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2 민권과 헌법 3
- 강의노트/책읽기 20분 2014-15
- 2017. 2. 20.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
Reading_20min_20140518_3
– 자유주의 경제와 민중의 생활: “경제적 자유주의를 근거로 한 ‘강한 자의 자유’ 하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으며, 지역이나 직장에서 ‘불결’하고 ‘태만한 자’라고 불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규제하고, 가혹한 노동조건과 높은 소작료에도 인내하면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노동해야 하는 ‘근대’라는 시대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 초대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森 有礼)의 국민주의 교육
– 학력주의, 기회의 평등, 우승 열패, 자기책임
– 내국식민지와 탈아론(脱亜論)
– 만국공법의 기초로서의 근대적 소유권의 논리에 따라 주인없는 땅과 미개지에 대한 점령을 통해 ‘영토’ 획득
– 일본 이외의 아시아 지역을 암흑이라 규정함으로써 아시아에서의 서구국가라는 위치에 올라섬
– 후쿠자와 유키치는 물론 자유민권운동파 역시 ‘국민’을 형성하는 운동이었으므로 홋카이도의 아이누 민족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 “사람은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들은 국민국가와 경쟁사회 속에서 ‘욕망의 환기’라는 장치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장치가 형성된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적인 경험을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나 남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주에 1장과 2장을 이야기했다. 헌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헌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어떤 세력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오늘은 3장과 5장 얘기를 하겠다. 책을 보면 아주 상세하게 당대 일본의 상황이 잘 나와있다. 당대 일본의 역사를 아는 것도 좋지만 지금 이것을 읽는 이유가 일본근대국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그 과정에서 형성된 요인들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데 있기 때문에 게다가 일본사에 관한 한 비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목적을 두고 몇 가지 핵심적인 부분만 이야기하겠다.
제3장이 "자유주의 경제와 민중의 생활"이다. 자유주의 경제라고 하는 말이 나와있는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리버럴리즘을 번역한 말인데 이게 일반적으로 개인의 기본적인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되는 정치체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앞에다가 자유주의라는 말은 붙이기가 어렵다. 영어로 liberal economy인데 오히려 많이 사용되는 말이 자유시장경제라는 쓴다. 이 말도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여기서는 그것에 관한 정확한 정의와 규정을 찾아보는 것은 일단 제쳐두고 책에서 대체로 자유시장경제, 이 책에서 말하는 용어로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가리킨다고 보면 되겠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근거로 한 시스템을 구축하였다는 것이 여기서 핵심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그렇게 누구나 다 평등한 조건 아래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얘기한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근거로 한 ‘강한 자의 자유’ 하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으며, 지역이나 직장에서 ‘불결’하고 ‘태만한 자’라고 불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규제하고, 가혹한 노동조건과 높은 소작료에도 인내하면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노동해야 하는 ‘근대’라는 시대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집약하고 있는 문장이다. 오늘날 21세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런 말들이 낯설지 않다. 우리가 자유시장 경제에 살고 있다 하면 일단 경제적으로 누구나 다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을 하고 또는 전제하고 그 위에서 각자가 알아서 자기의 능력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기본적인 바탕으로 놓여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인 체제가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근대국민국가, 즉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병역과 납세라는 근대국민국가와 결합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의 국민국가가 결합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본격적인 근대화라고 말하는 것.
119 그래도 1880년대 후반에는 집단 내에서 명령 받지 않더라도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규율을 지키며 노동이 가능한 사람만이 '근면'한 사람이라는 '문명국 표준'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근거로 한 ‘강한 자의 자유’ 하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으며, 지역이나 직장에서 ‘불결’하고 ‘태만한 자’라고 불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규제하고, 가혹한 노동조건과 높은 소작료에도 인내하면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노동해야 하는 ‘근대’라는 시대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만약에 누구나 다 이런 체제에서 잘 살수 있도록 준비가 된 상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앞선 시간에서 말했던 것처럼 도쿠가와 님의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던 사람에게는 굉장히 가혹한 체제가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 체제의 구성원으로 소속감을 가지기 어려우니까 이들에게 하나의 국민으로의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다시 말해서 통일성을 형성하는데 다양한 장치들이 동원된다. 그것이 이제 5장에서 다루게 되는 학교 교육과 가족이라는 항목에서 살펴 볼 수 있다. 5장은 "학교 교육과 가족"을 제목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메이지유신 이후에 초대 문부대신, 오늘날로 치면 교육부장관쯤 되는, 모리 아리노리(森 有礼)가 주창한 것이 국민교육이다. 일단 이 사회에서는 학력사회가 된다. 학력이 있음으로 해서 학력에 따라 대접을 받는다. 그러면 일본사회가 누구나 다 국민교육을 받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할 때 여기서 만약에 실패하게 되면 그 사람이 실력이 부족해서 또 노력이 부족해서 이런 방식으로 개인의 실수, 실패, 잘못으로 떠넘길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다시 말해서 학력주의는 기회의 평등을 전제로 하지만 동시에 우월하고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놓게 되고, 동시에 잘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자기책임이라는 이야기까지 곁들여 진다. 이것이 바로 학력주의가 일본에서 형성된 내용이다. 이렇게 형성된 학력주의가 일본사회를 꽤나 오랫동안 옥죄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얘기 또한 앞서 나온 경제적 자유주의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일본근현대사를 읽으면서 많이 느끼는 것이, 일본제국주의 잔재를 척결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잔재를 척결을 하는게 꼭 친일파를 청산하고, 일본식 한자어를 안 쓰는 것만이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곰곰이 따져보면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거의 전면에 걸쳐서 전반부에 걸쳐서 일본식민지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들이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언제 어디서나 근대화를 이룩한 나라들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가. 아니면 일본에서만 고유하게만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것이 한국으로 이식되어 들어와서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냐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일본 고유의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 전통의 유교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근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 특유의 근대적인 것을 말한다. 그게 국가주의, 국민주의다, 이런 것들이 결합하면서 미국식 자유주의적인 교육관을 억눌렀다고 말을 한다. 어쨌든 학력이 평등을 만들어내는 조건이 되고 이러한 조건 아래서 전형적인 자유경쟁 시스템이 정착된다. 그 다음에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에(家)제도와 가정이 결합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현모양처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파고들게 된다. 이런 것들을 근대화된 사회라고 한다면 한국사회도 상당히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쁘게 말하면 식민지 잔재이고, 좋게 말하면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강한 교육열 이런 것들이 조국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이렇게 해서 일본 내부의 사정, 학교교육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인 측면들을 살펴봤다.
168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로웠던 학교 교육의 모습을 크게 전환시킨 것은 내각제도의 성립으로 초대 문무대신이 된 모리 아리노리였다.
170 제국대학을 필두로 하는 관•공립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관료가 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되었다.
173 학력사회는 '평등'을 전제로 한다.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이 정치, 경제, 문화를 지배하는 상류 사회가 엄연히 존재하고, 하층과의 사이에 명확한 단절이 있는 계급 사회에서는, 일단 노동자의 자식이 대학 진학을 꿈꾸는 일은 없었다. 일본에서는 경제적인 조건은 차치하더라도 '학력'만 있다면 소작농이나 노동자의 자식이라도 도쿄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거꾸로 만약에 '성공'할 수 없었다면 그것은 신분과 같은 외재적인 제약의 탓이 아닌, 본인의 '실력'이나 '노력'이 부족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학력주의야말로 기회의 평등, 우승열패, 자기 책임이라는 자유 경쟁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189 혼인은 '이에(家)'의 존속이 목적이며, '가부장권은 신성하며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선조의 영혼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천황제와 중첩시켜 '이에' 제도와 가부장권을 정당화시켰다.
제4장은 "내국 식민지와 ‘탈아’로의 길"이다. 탈아시아의 길이 일본사회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왔고, 심각한 문제. 적어도 이 책에서는 무력을 수반한 탈아의 논리는 적어도 1880년대 후키자와 유키치의 지론이다고 말을 한다. 일본은 개방을 한 이후에 아시아의 서구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것을 집약한 말이 탈아시아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나라들을 미개한 국가로 규정을 해야 한다. 즉 아시아를 암흑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문명과 미개라는 이분법을 적용한다. 문명국가는 서구와 동일하다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사실 세뇌하는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제 근대적인 소유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땅을 가서 점령을 하면, 즉 주인이 없는 땅이라 하여서 점령하면 그것을 자신의 영토로 삼는다는 서구의 식민지 취득할 때 사용했던 논리들을 채용하게 된다. 원래는 근대국민국가에서 사용하는 배타적인 영토와 국민 이 개념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인 토지와 주민이라는 규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배타적인 영토와 국민이라는 규정으로 전환시키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일본이 획득하게 된 땅이 훗카이도이다. 거기에 살고 있던 아이누족의 땅을 점령하고 내국식민지로 만든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자유민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생각은 근대국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그래서 탈아론을 중심으로 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논리나 또는 자유민권운동파의 주장 이것이 얼핏 보기에는 문명의 논리이기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또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본 이외의 동아시아 지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 논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일본이 서구화를 이룩해 나아가면서 서구로부터 차용한 개념이다.
124 일정한 지역과 주민을 영토와 국민으로 포섭한 국민국가는 토지의 소유권자가 배타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 주권이라는 명목 하에서 타국의 간섭을 배제할 수 있었다. 만국공법이 기초로 하는 것은 근대적 소유권의 논리였다. 따라서 주권자가 존재하지 않은 지역은 '무주지(無主地)'가 되며 최초로 점유한 자가 소유권을 가진다는 '선점(先占)'의 논리가 국가 차원에서도 적용되어 식민지 지배가 정당화되었다.
125 '문명적'인지 아닌지를 인정하는 것도 서구 문명국이었다. 일본이나 중국은 미개와 문명의 중간, 소위 '반개(半開)'로 인정받았다. 불평등조약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후쿠자와에게 있어서의 '탈아론'은 일본의 '문명국' 선언이었다.
125 입헌제를 실현해 아시아를 문명의 빛으로 밝히는 선구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민권 운동의 에너지가 됐다. 그렇지만 아시아를 '암흑'이라고 규정해버리면 필연적으로 '문명과 미개'라는 이분법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
126 아이누 민족의 존재를 무시한 일본 정부의 정책은 만국공법의 '무주지' 논리와 같았다.
133 자유 민권 운동이 아이누 민족의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제국의회가 열리자 입헌개진당의 가토 세노스케가 유럽의 인종차별을 비판한다면, 일본인도 아이누 민족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며 「훗카이도 토인 보호법」을 제안했다.
134 훗카이도로 이주한 사람들은 선주민에 비해서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동시에 개척이라는 힘든 일을 한 몸에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국민으로서의 권리'도 제한받은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도 훗카이도는 식민지였다. 하지만 러일전쟁 후에 오타루 등은 일본의 세력권이 된 가라후토나 '만주'로 가는 중계지로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내지'의 식민지가 이번에는 북아시아 침략의 거점으로 변화해 간 것이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잇는 것이 근대 천황제의 성립이다. 천황제라는 것은 한 권의 일개 장으로만 다루기에는 주제 자체가 굉장히 무겁다. 일본근현대사의 핵심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천황제를 다루는 다른 책들과 함께 읽을만한 주제이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려 하는 것으로 하고, 제2권 맺음말에 굉장히 중요한 얘기가 하나 들어있다. "사람은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들은 국민국가와 경쟁사회 속에서 ‘욕망의 환기’라는 장치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장치가 형성된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적인 경험을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나 남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로 형성된 국가 레짐이 근대국민국가이고 경쟁사회이다. 한국은 제국주의의 식민지였고, 해방된 다음에도 이른바 근대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역사가 진행되어 왔다. 그렇다면 한국근현대사가 형성되는 과정이 일본의 근현대사가 형성되는 과정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시리즈 전체를 읽는 것이 좁게는 근대국가와 경쟁사회라는 장치가 형성되는 시기에 일본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적인 경험을 읽는데 목적이 있고, 더 나아가 그런 경험을 읽음으로서 한국사회에서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도 일정한 부분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46 사람은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들은 국민국가와 경쟁사회 속에서 ‘욕망의 환기’라는 장치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장치가 형성된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적인 경험을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나 남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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