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 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푸른역사 Reading_20min_20140728_6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원제: 歴史の偽造をただす―戦史から消された日本軍の「朝鮮王宮占領」) – 역사가의 기본 책무: 1차 사료의 발굴, 사료비판과 해석– 책의 핵심내용: “청일전쟁(1894-1895) 개전에 즈음한 일본군 최초의 무력 행사가 주도 면밀한 계획에 바탕한 서울 경복궁 점령이었다는 것과, 그 사실이 일본 육군이 공식적으로 펴낸 ‘일청전사'[日淸戦史]에서 위조된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것을 당사자인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기록을 통해서 실증… 그와 같은 역사 위조가 결코 일시적 발상에서가 아니라 근대 일본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왔음을 정확한 사료를 실례로 들어 논증” – 역사가의..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21_5– 영일동맹을 맺으면서 일본은 러시아를 가상적국으로 설정하게 된다. “러시아와 맞서는 일본, 위에서 미는 영국, 배후에서 지켜보는 미국”– 구미 각국은 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에 의한 무역과 금융을 통해 1873년 이래의 대불황을 해소한다.– 일본은 의화단 사건(1899-1901) 당시의 공동파병을 거쳐 구미열강(영제국, 미합중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으로 성장 – “러일전쟁은 양국에게 싸우지 않아도 좋을 전쟁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얻은 戰訓: 군비확장을 도모해도 일본의 국력은 소모전을 견디지 못하므로 정신력으로 보완해야 한다; 장비의 충실보다 병사..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13_4– “1895년 제국 일본은 야마가타가 주장하는 ‘이익선’ 개념을 명확히 채택하고, 식민지 대만과 세력권 조선을 발판으로 이후의 50년 동안을 군사력 확대와 전쟁으로 나아간다. 그 전환점은 청일전쟁이었다.”– 청일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의 적극적인 침략의지가 일관된 계획 속에서 전개되고 실현되었는가, 아니면 일본의 ‘팽창주의’는 승인하되 적극적으로 준비된 침략임은 배제할 것인가.– 청일전쟁의 이데올로기: ‘문명의 義戦’이라는 이데올로기, “전투와 살육을 정당화하는 의식 조작” – 청일전쟁의 後果1) 국제관계: 청의 군사력이 약체라는 사실을 세계에 폭로2) 戰爭特需, 戰後經營 체제: 전쟁에 따른..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07_3– 시베리아철도와 일본– 이나가키 만지로(稻垣滿次郞, 1861-1908), 東方策: 지정학적 관점에서 서술된 국제정치론– 구가 가쓰난(陸羯南, 1857-1907): “메이지 24년(1891)은 실로 우리 동양 문제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대”(1894년의 언급)–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의 의견들1) 군사의견서(1888년 1월): 시베리아철도 계획 발표 3년후. 아시아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 캐나다의 태평양철도, 시베리아철도2) 외교정략론(1890년 3월): “우리나라 이익선의 초점은 실로 조선에 있다… 시베리아철도가 완공되는 날이 곧 조선에서의 多事가 일어나는 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29_2– 일본에게는 1874년의 대만 출병의 성과를 유지·확대하려는 의지나 군사력은 없었다. 일본이 계속적인 전쟁의지를 갖게 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이다. 대륙에 확보한 이권이나 식민지를 유지·확대하는 것이 아시아·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진 일본의 국가목표였다.– 청일전쟁의 의의: 제국주의 국제체제에 가담, 계속적인 전쟁의지의 출발점, 매스미디어에 의한 국민의 탄생– 복합전쟁으로서의 청일전쟁: 1)7월 23일 전쟁(대 조선), 2)협의의 청일전쟁(대 청), 3)농민전쟁 섬멸작전(대 조선민중), 4)대만정복전쟁(대 대만민중)– 러일전쟁의 의의: 군사적 사회로 가는 길,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승리가 아니라 ..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Reading_20min_20140623_1–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한반도와 직접 관련되는 영역들이 많은 시기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는 주제를 파악할 때 관련되는 차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추상적 차원의 평화논리와 역사적 차원의 진실 규명, 법적 차원의 책임문제 등은 각각이 가진 차원에서 논의해야만 한다.– 역사는 온전히 인간이 행한 일의 기록이며,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다. ‘신의 뜻’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왜곡, ‘자학사관'(自虐史觀)에 관한 논의는 메이지 시대에 대한 찬양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 “일본의 군대는 청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16_7야스마루 요시오(安丸 良夫), 근대천황상의 형성(近代天皇像の形成) 읽기 – 18세기 말까지의 이데올로기 상황 속에서 질서의 정당화: “막부와 번의 권력과 결합하여 유교적인 仁政觀을 전제로 한 질서상” – 19세기 이후 등장한 천황숭배론과 국체론으로써 체제(regime)의 통일성을 이루는 기본요소가 전면적으로 교체됨 – 천황권위의 내면화: “학교 교육과 청년단, 재향군인회 등을 통해서 천황 숭배와 국체관념은 점차 깊숙히 국민의식 속에 파고 들어가게 되며, 근대화 과정의 성과는 천황의 권위와 결부되어 국민의 통념적인 부분을 형성” – “천황에게 권위 중추를 두고 국민국가로서의 통합과 발전을 꾀한다는 지상의..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09_6야스마루 요시오(安丸 良夫), 근대천황상의 형성(近代天皇像の形成) 읽기– 전통적 권위로서의 천황: “교토를 중심으로 의례적 질서나 우주론적인 차원에서 조정숭배나 신국론으로 경사(傾斜)하여 스스로의 사회적 존재를 권위지우는 경향”– 현실 권력으로서의 막부의 장군: “장군=국왕설의 입장에서 막부의 전제적 지배권을 명확히 하려는 동향”– 체제의 위기: “권력이 구성하려는 질서나 질서의식과 사회의식의 다양한 흐름과의 사이에 균열” “여기에 일정한 형태의 새로운 질서관념이 적극적으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위기의식이라는 별도의 매개가 필요”– 대립되는 체제 정당화 기제들의 충돌, 위기의식의 돌출, 새로운 질서를 내재..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02_5야스마루 요시오(安丸 良夫), 근대천황상의 형성(近代天皇像の形成) 읽기– 천황을 파악하는 두 가지 방법: 연속설(고대부터 연속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 단절설(“우리가 천황제라고 할 때 흔히 통념적으로 연상하는 것들도 실은 메이지 유신을 경계로 하는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 근대 천황제의 기본관념들이 명확하게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정리되는 것은 근대 후기 이후의 일본 사회 전체가 전환하는 과정에서였다.– 근대 천황제의 네 가지 기본 특징1) 萬世一系의 皇統: 現人神 천황과 여기에 집약되는 계통적 질서의 절대성과 불변성 — 전통성과 정통성2) 祭政一致라는 神政旳 理念 — 초월적 권위성3) 천황과..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526_4– 일본제국의 ‘근대국민국가’ 편성원리로 등장한 천황과 신민(臣民)개념 – “신민이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이며, 민권이나 공권을 상실한 사람도 또한 제국의 신민임에는 틀림없다.” – “신(臣)과 민(民)을 융합시켜 ‘천황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면 모든 ‘일본인’을 천황과의 관계하에서 일원화시킬 수 있다.” – ‘입헌주권’과 ‘천황대권’이라는 이중성 위에 세워진 대일본제국 헌법은 흠정헌법(欽定憲法)이므로 비민주적이지만 폐지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내각은 의회, 정당에 의한 민주적 요구를 받게 된다. – 야스마루 요시오(安丸 良夫), 근대천황상의 형성(近代天皇像の形成)에서 제시..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518_3– 자유주의 경제와 민중의 생활: “경제적 자유주의를 근거로 한 ‘강한 자의 자유’ 하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으며, 지역이나 직장에서 ‘불결’하고 ‘태만한 자’라고 불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규제하고, 가혹한 노동조건과 높은 소작료에도 인내하면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노동해야 하는 ‘근대’라는 시대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초대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森 有礼)의 국민주의 교육– 학력주의, 기회의 평등, 우승 열패, 자기책임– 내국식민지와 탈아론(脱亜論)– 만국공법의 기초로서의 근대적 소유권의 논리에 따라 주인없는 땅과 미개지에 대한 점령을 통해 ‘영토’ 획..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512_2– 다루는 순서: 제1장 자유 민권 운동과 민중 – 제2장 ‘헌법과 의회’를 둘러싼 공방; 제3장 자유주의 경제와 민중의 생활 – 제5장 학교 교육과 가족; 제4장 내국 식민지와 ‘탈아’로의 길; 제6장 근대 천황제의 성립–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 ‘평등’을 역설하고 ‘학문’을 장려했던 것은 민중의 客分意識을 불식시켜 ‘국민’으로서의 자각,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지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근대국가 건립의 매개로서의 학문과 국민교육으로 轉化– 민권파는 객분의식을 가진 민중과 생각이 달랐다. “군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한, ‘천하와 우락(憂樂)을 함께 하는’ 민권파에게 병역은 당연한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