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찬 콘라드, 위르겐 오스터함멜: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750~1870 ━ 근대 세계로 가는 길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750~1870 - 10점
세바스찬 콘라드.위르겐 오스터함멜 책임편집, 이진모.조행복 옮김/민음사

한국어판을 출간하며

서문 _ 제바스티안 콘라트, 위르겐 오스터함멜

1부 장기 19세기 정치사 속의 지역과 제국들 _ 제밀 아이든
2부 풍요의 가능성과 빈곤의 지속성: 산업화와 국제무역 _ 로이 빈 웡
3부 세계적 변화의 문화사 _ 제바스티안 콘라트
4부 위계와 연결: 세계적 사회사의 양상 _ 위르겐 오스터함멜

미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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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시대구분
이 책을 구성하는 각 부는 이미 서술된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을 통해 대략 그 윤곽이 잡히는 시대를 다룬다. 이런 시대구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 책 전체를 포괄하는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하다. 

시대구분의 유용성과 필요성에 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견의 일치를 이룬 적이 없다. 어떤 역사가들은 대부분 시대구분 문제가 본질을 벗어난 ‘외관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한다. 반면에 다른 역사가들은 “시대구분은 근대적인 역사 연구의 방법론적 기반“이라고 역설한다. 이 문제가 어떻게 이론적으로 해결될지도 모르지만, 세계적 시야로 특정 시기를 다루는 책을 집필하는 역사가들은 그 시대의 특징이 무엇인지, 왜 다른 시기와는 차이를 보이는지, 연대기적 연속성 속에서 왜 다른 방식으로는 시대구분을 할 수 없는지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 특히 이 책처럼 긴 세계사를 다루는 프로젝트의 부분으로서 이전 시대나 이후 시대와 중첩되는 시점에 있는 경우시대구분의 이유를 설명해야 할 책임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기획한 ‘하버드-C.H 베크 세계사’ 시리즈에서 각 권을 구별하는 시기는 역사의 흐름에서 특히 뚜렷한 단절이 일어난 시점이나 시대의 전환점이라고, 즉 한 시대가 급격하게 끝나고 뚜렷하게 새 출발이 진행된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해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까지 지속된 장기 19세기는 이러한 개념이 적용되는 전형적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구분은 수많은 역사서에서 사용되고 있다. 


시대구분을 사용하는 또 다른 전략은 앞선 경우처럼 뚜렷한 단절과 전환점을 설정하기보다는 부드럽고 융통성 있게 개관하는 방식이다. 이 전략은 한 시대를 ”의미로 가득 찬 시공간적 단위"(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로 규정하는 방식을 불신한다. 또한 역사를 진화론적 흐름으로 여기기 때문에 몇몇 사건을 통해 말끔하게 분절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어떤 역사 이론이 그 바탕에 있는지와 상관없이 이런 입장도 두가지 실질적인 단점이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우선 역사가 주로 '큰' 정치와 전쟁들에 의해 갑작스럽고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진행되기도 하지만, 경제 제도나 사회구조, 종교, 예술 양식의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 영역에서도 때때로 급속하고 압축적인 변화와 진전, 흐름의 전환이 있었다. 7세기에 일어난 이슬람의 대두나 그로부터 정확하게 9 세기 후에 이루어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1907년에 회화 양식에서 일어난 큐비즘(입체파)의 갑작스러운 등장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바탕에는 정확한 연도로 구별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작용하던 배후의 과정이, 예를 들면 새로운 사회 환경의 등장이나 오래된 예술적 표현 양식의 소진 등이 숨겨져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를 포괄하는 세계사적 시각은 수많은 고유한 시간이나 지역적 연대기들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이한 시간들을 단 하나의 도표로 환산해 나타낼 수 있는 단일한 시점의 세계시는 19세기 말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수많은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기억들은 (그들이 가진 역사적 기억이 그들에게 중요하고, 그것이 단순히 신화적인 사고로 흐르지 않았다고 해도) 각각 특수한 과거를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20세기 이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처럼 전 인류에 적용되면서 시대적인 변화로 인정될 만한 사건이 없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에게 보편사적인 돌출로 보이는 사건도, 예를 들어 수천 년에 걸친 '경험과 인식'이 뭉쳐져 발생한 1776년의 미국독립선언조차도 지루하고 기나긴 수용과 지속적인 전통 만들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연대기는 단순히 서로 합산하거나 겹칠 수 없으며, 특정 시기에 전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시대구분 모델은 이렇게 지역적으로 제한된 시간들의 산술적 평균을 계산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사의 시대구분 문제에 관해서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세계사의 시대는 유동적인 시대구분선을 둘러싸고 논쟁하는 힘겨루기의 지점이 아니라, '1789년'이나 '1914년'처럼 분명한 의미를 담은 중요한 시점들 사이에 펼쳐진 구간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밖에도 세계사에 관한 시대구분은 특정 지역의 연대기를 다른 지역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위험을 전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유럽의 시대구분 개념을 느슨하게 나머지 세계 전체에 씌우는 것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중세'나 ‘근대 초' 같은 개념들은 아무리 진지하게 수정한다고 해도 비유럽 세계에 단순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 반면에 아무리 주변 지역들을 세계사에 연관시키고자 하는 열린 자세를 취한다고 해도, 이스터섬이나 중앙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얻은 경험을 기준으로 세계사의 시대구분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버드-C.H. 베크 세계사' 시리즈 가운데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다룬 제3권은 1500년과 1800년 사이의 시기를 통상적인 '근대 초' 개념으로 칭하지 않으며, 1000년(또는 심지어 800년)에서 1800년까지의 전체 기간을 포괄하는 긴 '옛 유럽 Old Europe'이라는 개념도 사용하지 않는다. 제3권은 오히려 14세기에, 즉 흑사병에, 또는 중국과 중앙아시아에 지정학적으로 새롭고 이후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 시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전된 광역적인 역사를 18 세기 중반에 마무리한다. 다시 말해 보스턴 차 사건이나 바스티유 진격으로 극적으로 끝나게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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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앞으로 서술할 '하버드-C.H. 베크 세계사' 제4권은 지구상의 몇몇 거점을 중심으로 점차 통합되어 가던 광대한 지역권이 18세기에 서로 접촉하게 되었다는 관찰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각 부가 모두 이 주제를 다룰 것이므로 서문에서는 그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몇 가지 측면만을 사례로 언급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대서양에서는 노예무역이, 그리고 대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 교역이 절정에 도달했다. 유럽의 산업화가 막 시작되기 직전에 노예무역에 토대를 둔 농장 경영은 이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던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 동력은 아시아에서 펼쳐진 활발한 해양 무역이었는데, 여기에는 동인도회사와 같은 유럽 각국의 특허 회사들이, 그리고 아시아의 상인과 선원들이 함께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이나 베트남처럼 지나치게 고립되거나 배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 상인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아시아 국가들에서 팽창적인 식민 지배 체제가 등장할 수 있었다. 이전에 이미 유럽인들이 장악했던 거점 지역들을 넘어 영국인들은 벵골 지방에서, 네덜란드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식민 지배 체제를 구축해 갔다. 유럽인들은 아시아 지역의 해양을 계속 탐험하면서 태평양의 수많은 섬을 개방함으로써 그들의 제국과 무역에 연결했다. 1788년에는 영국의 첫 선박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상륙함으로써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한 대륙이 전 지구적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실상 1788~1789년에 우연히 이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다. 첫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화였고, 둘째는 프랑스 혁명 발발(1792년부터는 혁명전쟁이 발발해 국제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초래했다.)이었으며, 셋째는 효율적인 미합중국 정부의 등장을 의미했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집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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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서술하려는 시기가 끝날 무렵에 도달하면 이와 같은 논지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 오늘날 세계화의 전형으로 인식되는 많은 특징(집단 이주, 신속한 통신, 대륙 간 대규모 원자재 교역, 원거리 여행 국경을 넘어서는 규격의 표준화 헌법 사상과 같은 정치적 질서 개념의 확산, 세계종교의 팽창, 전 지구적 학문 교류 네트워크의 구축 등)이 이미 감지되기 시작했던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수많은 교류 관계가 형성되면서 초국적 사고와 전 지구적 비전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적 연관 관계는 금본위제도의 시행에서 최초의 국제기구 창립 (1863년에 설립된 국제적십자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점차 구체적인 제도로 자리를 잡아 갔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넓은 지역을 포괄하고 국경을 넘어서는 무수한 교류와 긴밀한 연관 관계 때문에 시대구분을 단순하고 통일된 방식으로 하기가 어렵다. 구체적인 예로 역사가들이 이 시기에 세계화의 시작에서 '본격적인' 세계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과정을 규명하려고 할 때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늦어도 세기 중반부터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는 느낌과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다는 분위기가 유럽에서만 확산된 것이 아니었다. 지구상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를 두고 '전 지구적인 1860년대'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1870년대나 1880년대도 마찬가지로 '전 지구적인 시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1870년대는 특히 이런 변화를 관찰하기 좋은 시점이다. 1866년과 1871년 사이의 기간에 일어난 독일제국의 수립이나 1878년의 베를린 회의로 유라시아와 아메리카가 지정학적으로 재편되는 과정 (1868년 이래 일본의 메이지 유신, 1864년 태평천국의 난 평정 이래 청제국의 회복, 1865년의 내전 종식 후 미국의 재건 등)이 일단 마무리되었지만, 1881~1882년에 시작된 아프리카의 정복과 식민화는 이제야 비로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1870년대는 대륙 간 통신케이불 연결이 적극적으로 추진된 시대이기도 하며, 영웅적인 기업가와 은행가가 선구적으로 세운 자본주의적 형태의 기업과 은행들이 개인을 초월하는 거대한 기업연합(재벌)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역사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진행될 경우 한 시대와 다른 시대를 선명하게 나누는 경계선이 어디인지 깨닫고 표시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맡은 '하버드-C.H.베크 세계사' 시리즈 제4권의 여러 부는 이 뒤에 이어지는 제5권인 '1870~1945: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와 서로 맞물려 있다. 제5권을 집필한 몇몇 저자가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안으로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처럼, 제4권 저자들의 서술도 미래의 소용돌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예를 들어 거의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전쟁조차, 즉 1914년 8월에 거의 모든 유럽 국가의 대규모 군대가 가담한 세계대전 같은 역사상 유례없는 극심한 갈등조차 이러한 시대의 장기적인 흐름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제국이나 국민국가의 역사에서는 극심한 혼란으로 점철된 1870년대의 10년 동안이나 유럽에서 일어난 세계대전도 시대의 전환을 보여주는 특징적 요인이 아니었다. 1919년과 1923년에 베르사유와 로잔에서 전후 질서가 정착되면서부터 비로소 유럽 제국들 사이의 관계가 초래한 장기적인 사이클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분야에서 발견되는 개별적인 발전 논리를 주어진 시대의 전체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추어서는 안 된다. 전 지구적인 역사 해석은 그것에 적합한 자체적인 시간적 편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사전에 만들어 놓은 시대구분의 틀 안에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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