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뿌리 | 06 해방된 낭만주의


필사본이 있어서 별도로 강의 내용을 요약하지 않았다.


강유원의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6

강의 교재: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목차: 1강 낭만주의의 정의를 찾아서

               2강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반격

               3강 낭만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들

               4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1)

               5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2)

               6강 해방된 낭만주의

               7강 지속되는 영향력

               8강 지속되는 영향력




2006년 여름 풀로엮은집

낭만주의 강의

강사 : 강유원

필사 : 이재만

교재 : 이사야 벌린,『낭만주의의 뿌리』(The Roots of Romanticism), 이제이북스, 2005


6강 해방된 낭만주의

“이제 해방된 낭만주의가 마침내 어떻게 폭발했는지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낭만주의 운동에 관해 가장 권위 있는 글을 썼으며, 실제 그 자신도 이 운동의 일부였던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에 의하면, 이 운동 전체에 미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으로도 깊은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요인이 있는데, 순서대로 말하자면 피히테의 지식학과 프랑스 혁명, 괴테의 유명한 소설『빌헬름 마이스터』가 그것이다. 이렇게 대응시키는 것이 합당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지를 지금부터 밝히고자 한다.”(153쪽)


지금까지 읽어온 것처럼, 이사야 벌린은 사실 낭만주의 운동을 미학적 측면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주로 정치적, 도덕적, 사상사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이러한 해석이 낭만주의에 관한 올바른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시대 사조나 사상사적 운동을 바라보는 데 있어 좋은 시사점을 제시해주는 것은 틀림없다. 즉 벌린이 제시하는 낭만주의 해석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렇게 다면적인 고찰을 한다는 것은 학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물론 철없는 시절에 다면적 고찰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어쨌든 다면적 고찰보다는 집중적 고찰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10년쯤 집중적 고찰을 한 후에 다면적 고찰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벌린이 세 가지 요인을 언급했는데, 보면 알겠지만 프랑스 혁명과『빌헬름 마이스터』는 아주 간략하게만 다룰 뿐이다. 주로 피히테의 지식학에 관해 말하고 있다.


나누어준 자료 -「Fichete에 있어서의 절대적 자아의 구조」 - 를 보자. 칸트가 말하는 자아는 용감한 자아가 아니다. 즉『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는 자아는 대상세계를 변형시키는 자아가 아니라 수동적인 자아이다. 상기하는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하겠다. 우리에겐 자아가 있다. 이 자아는 대상이 보내는 data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직관의 형식으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다음 자아가 가진 오성의 Kategorie들이 이렇게 받아들인 data에 능동적으로 작용해서 인식을 구성한다는 것이 칸트의 인식 이론이다. 유념해야 하는 것은, 선험적 자아가 가진 Kategorie가 대상세계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받아서 한 번 걸러준 직관의 산물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자아는 대상세계를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자아는 대상에 대해 그렇게 용감하지 않다.


그런데 자료에는 ‘Fichete에 있어서의 절대적 자아’라고 했다. 이 논문을 전부 설명 할 수는 없으니, 벌린의 텍스트를 읽는 데 필요한 몇 가지 개념만을 설명하겠다.


“절대적 자아란 Fichte의 초기 지식학의 중심개념이요, 그가 이른바 “전철학의 기초”로서 제시한 것이다. 그의 선행 철학자 Kant가 남겨놓은 최대의 과제는, 이를 문제사적 연관에서 보자면, 이론이성의 영역과 실천이성의 영역을, 다시 말하면, 감성계와 예지계를 통일하는 하나의 이성의 체계를 수립하는 일이었다.”


“Kant가 남겨놓은 최대의 과제”가 바로 칸트 이후 철학자들의 학의 목표이다. 칸트에게서 이론이성의 영역과 실천이성의 영역은 별개의 것으로 작동한다.『순수이성비판』에서 도출되는 원리들이『실천이성비판』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론과 실천은 전혀 상이한 원리에 의하여 성립되는 별개의 영역이었으며, 그 때문에 그는『판단력비판』에 있어서 이 양자의 통일의 원리를 자연의 합목적성에서 찾으려고도 했으나, 이것은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을 넘어 선 새로운 제삼의 원리를 추가하는 결과가 되었을 뿐이요, 양자의 진정한 통일이 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칸트가 남겨 놓은 이 문제에 독일 관념 철학자들이 도전하게 되었고, 피히테도 그러했으며, 그때 피히테가 제시한 것이 ‘절대적 자아’였다.


“Fichte에 있어서 전철학의 기초로서의 절대적 자아의 개념은 이론을 실천에 종속시킴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칸트에게 이론은 이론이고 실천은 실천이었다. 칸트는 하나를 다른 하나에 종속시키려 하지 않았고, 그 둘을 매개하는 판단력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런데 피히테는 이론을 실천에 종속시키려 한다. 칸트와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 여기서 피히테의 이론이 비이론적이라는 것과, 낭만주의와 친연성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아는 활동자임과 동시에 활동의 소산이다... 활동(Handlung)과 그 결과(Tat)와는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행(Tathandlung, 事行)의 표현인 것이다.”


독일어 Sache를 영어로는 matter로 옮긴다. 그런데 독일 관념론의 맥락에서는 matter로 옮길 수 없다. Sache는 事像으로 ‘사물의 핵심적 본질’이라는 뜻이다. 칸트에서 ‘물 자체’는 Ding an Sich인데, 영어로는 thing in itself로 자기 자신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는 접촉할 수 없다. 우리의 인식 주관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헤겔은 인식 주관이 대상을 개념적으로 완전히 파악해서 낱낱이 알아낸 것을 Sache라고 한다. 어쨌든 이들은 개념적인 파악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피히테는 Handlung 개념을 도입했다. 이것이 실천 우위를 말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면 대상이란 활동을 저해하는 “저항”(Widerstand)이요, 따라서 활동이 이 저항을 극복하려고 하는 데에서 대상은 대상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아가 자아에 대하여 비아로서 정립되려면, 즉 자아에 대하여 대상이 되려면, 자아 안에 비아의 장해와 이 장해를 극복하려는 능동성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Fichte가 “이성은 실천적이 아니면, 그 자신은 이론적일 수 없으며, 만일 인간에게 실천적 능력이 없으면, 그에게는 지성도 가능하지 않다. 모든 표상의 가능성은 실천적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또한 더욱 간명하게 “자아 안에 실천적 능력이 없으면, 지성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소이이다.”


“그러나 Fichte의 절대적 자아의 개념은 그의 초기 지식학을 넘어서서 다음에 나타날 절대자의 철학을 준비하는 원리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I. H. Fichte는 아버지의 절대적 자아의 본질을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 순수한, 일체를 창조하는, 모든 주관과 객관을 자기 속에 정립하는 절대적 통일은 분명히 Shelling이, 그것도 일치하는 명칭으로, 주관과 객관과의 동일성이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한 원리요, 또 나아가서는 Hegel이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이념의 이설로서의, 절대적 이성의 이설로서의 그의 논리학의 내용으로 삼았던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Fichte는 정확한 역사적 평가에 따르면 두 사람에 대해서 원리의 창시자 - 흔히 생각하듯이, 단지 원리에 대한 표현이나 말의 창시자가 아니라, 완전히 규정된 원리의창시자 - 로서 관계하는 것이다.”


I. H. Fichte는 피히테의 아들이다. 피히테 전집은 아들이 편집했다. ‘절대적 자아’와‘절대자’는 구별된다. ‘비아’ 개념이 있듯이, ‘절대적 자아’와 대립되는 것이 있다.그런데 ‘절대자’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절대자’는 자기와 대립되는 모든 것들을자기 안으로 끌어들인다. I. H. Fichte가 말하는 부분이 이따가 우리가 읽게 될 피히테의 지식학에 의해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조들을 핵심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모든 주관과 객관을 자기 속에 정립하는 절대적 통일”이 피히테의 아들이 보기에 ‘절대적 자아’이다. “주관과 객관과의 동일성”은 셸링의 동일(同一) 철학, Identitätsphilosophie이다. ‘즉자대자적’은 ‘절대적으로’라는 뜻이다. I. H. Fichte는 셸링의 동일 철학이든, 헤겔의 절대적 정신의 철학이든 모두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셸링은 피히테와 어떻게 다른가? 피히테에서는 여전히 비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셸링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동일하다. 그렇다면 셸링과 헤겔은 또 어떻게 다른가? 셸링은 그냥 동일성이다. 그래서 헤겔이 무차별적 동일성이라고 비판한다. 헤겔의 동일성은 모든 것을 낱낱이 음미하고 검증한 후의 동일성이다. 이것을 헤겔은 ‘구별 속의 절대자’라고 말한다. 엥겔스의『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관념 철학의 종말』에 잘 나와 있다. 피히테가 셸링과 헤겔에 대해서 원리의 창시자라는 평가는, 피히테의 아들의 평가이기도 하지만, 독일 관념 철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벌린의 책으로 돌아가자.


“피히테를 언급하면서, 나는 그가 능동적이고 역동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자아를 우상화했다고 말했다.”(153쪽)


한 마디로 피히테의 자아는 용감한 자아이다. 피히테는 약간 광분한 철학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흄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때, 무수한 감각과 감정, 기억의 파편, 희망이나 두려움 같은 온갖 종류의 미세한 심리적 구성 요소들을 발견했지만, 정확히 자아라고 부를 만한 어떤 실체도 인식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자아란 직접 지각되는 대상인 어떤 실재가 아니라, 다만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정체와 역사가 형성된 경험의 연속에 붙은 이름, 즉 실제로 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양파를 한 줄로 꿰어 놓은 실과 같다고 결론내렸다. 칸트 또한 이러한 명제를 받아들였으며”(154-155쪽)


칸트가 흄의 명제를 받아들였으니, 칸트의 자아는 흄의 자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칸트의 자아는 용감하게 나서서 대상세계에 대해 무엇을 할 만한 것은 아니다.


“피히테는 더욱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여 자아가 인식의 작용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자아를 인식하는 것은 오직 어떤 저항이 있을 때뿐이다.... 비아非我와 구별되는 실체로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그 장애물의 영향이다. ”(154쪽)


“주체로서의 “나”는 결코 인식의 작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에 충격을 주는 어떤 것을 통해 인식될 따름이다. 이것을 피히테는 “장해”, 또는 “충돌”이라 불렀고, 그는 이것을 모든 경험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범주로 여겼다.... 그러한 저항에서 자아와 비아가 정립된다.”(155쪽)


아까 자료에서 읽은 것을 벌린은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피히테의 자아는 “어떤 충돌이나 대립”을 통해 인식되는, 비아를 자아에 통합시키려 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156쪽부터는 벌린의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피히테, 셸링, 헤겔을 묶어서 독일 관념론이라고 한다. 사실 관념에서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해 왔을 뿐이다고 말했을 때 겨냥한 철학자들이 피히테, 셸링, 헤겔 같은 독일 관념철학자들이었다. 그리고 헤겔이 말하는 노동도 오로지 정신적인 노동일 뿐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개념의 노고만 있으면 노동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으로부터 피히테는 그 후 낭만주의자들의 상상력을 지배하게 된 거대한 이상상을 전개하는데,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은 앞서 설명하려 했듯이, 창조적으로 활동하고,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며, 다른 사물들에 침투하여 가치를 창조하고, 스스로 이러한 가치들에 헌신하는 특정한 자아의 파편이다. 잠깐 암시했듯이, 이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지닐 수도 있어서, 자아가 더는 개인과 동일시되지 않고, 지역 사회나 교회, 국가나 계급과 같은 어떤 초인격적인 실체와 동일시될 때, 이것은 전진을 강요하는 거대한 의지가 되며, 그 특정한 인격을 외부 세계에 강요함과 동시에, 단순히 그 구성 요소의 역할이나, 더 거대하고 장엄하며 역사적으로 더욱 지속적인 인격성의 일부로 환원될 수도 있을 인간 존재에게도 강요한다.”(156쪽)


이것이 벌린이 해석하는 피히테의 자아이다. 피히테의 지식학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이러한 해석을 제시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독일 민족에게 고함’으로부터 역추론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즉 ‘독일 민족에게 고함’을 핵심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절대적 자아 개념을 제시한 것 같기도 하다. 피히테의 인생 행로를 보건대 일견 옳아 보인다. 그렇게 못할 것도 없었다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칸트를 제외하고 피히테, 셸링, 헤겔은 모두 그런 혐의를 받을 만한 짓들을 했다. 이들은 나름대로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벌린처럼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에 대한 철학적 맥락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피히테를 낭만주의와 연결시키기 위해 조금 과잉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다.


156~158쪽은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벌린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피히테를 올바로 평가하자면, 이것은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빠진 독일인의 연설은 아닌데, 그가 말하는 독일 민족이란... 모든 게르만 민족을 뜻하기 때문이며... 이 설교의 핵심은 단지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나폴레옹의 군화에 짓밟혀 시들어 가고 있는 독일인의 정신을 고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설교의 주된 목적인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 즉 그저 부속물일 뿐인 이들과 진정한 실체, 진정한 조직을 폭넓게 구별하는 것이다.”(158쪽)


이 평가는 굉장히 의아하다. 이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독일 민족에게 고함’은 독일 민족주의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이번에 이제이북스에서 출간된『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을 보면 테리 핀카드는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우리가 벌린에게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가 바탕에 깔고 있는 개념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의욕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158쪽)


실천에 이론을 종속시키려는 것과, 피히테는 의지론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것이 피히테가 낭만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이라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 -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의지와 사물의 본성이 있다는 진리의 거부, 만물에 불변의 구조가 있다는 개념을 파괴하고 전복하려는 시도 - 는 이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운동의 가장 심오하고, 어느 정도는 가장 비상식적인 요소들다.”(189-190쪽)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의지”의 이론적 연원을 벌린은 “나는 의욕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 개념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인간 의지의 살아 있는 원리를 자연 - 칸트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는 죽은 물질이자, 형상을 부여받아야 할 것으로, 그것에 부여되어야 할 어떤 조화와는 대립되는 것이었던 - 과 대비시킨 피히테와는 달리, 셸링은 신비주의적 생기론을 지지했다. 그에게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것이었으며, 이른바 정신적인 자기 전개였다.”(159쪽)


셸링은 인간의 의지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동시에 생동하는 자연을 제시하려 한다. 낭만주의의 자연 개념이 있는데, 이것에 대한 철학적 이론화는 셸링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셸링에게 신은 이른바 의식이 자기를 전개하는 원리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 신이야말로 알파와 오메가, 곧 시작과 끝이라고 그는 말한다. 알파는 무의식의 상태이고, 오메가는 자신에 대한 충만한 의식에 이른 상태이다.” 신은 진보하는 현상이며, 창조하는 진화의 한 형태니, 이 개념은 베르그송이 자기 것으로 만들었지만, 사실 그에 앞서 셸링에게서 등장하지 않은, 오로지 베르그송만의 사상은 극히 일부분이다.”(160쪽)


여기서 ‘신’은 기독교적인 신이 아니다. 그리고 베르그송에 대한 평가는 벌린의 해석일 뿐이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베르그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이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측면도 많다. 여기서 굳이 베르그송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이 사상은 독일의 미학이나 예술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자연 만물에 생명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 인간이 자연의 가장 자각적인 대표자에 지나지 않는다면, 예술가의 임무는 자신의 내부를 탐색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내부에서 움직이는 어둡고 무의식적인 힘들을 탐색하여, 이것을 가장 고통스럽고 격렬한 내적 투쟁을 통해 의식의 세계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셸링의 사상이다.”(160쪽)


이것이 셸링의 예술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셸링 참 많은 일을 했다. 오늘날에는 셸링을 거의 읽지 않지만, 당대에는 셸링이 천재였다.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대를, 정신적인 산물로서나 일대기로서나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짚어보라고 하면, 나는 셸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어둡고 무의식적인 힘들을” “의식의 세계로 끄집어”낸다고 해서, 계몽주의에서 말하는 의식은 아니다. 오히려 “어둡고 무의식적인 힘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셸링에게 유일한 예술 작품, 즉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은... 완전한 의식에 이르지 않은 생명력의 파동을 전달하는 자연과 유사한 작품들이다... 과학처럼 그저 주의 깊게 관찰한 후 자신이 본 것을 전적으로 명료하고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정직하게 기술한 결과물은 이미 죽은 것이다.”(161쪽)


지난 번에 비어슬리의 책을 통해 계몽주의 미학을 간략하게 살펴본 적이 있다. 계몽주의 미학은 합리론에서 ‘이상적 모방’을 빌려온다. ‘이상적 모방’(ideal mimesis)은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독일 이상주의의 ‘이상’은 이것과 다르다. 독일 관념론 혹은 이상주의는 Idealismus인데, 이 말이 참 이상하다. Idea의 창시자는 플라톤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이데아’는 수학적인 엄밀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조화를 말하는 반면, 독일 이상주의의 이상은 이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방금 읽은 부분과 관계가 있다.


“예술 작품의 생명력, 곧 예술 작품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특질은 우리가 자연에서 예찬하는 것과 유사하니, 곧 어떤 힘과 권능, 에너지, 생명력, 터질 듯 쏟아지는 활기이다.”(161쪽)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상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관습적인 상징이고, 다른 하나는 어쨌든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상징이다... 낭만주의자들이 말하는 상징주의의 의미는 오직 상징적으로만 표현될 수 있으며, 이는 문자 그대로는 표현될 수 없는 무엇에 대해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다.”(163-164쪽)


“낭만주의 사상에 따르면, 우리를 둘러싼 실재와 우주는 끝없이 전진하며, 거기엔 어떤 무한하고 고갈되지 않는 것, 유한한 것들이 그것의 상징이 되고자 하나 당연히 실패하고 마는 무엇이 있다. 우리는 오직 자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수단을 통해 전달 가능한 무언가를 전달하려 애쓰나, 이것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전달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니, 이 전체는 말 그대로 무한한 까닭이다.”(165-166쪽)


한 마디로 상징은 전달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상징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무엇을 느끼는가? ‘깊이’를 느낀다. ‘깊이’는 이해 가능한 것으로 설명 할 수 없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너무너무 낭만주의자들이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심오하다는 인상을 받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이러한 말들을 적용시킬 때마다 그것들이 새로운 지평을 열며, 이러한 지평들은 다른 것으로 환원하거나, 파악하거나, 설명, 축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추론을 통해 이 모든 것에 이르게 되는 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169쪽)


오늘은 여기까지 읽는다. 다음은 내가 꼽은 문장이다.

“낭만주의 사상에 따르면, 우리를 둘러싼 실재와 우주는 끝없이 전진하며, 거기엔 어떤 무한하고 고갈되지 않는 것, 유한한 것들이 그것의 상징이 되고자 하나 당연히 실패하고 마는 무엇이 있다.”(165쪽)


여기에 아주 중요한 대립쌍이 나온다. 바로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이다. 독일 관념론에서 중요한 motive 중 하나는 주관과 객관인데, 또 다른 하나는 유한과 무한의 통일이다. 다음 시간에는 170쪽부터 하고, ‘7강 지속되는 영향력’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겠다. 마지막 시간에는 존 산본마쓰의『탈근대 군주론』(갈무리)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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