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기본개념들 | 08 사회철학과 역사철학의 기본개념들


필사본이 있어서 별도로 강의 내용을 요약하지 않았다.

강유원의 철학의 기본개념들 8

강의 교재:  소광희.이석윤.김정선 <철학의 제문제>

강의 목차: 

                1강 : 철학의 개념 - 철학과 종교, 그리고 과학

                2강 : 진리와 인식 1 - 진리의 기본 개념, 합리와 이성

                3강 : 진리와 인식 2 - 비판과 종합

                4강 : 존재의 탐구: 형이상학과 존재론

                5강 : 보편과 개체, 물질과 생명

                6강 : 가치란 무엇인가

                7강 : 선의지와 공리주의, 미와 예술

                8강 : 사회철학과 역사철학의 기본개념들

도서 목록: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




2006년 가을 풀로엮은집

철학의 기본개념들

강사: 강유원

필사: 임경준

철학의 기본개념들 8강 사회철학과 역사철학의 기본개념들

오늘은 사회철학과 역사철학의 기본개념들에 대해 강의한다.


"사회와 역사에 관한 철학적 사유는 멀리 고대 그리이스에서부터 비롯하였다.  그러나 사회철학이나 역사철학은 본래적 의미에 있어서 철학의 독립된 일부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기본적인 문제들은 궁극에 있어서는 혹은 형이상학이나 인식론에 귀속되기도 하고, 혹은 윤리학의 영역에 들어가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과학.역사과학과도 다르다. 사회나 역사에 관한 문제들 가운데에는 사회과학이나 역사학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처럼 사회적 역사적 사실이 마땅히 철학이 해결해야 할 형이상학적 윤리학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한 문제들은 예를들면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 지배와 복종의 근거는 무엇인가? 사회질서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회정의는 무엇이며 또 어떻게 실현되는 것인가? 국가의 성립근거는 무엇인가? 정치적 지배는 개인이나 사회의 자유와 복지에 대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이 추구한 자유의 본질은 무엇인가? 역사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고 예언할 수 있는 법칙 내지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은 대체로 사회철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보수적인 철학관은 지닌 사람들은 사회철학과 역사철학을 철학의 독립된 분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다루는 문제들이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문제들에 포괄되는 까닭에 궁극적으로는 환원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사회철학과 역사철학은 사회과학, 역사학과 차이점이 있다. 사회적 역사적 사실이 마땅히 철학이 해결해야 할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질문을 들어보자. 정치적 지배와 복종의 근거는 무엇인가? 좀더 쉽게 말하면 길을 건널 때 파란 불에는 건너고 빨간 불에는 멈추는 규칙을 왜 지켜야 하는가? 강제력을 동반한 법률이 그러한 규칙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이 나를 강제하는 법률에 복종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 왜 그런가?


이외에 다른 문제도 있다. 국가는 사형, 구금, 전쟁과 같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다. 그것을 누가 승인해 줬는가? 사회적 정의는 무엇인가? 이는 오늘날에 크게 주목받는 문제이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정의라 전제한다면, 과거에는 그것이 투표권으로 상징됐었으나, 오늘날에는 경제적 복지로 상징된다. 그러니 오늘날 사회적 정의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에는 분배의 정의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즉 시대가 바뀌면서 사회적 정의라는 개념이 바뀌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이 사회질서였다. 오늘날 사농공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완벽한 논리를 들이댄다고 하여 누가 인정해줄 것인가? 바로 돌 맞을 것이다. 아무리 엄밀한 철학적 정당화를 갖다 놓는다 해도 사회 역사철학의 문제들은 시대적인 상황에 말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편불변적인 진리를 가진 철학관을 가진 이들은 사회역사철학을 철학의 범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역사철학이 다루는 문제에는 국가, 법, 역사의 법칙에 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이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법의 문제이다.  국가는 법을 행사하는 주체이다. 법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국가에 대해 논의가 되고, 법을 어떠한 이념에 의거하여 행사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사회적 정의와도 연결된다. 사회과학의 분과에는 사회학, 정치학, 법학 등이 있다. 흔히 법학이 사회과학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학은 인간을 집단의 차원에서 분석한다. 정치학은 정치라는 행위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사회학과 정치학에서 논의된 문제들이 최종적으로 법과 제도로 형식화된다. 법은 최후의 학문이자 사회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법을 보면 그 사회의 기본적인 성격을 알 수 있다. 법은 사회의 표상이다. 그래서 법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중요하다. 법학이 고시공부가 아니다. 중세에도 법학을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했다. 왜 법학과가 만들어졌겠는가? 모든 것을 법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투쟁이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봐도 그렇다. 사회학자와 정치학자의 발언은 법제화가 되어야만 의미와 성과가 있다. 법치국가의 이념을 떠올려 보라.


"법이란 무엇인가? 라틴어 lex(법)는 '붙잡아 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은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강제적 규범이다. 규범이란 올바른 행위는 '해야 하고' 올바르지 못한 행위는 '해서는 안된다'는 생활상의 원리를 말한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서 공존공영을 도모하게 된 이후, 즉 사회적 질서를 수립하고 그 속에서 개인 생활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기도가 생긴 이후,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게 된 원리이다. 이를 자연의 필연성과 구별해서 '당위Sollen'라고 한다. 규범은 인간의 차원에서만 성립되는 생활원리이다. 그러나 인간의 차원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육체의 차원과 정신의 차원이 구별된다. 육체적 생은 인간을 자연상태와 연계시킨다. 자연상태에서의 육체적 생은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힘을 필요로 한다. 거기에서 지배력을 갖는 것은 오직 육체적 힘뿐이기 때문에 홉스가 말하는 소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연출된다. 이에 반하여 정신적 생의 특징은 간접적 보편적이라고 할 것이다. 규범은 육체적 생의 투쟁적 자연상태에 침투한 정신의 지배영역의 확보, 즉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들 사이를 중화시키기 위하여 설치된 중립지대이기도 하다. 그 중립지대에서 인간은 생의 안전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규범은 안정과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긴 하나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만의 세계는 자유의 왕국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강제성이란 있을 수 없고, 또 육체만의 자연적 세계에 있어서는 당위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법의 존재란 불완전한 인간존재의 자기표명인 동시에 비극의 사전예방책이기도 하다. 법질서에 의한 평화의 유지란 안정된 생존의 현상유지status quo이기도 하다."

 

라틴어 lex에는 강제력을 동반하는 좀 negative한 의미가 담겨있다. 흔히 법法이 水와 去가 합쳐져서 나온 것이니 법이란 물 흐르듯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지극히 동아시아적인 의미에서이다. 서양의 맥락에서는 붙잡아 매는 것, 즉 강제력을 말한다. 여기서 강제력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따라서 리버럴에서 아나키까지 이념지평이 갈린다.


'국가(주체)'는 '사회의 질서유지(목적)'를 위해서 '강제력으로서의 법(수단)'을 사용하므로 자연스레 그 성격이 폭력적이 된다. '당위Solen'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를 영어로 하면 ought이다.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늘상 지니고 산다.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질서에서 벗어날 힘이 있다면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법을 지키기 위해 작동되는 국가의 폭력보다 더 강력한 폭력을 내가 지니고 있다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유에스를 보라. 유에스는 국제법을 무시한다. 왜 그런가? 법보다 센 뒷심이 있기 때문이다.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좋은 법이란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구애받지 않는 법일 것이다. 즉 보편적인 법이 좋은 법이다. 국가보안법이 나쁜 법인 이유는 그것이 특정한 공간과 시간에서만 작동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즉 보편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보편적이라 하여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법은 보편적이면 보편적일수록 강제력은 그만큼 떨어지고 도덕규범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보자.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보편적인 언명이 있다. 이를 법제화시킨다고 생각해 봐라.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강제적 규범으로서의 법은 그 강제력의 근원을 어디에서 얻는가? 이것은 법의 창설과 효력을 동시에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법철학적 견해가 서로 엇갈리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연법 사상과 법실증주의가 대립한다. 자연법lex naturalis의 이론적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나 이성은 시대.민족.문화.계급의 차이로부터 초월하여 영구불변하다는 것이다. 보편적 인간의 본성 및 거기에 내재하는 인간의 자연법이라는 사상은 고대 그리이스가 창조한 위대한 사상 중의 하나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이 자연법 사상은 그리이스와 로마의 스토아 학파에서 발전되었다. 결정적으로 자연법론에 치명상을 입힌 것은 나폴레옹에 의한 피정복을 청산하고 봉건주의로 복귀하려는 프로이센의 반동과 합리주의를 공격함으로써 프랑스혁명의 흔적을 씻어버리려는 독일 낭만주의가 낳은 소위 역사법학파 -- 역사주의에 입각한 법이론학파 -- 였다. 역사주의란 '진리와 가치는 시대의 딸'이라는 정식을 모토로 하여 진리.법.윤리 내지 사상 일반을 특정한 역사적 시기, 특정한 문화적.민족적.지역적. 집단의 산물이라고 보는 가치상대주의적 입장을 말한다. 현대에 이르러 역사주의의 노선에서 순수법학과 자유주의적 법실증주의를 주장함으로써 자연법론을 결정적으로 배격한 것은 비엔나 학단 출신의 켈젠이다. 그는 논리적 견지에서 존재로부터 당위를 도출할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자연법론은 자연법칙과 도덕적.법률적 법칙을 혼동하고 있다. 전자는 기술적이고, 후자는 규범적이다. 규범적 명제는 기술적 명제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켈젠은 과거의 위대한 법학자들 중에서 자연법을 주장한 사람들은 사실은 자기가 하고자 한 일 -- 진보의 이상이든 반동이나 전제의 이상이든 -- 이 '자연적'이고 '이성적'인 것임을 증명하려고 한 데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법은 인간의 차원에서만 성립되고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차원에는 크게 보아 1)육체의 차원과 2)정신의 차원이 있다. 육체의 차원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 자연주의적 윤리설이다. 다소 이분법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육체를 어찌 할 것인가를 두고 서양과 동양의 사상이 극명하게 갈라진다. 서구적 합리주의의 견지에서 볼 때 인간의 육체는 규제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노자의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이라는 언명에서도 살필 수 있듯이 인간의 육체를 자연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노자에게 자연은 인위적인 것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 Lex는 자연적인 것을 붙잡아 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서구에서 규범은 정신이 육체적 생의 투쟁적 상태를 지배하기 위해서 마련한 중립지대이다.


법의 일차적인 기능은 강제력이다. 그렇다면 강제력의 정당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를 두고 자연법주의와 법실증주의의 입장이 있다. 이 문제는 사실 서구 법사상의 난제들이다. 전통이 오래된 것은 자연법주의이다. 자연법은 강제력의 근원을 자연에서 찾는다. 자연법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이성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영구불멸하다고 상정한다는 점에서 달리 말해 이성법이라 할 수 있다. 스토아 학파의 중요한 사상 중의 하나가 세계시민주의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만 문화인이고 그외의 인간들은 야만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너도 나도 모두 동등한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법제화되어 나타난 것이 만민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만민법을 만든 이유로 시민의 수를 늘려 세수를 확대하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리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하다 해도 로마시대의 가장 밑바탕에는 세계시민주의가 깔려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연법의 토대이다.


중세에는 자연법 위로 신법이 위치한다. 근대는 이러한 구도를 뒤엎고 자연법을 신법 위에 두려고 한다. 르네상스에 인간의 이성의 발견이 고대의 자연법의 발견과 딱 맞물려 들어가는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그와 같은 시도의 하나로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시민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법체계가 만들어지고 시행된 것이 100년 정도 된다. 그러나 그것을 제약하는 여러 하위법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자연법 전통이 실현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속인주의이다. 한국의 국민이 되려면 부모가 한국인이어야 한다. 이에 비해 유에스는, 비록 그 내용을 가지고 이런저런 말이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속지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렇듯이 자연법이란 이념이 자연법 사상으로부터 구체적인 법률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 해도 어떤 법의 정의로움과 보편성과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준거틀이 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등이 모두 자연법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자연법에 결정적인 치명상을 입힌 것은 역사법학파이다. 역사법학파는 17세기에 자연법 사상에 대한 철저한 안티테제로서 등장했다. 법사상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학파이다. 역사법학파의 주요 학자로는 사비니, 후고 등이 있다. 현대에 와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법사상가는 법실증주의자인 한스 켈젠이다. 켈젠은 자연법의 논의가 논증되지 않는 초월적 논리에 기대어 있다고 비판한다. 자연법칙 – 자연과학의 법칙 - 은 행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도덕법칙 – 인간 삶에 있어서의 규범들 - 은 처방적prescriptive, 강제적이어서 행위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보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법칙을 본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의 행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반면에 "도둑질하면 나뻐!"라고 말한다면 이는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끼친다. 켈젠은 이 두 가지가 별개의 것인데, 자연법은 이를 뒤섞어 이해한다고 비판한다. 본래 타고난 것이 이성이라 하여 그로부터 처방적이고 규범적인 것을 끄집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켈젠을 비롯한 법실증주의자들에게 법은 주권자에 의하여 명령되었기 때문에 효력을 갖는다. 즉 법에서 형이상학적 요소를 제거한 것이다. 이를테면 회사의 출근시간(법)은 어떻게 해서 효력을 얻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사장(주권자)의 명령에 의해서이다. 켈젠은 아주 현실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동시에 법이 갖는 형이상학적 요소를 제거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법학파는 법이란 시대와 민족의 정신으로부터 강력하게 지배된다고 생각한다. 칼 포퍼는 헤겔이 나치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헤겔은 자연법론자이다. 사실 독일 나치즘의 이론적 근거를 내놓은 이들은 역사법학파이다. 파시즘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역사법학파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한다. 사실 철학자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 프레데리크 들루슈의 <<새 유럽의 역사>>(까치)와 같은 역사책을 읽어보면 철학자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철학은 그만큼 시대에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력이 적다는 것이다. 법은 자연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에 법이다(자연법). 법은 인간에 의해 명령되었기 때문에 정당하다(법실증주의). 법의 정당성은 시대와 민족의 정신 속에 들어있다(역사법학파). 서구의 법사상은 이 세가지 범주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특정한 문화를 가지며 사회를 형성하고 있거니와, 그것은 횡으로 동시적 관계와 종으로 계기적 연쇄를 가지고 전체로서 움직여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와 사회의 성립을 인간의 자연상태로부터의 진보라고 보든 퇴보라고 보든, 그것은 적어도 인간이 단순한 자연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계는 물론 저절로 일어난 세계도 아니요 또 갑자기 나타난 세계도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유산을 걸머지고, 또한 미래의 맹아를 간직하고,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계이다. 인간은 이러한 세계의 추이에 따라 개인적 또는 집단적 생활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그 발전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살고 있는 이러한 세계를 자연의 세계와 구별하여 역사적 세계라고 부른다. 이러한 세계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서 우리에게 육박해 온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안에서 몸소 살아가며 그 안에서 고뇌하며, 주체적 체험을 통하여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역사적 현실이라 부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인간, 인간이 형성한 사회, 그 인간의 역사, 이 세가지를 전체적으로 통찰하는 것이 사회역사철학이다. 특정한 문화를 가지고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인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사회철학이다. 이러한 세계는 단순한 자연적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다. 저절로 이뤄진 세계도 아니고 갑자기 나타난 세계도 아니다. 자연적 세계와는 구별되는 인문적/역사적 세계이다. 자연적 세계에 대한 연구가 자연사이고 인문적/역사적 세계에 대한 연구가 인간사이다. 이러한 역사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것을 가리켜 역사적 의식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역사의식이 없는 이들은 자연적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므로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역사의식이야말로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본질을 규정해주는 중요한 속성이라 하겠다.


"사변적 역사철학자들은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을 찾아내어 역사의 발전단계를 설명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멀리 비코는 사회와 문화의 현상에는 일정한 정신의 흐름이 있다고 보고 역사의 단계를 신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라는 삼단계로 나누었는가 하면, 꽁트는 인류의 역사를 지식의 발달로 보고, 그것이 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적 단계를 거친다고 하였다. 또 헤겔은 세계사를 '자유의 의식의 진보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그 발전단계를 세 개의 시기로 나누었다.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찾았으며, 그 발전단계를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공산제로 나누었다. 그러나 역사의 원동력이나 법칙을 설정하고 그 전과정을 몇몇 단계로 나누어서 인류사의 이념과 목표를 관념적으로 그려보려고 하는 이러한 시도에 따르면 과연 우리는 인류사의 방향을 예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오늘날의 일부 철저한 경험론자들은 극력 반대하는 이론을 편다. 예컨대 포퍼는 역사의 법칙의 존재를 승인하고 이 법칙에 의한 예지의 가능성이나 역사의 종말을 확신하는 이른바 '역사와 운명의 형이상학'을 역사주의historicism라 부르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의하였다: "내가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예언이 제사회과학의 주목적이라고 생각하며, 또 이 목적은 역사의 진화의 밑바닥에 있는 '율동'이나 '유형', '법칙'이나 '경향'을 발견함으로써 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사회과학의 접근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포퍼에 있어서도 역사의 합리성을 확보되어 있다. 그것은 물론 장대한 역사의 이념이 가지는 합리성과 같은 것은 아니다. 역사는 개개인이 만들어가는 것이요, 따라서 그 자체로서 목적이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의 관점에서 보면 개개인은 그때 그때의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사태를 하나 하나 정확하게 판단하여 필연적 행위를 해 나가므로, 역사의 짧은 한 장면 한 장면에서는 적어도 공학적 합리성이나마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과학적 지식이 장래 어떻게 진보.증대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공학적 합리성을 뛰어 넘어서 역사의 거시적 예지를 할 수가 없다는 것 뿐이다."


비코는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신의 시대는 야만의 시대로 인간이 야만인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자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이 개입한다. 영웅의 시대는 귀족의 시대로 인간이 자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인간들 중의 몇몇 뛰어난 인간들이 다스린다. 인간의 시대는 민주정의 시대로 이제 모든 인간들이 참여하여 스스로를 다스린다. 이러한 역사발전 단계를 상정하면서 비코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을 모형으로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비코의 역사 3단계론은 일종의 역사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어느 시대이고 이로부터 앞으로의 시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추측하는 것이다. 칼 포퍼는 이를 역사주의라고 부른다. 포퍼의 <<역사주의의 빈곤>>(지학사)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외에 역사철학에 대해 권할만한 책은 콜링우드의 <<역사의 인식>>(경문사), 월쉬의 <<역사철학>>(서광사)이다. 역사철학과 사관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콜링우드는 관념론적 역사론이고, 포퍼는 경험론적 역사론이다. 월쉬의 책은 역사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개설서이다.


어쨌든 포퍼는 역사의 일정한 법칙이 있고 그러한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역사주의로 규정하고 비판한다. 사회과학자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면 그만이지 예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포퍼의 인식론을 '비판적 합리주의'라 부르고 사회철학을 '점진적 사회공학'이라 한다. 포퍼에게 인간의 역사에는 정해진 목적이 없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그때그때 겪어가면서 수정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이것이 점진적 사회공학이다. 상당히 건강한 태도다.


나는 포퍼를 굉장히 좋아한다. 군대를 제대한 후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원서를 구해서 영어공부 삼아 번역한 적이 있다. 복학하기 전까지 그 짓만 했다. 읽으면서 포퍼에게 뿅 갔다. 내가 이렇게 포퍼에게 빠져든 데는 이유가 있다. 대학 신입생 때 감방에 갔다 온 선배들이 침 튀기며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데 별로 감동이 되지 않았다. 민족의 장래와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이성적 판단으로 검증되지 않는 것이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군대 다녀오고 포퍼를 읽었던 것이다. 늘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겠지만, 80년대 사회과학을 하던 이들이 각각의 개인에게 호소하는 합리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포퍼가 주장하는 개인주의적인 합리성과 비판적 합리주의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족의 장래니 장대한 역사니 떠들어 봤자 전체주의로 빠질 뿐이다.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진보/증대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장대한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포퍼의 핵심적인 논의가 되겠다. 지금까지 8번에 걸쳐서 철학의 기본개념들에 대해 강의했다. MP3 파일과 필사한 것을 중심으로 올해가 가기 전에 복습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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