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 23 «고백록confessiones» 읽기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2012.7 강의
21강: 삼위일체와 신화(神化, theosis, deification), 헬레니즘적 기독교의 가톨릭으로의 전개, Augustinus의 기본 사상
22강: «고백록confessiones»의 구조와 성격
23강: «고백록confessiones» 읽기
24강: 안셀무스, 아벨라르두스, 베르나르두스

 



20120720 23강: «고백록confessiones» 읽기


* 1권 1장 1절
- 1권1장1절이 고백록 전체의 내용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중세철학 전체, 가톡릭 교회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오, 주님, 당신은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을 받으실 만합니다. 당신의 능력은 심히 크시고 당신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Magnus es, Domine, et laudabilis valde (마그누스 에스, 도미네, 라우다빌리스 발데.)
위대하시도다, 주님, 그리고 당신은  크게 찬양받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magna virtus tua, et sapientiae tuae non est numerus.
(virtus 능력, sapientiae 지혜)
>> 이 두 개의 문장을 증명하려는 것이 이 책 전체의 내용, 주제

그러기에 당신의 피조물의 한 부분인 인간이 당신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과 스스로 지은 죄의 증거와 당신의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는 그 증거를 몸에 지닌 채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피조물의 한 부분인 이 인간은 당신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을 찬양하고 즐기게 하십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ad te)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in te)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주석1) 이 짧은 문장은 고백록의 전사상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의 전사상을 대표하는 문구라고 볼수 있다. 여기에서 "당신을 향해서"(ad te)란 표현은 인간의 본래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나님에게 등을 들리는 a te 혹은 abs te(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분리)이다. 회심이란 abs te의 삶에서 ad te로 전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의 순례는 마지막으로 "당신 안에서"(in te) 안식하는 것이다.
>> 신학적 테제. "찬양하고 즐기게 하고 안식하고.." 신학적 술어들.

오, 주여, 나에게 지혜를 주시어 당신을 불러 아뢰는 것이 먼저인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찬양함이 먼저인지, 혹은 당신을 아는 것이 먼저인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불러 아뢰는 것이 먼저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소서. 
>> 철학적 테제. 

그러나 당신을 모르고서야 누가 당신을 부르겠습니까? 당신을 알지 못하고 부르는 자는 사실 당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아닌 딴 것을 부르는 것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가 당신을 부름은 당신을 알게 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어떻게 사람들이 당신을 부르며 설교하는 자 없이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 철학적 역설. 신에 대한 이성적 탐구. 

이제 주를 찾는 자가 주를 찬양하리니 찾는자마다 주를 만날 수 있을 것이요, 만나는 자가 주를 찬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여, 이제 내가 주님을 찾고 불러 아뢰옵니다. 당신의 아들의 인성(人性)과 당신의 설교자의 사역을 통해서 나에게 불어넣어 주신 내 믿음이 당신을 불러 아뢰옵니다.
>> 미션 테제(선교적 테제). 설교자 = 선교자, 사도 바울을 가리킴.

* 1권 6장 7절
오, 하나님, 모든 축복(선)은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며, 나의 구원도 모두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옵니다. 물론 이것은 훨씬 후에 당신이 나의 안과 밖에서 베풀어 주신 은혜로 나에게 말씀하실 때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유아기 때는 다만 젖을 빨기와 배부르면 자고, 불편하면 우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 고백록 구조에서 "신의 사랑 속에 있으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서술하는 부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부분

* 2권 2장 2절
그러나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 = 나는 사랑하기를 사랑하고(3권1장1절)
>> amor와 dilectio의 구별이 필요. 여기서의 사랑은 amor
>> 고백록은 amor에서 metanoia를 거쳐 dilectio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밝은 우정의 길, 즉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우정의 한도(사랑의 질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진흙 투성인 육체의 정욕과 사춘기의 열정적인 상상력이 안개같이 일어나 나의 마음을 흐리게 했고 어둡게 했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 순순한 사랑이고 무엇이 추잡한 정욕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 순순한 사랑 = serenitas dilectionis
      육체의 정욕 = concupiscentia(콘쿠피스켄치아)
      amor(정욕), dilectionis, libido(리비도, 의식의 저변에 놓여 있는 욕구)
      conatus(코나투스, 충동, impulse )
      libido는 욕구의 덩어리. 스칼라. 이것이 의식의 표층에 올라오면 concupiscentia, 즉 육욕.
      concupiscentia라는 단어에는 원죄를 짋어진 인간, 인간의 삶의 필연적인 불가피성이 들어가 있는 술어. 
      amor는 육욕보다 조금 더 올라가 있는 상태. 육욕과도 관계가 있으며, dilectio로 올라가려는 상태. 
      정욕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향한 인간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함.

* 13권 9장 10절
나에게서도 나의 무게는 나의 사랑입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든지 간에 나는 사랑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 나의 무게 = 나의 본질. 나의 사랑= amor. dilectio로 향해 간다.

* 2권 2장 4절
당신의 집의 기쁨을 떠나 내가 얼마나 멀리 가서 귀양살이를 했었습니까? 그때 맹렬한 정욕이 나를 가장 강하게 지배하고 있어서 나는 당신의 법을 떠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 자신을 그 지배에 맡겨 버렸던 것입니다.
>> 맹렬한 정욕 = libido

* 3권 1장 1절
나는 사랑하기를 사랑하고 올가미가 없는 평탄한 길과 안전한 길을 미워하면서 사랑의 대상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 amor

* 3권 3장 6절
그때에 내가 고상하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추구했던 학문은 결국 법정투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두각을 나타내고자 원했는데 내가 교활하면 할수록 나는 더 유명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인간의 맹정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맹점을 자랑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쯤 되어서 나는 이미 우리 수사학 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몹시 좋아 뽐내며 교만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 3장은 신에게서 멀어지는 계기에 대해 서술
>> studia(학문) honest(고상한,명예로운) = 고상한 학문

* 3권 4장 7절
특히 이 책은 철학으로의 권유를 기록한 것으로서 사람들은 그 책을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이때까지 품어왔던 나의 모든 헛된 희망은 돌연 나에게 하찮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나의 마음은 이제 불멸의 지헤를 추구하려는 욕구로 가득 차 나는 당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나의 하나님, 그때 나는 땅에 속한 것에서부터 당신에게로 나아가고자 얼마나 열렬히 열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당신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진실로 당신에게는 지혜가 있사옵니다. 그 지혜를 사랑함을 그리스어로는 철학(Philosophia)이라고 일컬었는데, 그 책은 이런 사랑으로 나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 수사학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는 과정을 서술. 서술하는 것 자체가 더 나은 진리로 올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 3권 6장 10절
그들의 입은 당신의 이름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의 위로자이시요 보혜사이신 성령의 이름이 뒤섞인 말들로 재잘거리는 악마의 덫이었습니다.
그들은 허위를 말하고 있었으나 참으로 진리 자체가 되신 당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당신의 피조물인 세상의 원소들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것들이 당신인줄 알았기에 받아 먹고 있었습니다.
>> 마니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철저히 따르는 종교. 
>> 신에게서 멀어지는 계기,  3가지. amor, rhetoric, 마니교

* 5권 7장 12절
나는 파우스투스가 학식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무식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되자 그에 대한 나의 실망은 대단히 컸습니다.

* 5권 7장 13절
이리하여 마니교의 교리를 연구하려던 나의 열심은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그렇듯 유명한 파우스투스가 나를 번민케 했던 여러 문제에 대하여 대답을 못해 줄 때 그 교파의 다른 교사들에 대한 나의 실망은 더욱 컸던 것입니다.

* 6권 4장 6절
내가 또한 기뻤던 것은 구약성서의 율법과 예언서를 내 앞에 놓고 읽을 때 이전에 하듯이 읽지 않고 새로운 눈으로 읽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내가 그것을 대할 때 - 당신의 성도들이 사실은 그렇게(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상정하여 - 불합리한 책이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나는 암브로시우스가 교인들에게 하는 그의 설교에서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는 성서의 본문을 성서 해석의 규범으로 삼아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 "새로운 눈으로 읽게 되었다." = 본문의 뜻을 합리적으로 읽는 것이 아닌 영적으로 해석하여 읽는다.
      파우스투스에게 실망하고 암브로시우스에게서 새로운 눈을 얻었다. 회심에 있어서 지적으로 중요한 계기.
      암브로시우스는 로마시대의 최고의 지식인.

* 7권 20장 26절
나는 그때 플라톤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비물질적인(영적)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나는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진리를 창조된 것들을 통하여 알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 영적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 플라톤의 누스(nous), 플로티누스의 체계를 받아들임.
      창조된 것들을 통하여 알게 됨 - 플로티누스에게서 나타난 자연신학에 대한 것.

* 7권 21장 27절
그래서 나는 열심히 당신의 영으로 감동된 책, 특히 사도 바울의 책을 붙들었습니다. 나는 그때 생각하기를 바울은 자기 모순에 빠진 듯하고 그가 가르치는 글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의심은 사라지고 순수하게 부르짖는 말씀이 하나의 형태로 나에게 나타나서 나는 즐거움과 두려운 마음으로 성서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내가 발견한 것은 플라톤주의자들의 책에서 읽은 모든 진리가 이 성서에서는 당신의 은혜에 대한 찬양과 함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당신의 은혜에 대한 찬양 - 플라톤주의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던 점. 차가운 앎은 구원을 주지 못한다.

* 8권 7장 16절
오, 주님, 그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당신은 나를 나 자신으로 돌이켜 자기 성찰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자신을 살피기 싫어서, 이때까지 내 등 뒤에 두었던 나를 당신은 잡아떼어 내 얼굴 앞에 갖다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보기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얽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내 죄를 보고 미워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내 죄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못본 체하고 억눌러 망각하려 했던 것입니다.
>> 메타노이아의 직전 단계에서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이 텍스트를 참으로 실존척학, 정신철학적으로 만들어 주는 부분
     신을 향하는 단계에서 꼭 거쳐야 하는 단계는 "내가 나를 향하여 서고" 자기 성찰을 하도록 하는 것.
     나를 향한다 = 향자적(向自的), 나를 대면한다 = 대자적(對自的), 이 둘을 묶어서 자각적 (自覺的) = 자기성찰

* 8권 12장 29절
나는 바로 알리피우스가 있는 곳으로 급히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곳을 일어나 떠났을 때 거기에다 사도의 책을 놔두고 온 까닭입니다. 나는 그 책을 집어들자마자 펴서 내 첫눈에 들어 온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 구절의 내용은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마라."(롬:13:13-14)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읽고 싶지도 않고 또한 더 읽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구절을 읽은 후 즉시 확실성의 빛이 내 마음에 들어와(infusa cordi meo) 의심의 모든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냈습니다.
>> 옷 입는다 = 그리스도화 한다는 것.
>> 확실성의 빛 luce sccuritatis (룩스 세크로타티스, 확실한 빛) sccuritatis 는 확고한 믿음으로서의 확심.

* 10권 34장 50절
내가 지금 어느 상태에 있는지 보시옵소서. 자기 마음에 선한 마음을 품고 선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으며 그들로 하여금 나와 함께 나를 위해 울어 주게 해주소서. 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 자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할 것입니다. 오, 나의 주 하나님, 나를 굽어보시고 내게 귀를 기울이소서. 나를 불쌍히 보시고 치료해 주소서. 당신이 아시다시피 나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되었으니 이것이 내가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하나의 병이옵니다.
>> "내 자신에게 문제가 되었으니" 타자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성찰을 했으니 나를 구원해 달라는 것. 하나님 안에 들어 간 것이 아님.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원한 고해. 

* 기타
3권 1장 1절 
Veni carthaginem.(베니 카르타기넴)
나는 드디어 카르타고에 왔습니다 = 나는 방탕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8권 7장 16절
오, 주님, 그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당신은 나를 나 자신으로 돌이켜 자기 성찰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자신을 살피기 싫어서 이때까지 내 등 뒤에 놓아두었던 나를 당신은 잡아떼어 내 얼굴 앞에 갖다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보기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얽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Tu autem, Domine, inter verba ejus retorquebas me ad meipsum, auferens me a dorso meo ubi me posueram, dum nollem me attendere; et constituebas me ante faciem meam, ut viderem quam turpis essem, quam distortus et sordidus, maculosus et ulcerosus.

But while he spoke, You, my Lord, turned me around toward myself, so that I no longer turned back on myself where I had placed myself while I was not willing to observe myself. And you showed me my face so that I might see how ugly I was, how disfigured and dirty, blemished and ulcer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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