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연옥의 탄생 - 10점
자크 르 고프 지음, 최애리 옮김/문학과지성사



제3의 처소


I. 연옥 이전의 전승

제1장 고대의 상상세계

제2장 연옥의 아버지들

제3장 고중세:교의의 침체와 상상세계의 확대


II. 12세기: 연옥의 탄생

도약의 세기

제4장 정화하는 불

제5장 로쿠스 푸르가토리우스:정화를 위한 장소

제6장 시칠리와 아일랜드 사이의 연옥

제7장 연옥의 논리


III. 연옥의 승리

제8장 스콜라적 체계화

제9장 사회적 승리:목회와 연옥

제10장 시적인 승리, '신곡'


왜 연옥인가




제3의 처소

19 16세기 카톨릭 교도들과 프로테스탄트 교도들 사이에 있었던 신랄한 논쟁에서 신교도들이 상대방에게 가장 격렬히 비난한 것은 연옥에 대한 신앙이었다. 루터가 '제3의 처소' 라 일컬었던 그러한 저승은 "지어 낸"것일뿐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제3의 처소에 대한 신앙이 고대 유대━기독교 이래 수세기에 걸쳐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추적하고, 그것이 어떻게 중세 유럽 문명이 개화하던 12세기 후반에 탄생하여 이후 세기 동안 급속히 발전했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 서구 역사의 이 중요한 시기와 어떻게 긴밀히 연관되는지, 서기 천년에 뒤 이은 2세기 반의 비약적인 발전에서 생겨난 새로운 사회 내에서 사람들이 그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지느냐 아니면 이단들의 경우처럼 배척당하느냐에 어떻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는지를 설명 하고자 한다.


21 연옥이 생겨난 것은 분명 "제3의 처소"로서였다. 이전의 종교들과 문명들로부터 기독교는 저승 개념을 물려받았다. 유대인들의 "스올"처럼 모든 죽은 자들이 가게 되는 단일한 저승과 로마인들의 하데스와 엘리시움처럼 무서운 세계와 행복한 세계라는 이원적 저승 중에서, 기독교는 이원적 모델을 택했고 그것을 독특한 방식으로 강화했다. 죽은 자들이 가게 될 좋거나 나쁜 두 공간을 천지창조로부터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기간 동안 땅속으로 치워두는 대신에, 기독교는 의인들, 적어도 그들 중 가장 선한 자들, 순교자들과 성인들이 죽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거하게 될 곳을 하늘에 두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지상 낙원을 이 땅 위에 둠으로써, 고대인들에게는 시간 곧 기억의 향수 어린 지평 밖에 갖지 않았던 저 황금시대에 세세토록 지상의 공간을 부여했다. 중세의 지도들은 그 낙원이 여호와께서 "동산에 물을 대기 위해"(창세기 2:10) 지으신 네 줄기 강과 함께 극동에, 대장벽 너머, 곡과 마곡의 두려운 민족들 너머에 있는 것으로 그려보인다. 지옥━천국의 대비는 특히 땅━하늘이라는 대비에 기초하여 극대화되었다. 지하에 있기는 했지만 지옥은이 땅이었고, 마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지계가 천계에 대비되었듯이, 하계는 천계에 대비되었다. 하늘에 대한 동경에도 불구하고 고대인들━ 바빌론인들과 이집트인들,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 로마인들과 이교도 야만인들━이 땅의 깊음을 두려워한 것은 천상의 무한, 때로 진노의 신들이 살기도 하는 무한을 희구하는 이상이었다. 기독교는 적어도 그 처음 세기들과 중세의 야만화 기간 동안에는 그 저승관을 완전히 지옥화하기에 이르지 못했다. 기독교는 사회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예수 자신이 본보기가 되었으니, 그는 지옥에 내려갔다가 하늘로 올라갔던 것이다. 상징적 공간의 방위 체계에서 고대인들은 좌우의 대비에 우선을 두었으나, 기독교는 신·구약 성서에 여전히 나타나는 이 대립항을 중요시하면서도 상하의 체계를 일찍부터 강화했다. 중세에는 이 상하의 체계가 사고의 공간화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들의 근본적인 변증법의 방향을 좌우할 것이다.


24 2세기와 4세기 사이 종말론적 지평에 덜 심취하게 된 기독교가 개인적 죽음과 최후 심판 사이에 영혼들이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어떤 죄인들의 영혼들은 이 기간 동안 아마도 시련을 거쳐 구원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신앙, 12세기에 이르러 연옥을 탄생시키게 될 신앙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신앙은 그러한 상황이나 시련이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지는 분명히 하지 않았다. 12세기말까지 연옥이라는 말은 명사로 존재하지 않는다. 연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8 연옥에 대한 신앙은 우선 불멸성과 부활에 대한 신앙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죽음에서 되살아난다 할 때 그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일어날터이니까 연옥은 불멸성이 일회적인 삶을 통해 얻어지는 것일 때 어떤 인간들이 영생에 도달하도록 주어진 보완적 장치였다. 힌두교나 카타르교처럼 계속적인 환생을 믿는 종교들에는 그러므로 연옥 신앙이 없다.  연옥의 존재는 또한 죽은 자들의 심판이라는 관념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관념은 여러 종교에 널리 유포되어 있으나, 이 심판의 양상들은 문명에 따라 매우 달랐다. 연옥의 존재를 상정하는 심판이란 매우 특이한 것으로 그것은 실상 이중적 심판 즉 죽음의 순간에 첫번째 심판을, 세상의 종말에 두번째 심판을 맞게 된다는 신앙에 기초해 있다. 그것은 이 두 가지 심판의 중간에 다양한 요인들에 따른 형벌의 완화 내지 단축이라는 복잡한 심리 과정을 둔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도화된 정의 관념 및 형벌 체계의 투영을 전제로 한다.


30 연옥은 여러 가지면에서 중간적 장소이다. 시간적으로 그것은 개인적 죽음과 최후 심판 사이의 중간에 온다. 물론 연옥이 그러한 시간적 위상을 얻기까지는 오랜 모색의 기간이 필요했으며, 이 문제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연옥이 이렇게 중간적인 시간에 위치한다고 명백히 말한 적은 없다. 연옥이 지상적 시간에 속하느냐 종말론적 시간에 속하느냐는 오랜 논란거리였으니, 연옥은 이승에서 참회를 통해 이미 시작되는 한편 궁극적 정화는 최후 심판의 순간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츰 연옥은 종말론적 시간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으며, 그리하여 한때는 일순간에 불과했던 심판의 날이 상당한 기간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연옥이란 또한 공간적으로도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위치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그 양극의 인력 가운데 있었다. 연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예비낙원, 즉 초대 기독교 시절에 상상되었던 레프리게리움이나 신약성서의 나사로와 악한 부자 이야기(누가 16:19~26)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품"을 대신해야만 할 것이다. 


I. 연옥 이전의 전승

제1장 고대의 상상세계

75 구약성경에 스올이 자주 등장하기는 해도 거기에 대한 정말로 구체적인 세부들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산 자들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75 구약 성경에 의하면 여호와는 스올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지만, 때 이르게 죽은 자를 거기에서 꺼내 주거나 일단 스올로 내려간 자를 용서하거나 거기에서 머무르는 기간을 단축시키려는 의도를 보인 적은 결코 없다. 연옥에서도 의의를 지니게 될 지옥의 이미지들 외에 구약성서가 기독교의 연옥을 예고하는 것은 별로 없다.


101 12 세기에 스콜라 철학의 주창자인 도시 학교 교사들이라는 새로운 지식인 계층이 나타난 것이 고유한 의미에서의 연옥의 탄생에 기여한 결정적인 요소들 중이 하나이듯이, 기독교 기원 이후 처음 두 세기에는 사회구조 및 유대 공동체들의 정신적 기반의 변천과 관련된 랍비들의 가르 침 및 주석의 발전이 유대인들을 연옥 개념의 가장자리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105 누가복음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악한 부자의 이야기 이 텍스트는 저승에 관해 세 가지 세부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즉, 음부(하데스)와 의인들의 대기 장소(아브라함의 품)는 서로 보일만큼 가깝지만 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구렁이 가로 놓여 있다는 것, 음부에는 미르체아 엘리아데가 "죽은 자들의 목마름"이라 이름한 그리고 레프리게리움이라는 개념의 기초가 될 이 특징적인 목마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의인들의 대기장소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지칭된다는 것 등이다. 아브라함의 품은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연옥에 해당한다.


112 레프리게리움이 연옥의 전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크리스틴 모르만이 시사하는 바 테르툴리아누스의 개인적 개념 때문이다. 실상 레프리게리움이란, 앞에서 보았듯이, 거의 낙원적인 복락의 상태를 가리킬 뿐 장소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테르툴리아누스는 특정한 레프리게리움, 즉 중간적 레프리게리움을 상정했다. 개인적 죽음과 최종적 심판 사이에 특별한 대기 처분을받을 만하다고 판정된 자들에게는 중간적 휴식이 배정되리라는 것이다.


113 마르키온은 순교자들뿐 아니라 단순한 의인들도 죽은 뒤 즉시 하늘에 받아들여 진다고 주장하는 반면, 테르툴리아누스는 가난한 나사로와 악한 부자의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부활을 기다리는 의인들의 거처는 하늘이 아니라 중 간적 레프리게리움 즉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본다.


제2장 연옥의 아버지들

148 모니카를 천국에, 영원한 예루살렘에 두고 안 두고의 결정은 전적으로 신에게 달려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나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임의적인 것이 아닐터이며 그 자신의 기도는 부조리하지도 무모하지도 않다.


148 비록 분명한 말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산 자들의 대도는 죽은 자들이 낙원에 들어가는 것을 앞당기기는 하지만 이승에서 큰 죄를 지은 자들이 그 문을 건너게 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149 426/427년 『신국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은 자들을 위한 대도의 효력이라는 문제를 재론한다. 그러나 거기서는 그 한계를 분명히 규정하기 위해서이다. 마귀나 불신자나 불경건한 자, 그리니까 저주받은 자들을 위해서는 대도가 소용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일정한 범주의 죄인들에게만 유효하다.


177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심과 주저에도 불구하고 정화하는 불을 인정했으며, 이 또한 연옥의 전사에 있어 그의 중요한 기여들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정화하는 불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권위 하에 12세기말까지 전-연옥의 정의적 특성으로 남을 것이며, 연옥이 분명히 장소로 정의 된 후에는 그 근본적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중적 신앙이나 이미지들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 줄어드는 1150~1250년 무렵에는 장소로서의 연옥이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역사에 있어 아우구스티누스의 위치는 부정적으로나 긍정적으로나 매우 시사적이다.


II. 12세기: 연옥의 탄생

제4장 정화하는 불

264 12세기초의 죽은 자들에 대한 태도는 성직자들 및 교회에서 나온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는 바로는 다음과 같다. 즉, 최후 심판 뒤에는 영원토록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선택된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의 운명은 근본적으로 생전의 행실에 의해 결정되는 바, 신앙과 선행들은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고, 불경건과 범죄들은 지옥에 이르게 할 것이다.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에 대한 교의는 명확치 않다. 어떤 이들에 의하면, 사망 후에 망자들은 각자의 무덤에서 또는 구약의 스올처럼 무덤 비슷한 어둡고 중간적인 지역에서 기다리며, 최후의 심판이 그들의 종국적 운명을 정하게 되리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에 의하면 영혼들은 다양한 수용처들로 가게 되며, 이 수용처들 중에 특히 잘 알려진 것이 의인의 영혼들이 고유한 의미에서의 낙원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된다는 안식과 평화의 장소인 아브라함의 품이다.


265 이 정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다수는 ━ 고린도전서(3:10-15)에 의거하여 ━ 그것이 일종의 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정화의 도구들이 다양하다고 생각하여 '정화적 벌들'에 대해 말한다. 이 시험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결국에는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니, 누가 그러한 시험을 받을 자격이 있을 것인가? 아우구스티누스와 대 그레고리우스 이래로 믿어져 온 바에 의하면, 가벼운 죄들 밖에 속죄할 것이 없는 자들, 죽기 직전에 회개하기는 했으나 지상에서 참회를 완수할 시간이 없었던 자들, 그리고 어떻든 상당히 훌륭하고 선행들을 베푼 삶을 살았던 자들만이 그러한 '추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제5장 로쿠스 푸르가토리우스: 정화를 위한 장소

306 참회에 관해, 대식가 피에르는 거기서 우선 지적하기를 선택된 자들의 정화는 정화하는 불 속에서 죄질과 참회의 정도에 따라 기간을 달리하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전거로 든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생에서 다하지 못한 참회가 저 세상에서 완수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답한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의로우시므로, 영벌을 받지 않을 죄인들은 그의 긍휼에 따라 용서하신다. 그러나 공익에 따라 그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죄는 인간에 의해서건 하나님에 의해서건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의 통회가 아주 크면 비록 이승에서 참회를 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망자는 정화하는 불을 면할 것이다. 반면 뉘우치지 않고 죽은자는 영원히 벌받는다.


309 이는 아브라함의 품을 족장들의 시대와 그리스도의 지옥 하강까지로 보는 "역사적" 정의이다. 그리스도가 이 지옥들을 철폐했듯이, 중세인들은 신약에까지도 살아 남은 아브라함의 품을 철폐하려 한다. 이후로는 중간적 공간 및 시간은 연옥에 의해 점령될 것이며, 만일 그리스도 이전의 의인들과 세례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을 위해 아브라함의 품과 유사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면 이후로는 저승의 두 부속 처소 즉 족장들이 림보와 어린 아이들의 림보에 의존 할 것이다.


제6장 시칠리와 아일랜드 사이의 연옥

375 네번째의 상상적 저승 여행은 수사에 의해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특성들의 한복판에 새로운 점들을 도입한다. 특히 새로운 점은 여기서 비로소 연옥이라는 것이 저승의 세 처소 중 하나로 명명된다는 사실이다. 연옥의 성공에 있어 결정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서 연옥의 역사에서 근본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소책자가 저 유명한 『성 패트릭의 연옥』이다.


402 연옥의 탄생에 있어 결정적인 이 순간에 라틴 기독교는 그것을 아일랜드 아니면 시칠리아에서 찾아야 할까를 망설이는 것과 마찬 가지로, 그것을 지옥과 낙원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곳으로 만들어야 할지를 망설이는 듯하다. 실상, 틸버리의 저비스가 현재의 개념들보다 과거의 개념들을 반영하는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순간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나 다름 없다. 연옥은 불과 고문과 광기와 소음으로 가득한 동방 계시 문학의 영향을 받은 데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어떤 지상의 고통보다도 더한 고통들로 가득하다고 정의되었으며,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에서만 구원된다고 가르치는 교회에 의해 정립되었으니, 이미 지옥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제7장 연옥의 논리

407 죽은 자들은 산 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산 자들을 위해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노첸티우스 3세도 그렇게 말했다. 산 자들은 그들 자신도 장차 죽을 것이기 때문에 죽은 자들에게 관심을 갖는다고. 그리고 기독교 사회에서는, 특히 중세에는. 미래란 연대적인 순서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리고 특히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자연과 초자연, 이승과 저승, 어제, 오늘, 내일 그리고 영원은 한 가닥으로 이어진 것이니, 그 안에는 사건(출생, 죽음, 부활)도 있고, 질적인 도약(회심)이나 의외의 순간들(기적)도 있다. 도처에 교회가 있어 기존 질서를 통제하고 구원하며 정당화하고 반대하는 다중적인 역할을 한다.


417 특히 두 가지 구분이 중요하게 될 것이니, 악덕과 죄 사이의 구분과 과오와 형벌 간의 구분이다. 아벨라르의 한 제자는 「케임브리지 주해」에서 이렇게 주해한다 "우선 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해야 한다. 즉, 그 하나는 동의 내지는 신에 대한 경멸인 과오의 측면으로, 마치 어린 아이는 죄가 없다고 말할 때와 같다. 다른 하나는 벌의 측면으로, 마치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 즉 벌을 초래했다고 할 때와 같다." 우리의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의당 저주에 이를 과오가 통회와 고해에 의해 사면되는 반면, 형벌이나 속죄적 징계는 교회가 명하는 참회를 완수함으로써만 말소된다는 점이다. 만일 통회와 고해는 했지만 참회는 의지적으로건 비의지적으로 건(가령 죽음이 먼저 닥친 경우) 수행되거나 완수되지 않았다면, 벌은 정화하는 불 속에서 완수 되어야 한다.


418 이후로 영적, 윤리적인 삶 전체는 의도의 추구, 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 고의로 한 일과 부지중에 한 일에 대한 탐구를 지향하게 된다. 그로 인해 개인적 책임이라는 개념도 상당히 증진되고 풍부해졌다. 죄의 추적은 윤리적 삶의 "내면화와 개인화"의 일부가 되며, 새로운 참회의 실천을 요구한다. 이제는 내적 증거보다도 고백이, 징계보다도 통회가 한층 중요시된다. 그리하여 고해가 중요해지게 되며, 그 성격도 변한다.


426 연옥은 그러므로 사면 가능한 죄들의 정상적 수용처가 되며, 이러한 견해는 13세기에 널리 대중화된다. 그러나 연옥이 사면가능한 죄들만를 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12세기 말에 그것은 사면 가능한 죄들과 뉘우 치고 자백하였으나 참회를 미처 수행하지 못한 죄라는 두가지 범과적 상황의 정화 장소이다.


446 연옥의 창조에는 우주의 공간화 및 산술적 논리의 과정이 결합되어 있으며, 이는 저승의 삼중 왕국 너머에서 인간의 행동들과 연옥에서의 상황들간의 관계를 다스릴 것이다. 지상에서 죄 가운데 보내는 시간과 연옥의 고통들 가운데 보내는 시간이, 연옥에 있는 망자들을 위한 대도의 시간과 연옥으로부터의 해방이 가속화되는 시간이, 비례적으로 재어질 것이다.


451 이 모든 변화, 이 모든 동요 가운데서, 연옥의 탄생을 설명해주는 두 가지 심층적인 움직임을 감지 할 수 있다. 그 첫째는 고중세의 표어나 다름없던 세속의 경멸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451 세속의 경멸이란 특히 수도원의 영성에 의해 고취되었던 가치관으로, 시대의 창조적 도약과 관련하여 지상적 가치들에 대한 집착이 점차 커짐에 따라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452 이후로 지상적 삶에 부여된 가치는 그것을 떠날 순간을 한층 더 가공할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옥에 대한 공포에 덧붙여 이 고통스러운 순간, 즉 죽음의 순간에 기한 공포가 생겨났다. 연옥은 저승에서의 새로운 희망이자 죽음의 순간을 한층 예민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가치관의 동요에서 한 몫을 한다.


452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최후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행복해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퇴보 내지는 단순 재생산만이 있었던 수세기 이래 처음으로 증산의 경험을 하였다. 더 많은 계화를 생산하게 되었으니, 정의, 평화, 부, 아름다움 등등 그때까지는 내세의 삶에만 두어지던 가치들이 어느 정도 이승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고딕 교회는 천국을 지상에 도래케 한 것으로 보이며, "레프리게리움과 평화"의 장소처럼 보인다.


456 지상에 정착하고 시간에 대해 새로운 지배력을 갖게 되면서, 삶을 연옥이라는 저승에로 연장하면서, 특히 생겨나는 염려는 죽은 자들에 대한 것이다. 내 말은 죽음이 그 자체로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그리고 죽은 자들을 통해 산 자들은 그들의 이승에서의 권능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12세기는 기억이 증진되는 세기이다. 거기서 크게 덕을 보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가계를 수립하고 연장하는 귀족 가문들이다. 죽음이 하나의 경계로 인식되는 일은 점차 줄어든다. 연옥이 이승의 부속 영지가 되어 삶과 기억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대도는 점차 더 활발한 활동이 된다. 유언들이 다시금 생겨나는 것도 죽음이라는 경계가 후퇴하는 것을 돕는다.


III. 연옥의 승리

제8장 스콜라적 체계화

499 네 가지 성격이 있을 수 있다. 만일 장소가 기쁘고 밝다면 그것은 천국이다. 지복직관이 아직 허락되지 않으므로 어둡고 고통스럽다면, 연옥이다. 직접적으로 어둡지만 고통스럽지는 않다면 어린 아이들의 림보이다. 간접적으로 어둡고 고통스럽지 않다면 족장들의 림보이다. 알베르투스는 그가 장소들의 네 가지 성격의 가능한 모든 조합을 다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경우들만이 그들 상호간에 양립 가능한 것임을 증명한다.


520 그리고 나서 토마스는 이러한 결론을 정당화한다. 위-디오니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 준거하여, 그는 "선의 방식은 하나 밖에 없으나, 악의 방식들은 여럿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선의 보상을 위한 장소는 하나이지만, 죄를 위한 장소들은 여럿이다. 마귀들은 공중이 아니라 지옥에 거한다. 지상 낙원은 이승과 관련되며 저승의 처소들에 속하지 않는다. 이생에서의 죄의 징계는 문제 밖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공덕이나 죄업의 상태로부터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은 결코 선이 섞이지 않은 순전한 상태로 생기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므로, 지고선인 지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든 악으로부터 정화되어야 한다. 만일 죽음의 순간에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 후에 이 완전한 정화를 위한 장소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연옥이다.


522 토마스는 첫번째 질문에 대답하기를, 신의 정의는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고 사면을 받은 뒤에 죽은, 그러나 참회를 다하지 않은 자가 죽음 뒤에 벌받을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연옥을 부정하는 자들은 신적 정의를 거슬려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이며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531 토마스는 사면 가능한 죄들이 사후에 연옥에서 사면되는가를 다시금 묻는다. 그의 대답은 물론 긍정적인 것이지만 그의 관심은 치명적인 죄와 사면 가능한 죄 사이에는 경중의 차이가 아니라 본질의 차이가 있음을 논증하는 데 있다. 한편 그는 죄과와 징벌이라는 문제로 돌아온다. 「금언집 제4권」에 관한 「스크립툼」에서 그는 롬바르디아인 피에르와 마찬가지로 "은총의 신분으로 죽은자는 저승에서 사면가능한 죄를 죄과 자체에 대해서는 정화하는 불에 의해 사면받는다. 왜냐하면 이 벌은 어떤 의미로는 의지적인 것이므로 성화하는 은혜와 양립 가능한 모든 죄과를 속죄하는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532 스콜라 학자들이 연옥을 시인하는 것과는 달리 이단들과 그리스인들은 연옥을 거부한다. 연옥에 대한 이단들의 반대는 이제 곧 살펴 보게 될 실천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이론적 차원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죽은 자들을 위한기도 즉 대도에 대한 끈질긴 거부에 근거한 것으로 12세기말에는 이러한 거부가 정통파들로 하여금 연옥의 존재를 한층 더 분명히 확립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도는 1025년 아라스의 이단들에 의해 거부된데 이어 1143~1144 년에도 쾰른의 이단들에 의해 다시 거부되었으며, 거기에 대해 원장 수사 슈타인펠트의 에버윈은 성 베르나르에게 원조를 구한다: "그들은 죽음 뒤에 정화하는 불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솔로몬의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전도서 11:3)는 말에 의거하여 영혼들이 지상을 떠나는 순간 즉각적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거나 형벌에 처해지게 된다고 가르친다."


538 라틴 기독교와 그리스 기독교 간의 분열은 늦어도 4세기에는 시작되어 점차로 심화되다가 마침내 1054년의 분리가 일어나지만 그 이후로도 두 교회의 연합을 위한 토론과 협상은 없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저승이라는 문제는 애초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었다. 그리스 교회는 연옥에 이르게 될 교의적 형성의 기원에 있었지만 그러한 맹아들을 더 이상 키워 내지는 않았다. 그리스 교회는 사후 속량의 가능성과 죽은 자들을 위한 대도 등 라틴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관행을 막연히 믿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라틴 신앙이 저승의 제3의 처소를 탄생시키고 저 세상의 지리를 근본적으로 변경시키기에 이르자, 연옥이라는 문제는 논쟁과 불화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550 많은 단순한 신자들은 아브라함의 품과 게헨나라는 대비, 개인적 죽음의 순간부터 지옥과 낙원이라는 극단적인 분리가 생겨나는 데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았다. 죽음과 부활 사이의 마지막 일화로서, 죽음이라는 허망한 경계 너머에서 참회와 구원 과정의 지속으로서 연옥의 필요는 대중 속에 뿌리박은 요구였고 적어도 서방에서는 민중의 목소리에 의해 터져 나온 필요였다.


제9장 사회적 승리: 목회와 연옥

552 연옥이란 장소이지만 또한 시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연옥의 한 가지 정의는 그것 "한시적" 지옥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혹의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장소로서의 연옥과 마찬가지로 12~13 세기의 전환기에 정의된 이 시간은 시간적 구조에 관한 이 시대의 일반적 재성찰 가운데 자리한다.


557 가장 중요한 것은 망자 개개인에게 연옥의 시간이 반드시 죽음과 부활 사이의 전기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은 십중팔구 심판 이전에 구원될 것이며, 그 구원의 시기는 정화되어야 할 죄의 성질과 분량에 따라, 그리고 산자들이 드리는 대도의 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하여 저승의 시간은 가변적이고 측량 가능하며 심지어 조정 가능한 것이 된다.


557 연옥 체계는 그 밖에도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우선, 연옥이 생겨남으로 인해 죽음 이전의 기간이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물론 이전부터도 죄인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경고와 늦기 전에 지옥을 면할 준비를 하라는 권고를 받아 오긴 했지만, 그처럼 중한 저주를 면하기 위해서는 아주 일찍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이었고 추문스러운 생활을 하거나 과도한 죄악을 저질러서도 안 되며 죄를 지었다면 한 속히 모범적 참회를 해야 할 것이었다.


558 이후로 연옥 체계는 종교적 관행에 있어 보다 미묘한, 그러나 연옥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그만큼 결정적이기도 한 행위들을 정의 할 수 있게 한다. 성결한 삶을 살지 못했다면 가장 좋은 수단은 참회이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회개를 시작하기만 하면, 지옥을 모면하고 연옥에 갈 수 있다는 최후의 희망을 의미한다. 최후의 통회는 점차 연옥의 혜택을 얻기 위한 최후 수단이 되며, 따라서 죽음의 순간은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죽어가는 자들에게 있어 곧장 천국으로 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해도 연옥을 통해 구원받을 기회는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626 1300년 성탄을 기하여 보니파치우스 8세는 도상에서건 로마에서건 순례 동안에 죽은 모든 순례자들과 순례를 완수할 굳은 결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장애를 만났던 모든 이들에게 완전 사면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엄청난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교황은 "연옥에 있는 어떤 영혼들의 모든 벌로부터의 즉각적인 해방"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 교황이 권한을 갖는다는 이론은, 앞서도 보았듯이, 특히 성 보나벤투라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수립되었으나, 한번도 실제로 적용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627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해방하는 문제에 있어 교황권은 1300년의 이 돌연한 사건 이후로 14세기에도 여전히 이론적인데 그쳤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1314년에 죽은 교회법 학자 알레산드로 롬바르도는 교황이 연옥에 있는 자들을 면죄로써 간접적으로 또는 "우연히" 도울 수 있다고, 그가 "연옥에 있는 망자들을 위해 기도나 선행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면죄를 허용 할 수 있다고 거듭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로는 14세기의 그의 계승자들은 감히 저승에 대해 이처럼 엄청난 권한을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제한적이나마 제1보는 이루어진 셈이었다. 연옥 체계에 면죄를 도입하는 제1단계는 넘어간 것이다.


제10장 시적인 승리, '신곡'

633 무엇보다도, 단테야말로 그의 걸작을 통하여 내가 지금껏 추적해온 주제들의 대부분을 거대한 교향악으로 완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옥편」은 연옥의 오랜 생성이 도달한 숭고한 결론이다. 그것은 또한 교회가 근본적으로 연옥 교의를 긍정하면서도 기독교인들의 감수성과 상상력에 내맡겨 두었던 연옥의 가능하고 때로는 경쟁적인 이미지들 가운데서, 인간 정신이 낳은 연옥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기도 하다.


636 이승과 저승에서의 창조 체계의 연관을 단테 이상으로 잘 표현한 이는 없었다. 지옥을 벗어나 중간적이고 일시적인 세계, 즉 지상에 이르며, 거기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연옥산의 정상에 지상 낙원이 있다. 지상 낙원은 더 이상 세상 어딘가 잊혀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념적 차원, 즉 연옥에서의 정화를 마치고 천국에서의 영화에 들어가기 전의 무오의 차원에 위치한다.


왜 연옥인가

680 교리 및 신학의 영역에서도 연옥이 결정적으로 카톨릭 교회의 교의로 채택되는 것은 14세기 중반과 17세기초 사이에 이르러서이다. 우선 1439년의 피렌체 공의회에서 그리스 정교에 맞서 확립되었고, 1562년에는 트렌드 공의회에서 프로테스탄트교에 맞서 확립되었다.


681 연옥은 지상적 삶의 이 마지막 단계에 강한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인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극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본질적인 것, 지옥이냐 천국이냐의 선택 ━ 왜냐하면 연옥은 천국의 확보된 입구였으니까 ━ 은 아직도 그 마지막 순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이란 최후의 기회였다. 그러므로 나는 14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연옥과 죽음 간의 관계를 밝히는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683 그러나 내 불안의 근원은 다른 데 있다. 우리가 살펴온 역사 동안 내내 교회의 주요한 관심은 영원한 지옥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였던가? 일시적인 정화하는 불은 꺼지지 않는 불을 더욱 강조하기위한 것이 아니였던가? 연옥이란 지옥의 안전한 발판이 아니었던가? 또는 교회가 영벌이라는 절대적 무기를 보존하기 위해 치른 대가가 아니였던가? 그것은 카톨릭교의 한 시대를 조명하는 유황불일 것이며, 장들뤼모의 이른바 공포의 기독교에 해당하는 것일 터이다.


684 신자들 편에서 보면 연옥에 대한 흥미가 없어진 것은 아마도 정반대의 이유에서 일 것이다. 성직자들 편에서는 연옥이 그 지옥적이고 물질적 성격을 잃어갔던 반면, 신자들이나 종교적 신앙의 변천에 민감한 사람들 편에서는 저승의 중간적 시간에 대한 무관심이 늘어났다. 다시금 우리 시대대는, 특히 선진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의문과 희망과 고뇌가 양극화되고 있다. 우선 이승에서, 그리고 극소수의 진짜로 "무관심한" 자들을 제외한다면, 관심은 죽음이라는 지평, 옛 죽음의 모델들이 모두 무산되어버린 지평에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카톨릭 교도들, 모든 신앙의 사람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선택은 다시금 천국과 지옥, 이승의 꿈들의 투영인 천국과 새로운 상상적 사실성을 얻은 두려움의 투영인 지옥 사이의 것으로 줄어드는 듯하다.


685 그러나 바라건대 인간의 꿈속에는 섬세함과 공정성과 정확성 말의 모든 의미에서의 절도, 합리성(오 연옥의 합리성이여!), 그리고 희망의 자리가 항상 있을 것이다. 연옥이란 과거의 것이라는 말을 할 때가 너무 일찍 오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