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 28 송명이학의 형이상학, 조선 성리학의 전개, 전승된 정신사적 유산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2012.8 강의
25강: 토마스 아퀴나스, 보편개념실재론의 의의, 사상사에서의 방법론적 전환: 한 사례로서의 소크라테스(Phaidōn읽기) 
26강: 송명이학(宋明理學)의 성립 배경: 유교의 체제교학화(體制敎學化), 삼교일치론(三敎一致論)
27강: 사대부(士大夫)와 남송도학운동(南宋道學運動), 주희(朱熹)와 사서(四書), 체제교학으로서의 주자학(朱子學)
28강: 송명이학의 형이상학(性卽理, 天命之謂性), 조선 성리학의 전개, 전승된 정신사적 유산



20120824 28강: 송명이학의 형이상학(性卽理, 天命之謂性), 조선 성리학의 전개, 전승된 정신사적 유산

* 성리학 性理學, 송명이학
성性 이 곧 리理 다. 인간 내면에 있는 성품이 곧 참다운 본질이다. 
性:하늘이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 내면에 들어오면 性. 
理: 사물의 본성과 참다운 이치를 가리킬때 쓰는 말. 이에 대비되는 것은 사事. 리 다음이 상相.
理의 근거를 하늘天에 둔다.
성즉리라는 말은 특정학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참다움의 최종적인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학파라 달라진다.

성리학의 이기론은 대립관계가 아니고 선후관계
항상 이가 기본이고 그위에 기가 깔려있는 것. 

- 리선기악 理善氣惡 
理는 선한 것이고, 氣는 악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리를 가지고 있는데 기가 덮었다. 악을 설명하기 위함.
공자, 맹자에게는 없다. 성리학에서 등장.
기질지성 氣質之性을 극복해내고, 본연지성 本然之性을 회복해내는 것.

理라고 하는 것은 도덕적 행위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근원.
리는 하나인데 하나의 리로부터 만물이 나뉘어졌다. 사실의 영역과 가치의 영역을 통합해서 가지고 있다. 

 * 조선 성리학의 전개
- 정도정: 성리학자로 불리기 어렵다. 자기 스스로도 송명이학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불분명하다.  유교적인 국가질서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불교를 배척. 
 1394년 조선경국전 - 유교적인 신분질서가 나라의 근간이 되었다.
 1300년대 말 - 불씨잡변. 주자학이 철학적으로 우위에 있다.
- 사림파 족보: 김종직,김굉필,조광조, 김안국 조선 초기 사림파. 1400년 초반에서 1500년대 중반까지. 성리학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1500년 중반까지 이 사람들이 조선의 선비라고 하는 자들, 향촌 자치라고하는 것, 이런 이념들에 대한 기본적인 뼈대를 놓았다는 점은 틀림없다. 주자학에 대한 초보적인 토대. 왕에 대립하는 신권의 위력을 약간이라도 보여준 집단. 학술이론은 없었다.
- 서경덕: 기 중심의 일원적 세계관을 제시한 사람.  이언적: 도학을 실천. 
- 남명 조식학파: 이론보다는 실천을 중시했음. 
- 16세기 조선 유학의 절정: 퇴계 이황 1501~1570, 율곡 이이 1536~1584 . 16세기를 온전히 살아낸 두사람. 자수성가한 사람들.

예교론에서도 율곡이이와 퇴계이황이 기본적으로 천착한 분야는 성학(군주의 수양을 위한 학문 문과)
주기파와 주리파 구별은 무의미. 기본적으로 성리학파는 주리파. 수양을 하는데 있어서 악의 영향을 신경쓰고 배척하는 커리큘럼을 많이 만들면 주기파이고, 그 반대가 주리파로 볼 수 있다.
퇴계 이황은 리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지키는데 집중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퇴계 이황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해야할 일을 신경을 많이 썼고, 율곡 이이는 신권에 신경을 썼다.
율곡 이이 <성학지교> 숙종때 왕이 공부하는 경연으로 채택. 1700년 이후에는 율곡 이이의 후예들로 구성된 서론, 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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