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공부하는 삶


공부하는 삶 - 10점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유유


저자 서문 정신을 규율하는 법

역자 서문 자신의 완성을 추구하는 공부

I 지성인의 소명

II 지성인의 덕목

III 삶의 구성

IV 공부를 위한 시간

V 공부의 영역

VI 공부하는 정신

VII 공부의 실전

VIII 생산적인 작업

IX 공부와 품성




지성인은 신성한 부름을 받는다

25 소명에 관해 말하는 것은 지적인 일에 인생을 바치려는 사람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완전히 자유로워서 공부에 전념 할 수도 있고, 소명을 받긴했으나 정신을 함양하고 정신에 깊이를 더하는 일을 삶의 부수적인 보상으로 여기고 기꺼이 나중으로 미룰 수도 있다.


  겉핥기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기에 "정신에 깊이를 더한다"고 표현했다. 모호한 읽기와 얼마되지 않는 산만한 글쓰기로는 소명을 달성 할 수 없다. 신이 내려 준 재능에 부합할 만큼 우리 자신을 완전히 계발하려면 통찰력과 꾸준한 방법론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소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확신을 가지고 걸어 갈 수 없는 길에 느닷없이 발을 내딛는다면 머지않아 환멸을 느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공부할 의무가 있다. 일찍부터 고된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도 정신을 초기의 무지 상태로 추락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지혜롭게 행동할 수 없다. 습득한 것을 별다른 노력 없이 유지하는 것과, 단순히 일시적인 시작점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토대 위에 지식을 견고하게 쌓아가는 것은 아주 다르다.


  이 두 가지 중 후자의 정신이 소명을 가진 사람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진지한 결의를 내포한다. 공부하는 삶은 금욕과의 무를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한다. 공부하는 삶은 보상을, 그것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공부하는 삶은 초기에 노력을 요하는데, 그것을 해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경기장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은 궁핍과 오랜 훈련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더러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끈기를 보여야 한다. 진리가 우리에게 드러나도록 하려면 진심으로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한다. 진리는 자신의 충복만을 섬긴다.


   이런 삶에 들어서려면 먼저 오랫동안 스스로를 시험해야 한다. 지적 소명은 다른 모든 소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본능과 능력에, 이성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종의 내적 충동에 새겨져 있다. 우리의 기질은 신체가 받아 들일 수 있는 화합물을 결정하는 화학적 특성과 같다. 소명은 요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명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이고, 우리의 제1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요컨대 소명을 들었다면 곧바로 신과 우리 자신에게 순종해야 한다.


  우리의 근본적인 성향 및 적성과 상관관계가 있다면, 우리의 선호는 탁월한 심판관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즐거움이 직능의 특징을 나타내고 사람들을 분류하는 데에 쓰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는 분명 즐거움도 소명을 드러낼 수 있다고 결론 내렸을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선호와 자연스러운 충동이, 신이 준 재능 그리고 신의 섭리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깊이 탐구하는 것뿐이다.


  지적 소명을 탐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완전한 모습을 깨닫는 데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아무도 경시할 수 없는 더욱 보편적인 것에도 관심을 쏟는다.


  당신이 빛을 운반하는 사람으로 지명된다면, 신께서 당신이 운반하기를 기대하는 그 어슴푸레한 빛이나 불꽃을 감추면서 가지마라.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가 가져오는 삶의 열매를 사랑하라. 공부에, 그리고 공부를 유익하게 쓰는 데에 당신이 가진 시간과 마음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바쳐라.


  한 가지 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길은 당신에게 해로운 길이 다. 당신이 걸어가기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부름을 거부함으로써 신과 형제들과 당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입증하지 마라.


  그 부름은 야망이나 어리석은 허영심이 아니라 이기적이지 않은 동기에 따라 당신이 지적인 삶에 들어서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솔한 사람만 이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치라는 꼬임에 넘어간다. 야망은 진리를 자기 아래에 둠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거스른다. 문학이나 철학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 ━ 진리를 훼손해 가면서, 진리와는 무관하게 ━ 삶과 죽음을 지배하는 물음, 신비로운 자연과 신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신성모독이 아닐까? 그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 특히 야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노력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한 노력은 눈에 띄게 사그라질 것이고, 그의 허영심은 공허한 만족에 의지할 것이다.


  또한 그 소명은 당신이 목표뿐 아니라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 역시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으로 소명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모호한 열망이 대중의 눈길을 지평선으로 돌려 놓는 바람에, 통풍이나 천식 환자가 만년설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득히 멀리 떨어진 것을 동경한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은 일반적인 욕구다. 그러나 그것은 비겁한 심장과 나약한 두뇌의 욕구다. 투덜거리는 요구에 곧바로 우주가 응답하는 경우는 없으며, 끈질기게 노력하지 않는데도, 공부하려고 켜 놓은 등불 아래로 신이 빛을 비추는 일은 없다.


  당신은 스스로의 소명에 따라 은총을 입는다. 진리가 명하는 것을 추구하라. 진리가 당신을 고무할 수 있도록, 진리 고유의 영역에 당신의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당신의 삶을 구성할 수 있도록 당신이 경험이 없음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도록 진리에 동의하라.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젊은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이 충고가 필요하다. '사이언스' science보다 의미가 넓은 라틴어 '스키엔티아' scientia는 원인들에 대한 앎을 말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규정하자면 스키엔티아는 원인들에 의한 창조물이다. 우리는 지식의 원인들을 알아야 하고, 그런 뒤에는 그 원인들을 제시해야 하며, 지붕을 얹는 순간까지 건축물의 토대에만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공부 초기의 자유로운 몇 년 동안 지성의 땅을 새롭게 가꾸고 씨를 뿌린다면 얼마나 눈부신 수확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다시 오지 않을 시기이므로 제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뿌리를 새롭게 내리기는 아주 어렵다. 미래는 언제나 과거의 상속자다. 제때에 해야 할 준비를 소홀히 하면 현실의 표피에 서 살아가야 한다. 지식이 어디에 쓸모 있을지를 생각하는 동안에도 한편으로는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소중한 시간과 힘, 지성의 활력과 이상을 애석하게 낭비하는가! 그들은 공부를 하지 않거나(그렇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공부를 하더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도 모른 채 형편없고 변덕스럽게 한다. 수강, 읽기, 학우 선택, 노동과 휴식, 고독과 활동, 일반 교양과 전공의 적절한 분배, 획득한 자료를 선택하고 활용하는 기술, 미래의 공부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게 해주는 중간 결과물, 터득하고 함양해야 하는 덕목, 공부하는 정신,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면밀히 하지 못할 것이고, 당연히 만족스럽게 이루지도 못할 것이다.


  가진 자원이 같다고 가정한다면, 이해하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과 아무렇게나 나아가는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크겠는가! '천재성이란 오랜 인내'라고 할 때 그 인내는 조직적이고 총명한 인내여야 한다. 어떤 공부를 해내는 데에 비범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균 정도의 자질만 있어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에 달려 있다. 정성을 들이며 착실히 일하는 노동자처럼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 노동자가 어딘가에 도달하는 동안 독창적인 천재는 대개 쓰라린 낙오자로 남는다.


   방금 말한 것은 누구에게나 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특히 스스로를 정신 노동에 바친다는 이유로 삶의 가장 작은 부분만을 본인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한다.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각자의 소명으로 성별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이 소명을 수행 할 수 없는 처지라면, 적은 시간에 집중해서 수행해야 한다. 지적인 일을 하는 이의 특별한 금욕주의와 영웅적 덕목이 그들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이 두 가지 자기 봉헌에 동의한다면 나는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신의 이름으로 진리를 알려줄 것이다.


  무엇을 생산하는 데에 천재성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완전한 자유는 훨씬 더 그러하다. 게다가 자유는 의무를 엄격히 지킨다면 피할 수 있을 위험에 빠지게 한다. 좁은 둑 사이에 갇힌 냇물은 맹렬히 흘러 갈 것이다. 가령 직업의 규율은 훌륭한 학교 같은 것이다. 여가 시간에 공부하면서 규율을 따른다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우리는 속박이 있을 때 더욱 집중 하고 시간의 가치를 배울 것이다. 우리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해야만 하는 노동을 끝낸 뒤, 이상에 집중하고 스스로 선택한 활동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에 안식이 될만한 것을 갈망할 것이다.


  새로운 노력을 하면서 과거에 기울인 노력의 보상을 발견하는 사람, 구두쇠가 자신의 저축을 높이 평가하듯이 과거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이상에 열정적으로 헌신한다. 그는 자신을 바침으로써 성스러워지며 그 목표에서 어긋나지 않게 된다. 설령 느릿느릿 가는 듯이 보이더라도 그는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느리지만 꾸준히 걸음을 옮기는 거북이처럼 그는 빈둥거리지 않고 인내하며 우직하게 걸어가면서 재빠른 몸놀림으로 부러움을 사던 나태한 토끼를 몇 년 내에 앞지를 것이다.


  이것은 고립된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지적 자원도 없고 자극을 주는 사회와도 동떨어진 채 작은 촌구석에 묻혀서 썩어가는 처지를 한탄하고, 훌륭한 도서관과 탁월한 강의,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대중과 격리되어 의지할 것이라곤 자기 자신 밖에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그렇더라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불리할지라도 자신을 지킨다는 것에 만족하라. 대도시에 살면서 기회를 남용하는 머리가 꽉 찬 사람보다는 가슴에 열정을 품은 사람이 무언가를 성취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 경우에도 힘은 역경에서 솟아난다. 가파른 산을 지날 때 정신을 집중하고 긴장하는 법이다. 평탄한 길을 걸으면 마음이 풀어지고, 무절제하게 늘어져 있으면 머지않아 파멸로 치닫는다.


  가장 소중한 것은 의지, 깊게 뿌리박은 의지다. 누군가가 되고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의지다. 지금이 순간에도 고유한 이상을 지향하는 그 누군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지다. 그 밖에 다른 모든 것은 언제나 부차적이다. 어디에나 책이 있지만 그 중 필요한 책은 소수다. 사회와 자극은 자신의 고독한 정신 안에서도 발견 할 수 있다. 위대한 것은 그 정신 안에 있고 그것을 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며, 열정적으로 사유하는 이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재촉한다. 강의에 관해서 말하자면, 운 좋게 강의라는 도움을 받는다 해도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강의를 충실히 받아들이지 않거나 잘못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대중에 관해 말하자면, 때로는 대중이 자극을 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신을 방해하고 주의를 흐트러뜨린다. 거리에서 몇 푼 주우려다가는 자신을 망치고 말 것이다. 이런 것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열정적인 고독이다. 그 고독 안에서는 하나의 씨앗이 백 개의 낱알을 맺고, 충만한 태양 빛이 모든 땅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공부하러 파리로 가는 길에 멀리 그 대도시가 보이자 동행하던 수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여, 나는 파리에서 크리소스토무스의 「마태오의 복음서」 강해에 전념하겠네." 누군가 그렇게 느낄 때, 그가 어디에 있고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신의 증표가 찍힌 사람, 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신이 우리를 주관하므로 그가 할 일은 인내하고 삶을 믿는 것뿐이다.


  이 언어를 이해하고 정신의 영웅들로부터 은밀히 부름을 받지만 필요한 수단이 없음을 두려워하는 이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하루에 두 시간을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가? 그 두 시간을 온전히 열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신의 왕국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 되어 이 책이 바라는 대로 성배를 들이켜 그 강렬하고 씁쓸한 맛을 음미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다면 자신감을 가져라. 아니, 고요한 확실성 안에서 편히 쉬어라.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을 해야 할 경우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혼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고도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당신이 혼자라면 더욱더 고귀한 목적에 전념할 것이 요구될 것이다.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어떤 소명을 따랐다. 나는 많은 이들이 지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매일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단언했다. 제한된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라. 갈증을 씻어주는 동시에 다시 목마르게 하는 샘에 매일 매일을 쏟아부어라.


  인간이 쌓아온 지혜를 영원히 보존하는 일, 시대의 유산을 모으는 일, 오늘날을 위해 정신의 규칙을 체계화하는 일, 실재와 원인을 발견하는 일, 사람들의 방황하는 눈길을 제1원인으로 향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지고한 목적으로 향하게 하는 일, 필요하다면 꺼져가는 불길을 되살리는 일, 진리와 선을 선전하는 일에 소박하게나마 동참하고 싶은가? 그것이 당신을 위해 남겨진 몫이다. 분명 그것은 작은 희생을 추가로 감수할 만큼 가치있는 일이다. 열정적으로 꾸준히 추구해볼 만한 일이다.


  그라트리 신부가 '살아있는 논리'라고 부른 것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일, 다시 말해 우리의 정신과 인간 세계를 고양하는 일, 이것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끈기있게 실천한다면 놀라운 성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가꾸고 성장하는 자, 숭고한 선물의 수혜자가 될 것이며, 언젠가 고귀한 정신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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