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뿌리 | 05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2)


필사본이 있어서 별도로 강의 내용을 요약하지 않았다.


강유원의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5

강의 교재: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목차: 1강 낭만주의의 정의를 찾아서

               2강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반격

               3강 낭만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들

               4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1)

               5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2)

               6강 해방된 낭만주의

               7강 지속되는 영향력

               8강 지속되는 영향력


도서목록: 후지따 쇼오조오: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알렝 핑켈크로트: 사유의 패배

              린 헌트: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2006년 여름 풀로엮은집

낭만주의 강의

강사 : 강유원

필사 : 이재만

교재 : 이사야 벌린,『낭만주의의 뿌리』(The Roots of Romanticism), 이제이북스, 2005


5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2)

피히테를 읽으면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비로소 독일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소개하겠다. 후지따 쇼오조오의『전체주의의 시대경험』(창비)를 권한다. 보통 르낭의『민족이란 무엇인가』(책세상)이나 베네딕트 앤더슨의『상상의 공동체』(나남) 같은 책을 많이 추천하는데 이 책들도 좋다. 읽지 말라는 건 아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인도네시아의 경우를 가지고 연구했다. 인도네시아만 하더라도 한국보다는 훨씬 더 다민족 국가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정말 어마어마한 다민족 국가이다. 한국과 일본은 아주 독특하게 거의 단일한 민족을 형성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민족주의에 관한 탁월한 저작이 나오지 않았다. 메이시유신 이후로 일본의 민족주의는 위로부터 조직된 민족주의다. 한국과 일본처럼 단일한 민족성에 대해 알고 싶을 때는『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이 좋다. 한국에는『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한길사)를 쓴 마루야마 마사오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 군국주의 분석은 심리학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에 비하면 후지따 소요조오는 굉장히 강건하다. 그리고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에 나오는 문화나 민족 개념 등은 민감하게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에 덧붙여 읽고 싶다면 알렝 핑켈크로트의『사유의 패배』(동문선)를 권한다. 원서와 대조해서 읽어보진 않았으나 오역이라 짐작되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피히테 이후에 나타난 독일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을 접할 수 있다.


피히테에 관해 철학적으로 궁금하다면, 한국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 전혀 없다. 피히테를 연구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난 번에 읽을 때 “히틀러도 한때는 무명이었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런 것처럼 벌린은 낭만주의를 독일 민족주의, 그리고 나치의 민족주의와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피히테와 실러를 읽어보자. 실러에게서는 낭만주의적 영웅 개념이 두드러진다.


“칸트의 사상에 대한 온갖 종류의 해석이 18세기 말에 등장했으나, 우리의 관점에서 가장 생생하고 흥미로운 해석은 그의 충실한 제자이자 극작가, 시인, 역사학자인 프리드리히 실러에게서 나왔다.”(128쪽)


실러는 강단 철학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사회적 세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실러를 읽었다. 헤겔도 어린 시절에 칸트보다는 실러를 열심히 읽었다. 일반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칸트보다 실러가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실러 또한 칸트와 마찬가지로 의지, 자유, 자율성,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인간이라는 관념에 경도되어 있었다.”(128쪽)


이런 것들이 실러가 칸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나 칸트에게 이런 것들은 계몽의 개념이지만, 실러는 이런 관념들로부터 낭만주의적으로 뛰어올랐다. 벌린은 실러의 칸트에 대한 해석을 “가장 생생하고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생생하고 흥미롭다는 것은 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엘베티우스나 올바크 같은 이들은 단순히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예술적이고 경제적인,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사실에 입각한 문제들에는 어떤 올바른 대답이 존재하며, 중요한 것은 단지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대답들을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일 - 어떻게 그들을 거기까지 이르게 할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 이라고 믿었으나”(128-129쪽)


엘베티우스나 올바크는 기계론적 유물론자들이라고 한다. 이들 역시 계몽의 자식들이다. 계몽주의는 보편적 이성과 과학적 법칙에 따라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소박하고도 순진한 태도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적 합리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러한 합리성을 계속 추구하면 인간도 합리성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가 될 수 있다.


엘베티우스나 올바크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유물론자가 되어서 매사를 물질적으로 보았다. 린 헌트가 쓴『포르노그라피의 발명』(책세상)이란 책이 있다. 18세기에 포르노그라피를 그릴 때 인간을 기계로 대하는 태도가 나타났다.


“그들과 달리 이러한 견해에 정면으로 반대한 실러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자연을 초월하고, 자연에 형상을 부여하며, 자연을 개척하여 자신의 훌륭하고 자유롭고 도덕적인 의지에 복종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한다.”(129쪽)


실러는, 자연과학적 합리성에 맞서 자연은 전범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physis는 그리스 시대에는 ‘사물의 본질’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리고 地水火風이라는 four elements를 말하는 물활론(物活論)자들이 있었다. physis는 활동하고 있는 물질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physics, 즉 물리학에서 말하는 물질을 살아 있는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고대 그리스에서 physis에는 활성적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동시에 ‘자연’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요컨대 고대 그리스에서 physis는 ‘자연’인 동시에 ‘사물의 본질’이었으며 또한 동시에 죽어 있는 것이아니라 활발하게 움직이는 대상이기도 했다. physis가 라틴어로는 natura로 번역되었다. natura는 to develop, to grow 즉 ‘자라다’, ‘성장하다’는 의미이다. 이때까지도 ‘활성적’이라는 뜻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에 natura는 nature가 되었다. 지난 번에 읽은 부분 중에 nature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17세기와 18세기의 작가들이 “자연nature”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아주 수월하게 그것을 “생명life”으로 옮길 수 있다. “자연”이라는 용어는 지금 “창조적creative”이라는 용어가 그렇듯이, 18세기에 아주 널리 쓰였으며, 이와 거의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44쪽)


17, 18세기까지도 active한 자연, 살아 있는 자연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실러는 이러한 자연을 초월하고, 형상을 부여하고, 개척하고, 복종시키고자 했다. 실러에게 자연은 살아 있기에 무서운 존재였다. 실러는 자주적인 의지를 가지고 자연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쉬지 않고 정신적인 자유에 관해 말하는데, 그것은 이성의 자유, 자유의 왕국, 자유로운 자아, 내적 자유, 정신의 자유, 도덕적 자유, 자유로운 지성 - 특히 그가 즐겨 쓰는 표현인 - 성스러운 자유, 견고한 자유의 요새와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며, “자유” 대신 “자주”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129쪽)


여기서 말하는 자유를 현실적 자유, 사회적 자유로 이해하면 안 된다. 지난 번에 살펴보았듯이 당시 독일은 벌린의 표현대로 “촌구석”이었다. 그런 곳에서 무슨 자유인가. 내면의 자유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


“실러의 비극 이론은 바로 이 자유라는 개념 위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바로 이런 방식 덕분에 문학과 조형 예술 양쪽에 걸친 낭만주의 예술은 칸트의 직접적인 저작보다는 그의 작품을 통해 더욱 강력한 영향을 받은 듯하다.”(129쪽)


실러가 낭만주의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약간 벌린의 독자적인 해석이다. 여기서 벌린이 거론하고 있는 낭만주의는 문학이나 예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낭만주의는 일종의 Zeitgeist(시대정신)이었다.


“이들은 모두 비극적 인물로, 그 이유는 자신을 굽히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쾌락의 형태든 고통의 형태든, 육체적 유혹이든 도덕적 유혹이든, 유혹에 굴하지 않고, 중대한 갈림길에서 팔짱을 낀 채 자연에 맞섰기 때문인데, 이 반항 - 실러의 경우, 여느 반항과는 달리 인간이 진정으로 헌신하는 어떤 이상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도덕적 반항 - 이 비극을 만드는 요소이며, 이 비극은 반항이 갈등을 빚어내기에 생겨나고, 인간은 이 갈등 속에서 경우에 따라 자기보다 지나치게 거대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은 힘들에 맞선다,”(130쪽)


고대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 같은 이들도 눈을 찌를망정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자유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독일 비극은 인간의 의지로 맞서는 것이다. 실러에게 비극적 영웅의 모습은 자연이라는 필연성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였다.


“실러의 대표적인 구절을 하나 인용해 보겠다.

하나의 전체로 간주되는 자연의 바로 그 현상들이 자연을 규정하는 인간 오성의 모든 법칙을 조롱하니, 자연은 자신의 방종하고 변덕스러운 추이대로 나아가며, 어떤 경의도 표하지 않은 채 인간 지혜의 산물들을 흙발로 짓밟고,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 고귀한 것과 비천한 것을 마구잡이로 낚아채 똑같이 끔찍한 재앙 속으로 끌어들이며, 개미들의 세계는 보호하면서 자신의 가장 영광스런 피조물인 인간은 그 거대한 팔로 붙잡아 으스러뜨리고, 종종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가장 위대한업적을 흩어 버리는가 하면, 실로 한 시간 만에 어이없이 자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며, 어리석고 불필요한 일에는 꼬박 몇 세기를 바치니...”(132쪽)


“그리하여 그는 이 원초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인과율을 따르는지 우연을 따르는지 모를 실체인 자연과, 도덕을 가지고 있으며, 욕망과 의지, 이해와 의무,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자연에 맞설 필요가 생기면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을 광범위하게 대조한다.”(132-133쪽)


그렇다면 실러는 당연히 자연이 아닌 인간 편에 서 있는 것이다. 칸트에게서는 이 정도까지 자연과 대립하는 인간 내면의 의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어디까지 나아갔는지를 보여 주는 아주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실러는 칸트의 해결책에 반대했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보기에 칸트의 의지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해방시키기는 했으나, 칸트가 우리 앞에 제시한 길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제한된 칼뱅주의의 세계로 들어가는 지극히 좁은 도덕의 길로, 거기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연의 노리개가 되든가 칸트가 생각했던 루터주의의 의무라는 엄격한 길을 따르는 것밖에 없는데, 이 길은 인간의 본성을 불구로 만들고 파괴하고 구속하며 방해하는 길이었다.”(133쪽)


실러가 보기에 칸트의 업적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칸트는 그렇게 발견한 인간의 자유를 엄격한 도덕의 길로 국한시켜버렸다. 실러에게 비극적 영웅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137쪽에 언급되는『군도』즉 떼강도의 두목인 카를 모어는 영웅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려진다. 인간의 의지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실러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들자면, 고대 그리스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경외감이 있다. 이것이 실러, 횔덜린, 헤겔, 마르크스 등을 사로잡았던 하나의 공통된 지반이다.


“여기서 창안된 형식에 대한, 인간이 만든 이상에 대한 열정이 생겨난다. 한때 우리는 완전한 총체였으며, 우리는 그리스인이었다. (이것은 그리스인에 대한 거대한신화로, 분명 역사적으로 몹시 우스꽝스러운 생각이지만, 정치적으로 무력한 상황에 있던 독일인들 - 실러와 횔덜린, 헤겔과 슐레겔과 마르크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142쪽)


여기서 ‘총체’는 독일어로 Totalität인데, 총체성으로 번역된다. 그리고 Allheit, Ganzheit는 전체성으로 번역된다. Totalität은 부분들이 모여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한다. 실러, 횔덜린, 헤겔, 슐레겔, 마르크스 같은 이들은 Totalität을 학적인 개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이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 이것이 잘못 흐르면 전체주의가 된다. 이 Totalität를 그리스에 대한 생각에서 구성해 냈다.


“우리는 태양 아래 뛰놀던 아이들이었으며, 필연과 자유, 정념과 이성을 구분하지 않았으니, 따라서 이것은 실로 행복하고 순수한 시대였다.”(142쪽)


필연과 자유, 정념과 이성이 구분되지 않은 혼연일체된 유기적 전체로서의 총체성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이상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연과는 대립되며,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므로, 이상주의 - 목적의 발명 - 는 자연과의 단절이고,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자연을 변화시키고, 자신을 계몽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이 다루기가 쉽지만은 않은 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갈등도 없는 바람직한 방법으로 어떤 이상을 좇고 실현하게 만들도록 허락하게 하는 것이다.”(142-143쪽)


마르크스의 경제학 저작에는 이러한 개념들이 나오지 않지만,『경제학-철학 수고』에는 등장한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해방, 자유 등의 개념은 독일 낭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연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 인간성을 실현하려면 자연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태도가 드러난다. 그러니까 공산주의라는 것이, 모두 똑같은 시계 차고 반바지 입는 것이 아니라, 미학적인 상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 정신의 해방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분명 계몽주의자다. 실러는 더 나아가 자유의 해방까지 말했지만, 어쨌든 문학에서 그쳤다. 이제 피히테를 하겠는데, 피히테는 낭만주의가 정치와 사회 영역까지 확장되는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다. 굉장히 위험한 인물이다. 칸트의 자아는 자율적 자아, 도덕적 자아이다. 그런데 피히테에 이르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아가 거론된다. 결국 민족 자아가 되는 것이다. 헤르더에게도 민족주의가 있었지만 독일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로 향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계몽의 이념을 존중하는, 보편성에 근거한 민족주의였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을 외치는 꼴통 민족주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피히테에게는 헤르더적인 보편성이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민족, 인종, 문화 이 세 가지가 초개인적인 실체로까지 올라가고, 그것 자체로 독자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되며, 독일 민족주의로 전개된다. 헤겔과 헤르더가 나치즘에 기여했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피히테라고 본다. 피히테에게서 추상적.보편적.문화적 민족주의가 매우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전개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강의 초반에 거론했던『사유의 패배』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유의 패배’는 ‘계몽의 패배’라는 의미이다.


“피히테가 낭만주의 사상에 기여한 바는 이러하다. 그는, 만일 우리가 단지 생각하는 존재고, 자신의 영역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청받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에 대한 답을 발견해 내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결코 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이란 단지 언제나 더 광범위한 지식을 전제하기 때문인데, 우리는 어떤 명제에 도달하여 그것의 검증을 요청받으면 첫 번째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다른 지식, 다른 명제를 도입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명제가 또 다른 증명을 필요로 하고, 그 관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더 광범위한 일반화가 요구되며, 이러한 일이 무한히 반복된다. 따라서 이러한 탐구에 끝은 없으며, 우리는 그저 스피노자의 체계, 잘 해야 그 안에서 그 무엇도 움직일 공간이 없는 엄밀하고 논리적인 통일체로 귀결된다.”(141-142쪽)


이것은 흔히 말하는 엄밀한 학, ‘관조적인 지식’이다. 


“삶은 자연이나 자연의 대상에 대한 무관심한 관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142쪽) 


이것이 이른바 철학적 학이라고 널리 알려져 왔던 것인데, 피히테는 인간이 ‘신념의 행위’를 따라 움직인다고 말한다.


“자유는 행동이며, 어떤 관조적인 상태가 아니다. 피히테는 말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기쁜 일은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창작하듯이 우리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나 자유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우리는 자유롭기 때문에 타인을 절멸시키는 일도 가능하니, 자유란 악한 행동을 저지를 자유까지 포함한다.”(146쪽)


“피히테가 가진 전체 개념은, 인간은 행위자도 아닌 끊임없는 행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자신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생성과 창조를 지속해야만 한다.”(146-147쪽)


피히테는 인간의 자유를 극도로 강력하게 표명했고, “인간은 행위자도 아닌 끊임없는 행동 그 자체”라는 것에까지 이르렀으며, 그에게서 인간의 정신은 신비주의적으로 고양되었다. 이에 더하여 “나폴레옹의 침공과 독일 내에서 전반적으로 민족주의감정이 부흥”하는 독일 내의 상황이 피히테로 하여금 ‘독일 민족에게 고함’이라는 글까지 쓰게 했다.


“나는 어떤 공통된 흐름의 한 부분으로 그 안의 한 요소가 된다. 나의 전통, 나의 관습, 나의 견해, 나에 관한 모든 것은 어느 정도 내가 그들과 함께 유기체적인 전체를 형성하는 타인들의 창조물이다. 그리하여 피히테는 점차 공간 안에 놓인 경험적인인간 존재로서의 개인이라는 개념에서 더 큰 무언가, 곧 국가나 계급 종파와 같은 것으로서의 개체라는 개념으로 나아간다. 일단 그쪽으로 옮겨 가게 되면, 행동하는 것은 그 개체의 임무가 되며”(148쪽)


“행동하는 것은 그 개체의 임무가 된”다는 것은 파시즘의 기본 원리이다. 여기서 열광이 생겨난다. 열광은 합리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시즘을 학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거대한 민족주의, 또는 계급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집단적 충동이라는 개념”(149쪽)


여기서 벌린은 “계급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집단적 충동”에 마르크스주의를 집어넣고 싶어 하고 있다. 이해해주자. 벌린이 우파 아닌가.


칸트가 어떻게 낭만주의에 약간의 씨앗을 제공했으며, 그것이 어떻게 낭만주의로까지 전개되었는지를 실러와 피히테를 통해 알 수 있다. 피히테까지 이르면 낭만주의는 하나의 Zeistgeist, 즉 시대정신으로까지 고양된다.


다음은 오늘 읽은 부분에서 내가 꼽은 문장이다.


“기질적으로, 이런 엄격한 질서와 깨뜨릴 수 없는 조화,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불가피하고, 질서 정연하고, 완전히 고정불변한 방식으로 나머지 모든 것에 뒤이어 일어나는 어떤 사방이 막힌 세계를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있고, 피히테도 거기에 속했다.”(143쪽)


이걸 피히테가 읽었다고 생각해 보라. 누군가를 평할 때 ‘화끈한 강유원’ 이렇게 하지 말고, 이런 식으로 해보자. 이런 문장을 종이에 펜으로 직접 써보면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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