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황금가지 - 10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한겨레출판


제1권 숲의 왕

제2권 신의 살해

제3권 속죄양

4권 황금가지






옥서퍼드판 서문

28 어떤 사회의 신학은 사회 발전의 과거 시기를 대표한다. 인간이 진보할수록 신앙과 관습이 일치하지 않게 되며, 그러면 개혁가들이 출현하여 당대의 관습에 맞게 신앙을 수정함으로써 그것들을 조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종교가 입말로 전승될 때는 (문자가 없는 사회는 물론, 심지어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대체로 그랬듯이) 기록된 선례의 압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기가 쉽다. 하지만 인도나 아랍권, 기독교권에서처럼 종교가 책 속에 담겨 있으면 언제든 반대자들이 자신들의 보수주의를 뒷받침하는 장점을 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러기가 훨씬 더 어렵다. 프레이져는 자기 당대에 서양 사회가 바로 이 지점, 곧 '자상과 종교의 갈등이…… 뚜렷한 특색을 이루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믿었다.


30 제임스 프레이저 경은 마치 금지된 섬이 존재한다고 실제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그 섬의 해안선을 그리는 격으로 자신의 위험한 주제를 용의주도하게 우회함으로써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자신의 아름다운 방들을 죽을 때까지 지킬 수 있었다. 그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말한 것은 기독교의 전설과 교리, 의식이 한 무리의 원시적이고 심지어 야만적이기까지 한 신앙을 세련화한 것에 불과하며,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독창적인 요 소는 예수라는 인물뿐이라는 것이었다.


제1권 숲의 왕

1장 숲의 왕

63 터너의 그림 <황금 가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에 화가 터너의 거룩한 정신이 배어들어 변용된, 상상의 황금빛 광채로 뒤덮인 이 그림 속 장면은 네미라고 하는 숲 지대의 작은 호수를 꿈 같은 환상의 분위기로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이 호수를 '디아나(Diana) 여신의 거울'이라고 불렀다. 알바 구릉의 녹색 분지에 둘러싸인 이 고요한 호수는 한 번 본 사람이면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호반에 잠들어있는 이탈리아 특유의 두 군데 마을이라든지 호수면으로 가파르게 내리뻗은 계단식 정원이 있는 이탈리아식 궁전도 그 장면의 고요함과 적막함을 깨뜨리지 못한다. 디아나 여신은 지금도 이 고독한 물가를 배회하며 이곳 숲지대 황무지에 출몰하고 있을지 모른다.


70 이탈리아 전역에서 열리는 디아나 여신의 연제 때, 청년들은 그녀를 기리는 정화의식을 치렀다. 포도주를 비롯하여 새끼 산양과 나뭇잎 접시에 담은, 갓 구어 낸 뜨거운 과자,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 등을 가득 차려놓고 연희를 벌였다. 기독교회는이 처녀 여신의 대축제를 곧바로 8월 15일의 성모몽소승천 축일로 전환하여 그 의식을 기린 것으로 보인다.


72 명백히 그것은 종교의식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지어낸, 폭 넓은 신화의 부류에 속한다. 그 신화들은 어떤 외래의식과 연관지어 추정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이거나 가상적인 유사성 말고는 다른 어떤 근거도 없는 것이다. 네미 신화의 부조화성은 설명의 대상이 되는 종교의식의 이런 저런 특성에 따라 숭배의 근거가 오레스테스에게 소급되기도 하고, 히폴리투스에게 소급되기도 하는 것만 보아도 사실상 명백하다. 그 설화들의 참다운 가치는 숭배의식의 비교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그 숭배의식의 성격을 밝히는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2장 사제의 왕

81 미개인은 더 진화한 인류가 보통 생각하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구별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가 생각하는 세계는 대부분 초자연적인 동인들, 다시 말해서 자신과 같이 충동과 동기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과 같이 연민과 희망, 공포로 호소하면 감동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세계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미개인은 자기 이익을 위해 자연의 운행에 영향을 미치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기도나 언약, 협박을 통해야 만 신들은 좋은 날씨와 풍성한 수확을 자신에게 보장해 주었다.


3장 주술과 종교

83 주술의 기초가 되는 사고의 원리를 분석해보면 다음 두 가지로 귀결될 것이다. 첫째는 유사는 유사를 낳는다, 또는 결과는 원인을 닮는다는 것이며, 둘째는 한 번 접촉 한 사물은 물리적 접촉이 끊어진 후에도 계속 서로 작용을 미친다는 것이다. 전자의 원리는 '유사법칙', 뒤의 것은 '접촉법칙' 또는 '감염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첫번째 원리, 곧 유사법칙에 따라 주술사는 단지 바라는 어떤 것을 모방함으로써 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추론한다. 그리고 두 번째 원리에 따라 주술사는 한 번 어떤 사람과 접촉한 물체에 대해서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그 물체가 그 사람 신체의 일부든 아니든 간에 그 사람에게 똑같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추론한다.


90 주목할 것은, 공감주술의 체계가 단지 적극적인 계율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수많은 소극적 계율, 곧 금기를 포함한다. 그것은 무엇을 하라고 알려줄 뿐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알려준다. 적극적인 계율이 술법이고, 소극적인 계율이 터부다. 사실상 터부의 전반적인 원리, 또는 그 원리의 대부분은 유사와 접촉이라는 양대 법칙으로 이루어진 공감주술의 특수한 응용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105 나는 자연의 운행과 사람의 인생을 지시하고 통제한다고 믿는 인간보다 우월한 힘에 대한 회유 내지 비위 맞추기로 종교를 이해한다 이렇게 정의 할 때, 종교는 이론과 실천의 두 가지 요소, 곧 인간보다 우월한 힘에 대한 믿음과 그 힘을 달래거나 기쁘게 하려는 시도로 구성된다. 두 가지 중에서는 믿음이 분명 우선한다. 어떤 신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먼저 믿어야 그것을 기쁘게 하려는 시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 그에 상응하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신학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랑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일정하게 다스리지 않는 사람은 결코 종교적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적 믿음이 없는 단순한 실천도 종교가 아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행동하더라도 한 사람은 종교적이고 다른 사람은 아닐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나 두려움 때문에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종교적이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랑 때문에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 행동이 공동선과 일치하느냐 어긋나느냐에 따라 도덕적일 수도 있고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믿음과 실천, 또는 신학 용어로 신앙과 사역은 똑같이 종교에 필수적이다. 그 두 가지가 함께 있지 않으면 종교는 존재할 수 없다.


107 설득으로 자신의 의도를 바꿀 수 있는 의식적인 행위자가 세계를 통제한다고 가정하는 한, 종교는 과학이나 주술과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과학이나 주술은 모두 인격적인 존재의 감정이나 변덕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불변적 법칙의 작용에 따라 자연의 운행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기 때문이다. 주술은 이 전제가 사실상 암묵적인 것에 그치지만 과학은 명시적이다.


4장 인간신

121 자신이 신들과 평등하다는 낡은 의식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인간은 자연의 운행을 외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곧 주술로 통제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가면 갈수록 자신이 한때 신들과 나누어 가졌다고 생각했던 초자연적인 힘의 유일한 소유자로 신들을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지식의 진보와 더불어 기도와 제사가 종교의식에서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한때 그것들과 동등한 것으로 꼽히던 주술은 차츰 뒷전으로 물러나 사술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제 주술은 신들의 영역을 침해하는 허황하고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며, 그렇기 때문에 명예나 영향력의 상승과 하락이 자기가 모시는 신들의 그것에 달려있는 사제들은 주술을 완강하게 반대했다.


5장 자연의 부분왕들

139 만일 그가 군림했다면 도시가 아니라 숲 속에서 그랬다는 것이 된다. 더욱이 숲의 왕이라는 칭호는 그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미에서 왕이었다고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그는 자연의 왕, 나아가서 자연의 특정한 일부분 (곧 그의 칭호가 유래 된 숲)만 다스리는 왕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만일 우리가 자연의 부분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자연의 특수한 원소나 양상을 지배한다고 여기던 사람들의 예를 찾아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해 온 거룩한 왕들, 곧 특정한 자연보다 자연일반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는 존재들보다 숲의 왕에 더 가까운 유사성을 보여줄 것이다.


6장 나무 숭배

143 유럽 아리안 족의 종교사에서 나무 숭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보다 자연스러운 일은 없었다. 역사의 여명기에 유럽은 방대한 원시림으로 덮여 있었으며, 드문드문 흩어진 공지는 푸른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 같이 보였을 것이다. 기원전 1세기까지 헤르키니아 숲은 라인 강 동쪽으로 끝을 모를만큼 넓게 펼쳐져 있었다.


8장 로마 왕들

177 곧, 많은 종족이 짐승과 인간의 생명을 궁극적으로 좌우하는 대지의 생산성을 촉진하기 위해 식물의 정령과 물의 정령의 신성한 결혼을 거행해 왔고, 그런 의식에서 신성한 신랑 신부의 역할을 종종 살아있는 남녀가 떠맡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식물의 정령과 물의 정령이 울창한 숲, 곤두박질 치는 폭포, 거울 같은 호수 따위 멋진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네미의 성스러운 숲에서 5월절 왕과 여왕의 결혼을 본뜬, 유한 한 존재인 숲의 왕과 불사의 존재인 숲의 여왕 디아나의 결혼식이 해마다 열렸다는 가설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준다.


184 호전적인 로마 왕들이 유피테르처럼 꾸미고 그 신의 자격에 수반하는 온갖 세세한 의식이나 온갖 지루한 제약 따위를 이행하는 데 싫증이 나서 그 경건한 광대 노릇을 기꺼이 대리인에게 양도하고 직접 해외에 나가서 날카로운 로마 검을 휘두르는 동안 국내의 왕홀을 그 대리인의 손에 맡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이래로 후대 왕들의 전설에서 그 직책에 따르는 신성 사제의 역할을 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도 설명 할 수 있을 것이 그 이래로 로마 왕들이 대리인을 세워 거행한 의식 가운데는 신성한 결혼식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9장 왕국의 계승

185 주목할만한 사실은 로마의 초대 왕인 로물루스가 알바 왕가의 후손이며 알바 왕가에서는 왕위를 부계로 세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도 로마 왕 중 아무도 자기 아들에게 직접 왕위를 물려준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몇몇 왕은 아들이나 손자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반면에 그들 중 한 왕은 부계가 아니라 모계에 따라 전왕을 계승했고, 타티우스와 큰 타르퀴니우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모두 외국인 아니면 외국인의 후손인 사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 사실은 왕권이 모계에 따라 전승되었고, 사실상 왕가의 공주와 결혼한 외국인이 계승하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186 그리하여 라틴 왕들이 동정녀인 어머니와 신성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는 전설들이 최소한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그런 종류의 설화는 우화적인 요소를 벗겨내면, 한 여자가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친족 제도보다는 그것을 무시하는 제도라야 더 쉽게 용납될 것이다.


186 우리나라에서도 오월절과 성령강림절 풍습 ━ 성탄절은 빼더라도 ━ 에 그 흔적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이런 종류의 축제일에 흔히 일어나는, 다소 문란한 교제를 계기로 태어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특정한 축제를 봉헌받는 신의 자식이라고 판단되었을 것이다.


10장 왕위의 부담

210 왕이나 사제직에 수반되는 이러한 부담스러운 관습으로 인해 당연한 결과가 생겨났다. 사람들이 그 직책 맡기를 거절하여 직후의 수행이 중단되거나, 아니면 그 직책을 맡더라도 갖가지 부담에 억눌려 무기력한 존재나 틀어박힌 은둔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권은 그들의 마비된 손가락을 벗어나, 명예는 없지만 실제 주권을 휘두르는데 만족하는 사람들의 손 안에 더욱 확고하게 장악되었다. 몇몇 나라에서는 이런 지상권의 분열이 심화하여 정신적 권력과 세속적 권력의 총체적이고 영구적인 분리로 이어졌다. 옛 왕가는 순수한 종교적 기능만을 보유하고, 반면에 정치적 기능은 더 젊고 더 강력한 가문에 넘어갔다.


11장 영혼의 위기

219 죽음이 영혼의 영구적인 부재상태라면, 그것을 막는 길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지 못하게 하거나, 설사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개인들이 채택하는 예방조치가 특정한 제약이나 터부인 셈이다. 그것들은 영혼의 지속적인 존재나 귀환을 보장하기 위한 규칙에 다름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들은 생명의 보호자인 셈이다.


12장 터부

234 이방인은 모두 그런 주술을 쓰는 자로 의심받는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은, 원시적 분별력의 기본 요구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들어오기 전이나 최소한 그들이 주민들과 마음대로 어울리기 전에 그 지방 토착민들은 종종 이방인들의 주술력을 해소하고 그들이 방출한다고 믿는 유해한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한, 또는 이방인들을 둘러싸고 있다고 믿는 오염된 공기를 소독하기 위한 어떤 의식을 거행한다.


286 과거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고대 왕과 사제들의 생활은 교훈으로 가득하다. 그 속에는 세계가 아직 어렸을 때 지혜로 여기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의 본보기로 삼고자 노력했던, 원시적 철학이 정해놓은 설계에 따라 정확하게 구축한 완전무결한 모범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그 철학이 조잡하고 허위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이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부당한 일일 것이다. 생명체 속에 존재하지만 그것에서 따로 분리해 낼 수 있는 작은 존재 또는 영혼을 생명력이라고 바라보는 관념에서 출발하여, 그것은 생활의 실천적 지침으로서 대체로 앞뒤가 잘 맞고, 상당히 완결적이며,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는 규칙들의 체계를 연역해 내고 있다. 그 체계의 결함은 추론 과정이 아니라 그 전제에 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념이 문제지, 그 관념에서 끌어 낸 결론의 부적합성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제의 허위성을 우리가 쉽게 간파해 낼 수 있다고 해서 그 전제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매도한다면, 그것은 비철학적일뿐 아니라 배은망덕한 태도가 될 것이다.


제2권 신의 살해

1장 신들의 유한성

291 원시인 철학자들이 마지 못해 죽음의 필연성에 동의하도록 만든 다양한 영향 가운데 점점 커져가던 종교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종교는 주술과 그것에 근거를 둔 온갖 터무니없는 주장이 허황함을 폭로하여 차츰 인간의 오만과 자연에 대한 불손한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우주에는 인간의 허약한 지력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신비와 인간의 연약한 손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도록 가르쳤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가면 갈수록 불가피한 것에 복종하며, 짧고 고통스러운 이승의 삶 대신 내세의 축복받은 영생에 대한 희망에서 위안을 얻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292 실제로 인간은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신들을 창조했으며, 자신이 유한하기 때문에 자신의 피조물도 필연적으로 똑같이 서글픈 운명을 타고난 것으로 상상했다. 그래서 그린란드인들은 바람이 자기네 가장 힘센 신을 죽일 수 있으며, 신도 개를 건드리면 죽는다고 믿었다. 그들은 기독교의 신에 관해 듣자 줄곧 그 신이 죽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서 그 신이야말로 정말로 위대한 신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2장 신성한 왕의 살해

296 이승의 번뇌와 열망에서 멀리 벗어난 채 산다는 높은 신들도 마침내 죽는 것으로 믿었다면, 연약한 육신의 장막에 거주하는 신이 그 같은 운명을 피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296 자연의 운행이 인간신의 생명에 달려 있다면, 그의 능력이 점점 쇠퇴하여 마침내 죽음 속에 소멸하는 사태로부터 어떤 파국인들 예상하지 못할 것인가? 이러한 위험을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인간신은 그 능력이 쇠약해지는 징후가 보이는 즉시 살해되어야 하며, 그의 영혼은 사체의 부패로 심각한 손상을 입기 전에 원기 왕성한 후계자에게 이전되어야 한다. 인간신이 노령과 질병으로 죽도록 내버려 두는 대신, 이처럼 미리 죽일 때의 이점은 미개인들이 보기에 명백하다.


297 반면에 인간신을 살해함으로써 숭배자들은 인간신의 영혼이 빠져 나갈 때 확실하게 붙잡아서 적당한 후계자에게 옮겨 줄 수 있고, 인간신의 자연적인 힘이 줄어들기 전에 그를 죽임으로써 인간신의 쇠퇴와 더불어 세상이 쇠퇴하는 것을 확실히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처럼 인간신을 살해하면 그의 영혼이 아직 절정기에 있을 때 원기 왕성한 후계자에게 이전할 수 있으므로 모든 목적이 충족되고, 모든 위험이 비껴가는 것이다.


3장 임시왕들

323 몇몇 지역에서는 바빌론에서 성행한 것으로 보이는, 국왕 살해라는 낡은 관습의 변형된 형태가 한층 더 완화되었다. 왕은 여전히 해마다 짧은 기간 동안 퇴위하고 명목상의 왕이 그 자리를 채우지만, 짧은 임기가 끝난 후에도 더 이상 명목상의 왕을 살해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명목상의 왕이 실제로 죽음을 당하던 시대의 유물로서, 간혹 여전히 가짜 처형을 집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4장 왕자의 희생

338 그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이집트인의 아이들과 짐승들에 대한 학살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바라던 효과를 거두었다. 이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하느님은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처음 난 자식과 짐승을 모두 자신에게 바치되, 먹을 수 있는 짐승은 죽여서 가지고 먹을 수 없는 것 특히 사람과 나귀는 대체물이나 머릿수에 해당하는 금전으로 보상하도록 규칙을 정했다. 그리고 매년 봄마다 대학살의 밤에 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축제를 열도록 했다. 하느님의 명령은 이행되었고, 이렇게해서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생겨났다.


342 왕이 자신의 대리인 또는 대리 희생물로 아들을 죽이도록 허용하는 관습이 최소한 셈족 세계에서는 결코 특이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추리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한때 모든 남자가 자기 신에 대한 의무로서 자기 장남의 목숨을 취하도록 권고 내지 명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 야만적 관습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라지고 난 후에도 왕들이 계속 그것을 지켜왔다고 본다면 그것은 유추와 전적으로 부합할 것이다. 왕들은 많은 점에서 사라진 세계의 대변자이며, 과거를 파묻고 있는 넘쳐오르는 폐수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외로운 첨탑으로 남아 있다.


5장 나무 정령의 살해

349 신의 살해, 곧 그 인간적 화신의 살해는 단지 더 훌륭한 모습으로 그를 부활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신성한 영혼의 사멸이 아니라, 단지 더 순결하고 더 강력한 형상화의 시작일 뿐이다. 이러한 설명이 신성한 왕과 사제를 살해하는 관습에 대해 일반적으로 타당하다면, 이것을 해마다 봄철에 나무 정령이나 식물 정령의 대리인을 살해하는 관습에 한층 더 분명하게 적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6장 아도니스

384 신전의 신성한 경내는 그 관습을 지키기 위해 대기중인 여자들로 붐볐다. 어떤 여자는 몇 년씩이나 거기서 기다려야 했다. 신전 유적의 위압적인 웅장함으로 유명한 시리아의 헬리오폴리스 곧 바알베크에서는 국가적 관례로 든 처녀가 아스타르테 신전에서 이방인에게 몸을 팔 것을 요구했으며, 처녀들만이 아니라 기혼녀들도 같은 방식으로 여신에 대한 신앙심을 입증했다.


386 대다수 여자가 이런 방식 정조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든 종교의 관례를 지켜낸 반면에, 사람들은 여전히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몇 명이라도 옛 방식으로 옛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몇몇 여자가 평생 또는 몇 년 동안 신전에서 매춘부가 되었다. 종교 의식이었으므로 그들은 신성한 성격을 부여 받았다. 속인들은 그들의 직업을 불명예로 간주하기는커녕 아마도 공공도덕 이상 가는 미덕의 발휘로 간주하였을 것이며, 그들은 경탄과 존경, 연민이 뒤섞인 감사의 표현으로 보상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세계 일부 지역에서 자신들의 자연적인 성기능과 인간의 가장 정감어린 상호 관계를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창조주를 섬기고 자 하는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것과는 다른 보상이었다. 이와 같이 인류의 어리석음은 똑같이 해롭고 개탄스러운 양극단으로 출로를 찾는 것이다.


387 왕가의 혈통이 모계를 통해서만 전술되는 탓에 진정한 군주인 세습 왕녀와 결혼해야만 왕위를 보유할 수 있던 나라에서는 왕자가 자기 누이인 왕녀와 결혼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387 만약 왕이 아내의 사후에도 군림하기를 바란다면, 그가 합법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딸과 결혼함으로써 전에 아내를 통해 자기 것이었던 칭호를 딸을 통해 연장하는 방법뿐이었을 것이다.


7장 신성한 매춘

399 인도에서 신전에 소속된 신성한 매춘부들은 신의 아내로 간주되며, 그들의 방종한 행실은 자기 의사가 아니라 신내림에 따른 행동이라는 이유로 면책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고대에 서아시아 민족들이 행한 신성한 매춘 풍습에 관해 내가 제시한 설명의 골자다. 처녀든 유부녀 든, 아니면 직업적인 매춘부는 상관없이 여자들은 신전에서 벌이는 방탕한 성교를 통해 밭과 나무, 사람과 짐승의 결실을 보장할 목적으로 위대한 생식의 여신이 보여준 방종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다.


8장 아도니스의 의식

416 역사시대에는 동양적 영향의 물결이 아마도 바빌로니아를 출발점으로 타무즈 또는 아도니스의 제전을 서방에 전파하여 토착형의 비슷한 제전과 만나게 했다. 그리고 로마 문명의 압박으로 이처럼 상이하면서도 유사한 제전들이 서로 융합하여 다양한 형태로 결정화하고 그것들이 다소 별개로 나란히 존속했는데, 기독교회는 그것들을 완전히 억압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조악한 특성들을 가능한 제거하고 교묘하게 이름을 바꾸어 기독교적인 것으로 통용시켰다.


417 기독교회가 얼마나 자주 이단의 낡은 줄기에 새로운 신앙의 씨앗을 교묘하게 접목시켰는지 돌이켜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 축제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시리아에서 같은 계절에 행한 것으로 보이는 아도니스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비슷한 의식에 접목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슬픔에 잠긴 여신이 죽어가는 애인을 팔에 안고 있는, 그리스 미술가들이 창조한 형상은 동정녀 마리아가 거룩한 아들의 시신을 무릎에 안고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기독교 미술의 피에타와 유사 할뿐만 아니라 그 모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9장 아티스

420 그 상상적인 죽음과 부활이 서아시아의 신앙과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또 다른 신이 아티스(Atis)다. 프리지아와 그의 관계는 시리아와 아도니스의 관계와 같다.


420 그의 탄생은 다른 많은 영웅처럼 기적적이었다. 그의 어머니 나나(Nana)는 동정녀였는데 잘 익은 편도 또는 석류를 가슴에 껴안고 난 뒤 임신했다고 한다.


10장 목매달린 신

434 천국의 구름 속에서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 지상의 나라는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무게 중심이 현세에서 내세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화를 통해 내세가 많은 것을 얻은 만큼 현세의 손실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국가 정체의 전반적인 붕괴가 시작되었다. 국가와 가족의 유대가 이완되었고, 사회구조는 개별적인 요소들로 해체되어야만 상태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왜냐하면 문명은 시민들의 능동적인 협력과 사적인 이해 관계를 자발적으로 공동선에 복종시키는 자세를 통해서만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지키고 심지어 자기 종을 유지하는 것까지 거부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망 속에서, 그들은 악의 원리와 동일시되는 주변의 물질세계가 멸망해가는 것을 기꺼이 방치했다. 이러한 망상이 1천 년 동안이나 존속했다.


435 고대세계의 쇠퇴기에 서양의 충성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던 동양출신 신들 중에 고대 페르시아의 신 미트라(Mithra)가 있다. 그가 누린 엄청난 인기는 로마 제국 전역에 그것을 예증하는 기념비들이 곳곳에 대량으로 산재해 있다는 사실이 말해준다. 교리와 의식의 양 측면에서 미트라 숭배는 모신의 종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와도 많은 유사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유 사성은 기독교 박사들 자신에게도 충격을 주어, 그들은 그것이 사악한 가짜 모조품으로 인간의 영혼을 진정한 신앙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고자 하는 악마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435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행한 것으로 보이는 탄생일 의식은 주목할 만하다. 축하객들은 어떤 신전의 내실에 들어가 있다가 자정이 되면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동정녀가 빛을 낳았도다! 빛이 퍼져나가도다!" 이집트인들은 심지어 갓 태어난 태양을 아기 형상으로 만들어, 그 생일인 동짓날에 숭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아들을 수태하여 12월 25일에 낳은 동정녀는 말할 것도 없이 셈족이 하늘의 동정녀 또는 단순히 하늘의 여신이라고 부르던 위대한 동양의 여신이었다.


436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탄생 날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따라서 초대 교회는 그날을 기념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 않아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이 1월 6일을 성탄일로 간주하게 되었고, 그 날짜에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풍습이 점차 확산되다가 4세기에 이르러 동방에서 보편적인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1윌 6일을 성탄일로 인정하지 않던 서방교회가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에 12월 25일을 진정한 성탄일로 채택했으며, 머지 않아 그 결정을 동방 교회도 받아들였다. 안티오크에서는 서기 375년경까지 그것을 도입하지 않았다.


436 그리스·시칠리아·남부 이탈리아 등지에서 지금까지 거행하는 부활절 의식은 몇 가지 점에서 아도니스 의식과 너무도 유사하다. 내가 시사했듯이, 기독교회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해 새로운 제전을 선행하는 이교 의식에 맞추어 의식적으로 각색했을 것이다.


437 그리스도가 죽은 날을 3월 25일로 보는 전설은 오래되고 뿌리가 깊은 것이다. 천문학적 고찰에 따르면, 거기에는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기 때문에 더욱더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수난일은 더 오래된 춘분점 제전과 맞추기 위해 임의로 그 날짜로 정한 것이 틀림없다는 추리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신의 아버지와 신의 아들이라는 성격을 한 몸에 지닌 아티스의 부활을 같은 날에 공식적으로 기념하였다. 4월의 성조지 축일이 고대 파 릴리아의 이교 축제를 대체했다는 것, 6월의 세레자 성요한 축일이 이교도들이 하지절에 거행하던 물의 제전을 계승했다는 것, 8월의 성모승천축일이 디아나의 제전을 몰아냈다는 것, 11월의 위령의 날이 죽은자를 기리는 고대 이교 제전의 연장이라는 것, 그리스도 자신의 탄생일을 12월 동지점으로 정한 이유가 그날이 태양의 탄생일로 간주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따위를 상기할 때, 우리는 기독교회의 다른 주요 축일(부활절)도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교화의 동기에서 춘분절에 거행하는 프리지아 신 아티스의 비슷한 의식을 각색한 것이라고 추측하더라도 결코 경솔하거나 부당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438 실제로 서기 4세기에 한 익명의 기독교인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기독교인들과 이교도들은 두 신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뚜렷한 일치성이 있음을 보고 똑같이 충격을 받았으며, 그 일치성은 경쟁하는 두 종교의 신봉자들 사이에 서 격렬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티스의 부활을 본 뜬 사이비 모조품이라고 주장했고, 기독교인들도 똑같이 격앙되어 아티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악마적으로 모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꼴사나운 언쟁 중에, 이교도들은 피상적인 관찰자라면 강력한 근거로 여길 법한 주장을 제시했다. 그들이 주장한 내용은 자기네 신이 더 오래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원본이 복사본보다 더 오래된 것이므로 자기네 신을 모조품이 아니라 원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허약한 논거를 기독교인들은 쉽게 반박했다. 그들은 시기상으로 그리스도가 더 어린 신이라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으나, 사탄의 음흉한을 근거로 삼아 그가 진정 더 이른 것을 의기양양하게 증명했다. 사탄이 교활하게도 그처럼 중요한 시기에 자연의 일상적인 질서를 전도함으로써 더 앞질러 등장했다는 것이다.


11장 오시리스

448 오시리스 전설에서 상속권 경쟁자는 세트와 호루스인데, 세트는 죽은 왕의 동생이고 호루스는 죽은 왕의 아들이다. 게다가 호루스는 왕의 아들인 동시에 왕의 누이, 곧 이시스의 아들이기 때문에 두 가지 권리를 겸한 셈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로마에서도 상속권의 계통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비슷한 분쟁이 일어난 듯하다.


13장 아시스

463 전통적 신앙이 동요하고, 제도가 붕괴하고, 인간정신이 혼란에 빠지고, 한때 영원할 것으로 보이던 제국의 구조자체가 불길한 분열과 와해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하던 쇠퇴의 시기에 정신적인 안정감을 지닌 이시스의 고요한 형상과 은혜로운 불멸의 약속이 많은 사람에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의 별처럼 다가오고, 중세 때 동정녀 마리아에게 바친 것과 다르지 않은 헌신적인 신앙의 환희를 그들 가슴 속에 불러 일으켰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463 미술 작품에서 아기 호루스에게 젖을 빨리는 이시스의 형상은 확실히 성모와 아기 예수의 형상과 너무나 흡사해서 때때로 무지한 기독교인들의 찬양을 받기도 했다.


14장 모계근친제와 모신들

465 이제 우리는 동양의 세 신인 아도니스와 아티스, 오시리스의 본성과 숭배 의식에 대한 연구를 마쳤다. 신화 속에 나타난 그들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함께 다루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셋 다 일반적으로는 생식력의, 특수하게는 식물의 화신이었다. 셋 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그리고 그 셋의 신성한 죽음과 부활은 그 숭배자들이 슬픔과 기쁨, 통곡과 환희가 교차하는 황홀경에 빠져서 벌이는 연례 제전에서 연극적으로 재현되었다.


470 모계근친제는 모권통치제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카시스족의 왕은 어머니의 권한으로 왕권을 계승하지만, 자기 자신의 권한으로 그것을 행사한다. 이와 비슷하게, 팔라우섬 사람들은 모계근친제에도 불구하고 여자 추장이 아니라 남자 추장의 지배를 받는다.


470 여인 정치의 이론은 공상가와 현학자들의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 카시스 족과 같은 모계 근친제사회에서 나타나는 여신의 우월적 지위가 단지 여성적인 사고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것이다. 만약 여성이 신을 창조했다면, 그들은 신에게 여성적인 특징보다 남성적인 특징을 부여했을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실제로 세상에 영속적인 영향을 미쳐 온 위대한 종교적 이상들은 언제나 남성적인 상상력의 산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장 리티에르세스

514 이러한 리티에르세스 설화 속에 프리지아의 추수 풍속에 대한 묘사가 들어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일정한 근거가 있는 일이다. 이를테면 특정한 인물들 특히 추수 밭을 지나가는 이방인들을 관례에 따라 곡물 정령의 화신으로 간주하였고, 추수꾼들은 그를 그런 신분으로 붙잡아 곡식단에 감싸고 머리를 잘랐으며, 짚으로 싸맨 그들의 시체를 나중에 비를 부르는 주술로 강물에 던졌다고 상정할 수 있다. 이렇게 상정하는 근거는 리티에르세스 설화와 유럽 농민층의 추수 풍속이 유사하다는 사실과, 농경지의 비옥도를 높이기 위해 미개 종족들이 빈번히 인간 제물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21장 신을 먹는 풍습

584 성찬의식이 그것을 신이나 정령에게 공양하는 의식이나 그것으로 제사 지내는 의식과 결합되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첫 열매의 제사의식이 성찬의식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더라도 압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첫 열매를 신이나 정령에게 바친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햇곡식을 먹기 위한 충분한 준비가 된 것으로 간주하기에 이른 것이다. 높은 신들이 자기 몫을 받고 나면 그 나머지는 인간이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새 결실을 이렇게 바라보는 사고 방식은 그것을 더 이상 신성한 생명력을 자체에 간직한 어떤 것이 아니라, 신들이 사람에게 준 선물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함을 의미한다.


585 빵을 신의 몸으로 간주하여 성찬으로 먹는 풍습은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를 발견하고 정복하기 전에 아스테크족이 행하던 풍습이다.


586 그들을 뒤따라 그들이 숭배하는 신과 여신들이 다양한 형상에 똑같은 차림새로 나타난다. 그러고 나서 반죽 덩어리 주변에 질서있게 자리 잡고서 노래와 춤으로 어떤 의식을 집행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것들을 이 신상의 뼈와 살로서 축복하고 성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과 축복이 끝나면, 사람들은 그 덩어리들을 자신들의 신과 똑같이 경배했다.


587 이 흥미로운 구절에서 우리는 고대 멕시코 인들이 기독교 선교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성체화'의 교리를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자기네 종교의 엄숙한 의식에서 그 교리에 입각하여 행동했음을 알게 된다.


588 고대 인도의 아리안족들도 성체화, 곧 빵이 살로 변하는 마술적 전환의 교리를 기독교 전파 훨씬 전부터, 심지어는 기독교가 생기기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22장 육식

592 미개인은 보통 동물이나 사람의 고기를 먹으면 그 동물이나 사람에 특유한 신체적 성질뿐만 아니라 도덕적, 지적 성질까지 획득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대상물이 신성한 것일 때 우리의 단순한 미개인은 자연스럽게 그 물질적 실체와 더불어 그 신성함의 일부분까지 흡수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596 용기나 지혜를 북돋기 위해, 또는 죽은 사람이 지니고 있었거나 신체 특정 부위에 특별하게 존재한다고 여기는 그 밖의 자질을 북돋기 위해 죽은 사람의 살과 피를 먹거나 마시는 일도 흔히 있다.


23장 신성한 동물의 살해

631 원시인의 동물 숭배는 어떤 면에서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형태를 지닌다. 한편으로 동물은 숭배의 대상이므로 죽이거나 먹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동물은 관례적으로 죽여서 먹기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 양자의 숭배 형태에서 동물이 공경 받는 짓은 미개인이 얻어내고자 하는 모종의 적극적 이익과 소극적 이익에 대한 고려 때문이다. 전자의 숭배에서는 동물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보호와 충고, 조력 따위의 적극적인 형태와 동물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피해를 모면하는 소극적인 형태로 이익이 생긴다. 후자의 숭배에서는 동물의 살코기와 가죽이라는 물질적 형태로 이익이 생긴다. 두 가지 숭배 형태는 어느 정도 대조적이다. 전자에서는 동물을 숭배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후자에서는 동물을 먹기 때문에 숭배한다. 동물 숭배의 두 가지 유형에 상응하여, 동물 신을 죽이는 관습에도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제3권 속죄양

1장 재앙 옮기기

641 죽어가는 신은 때때로 민족 전체의 누적된 불행과 죄악을 떠맡아서 영원히 짊어지고 감으로써, 민족을 결백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우리 죄와 고통을 다른 어떤 존재에게 떠넘겨 우리 대신 감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개인에게는 익숙한 사고 방식이다.


642 먼저 어떤 사람이 재앙을 몰아내고자 할 때 반드시 사람에게 그것을 넘겨 줄 필요는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동물이나 사물에 넘겨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에서는 사물이 단지 맨 처음 그것을 만지는 사람에게 고통거리를 전달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할 뿐이다.


673 앞에서 우리는 인간신이나 동물신의 신성한 생명이 세월의 침습으로 약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를 살해하는 관례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또, 1년에 한 번씩 재앙과 죄악의 전반적인 추방을 행하는 관례가 있음도 살펴보았다. 그런데 백성들이 이 두 가지 풍습을 결합할 생각을 했다면, 그 결과는 죽어가는 신을 속죄양으로 사용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를 살해하는 것은 원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성한 생명이 노령으로 퇴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살해되어야 했으므로, 사람들은 그 기회를 틈타서 자신들의 고통과 죄의 부담을 그에게 떠넘겨 무덤 너머 미지의 세계로 보내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2장 고대의 속죄양

682 이 낡은 신은 더 젊고 더 왕성한 봄의 생명의 화신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아니면 아마도 같은 신이 자기가 받은 대우로 인해, 특히 자신의 신성한 몸에 가해진 강한 매질로 인해 새롭게 갱신되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쫓겨나는 것이다.


682 '늙은 마르스'가 작년의 누적된 잘못과 재앙을 데려가는 것으로 여기는 한, 슬라브족의 '죽음의 추방' 의식에 등장하는 인형이 작년의 식물 정령을 상징할 뿐 아니라 고통과 불행, 죽음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속죄양 역할까지 하는 것과 비슷하게, 그는 공적인 속죄양 역할을 하는 것이다.


3장 멕시코의 신의 살해

691 그들의 호기심은 자기네 교회의 교리 및 제례와 기이하게도 많이 닮아 보이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종교를 그 먼 땅에서 발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고무되었다.


706 그의 제전에서 멕시코인들은 전쟁에서 사로 잡은 포로를 남녀, 어린 아이 가릴 것 없이 전부 살해했다. 희생자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16세기의 한 스페인 역사가의 평가에 따르면, 멕시코에서는 자연사하는 사람보다 제단 위에서 희생당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가죽 벗긴 신' 시페에게 바치는 제물은 모두 가죽을 벗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 신에게 특별한 맹세를 바친 남자들이 사람 제물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20일 동안 시가지를 돌아 다니며, 가는 곳마다 살아있는 신상으로 영접받고 경배받았다.


712 이와 같이 몇몇 종족은 특정한 동물이 겪는 기이한 변신을 관찰하고서, 그러한 변신에 힘입어 그 동물이 주기적으로 젊음을 갱신하며 영원히 산다고 상상했다. 그런 관찰과 상상으로부터 인간도 그 동물들처럼 새로운 껍질을 연기만 한다면 새로운 수명을 얻을 수 있고 그 수명을 무한히 갱신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쉬운 일이다.


4장 농신제

744 서기 408년에 호노리우스와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속주의 총독들에게 유대인이 자기네 제전에서 하만의 인형을 십자가에 매달아 불태우지 못하도록 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칙령으로 미루어 볼 때, 그 관습은 기독교인들을 크게 분노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그것이 그리스도 탄생 이전에, 아마도 오랜 시대에 걸쳐 동방에서 행했을 제례의 연장이며 그 완화된 형태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네 종교의 중심적인 비의를 희화화하는 신성모독으로 여겼던 것이다.


5장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753 사카에아의 가짜 왕이 받은 대접은, 디오 크리소스토무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렇다. "사람들은 사형 선고를 받은 죄 수 한 명을 데려 와서 왕좌에 앉히고 왕의 의복을 입힌 다음, 그 기간 동안 왕으로 군림하면서 마시고 소란을 벌이고 왕의 첩들을 차지하게 하며, 어떤 사람도 그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가로 막지 않는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의 옷을 벗기고 매질을 하고 십자가형에 처한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유사성은 결국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는 일반 범죄자들처럼 일상적인 방식으로 처형당한 것일 수 있다.


754 목매달린 하만과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유사성은 초기 기독교인들 자신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하만의 인형을 파괴할 때마다 이웃 기독교인들로부터 자기네 새로운 신앙의 가장 신성한 비의를 모독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756 온갖 잔인한 모욕을 동반하는 십자가형이 특별히 그리스도를 위해 고안한 형벌이 아니라 해마다 하만 역을 하는 범죄자에게 닥치는 운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가설은 복음서 설화에 수반하는 몇 가지 난점을 해결해 줄 것으로 보인다.


756 만약 복음서에 나오는대로 빌라도가 정말로 그 죄없는 사람의 훌륭한 거동에 감명을 받고 그를 구해주고자 애썼다면,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만약 자신의 판단이 자비의 방향으로 쏠렸다면, 어째서 그는 그런 방향으로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는가? 군중들의 끈질긴 요구에 그가 마지 못해 순응한 행동은, 해마다 그시기에 군중들의 잔인한 장난질 대상으로 죄수 한 사람을 넘겨주는 것이 그의 관례적인 의무였다고 가정할 때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가정에 근거를 둘 때 빌라도는 희생을 막을 권한이 없었고, 기껏해야 희생자를 선택할 수 있었을 뿐이다.


757 왕위의 영광을 갈망한 불운한 인물의 비극을 해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를 통해 재연하였다면 성공한 그의 경쟁자 역할 또한 똑같이 왕의 치장을 걸치고 행진을 벌이지만 같은 운명을 겪지는 않는 다른 배우를 통해 재연하였을 법하다. 만약 예수가 그 해의 하만이라면, 모르드개는 어디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바라바에게서 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759 짐작컨대 유대인은 부림절 또는 때때로 유월절에 그 제전의 중심지 특색을 이루는 수난극에서 죄수를 두 명 고용하여 각기 하만과 모르드개 역을 맡기는 것이 관례였다.


759 예수의 마지막 개선 행진에 대한 묘사는 거의 하만이 소망했고 모르드개가 성취했던, 수사 시가지의 화려한 거리행진의 반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곧바로 그가 성전에 차려놓은 행상인과 환전상들의 진열대를 습격한 이야기는 그러한 제전의 시기에 임시왕에게 관례적으로 부여하던 자의적인 소유권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762 예수의 삶과 죽음의 설화는 흔히 상상하듯이 그 위대한 교사가 통속적인 범죄자로 죽었다면 결코 지닐 수 없었을 영향력을 얻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멀리서 바라보며 숭배하는 신성의 후광을 갈보리 십자가 주위에 둘러 씌웠다.


762 반면에 회의론자들은 똑같은 확신에 따라 나사렛 사람 예수를 야만적인 미신의 다른 무수한 희생자들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할 것이며, 우연히 운 좋게도 처형이라는 계기를 통해 순교자의 왕관만이 아니라 신의 왕관까지 쓰게 된 도덕적 교사 이상을 그에게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폭 넓고도 깊다. 어느 쪽이 더 진실이며,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서 옛 격언의 타당성을 믿고 싶다. "진리는 위대하며 이긴다."


제4권 황금가지

1장 하늘과 땅 사이

767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자신들의 군주가 병이 들거나 늙어서 자연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추종자들이 생각하기에 그러한 죽음은 자기들 자신과 자신들의 소유물에 가장 처참한 결과를 끼치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사람과 가축을 휩쓸고, 대지는 증식을 거부할 것이다. 아니, 자연 자체의 질서가 붕괴할 것이다. 이러한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왕이 아직 그 신성한 인격의 전성기에 있을 때 죽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목적은 그의 신성한 생명이 힘의 손상없이 후계자에게 전달되어 새롭게 청춘을 맞이하고, 그처럼 원기 왕성한 육신의 영구적 계승을 통한 끊임없는 전달에 힘입어 영원히 싱싱한 젊음을 간직함으로써, 인간과 동물도 그와 비슷하게 끊이지 않는 세대의 연속성을 통해 청춘을 갱신할 수 있다고, 또 파종기와 추수기, 여름과 겨울, 강우와 햇빛에도 결코 차질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해 주는 담보이자 보증으로 남도록 하려는 것이다. 내 추측이 옳다면, 그런 이유로 아리키아의 사제, 곧 네미 숲의 왕은 정례적으로 그 후계자의 칼에 죽어가야 했던 것이다.


2장 소녀들의 격리

774 주목할만한 사실은 사춘기 소녀들이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규칙 ━ 땅을 밟지 않는 것과 해를 보지 않는 것 ━ 을 세계 많은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783 미개인도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가 보기에 전혀 불필요해 보이는 고통과 궁핍을 자발적으로 감수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확실한 일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그는 결코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고통을 위한 고통은 이승에서의 도덕적 훈련이든 내세에 영광스러운 영생을 얻기 위한 수단이든 간에 그가 의도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닌 것이다.


787 이와 같이 사춘기 소녀에게 공통적으로 가하던 제약의 동기는 원시인이 월경혈에 대해 보편적으로 품고 있는 뿌리 깊은 두려움이다. 그들은 항상 그것을 두려워하지만, 초경 때 특히 심하다. 따라서 초경을 하는 여자에게 가하는 제약은 그 신비스러운 출혈이 뒤이어 반복될 때 지켜야 하는 어떤 규칙보다도 보통 더 엄격하다.


3장 발데르의 불

838 근대 유럽의 불의 제전이 마녀와 마법사들을 불태우거나 차단함으로써 마법의 힘을 분쇄하려는 시도라고 보는 우리의 해석이 옳다면 우리는 켈트족의 인간 제물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곧 드루이드교 사제들이 고리버들 우상 속에 가두어 불태운 사람들은 마녀나 마법사라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불을 이용한 처형 방법을 선택한 까닭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생화장이야말로 그 해롭고 위험한 존재들을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추정해야 한다.


4장 외재적 영혼

847 생명을 사고할 때 추상적으로 '감각작용의 지속적 가능성'이라든지 '외면적 관계에 대한 내면적 안배의 연속적 조정'이라는 식으로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미개인은 그것을 일정한 크기를 지닌 구체적인 물체로 사고한다. 그것은 보고 만지고 상자나 항아리 속에 집어 넣을 수 있을뿐 아니라 상처입거나 부러지거나 박살나기 쉬운 어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생명이 반드시 사람 속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사람의 몸을 떠나서 존재하면서도 원거리에서 모종의 공감이나 작용을 통해 여전히 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생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생명 또는 영혼이라고 부르는 그 물체가 다치지 않는 한, 그 사람은 무사하다.


5장 죽음과 부활

877 미개인이 어떤 동물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삼고 그 동물을 형제라고 부르며 죽이지 않으려고 할 때 그 동물을 토템이l라고 부른다.


879 많은 미개 부족, 특히 토템신앙을 지니는 것으로 알려진 부족 사이에는 사춘기 젊은이들이 성인식을 거치는 관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의식이 그 젊은이를 죽였다가 다시 살려내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그 의식의 요체가 젊은이의 영혼을 추출해서 토템에 옮겨놓는데 있다고 추정할 때 우리는 그 의식을 이해할 수 있다.


885 토템신앙이 나타나는 모든 곳에서, 성인식 때 신참을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모의 행사가 벌어지는 모든 곳에서 영혼을 어떤 외재적 대상(동물이나 식물 또는 어떤 것이든) 속에 영구히 보관할 수 있다는 믿음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존재하거나 과거에 존재했을 수 있다. 왜 사람들이 자기 몸 바깥에 자기 생명을 보관하기를 바라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렇다. 곧, 전설에 나오는 거인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생명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장 활금가지

886 참나무의 생명이 겨우살이 속에 있다는 관념은 이미 말했듯이 아마 겨울에 참나무가 헐벗을 때 참나무 위의 겨우살이는 푸르게 남아있는 데서 암시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관념을 확인시켜 준 것은 그 식물의 위치, 곧 그 식물이 땅이 아니라 나무의 가지나 줄기에서 자란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889 따라서 그 나무가 참나무라면 숲의 왕은 틀림없이 참나무 정령의 화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숲의 왕을 살해하기 전에 황금 가지를 꺾는 것이 왜 필요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참나무 정령인 숲의 왕의 삶 또는 죽음은 참나무 위에서 자라는 겨우살이 속에 있으므로, 겨우살이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한 숲의 왕은 발데르처럼 죽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숲의 왕을 죽이기 위해서는 겨우살이를 꺾어, 아마도 발데르처럼 그를 향해 던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897 인간이 자신의 과오를 발견하거나 슬프게도 자신이 상정한 자연질서와 자신이 그것에 대해 행사한다고 믿었던 통제력이 모두 공상적인 것임을 인식하게 될 때,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지성과 독자적인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의 장막 뒤에 숨어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위대한 존재의 처분에 겸허하게 자신을 맡기며, 한때 오만하게 자기 것으로 사칭하고 그 모든 광범위한 능력을 이제는 그 존재에게 귀속시킨다. 그리하여 좀더 예민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 속에 자주 주술은 차츰 종교로 바뀌게 되고, 종교는 자연현상의 계기적 과정을 인간과 본성은 비슷하지만 능력이 엄청나게 우월한 영적인 존재들의 의지나 감정, 변덕에 따라 조절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899 과학의 일반법칙, 곧 흔히 말하는 자연법칙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세계와 우주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는 주마등 같이 늘 변화하는 사유의 환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해 낸 가설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주술과 종교, 과학은 사유의 이론에 다름 아니다. 과학이 그 선배들을 대체했듯이 그것 자체도 좀더 완벽한 어떤 가설, 아마도 우리 세대에서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전혀 다르게 현상을 관찰하는 어떤 방식이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지식의 발전은 끊임없이 멀어져 가는 목표를 향한 무한한 전진이다.


902 실상 숲의 여신의 신전은 사라졌고, 숲의 왕은 더 이상 황금가지를 지키기 위해 경계를 서지 않는다. 그러나 네미의 숲은 여전히 푸르다. 서녘에서 숲 위로 저 노을이 사라져 갈 때 밀려 오는 바람에 실려 안젤루스를 울리는 로마의 교회 종소리가 들려 온다. 아베 마리아! 감미롭고도 장엄하게 종소리가 먼 도시에서 울려와 광활한 캄파냐의 늪지대를 가로질러 머뭇거리며 스러져간다. "왕은 죽었다. 왕이여, 만세!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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