 다르다. 내가 누군가를 때렸다고 가정했을 때, 상대방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더불어 고통을 겪고있는 자신까지 인식하고 있는 것이 감성이다. 즉 상태와 그것을 겪고있는 주체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칸트가 경험론의 방법론을 일부 받아들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일단 외부에서 뭔가 주어져야 우리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 우리에게 어떤 감각경험이 주어져도 그러한 경험 이전에 그것을 알아보고 둘러볼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만, 우리에게 주어진 감각데이터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첫번째 문장을 읽어보면 주어지는 데이터와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을 합쳐야만 인식을 낳아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여기서 '직관'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이 단어를 단박에 아는 것으로 오해하면 <<순수이성비판>>은 영원히 이해되지 못하는 텍스트가 된다. 칸트에게 직관은 우리의 감각데이터로 들어오는 것 일반을 말한다. 즉 감성이 가지고 있는 것이 직관이다. 개념없는 직관이란 곧 감각 데이터는 있으나 그걸 사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생살이의 경험은 많되 그것에 대한 사유가 없는 것이다. 대령연합회의 서정갑을 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단지 겪어보았다고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맹목일 뿐이다. "개념을 감성화하는 것(즉 개념에 대하여 그 대상을 직관에 있어서 부여하는 것)은 직관을 지성화하는 것(즉 직관을 개념 아래에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이때까지 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서 칸트의 구성설적 인식이론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먼저 객관적 세계 속에 대상이 있다. 이 대상으로부터 감각경험(감성)이 주관적 세계 속에 들어온다. 우리는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 이렇게 들어온 감각경험을 개념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주관은 직관과 오성이란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 대상세계와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직관이다. 오성은 경험 이전에 갖고 있는 것이다. 경험에 앞서기 때문에 칸트의 철학을 선험철학이라 부른다. 개념을 감성화한다는 말은 개념에 대하여 그 대상을 직관에 있어서 부여하는 것 즉 직관을 개념 안에 집어 넣는 것을 말한다. 직관이 직접 대상세계로 나아가 경험을 가져올 수는 없다. 직관은 가만히 있는다. 그러니 대상세계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직관의 형식 아래 우리에게 들어옴으로써 우리는 감각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직관이 얻어진다. 즉 직관의 형식은 수동적이고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직관이 우리 안에서 만들어진 것임은 틀림이 없다. 객관적 세계 속의 대상이 보낸 감각경험이 우리의 안에서 직관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감각경험은 대상세계와 차단된다. 피가 차오르면 저절로 문이 닫히는 심실을 생각하라.


대상의 감각데이터가 들어와서 직관이 짜여지면 대상세계와 단절된다. 이제 인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에서만 이뤄진다. 그러므로 칸트는 관념론자다. 어쨌든 간에 최종성과는 머리 속에서 알아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대상 A가 만약 대상 B를 보낸다면, 직관은 그것을 A로 알고 있는데 정작 들어와 있는 것은 B일 수 있다. 객관적 세계의 사실관계를 검증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물 자체다. 이는 칸트가 경험론이 밝혀놓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주관의 관념의 영역에서만 인식이 만들어진다는 점, 이때 인식을 만들어 내는 주도권은 선험적 관념이 쥐고 있다는 것은 칸트 인식론의 의의다.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병원을 예로 들어보겠다. 환자가 병원에 가면 병원직원들이 나와서 접수해주는가? 아니다. 환자가 직접 접수대에 가서 접수를 해야한다. 여기까지는 병원이 수동적이다. 그런데 일단 접수를 하고 나면 병원에서 환자를 안내하여 치료한다. 접수 이후에는 병원이 능동적으로 변한다. 칸트의 인식론도 같은 차원에서 살펴보자. 일단 대상세계가 감각경험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와 직관이 만들어 지면 오성이 능동적으로 나아가서 그것을 구성한다. 오성은 12개의 칸막이로 된 분류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칸트가 말한 오성의 12 범주이다. 직관덩이를 오성이 12 범주에 따라 구별한다. 구별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그러니 구별을 해서 이것이 무엇이다 라고 내놓는 것이 인식이라는 것이 칸트의 인식론이다. 우리의 인식은 대상의 감각경험을 받아들여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직관을 형성하고 이 직관에 대하여 12개의 오성의 범주가 능동적으로 나아가 이것들을 구별하여 인식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칸트는 직관이 오성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구성설적 인식이론'이라 부른다. 이로써 경험론과 합리론이 종합된다.


경험론자들은 직관이 형성된 것만 인식이라 주장한다. 그러니 확실성이 보장이 안 되는 난점을 갖는다. 합리론은 내용은 알지도 못하면서 오성이 나아가 그저 구별할 뿐이다. 칸트는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놓은 것이다. 어쨌든 오성은 대상에게 직접 관여하지 않으며 감성은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사유의 굉장한 자발성이다. 감성은 수동적이지만 사유는 인식을 만들어 내니 해석하기에 따라서 사유가 세계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베껴 적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직관에게 주어진 감각 데이터를 가지고 우리의 주관이 갖고 있는 선험적 형식이 직관을 구성해서 만들어 내놓는 것이 칸트에게 있어서의 인식이다. 칸트가 왜 이런 인식론을 내놓았을까? 경험론과 합리론의 한계를 나름대로 극복해서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일컬었다.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Kopernikanische Wendung)에 의하여 학적 인식의 주도권이 인식 주관에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이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적 직관이므로, 직관형식의 통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우리의 학적 인식의 대상영역은 경험적 세계를 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칸트의 비판의 또 하나의 결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인식은 감각적 질료가 없이는 성립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은 그러한 질료가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는 대상 자체, 물자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나타나는 한에 있어서의 대상, 즉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의 인식능력이 단지 감성이나 오성에만 머무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경험적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서 초경험적 세계에까지도 인식을 확장하려고 한다는 것을 시인한다. 칸트에 의하면 그것이 곧 이성이요, 이러한 이성의 초경험적 세계가 이념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초경험적 세계에 관해서는 학적 인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 자유, 영혼에 관한 학으로서의 전통적 형이상학은 적어도 이론적 인식으로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하는 소극적 견해가 이론이성의 비판의 결론이었던 것이다."(<<철학의 제문제>>)


이제 나의 직관 형식인 시간과 공간에 데이터가 주어지지 않는 것들은 인식이 성립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신, 자유, 영혼이다. 이것들은 감각데이터가 주어지지 않으니 학문적으로 따져볼 수가 없다. 인식될 수 없는 것은 학의 영역에 속하지 못한다. 신은 인식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은 학문의 주제가 아니다. 이렇게 칸트는 굉장히 규모있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학문에서 신을 제거한다. <<순수이성비판>>이 의도한 것은 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전통적 형이상학의 주제였던 신을 학문적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청의 대상에 국한시켜 버린다. 칸트가 의도한 것은 전통적 형이상학의 제거다. 칸트는 인간적 인식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것이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이교도가 된 것이다. 자신이 이교도임을 학문적으로 논증해서 체계를 세우니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완빵에 신을 죽여버린다. "신은 죽었다"고 백날 떠들어 봤자 "난 안 죽었는데"하면 끝이다. 아무런 소용없다. 칸트는 규모있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신에게 이제 그만 죽으라고 제안한다. 중세의 계시적 진리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근대철학이 목적으로 했던 바를 칸트가 완성한 것이다. 형이상학이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낳아놓는 최종적인 인식은 대상세계, 즉 물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인식이다. 칸트도 흄과 마찬가지로 사물의 본질은 알 수 없다 얘기한 것이다. 칸트에겐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다 하는 것이 오만한 것이었다. 이로써 종합학으로서의 철학은 칸트에 이르러 완벽하게 정리가 된다. 달리 말하면 초경험적 세계를 다루는 플라톤 철학은 칸트에게 철학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확실하게 정리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론적 이성으로서 인식될 수 없는 영역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그것들은 학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요청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경험론과 합리론을 비판함으로써 종합했다는 것, 그럼으로써 전통적 형이상학의 제거라는 근대철학의 목표를 성취해냈다는 것, 이것으로써 우리는 근대철학의 완성자로서의 칸트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문단은 근대철학의 맥락에서 살펴본 칸트의 의의이다. 다음 시간에 읽으면서 정리할 것이니 미리 읽어오기 바란다.


칸트 앞에 놓여진 것은 단적으로는 '인간적 인식의 몰락'이라고까지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합리론에서 성립하는 인식은 더이상 인간의 것이 아닌 신적 이성의 것이었다. 경험론은 일체의 실체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인과율의 타당성까지도 의심하는 회의론으로 귀결되었다. 칸트는 이러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모든 학적 가능성이 절멸되어 버린 듯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시원始原을 마련할 가능성을 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칸트에게는 행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칸트는 합리론적 지반 위에 서있던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워준 이가 흄이었음을 의식하기라도 한듯이 경험론의 성과, 즉 회의론에서 출발 -- 이것은 무척이나 의미있는 출발점이다. 완전한 소진 속에서 불씨를 되살리는 이러한 사유의 힘은 위대한 철학자의 천재성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선행하는 사상의 궤적을 있는 그대로 되짚어 보는, 자기를 잊은듯한 읽기의 과정에서 그 사상의 부정합을 발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 한다. 그런 까닭에 경험론의 성과는 그대로 칸트 철학의 근본 구도를 이루는 것이 된다.


경험론의 핵심 주장 중의 하나는 인간의 인식이 경험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당연하게도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 이를테면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확고한 인식이 불가능하다. 또한 경험론의 귀결인 회의론은 인과율의 타당성을 의심하며, 그에따라 인과율에 기초를 둔 근대의 자연과학적 인식의 확실성까지도 부인한다. 칸트가 대결하는 문제영역은 이 두 가지이다. 그는 뉴튼Newton(1643-1727)의 수학적 자연과학에 있어서 하나의 사실로서 확립되어 있는 자연과학적 인식을 단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선 이 영역에 있어서의 학적 인식의 근거를 밝힘으로써 자연과학의 확실성을 정초하려 한다.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사태가 조금 다르다. 그것은 경험 데이터를 통한 인식이 성립할 수 없으므로 확실성을 정초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칸트의 철학에서 '형이상학'이라는 말이 발견되면 '학적인 인식과는 무관한'을 앞에 붙여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칸트가 자연과학을 본받아 '학의 확실한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새로운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정초하려 했으나, 체계적으로 완결짓지 못하고 결국에는 이어지는 독일관념론의 철학자들의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하다하여, '체계수립'이라는 최종 귀결, 이를테면 헤겔의 거대한 정신의 체계 등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칸트의 의의를 간과하는 것은 몹시도 부당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칸트는 분명 계몽으로서의 인간 정신이 그 극점으로까지 사유를 밀고나간, 다시 말해서 그에게는 신적인 정신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 위대함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새로운 형이상학을 정초하려 하면서도 끝내 신을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인간 정신에 대한 강인한 신뢰의 소산이었다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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