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7 발칸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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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20분 | 발칸의 역사 1 [원문보기]

Posted on 2016년 9월 26일

마크 마조워(지음),  <<발칸의 역사>> , 을유문화사, 2014.

원제: Mark Mazower, The Balkans: A Short History (2000)


발칸사 권위자가 쓴 발칸에 관한 입문서의 성격을 가진 역사책


21세기 세계는 ‘근대 국민 국가’(Modern Nation State) 체제 — 영토, 주민, 주권의 세 요소와 국제사회의 인정이 요구됨 — 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유럽이 근대 국민 국가 체제로 이행한 이후의 사태는 칼 슈미트의 <<땅과 바다>>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등은 근대 국민 국가를 성립한 다음 해외 식민지 쟁탈에 나섬으로써 국민제국으로 전개. 세계제국을 이룩한 것은 영제국

남동부유럽, 특히 발칸 지역은 근대 국민 국가 체제 성립이 뒤늦게 진행되어, 유럽대전(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된다.

남동부유럽은 종교, 민족, 영토 등의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다.

 





이번 주부터는 발칸사의 권위자인 마크 마조워의 《발칸의 역사》를 읽는다. 지난주까지는 《땅과 바다》를 읽었는데 이를 읽고 나서 《발칸의 역사》를 읽는 이유가 궁금할 수 있는데  《발칸의 역사》라는 이 책이 바로 《땅과 바다》와 이어지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점에서 그러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한번 생각해보면 우리는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헌법에 따르면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한다. 한반도라고 하면 북한 지역도 포함되는데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는 않고, 북한도 유엔의 회원국이니까 북한지역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국제법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는 사실 헌법의 규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영토와 주민이 있고, 국가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 영토, 주민, 주권이 근대국민국가의 구성요소이다. 사실 그것만 있어서는 안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근대국민국가가 하나의 국제법적 행위의 주체가 되어서 이루어진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분쟁지역이다 일컬어지는 사실 지역은 영토, 주권, 주민이라는 근대국민국가 체제가 완전히 정착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국민국가이전의 제국시대에 만들어졌던 어떤 체제 속에서 근대국민국가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분쟁지역에 관해서는 《발칸의 역사》 다음에 읽으려고 하는 팀 마샬의 《지리의 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근대국민국가 체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분쟁지역에 대해서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민족이 같으면 그 민족들이 일정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 지역의 주권을 인정해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국가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슬람국가라고 하는 것도 영토도 주민도 있는데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고 자기들은 국가라고 하는데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 그런데 근대국민국가 체제는 언제부터 형성되었는가. 유럽의 경우에는 중세시대에서 근대국민국가로 이행한 시기가 지난 번까지 읽었던 《땅과 바다》에 나온 것처럼 16세기 이후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618-1648년의 30년 전쟁이 있다.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전쟁이 끝났는데 대체로 봐서 종교전쟁에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근대국민국가의 기틀이 되는 체제를 만들었다. 그런데 유럽 땅 전체가 중세 체제,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중 제국 체제가 완전히 와해되었던 것은 아니다. 《땅과 바다》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국가를 살펴보면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이런 나라들이, 즉 오늘날 서유럽,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나라들이 근대국민국가가 되었고, 남동부 유럽 특히 발칸 지역은 국가 체제로 성립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땅과 바다》에서 주로 다룬 나라들이 중세에서 근대국민국가로 가장 먼저 이행한 나라라고 할 수 있고, 그런 나라는 근대국민국가를 성립시키고 해외식민지를 점령하러 나가면서 국민제국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남동부 유럽, 특히 발칸 지역은 오스만 제국 지배 아래 있었다. 자세히는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일찌감치 국민국가가가 된 서유럽 나라들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읽고자 하는 《발칸의 역사》에서 발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아주 오랜된 역사를 따져묻지 말고 우선 당장 발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역사만 살펴보면 첫째 이 지역은 근대국민국가 성립이 늦었다. 다시말해서 이들 나라보다도 먼저 근대국민국가가 되었던 서유럽의 영국과 프랑스. 아직 근대국민국가로 체제로 전개되지는 않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 그리고 기존의 지배세력이었던 오스만 제국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유럽대전 이후로 본격적으로 근대국민국가로 전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특징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남동부 유럽은 왜 이렇게 늦은 것인가. 지리적인 상황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30년 전쟁과 같은 종교전쟁이 없었고, 종교와 민족, 영토 이런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혼합되어있는 탓에 국가 성립이 늦었던 것.


이것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생각해보면 엄밀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조선과는 연속성이 없다. 그런데 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어받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국민국가의 성립에 대해서 남동부 유럽에 비하면 상당히 수월하게 근대국민국가로 갔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봐서 민족적으로 단일성을 이루고 있고, 물론 이 부분을 강조해서는 안된다. 대체로 봐서 종교적 다양성도 없고, 영토도 한정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또한 조선이라는 나라는 오스만 제국 지배 아래 있던 발칸 지역과는 달리 중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은 것은 아니다. 이른바 책봉체제 있어서 책봉을 받기는 해야 했지만 완전한 식민지는 아니었다. 고려시대 몽골지배와 같은 식민지 지배는 아니었다. 거의 완전한 의미에서 독립국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단일한 하나의 체제 아래서 비슷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대표적인 예로 30년전쟁 시기인 1618-1648년을 조선과 생각해보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이 시기에 종교가 달라서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특히 완고한 고리타분한 고질적인 의미에서의 유교 지배체제가 완성되어있던 시기. 1800년에 정조가 사망했고 이때가 레짐으로서 유교 체제가 끝난 해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1600년대 조선은 아주 강력한 유교통치국가였다. 굳이 근대국민국가라고 하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체제를 좀 오랫동안 익숙하게 경험해왔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남동부 유럽은 그리스 정교회, 불가리아 정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가 다 달랐고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이슬람교까지 있었다. 또 오스만제국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관대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지배에 수긍하면서 살아가기도 했다. 게다가 불가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불가리아어를 쓰는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상층 지식인들은 그리스어를 쓰고 하층 농민들은 불가리아어를 쓰고 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루마니아어를 썼을 테고 복잡하다. 따라서 이 사람들은 한가지 요소만 가지고 근대국민국가를 성립시킬 수 있는 주민의 동일성, 일체성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물론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과 같은 나라들도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남동부 유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그리고 유럽은 아직도 그런 것들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에 무슬림여성 수용복을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이 논란이 되었는데 이런 것도 크게 보면 프랑스 공화국이 프랑스혁명 이후로 계속해서 지탱해온 근대국민국가 이념에 계속해서 부딪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반면 미합중국은 오스만제국의 분위기가 있다. 국교가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선서할 때 성서에 손을 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관습일 뿐이고, 이슬람교도들에 대해서 뭘 강요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리버럴 스테이트, 최소한의 것만 지킨다면 괜찮다는 것.


남동부 유럽은 언어의 통일성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러 민족들이 얽혀 살고 있었고, 종교도 다양하고, 영토도 외세의 지배가 복잡하게 얽혀 들어왔기 때문에 그 아래서 남동부 유럽은 정체성을 형성하고 근대국민국가 성립이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여러 사태들의 그 근원이 어디있는가. 바로 근대국민국가 체제를 성립시키면서부터 있다. 그런데 근대국민국가 체제가 어느 날 갑자기 전세계에 동시에 퍼진 것은 아니다. 역사라는 것이 동시에 발전되는 것은 아니다. 불균등하게 발전하고 여기에서 일어난 일이 저기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는데 이 책이 좋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칼 슈미트의 《땅과 바다》에 나온 사태들에서 설명들 중 유럽의 역사에서 사실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 바로 발칸의 역사를 이룬다. 


오늘은 첫 시간이라 《발칸의 역사》를 왜 읽는가를 이야기했고 그 다음에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 잠시 차례를 보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다.


프롤로그 : 명칭들

1. 발칸의 영토와 주민들

2. 국가 성립 이전의 발칸

3. 동방문제

4. 국가 건설

에필로그 : 폭력에 관해


1장이 발칸의 영토와 주민들이고, 2장이 근대국민국가 이전의 발칸에 대한 것이다. 3장이 동방문제라고 되어있는데 유럽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발칸 지역은 근대국민국가로 나아가는 출구를 열기는 했지만 러시아가 이 지역을 차지하려 했고, 그런 러시아를 저지하려는 유럽의 여러 강대국들인 일찌감치 근대국민국가가 된 나라들도 발칸을 지배하려 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 두려고 했다. 그런 복잡한 사태를 총칭해서 동방문제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오스만제국 와해와 민족주의 분출이라는 이 같은 예측불허의 일들을 국제적으로 처리해가는 과정이 이른바 역사에서 말하는 동방문제" 라고 말한다. 그 다음 4장이 1차 세계대전, 유럽대전 이후에 본격화되기 시작한 국가건설에 대한 얘기이다.


145 오스만제국 와해와 민족주의 분출이라는 이 같은 예측불허의 일들을 국제적으로 처리해가는 과정이 이른바 역사에서 말하는 동방문제다.


이 책은 260페이지 정도 되는 두껍지 않은 책인데 읽을 때 골치가 아프다. 마크 마조어가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을 묶고 있는 상위의 카테고리/범주들에 대해서는 잘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을 찾아내면서 읽지 않으면 책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다 할 때는 히스토리컬 팩트들을 읽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어떤 어떤 어떤 범주 아래 놓여있는가를 머릿속에 정리하며 읽어야 하는데 정리해주지 않아서 골치가 아픈 것.






책읽기 20분 | 발칸의 역사 2 [원문보기]

Posted on 2016년 10월 3일

프롤로그: 명칭들


.1. 발칸지역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구분

– “유럽의 터키”: 오스만 제국 지배 시기, 여러 민족과 다양한 종파들이 느슨하게 공존하던 시기

– “발칸”이라 불리게 되는 시기: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끝남에 따라 민족적·종교적 대립이 격화되던 시기, ‘발칸화’(Balkanization)가 진행

– 공산주의 체제에 의한 봉합과 냉전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냉전체제 붕괴 이후 다시 발칸화 진행


.2. 대립의 역사와 원인

–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몰이해와 “다채로움”(트로츠키) 또는 이중성

– 국제정치적 대립과 민족적·종교적 대립


.3. 발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오스만 제국 지배시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20세기 이후 발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동방문제”)





지난 시간까지는 발칸의 역사를 왜 읽는가에 관해서 두서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오늘은 프롤로그를 읽겠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굉장히 난삽하다. 역사책이라고 하면 히스토리컬 팩트들을 설명하고 그것에 이렇게 저렇게 이어 붙여서 하나의 상위 개념을 만들어 내고 집약을 한 다음에 다시 또 역사적 사실로 나아가고 이렇게 해야 읽는 사람이 편한데 마크 마조워는 주욱 쓴다. 그래서 여백에 메모를 하고 그 다음에 다시 읽어보고 좌우 여백에 메모를 해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끊어지는 것인지 알아내기가 어렵다. 프롤로그의 부제가 '명칭들'인데 명칭들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불렸는가, 발칸 유럽의 터키라고 불리기도 하다가 어떻게 불렸는가에 대한 것. 15페이지부터 40페이지까지 이 정도되는 범위를 나눠서 설명해 보겠다.


먼저 발칸이라고 하면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가를 생각해보면 위로는 북쪽 경계인 도나우강을 생각해야 한다. 발칸 산맥이 있다.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닌데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에 걸쳐있는 산맥이니 정확하게 말하면 발칸산맥 이남지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는데 좀더 넓게 보면 도나우강 이남 지역, 이렇게 말하면 루마니아도 포함된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북쪽으로 하고 그 위로는 오늘날의 몰도바, 우크라이나가 있고 그리고 그 아래는 터키의 유럽 영토 그러니까 이스탄불이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 불가리아, 그리스,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유고슬라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리고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포함하는게 200년 경의 발칸반도를 가리킨다. 딱 봐도 어중간한 지역, 중간지역, 유럽도 아니고 남동부 유럽이라고 하기도 하고 발칸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발칸이라고 하면 발칸 반도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보통 발칸이라고 하면 루마니아를 제외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루마니아도 포함해서 얘기한다. 그래서 북쪽 경계를 도나우강으로 잡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발칸은 본래 산맥 이름인데 새롭게 생겨난 용어. 원래는 "발칸산맥도 유럽 남동부 반도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착각해, 발칸을 그 지역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확대 사용하기 시작"한 것. 그런데 "발칸보다 한층 보편화된 명칭인 '유럽의 터키'라는 말로 사용"했다. 이 말을 사용한 이유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 그래서 발칸이라는 말은 19세기까지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다가 19세기 이후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래서 1917년 동방문제를 다룬 역사책에는 이제 "이전 세기의 지리학자들이 '유럽의 터키'라 부른 지역이, 그 동안에 일어난 정치적 변화로 새로운 이름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지역도 '발칸 반도'나 혹은 간단히 '발칸'이라 불리게 되었다"라는 말을 쓰게 된다. 따라서 대체로 봐서 20세기를 전후하면서 발칸이라고 하는 이 지리적 용어가 군사 외교적 변화로 인해서 일상 용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전에는 유럽의 터키라 부르던 지역에 군사 외교적 변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특히나 1912년 제1차 발칸전쟁으로 인해서 오스만이 이 지역을 지배하던 것이 끝났다. 그래서 유럽의 터키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그러면서 새로운 용어로서 발칸이라는 용어가 생기가 되었다. 


16 '발칸'은 본래 산맥 이름으로, 고전 교육을 받은 서양인들에게는 중부유럽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갈 때 거쳐야 하는 고대의 헤무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6 이 무렵에는 이미 몇몇 지리학자가 피레네산맥이 이베리아 반도의 산마루에서 북남 경계를 이루어 주듯, 발칸산맥도 유럽 남동부 반도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착각해, 발칸을 그 지역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확대 사용하기 시작했다.


17 발칸보다 한층 보편화된 명칭인 '유럽의 터키'라는 말로 사용했고, 그 결과 '발칸'이란 말은 19세기까지도 아주 희귀한 용어로 남아 있었다.


19 그리하여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 ─ 이 전쟁으로 유럽에서 오스만 지배는 끝났다 ─ 이 일어날 무렵 발칸이라는 용어는 이제 통용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19 그로부터 반세기도 채 지나기 전에 이 새로운 지리적 용어는 주로 급작스러운 군사, 외교적 변화로 인해 일상용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19 1917년 동방문제를 다룬 역사책에는 이제 "이전 세기의 지리학자들이 '유럽의 터키'라 부른 지역이, 그 동안에 일어난 정치적 변화로 새로운 이름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지역도 '발칸 반도'나 혹은 간단히 '발칸'이라 불리게 되었다"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그러면 제1차 발칸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끝나면서 발칸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그러면 유럽의 터키가 아닌 발칸이라는 말은 어떤 함축을 가지게 되었나. "폭력, 야만, 원시성과 같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그러니까 발칸이라는 말은 꼭 이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국제 정치학적인 용어로 정착되어서 특정한 지역이 '발칸화' 되었다고도 쓴다. '발칸화'는 특히 원래 이 지역에는 원래 다양한 종교, 여러 종파가 얽혀서 살았는데 그것을 느슨하게 봉합해서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유럽의 터키 시절의 얘기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제1차 발칸전쟁 이후에 이 지역의 지배를 끝내고 물러서면서부터 이 민족과 종파가 서로 대립하고 내분에 빠져들면서 엄청난 양의 폭력과 야만성, 원시성이 등장했다는 것. 그런 것을 발칸화다. 원래는 민족이나 이념, 또는 종파에 관계없이 살던 사람들이 하나의 민족국가, 또는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를 성립시키면서 항쟁을 벌이고 내분, 내란이 일어나고 그런 것들을 '발칸화'되었다고 쓰기 시작한 것. 그런 다음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냉정시대가 되었다. 이때부터 이 지역에는 이른바 공사주의 블록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유럽의 터키였다가 발칸이었다가 냉전시대의 남동부 유럽은 공산주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된 이후에는 인종적 다양성과 오랜 기간 계속되어온 종교, 문화적 갈등이 다시 폭발해서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발칸화가 또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일단락. 이 책으로 치면 15페이지부터 22페이지가 이 책 전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요약이다.


19 이전 명칭들과는 달리 발칸에는 폭력, 야만, 원시성과 같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21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이 같은 진부한 표현이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냉전기에 발칸은 서구인들의 의식 속에서 사라졌고, 남동부 유럽에는 철의 장막이 드리워져 그리스와 인근 공산국가들을 둘로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22 유고슬라비아 붕괴로 격화된 투쟁은 대중의 마음을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집단 폭력에 대한 책임은 티토와 공산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종적 다양성과 오랜 기간 지속한 종교, 문화적 갈등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그러면 유럽의 터키 시절에는 민족과 종파의 대립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아래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느슨하게 서로 공존하고 있던 시기에서 발칸화되었고, 그런 다음에 냉전시대에는 이념이 다시 이것을 봉합하고 있다가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인종적 다양성, 사실 민족적 다양성이 좋겠다, 오랜 기간 계속되어온 갈등이 터지면서 다시 발칸화가 된 것. 그런 다음 이 지역에서 일어난 대립들의 원인,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23페이지부터다. 대립의 역사 첫 번째가 기독교과 이슬람교 간의 몰이해로 생겨간 깊은 간극이다. 이것은 "유럽의 영토와 정신을 1000년 이상이나 복잡한 투쟁 속에 몰아넣은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몰이해로 생겨난 깊은 간극이다." 발칸 지역은 무엇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대립인데 대립의 원인에 대한, 또는 대립의 역사에 대한 통찰이 되어있는 게 23페이지부터이다. 무슬림들이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은 자기 영토 안에 기독교를 관용했으나 기독교도들은 무슬림을 배제하면서부터 대립이 시작한 것. 23부터 27페이지 얘기. 발칸이라고 하는 지역은 기본적으로 밑바닥에 놓여있는 대립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이고, 두 번째가 민족적 다양성. 레온 트로츠키는 제1차 발칸 전쟁이 일어나기 전야, 부다페스트에서 베오그라드로 철도 여행을 하던 중, 자신이 탄 열차의 차창 밖 풍경을 내다보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는 얘기가 있다. "아 동방! 동방이로군! 이 다양한 모습, 의상, 인종, 문화적 차이가 혼합해 만들어 내는 다채로움이라니!" 발칸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인데 사실은 내면에 있는 두 번째 것은 이중적인 것. 같은 유럽이지만 실체는 동방적이고 현대적인 외양과 전통적 내용의 사회구조 이런 것들이 이 안에 들어있다. 발칸 지역의 다채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두 번째 대립의 원인이 되겠다. 다채로움이 잘 조화가 되면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립의 원인이 되면 정체성 싸움의 하나의 기치로서 높이 들려진다면 투쟁과 반목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23 유럽의 영토와 정신을 1000년 이상이나 복잡한 투쟁 속에 몰아넣은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몰이해로 생겨난 깊은 간극이다.


29 그 후 1세기 뒤 러시아의 한 저널리스트 ─ 훗날 레온 트로츠키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는 ─ 는 제1차 발칸 전쟁이 일어나기 전야, 부다페스트에서 베오그라드로 철도 여행을 하던 중, 자신이 탄 열차의 차창 밖 풍경을 내다보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아 동방! 동방이로군! 이 다양한 모습, 의상, 인종, 문화적 차이가 혼합해 만들어 내는 다채로움이라니!"


29 발칸의 도시들은 으레 동방적 실체는 뒤에 숨기고 겉모습만 유럽풍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것은 가령 철로는 유럽식이지만 마차로는 유럽식이 아니라는 것, 기술은 유럽식이지만 예배의식은 유럽식이 아니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회구조는 거의 언제나 외양은 현대적이고 내용은 전통적인 것으로 분리돼 있다.


그 다음에 정치적으로는 어떠한 국제법, 유럽 공법체계에서는 어떤 대립이 있었는가. 국제정치는 어떠했는가가 30페이지부터 나온다. 30페이지부터는 유럽의 체계 안에서 국제정치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고 유럽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유럽 공법체제 안에서의 여러 대립들이 1914년 유럽대전, 제1차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유럽대전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러면 발칸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용어 자체로 가지고도 나누어 볼 수 있고, 특히 핵심적으로 일어난 대립의 원인이 무엇인가, 일단 종교적 차이, 다채로움이라고 불리는 또는 이중성이라고 불리는 문화적, 사회적 차이가 있고,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보는 대립들이 있다. 발칸을 이해하는 것이 참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렇다면 이 지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게 이제 프롤로그의 마지막 부분이다. 35페이지부터 나온다. 마크 마조워의 말을 빌리면 "발칸을 좀더 순수하게 편견없이 이해하려면, 그 지역에 대한 태도는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의해서도 형성되지만, 그보다는 역시 유럽의 정체성과 문명의 발달에 관한 광범위한 글들에 의해 형성된 면이 많다." "역사학이 풀어야 할 기본 과제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한 시대를 유럽사에 어떻게 편입시키느냐 하는 문제인데" 첫째로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한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유럽의 터키 시절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그리고 발칸의 계승 국가들은 그 시기의 역사를 지워버리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오스만의 유럽지배는 암흑기다라는 관점을 가진다. 하지만 저자는 그게 오스만 제국은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대의 발칸 지역 국가들은 유럽의 터키 시절을 암흑기로 보고 그 이전으로 소급해서 자기네 역사를 끄집어 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은 오스만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어하고 그렇게 해서 유럽인이 되고 싶어한다. 이를테면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를 투르크족에 맞서 세르비아가 최후로 항전한 민족의 성지로 여기고 있다." 즉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맞선 것이 자기네들의 중요한 과거다. 자국사, 국사를 쓰려고 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렇게 국민국가중심주의라고 하는 편향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마크 마조워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유럽인이 되고자 했다는 것. 역사에서 제기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시대, 즉 유럽의 터키시기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이다. 그런데 만약에 암흑의 시기로 보지 않고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로 본 다해도 이렇게 오스만 제국 지배 시기를 파악하는 것은 만만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나 20세기 중반 이후 발칸 지역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문제들은 꼭 그런 과거와는 연결되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있다. 나중에 3장 동방문제를 읽을 때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겠다.


35 발칸을 좀더 순수하게 편견 없이 이해하려면, 그 지역에 대한 태도는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의해서도 형성되지만, 그보다는 역시 유럽의 정체성과 문명의 발달에 관한 광범위한 글들에 의해 형성된 면이 많다.


36 역사학이 풀어야 할 기본 과제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한 시대를 유럽사에 어떻게 편입시키느냐 하는 문제인데, 그에 대한 유럽 학자들의 태도는 늘 한결같았다. 


36 이 말은 곧, 오스만 지배로 발칸은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 유리된 채 새로운 암흑기에 접어드는데, 그 까닭은 "유럽사의 전 과정을 통해 유럽은 곧 기독교 왕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36 아놀드 토인비와 저명한 루마니아 역사가 니콜라이 이오르가는 정교회 비잔티움이라는 '보편적 국가'의 계승자가 사실상 오스만 제국이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37 발칸의 계승 국가들은 이 같은 논리에 따라 중세나 고전시대로 돌아가 자신들의 국가적 뿌리를 캐내려 하면서, 마치 오스만 통치기로부터 긍정적 교훈을 하나도 얻을 게 없다는 듯, 자국 역사가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그 시기를 지워버리라고 주문했다.


37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를 투르크족에 맞서 세르비아가 최후로 항전한 민족의 성지로 여기고 있다.


프롤로그에 나와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다시 한번 이 지역의 역사를 책의 목차를 가지고 살펴보면 우선 유럽의 터기 시대가 있었다. 그게 [1장 발칸의 영토와 주민들]을 지나서 [2장 국가 성립 이전의 발칸] 이때이다. 그런 다음 오스만 제국이 제1차 발칸전쟁으로 인해서 지배가 끝난 시점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발칸화가 진행되고 이때를 대립의 역사라고 한다면 [3장 동방문제]라고 불리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가 된다. 그런 다음 완전한 의미에서의 자주독립 국가는 아니지만 [4장 국가건설]의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보면 프롤로그에는 1장부터 4장의 얘기가 대체로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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