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무엇을 할 것인가 (하)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3. 10. 28.
무엇을 할 것인가 - 하 -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지음, 서정록 옮김/열린책들 |
제3장 결혼과 두 번째 사랑(계속)
제4장 두 번째 결혼
제5장 새로운 인민의 출현과 대단원
제6장 장면의 전환
진보와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연보
175 그들은 소수이지만 우리의 삶은 그들을 통해서 꽃피운다. 그들이 없다면 이 세상의 삶은 죽음이나 다름없이 메마르고 황폐해질 것이다. 그들은 소수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그들이 없다면 사람들은 질식하고 말 것이다. 정직하고 선한 인민들은 위대하다. 그러나 그들과 같은 존재는 드물다. 그들은 인민들 속에서 차의 향기와 같은 존재이며 좋은 술의 향기와 같은 존재이다. 강인함과 품위는 바로 그들로부터 온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선한 사람들 중의 꽃이며 주동자들 중의 주동자들이며 이 땅의 소금 중의 소금이다.
240 베라 빠블로브나, 끼르사노프, 그리고 로뿌호프가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너무도 영웅적이고 고귀하기 때문에 실제 생활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상화된 사람들로 비쳐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친구들이여, 나의 비천하고 어리석고 불쌍한 친구들이여, 그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그렇게 높은 곳에 있지 않다. 다만 여러분이 너무도 낮은 곳에 있을 뿐이다. 이제 여러분은 그들이 이 땅 위에, 대지 위에 두 발로 굳게 버티고 서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구름 속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너무도 초라한 땅굴 속에 앉아 있는 탓이다. 그들이 서 있는 고지에 이제 모든 사람들이 서게 될 것이다. 당연히 설 수 있고 또 서야만 한다. 여러분과 내가 얼핏 도달할 수 없어 보이는 최고의 본성이란, 불쌍한 벗들이여, 결코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그런 본성 중의 하나를, 그것도 짧은 필설로서 그 단면만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오히려 여러분은 현실 속에서 더욱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보았을 것이다. 여러분이 자기를 개발하려고만 한다면 여러분은 능히 그러한 사람들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
250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네. 그리고 사람들은 흔히 그 자신의 자로 다른 사람을 측정하지만, 내 생각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다른 사람도 원하지 않을 거라고 보네. 하지만 우리들은 대개 보잘것없는 경험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든단 말이지.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네. 따라서 내가 그것을 깨닫기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지 않으면 안 되었네. 때문에 나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도록 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네.
257 휴식에 대한 나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남과 떨어져 혼자 있는 〈고립〉이네. 타인과 함께 있다는 것은 내 마음에 어떤 것이 채워지는 것을 의미하네. 즉, 일하거나 즐기는 것 말일세. 나는 오직 나 혼자 있을 때에만 전적으로 자유로움을 느끼네.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왜 하필이면 그것이냐고? 대개 사람들에게 자유로움은 자제에서 오네.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게 그것은 부끄러움에서 오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우울증과 사려 깊은 숙고에서 오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타인에 대한 동정심의 결여, 곧 이기심에서 오네. 그러나 나의 내부에는 그런 것이 없네. 나는 솔직하고 직선적인 사람이네. 그리고 항상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우울한 것을 좋아하지 않네. 나는 즐겨 사람들을 관찰하곤 하는데 이것이 내겐 늘 일이나 향유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 뒤에 반드시 휴식이 요구된다네. 이것이 나의 〈고립〉이라면 고립이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것은 내 나름의 특이한 발전인 동시에 독립과 자유를 향한 목마름이네.
362 이것은 왜 그럴까? 그것은 비밀이다. 그러나 굳이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것은 위대한 비밀이며 다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기술도 필요 없으며 오로지 순수한 마음과 정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의식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 이상의 비밀은 없다. 오직 자기의 아내를 예전의 신부를 보던 눈으로 보라. 그리고 그녀도 언제라도 〈당신이 싫어요. 우리 헤어져요〉라고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런 마음으로 아내를 대하라. 그러면 결혼 뒤 10년이 지났어도 그녀는 자기가 신부였을 때 가졌던 순결한 마음 그대로 당신의 사랑스런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니, 더욱 풍부한 감정과 고귀한 정신을 가지고 당신의 훌륭한 반려자가 될 것이다.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에게 우정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 그들은 당신의 친구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내의 자유를 똑같이 인정하라. 그러면 결혼 후 10년, 20년이 지나도 당신이 신랑이었을 때처럼 그녀에게 소중하고 사랑스런 사람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남편과 아내는 그렇게 살고 있다. 얼마나 바람직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지극히 성실하며,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사랑은 더욱 진지하고 깊어만 가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간에는 불쾌한 키스를 한다거나 마음에 없는 말을 해서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616 그녀는 피아노 앞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슬픔이여, 안녕!
티끌처럼 허공 중에 사라져라!
「이제 슬픔 따윈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 태어난 가슴에
끝없는 기쁨이 오리니!
「꼭 그렇게 될 거예요! 나는 그걸 맹세코 확신합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그림자가 물러가듯
어둡고 괴로웠던 마음은 사라지리라.
빛과 따스함과 진한 꽃향기가
어둠과 절망을 몰아내리니
타락과 부패의 냄새는 사라지고
장미의 향기가 온 천지에 진동하리라.
작품해설
622 체르니셰프스끼가 이 소설을 쓴 1863년 당시의 러시아 사회는, 같은 해에 쓰인 뚜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1840년대 〈아버지 세대〉의 인텔리겐찌야(즉, 뚜르게네프, 벨린스키, 게르a)로부터 1860년대 〈아들 세대〉의 인텔리겐찌야(즉, 체르니셰프스끼, 도브롤류보프, 삐사레프)로 넘어가면서 귀족 출신인 아버지 세대의 〈내적 분노〉가 평민 출신인 아들 세대의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던 시기였다. 그것은 러시아의 질곡으로 불리던 짜르 체제와 농노제의 현실 속에서 문제의 틀이 아버지 세대의 〈누구의 죄인가?〉에서 아들 세대의 〈무엇을 할 것인가?〉로 근본적인 전환을 한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 아버지 기성세대의 〈위로부터의 혁명〉에 성급한 기대를 걸었던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무력한 비판적 태도에 큰 실망과 좌절을 맛보았고 끄림 전쟁의 패배로 러시아 위신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1861년 짜르 정권이 선포한 농노 해방령과 토지 개혁령의 기만적 술책은 마침내 그들을 분노시키기에 충분했으며 급기야 구체적 행동으로 옮겨 갈 태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에 불을 당긴 것이 체르니셰프스끼와 도브롤류보프의 사회 평론이었다.
626 한마디로 이 소설은 1860년대의 새로운 인물들인 〈아들의 세대〉를 이상화한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 ─ 베라 빠블로브나, 로뿌호푸, 끼르사노프, 라흐메또프 ─ 은 1840년대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새로운 도덕적 정열을 지닌 합리적이고 유물론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구시대의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체르니셰프스끼의 전기 작가 스쩨끌로프의 말처럼 〈합리적 에고이즘〉, 즉 자기 자신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신념에 따라서 행동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저주받은 현실〉(벨린스끼의 용어)과 〈암흑의 왕국〉(도브롤류보프의 용어) 러시아에서 자기의 생활을 포기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면서도 민족과 사회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비판적 지식인들로서 그 이상적인 인물이 바로 혁명가 라흐메또프이다. 그는 이 소설의 3장 뒷부분에 나오는데, 당시에 러시아 사람들은 그를 1866년에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스물여섯 살의 청년 까라꼬조프의 전형적인 인물로 생각했다. 까라꼬조프는 귀족의 자제로서 〈토지와 자유의 당〉의 멤버였는데 오직 러시아의 혁명에 자신을 헌신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630 한편 이 소설은 소비에뜨 리얼리즘의 원형을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당시에 뚜르게네프는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의 문학적 스타일은 곤충의 알처럼 나에게 직접적인 혐오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 나는 예술이나 미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 지성인이 해야 할 작업이고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어딘가 의자 밑으로 벌레처럼 기어 들어가 숨는 것이다.〉 후에 레닌에 의해서 높이 평가되었던 똘스또이 역시 이 작품의 지나친 낙관주의에 대해서 부정적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사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이러한 정치소설에 대해서 거부감을 표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대중적 인기가 19세기 후반이나 오늘날에 있어서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미학적으로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바로 이러한 사실과 관련해서 루카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한 논문에서 〈참여적 리얼리즘〉을 주장함으로써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문학적인 성과만 가지고 볼 때 다른 작품에 견주어 질이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품에 대해서는 그 참여적 리얼리즘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사회적 태도와 예술적 표현의 일치를 강조하는 소비에뜨 리얼리즘에 있어서 레닌의 당파성의 요구를 미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632 그 대표적인 것이 베라 빠블로브나의 네 번에 걸친 꿈이다. 이 꿈 이야기는 체르니셰프스끼가 보여 주려고 했던 사회주의의 이상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것은 네 번째 꿈의 〈수정궁〉 이야기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알루미늄과 수정으로 된 이 수정궁의 직접적 모델은 1851년 런던의 시드넘 언덕에 세워졌던 산업 박람회라고 알려졌는데, 이것이 사회주의의 모델로 전용된 것은 본래 그의 러시아의 농업 공동체(미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러시아는 농업 국가이기 때문에 산업화된 유럽의 사회주의로의 이행과는 그 길이 다르다고 보고 이 미르를 발전적으로 재구성하면 산업화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도 사회주의로 직접 도약할 수 있다고 보았다. 뒤에 이 미르는 레닌의 〈소비에뜨〉 이론에서 그 구체적인 결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수정궁이 생시몽, 푸리에 등의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를 이념적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해서 당시 문단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예를 들어, 도스또예프스끼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나보꼬프의 『선물』, 비또프의 『뿌쉬낀의 집』 등이 이 수정궁에 대한 반대 이념에서 쓰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특히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수정궁이야말로 2×2=4의 수학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로, 인간성이 매몰돼 버리는 사회라고 통렬히 비난하고 이른바 실천형의 인간이니 활동가니 하는 자들을 비아냥거리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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