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 30 Nikolaus von Kues: docta ignorantia, Deus absconditus, identitas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2012.9 강의
29강: 스콜라 철학 후기, Scotus, Ockham, Nikolaus von Kues
30강: Nikolaus von Kues: docta ignorantia(무지의 지), Deus absconditus[지성적 신비주의], identitas oppositorum(대립의 일치),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들: Machiavelli, Luther, Bacon, Hobbes
31강: 르네상스 시대의 혼재성 또는 다종성. Machiavelli의 새로운 정치학, Luther의 내면성, More의 유토피아
32강: Bacon: 철학개념의 재정의와 학문방법론의 전환에 의한 적정사회 건립, Hobbes: 유물론적 이론체계와 규범현실주의의 실천철학





20120914 30강: Nikolaus von Kues: docta ignorantia(무지의 지), Deus absconditus[지성적 신비주의], identitas oppositorum(대립의 일치),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들: Machiavelli, Luther, Bacon, Hobbes

* 니콜라스 쿠자누스

- 르네상스 철학

니콜라스 쿠자누스를 거쳐서 르네상스 시대 철학으로 들어가는데, 르네상스로 들어가게 되면 계급적· 국가적 정체성이 자각되기 시작한다.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이 불가능해지는 시점. 플라톤적인 철학 이념을 가지고 말하기 어려움. 르네상스부터 모던의 맹아가 나타나기 시작함. 모던이라는 말에는 nation, state 가 붙어야 함. 국민, 민족이 됐던 그 사람을 규정하는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


르네상스 시대에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에른스트 카시러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부분적으로 스콜라철학의 성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대체로는 여전히 거기에 종속되어 있었다. 르네상스는 철학적 맥락에서 보면 스콜라철학의 후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쿠자누스, 르네상스의 철학 같은 경우 스콜라철학 후기라고 하는데 후기스콜라철학하고는 구별된다.

르네상스 철학을 하나의 체계적인 통일체로 파악해야겠다라고 하면 쿠자누스를 봐야한다.


에른스트 카시러,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입문서이기도 하고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철학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적절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철학 입문서이기도 함. 체계성에 대한 요구가 지나친 것일 수도 있으나 무시할 수 없음.


- 중세

쿠자누스는 방법적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정신적·물질적 우주 전체를 사유하는 체계를 만들어놨다.

르네상스 시대를 유념해야 한다. 르네상스는 분열의 시대. 철학은 더 이상 보편학일 수 없다.

중세와 르네상스와 어떻게 다른가? 중세는 교회가 있고, 교회가 천상의 질서를 그대로 지상에서 대변한다고 하는 교회를 정점으로 하는 현실 세계의 질서가 있다. 질서라고 하기도 하고 개서(계층적 질서,계층적 구조를 갖춘 질서 )라고도 한다. 


천상의 계층적 질서를 교회가 모사하고 있는 것. 천상의 질서 역시 계층적 질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중요. 천상의 질서 달리말하면 우주적 질서. 아리스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자연학을 가지고 정당화.


쿠자누스는 중세의 신적 세계(천상의 세계, 우주적 세계)와 지상의 교회의 계서 체계의 대응과 대비를 인정. 무한자와 유한자의 대비를 인정.  

중세 시대 교회 계서 체계는 신의 계시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 토미즘에서 도그마. 좋은말로 하면 교리, 정통이론, 나쁘게 말하면 독단. 이 우주는 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유한자와 무한자는 대비된다는 것을 인정.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는 무한자와 유한자의 대비다. 

쿠자누스는 신에 대해서 과연 우리를 모를까, 알 수 없는 걸까 하고 인간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서 다시 물어보았고,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는 건 인정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가 하고 묻었다. 신에 대해 알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쿠자누스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점. 쿠자누스는 다시 물어보는 것. 무한자의 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가능성, 인간의 인식 가능성에 대해서 다시 묻는다는 것이 업적.


이 공부가 참으로 의미있는 공부인가에 대해 의심을 해보고 질문을 해보는 것, 그런 다음에 결국 그걸로 가는 것은 다르다. 답을 못내면 계속 공부를 하는 것. 학이란 계속 탐구해 나가는 것.


- 토마스 아퀴나스, 토미즘

스콜라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사용. 이성과 신앙, 계시와 이성의 연결

이성으로 신을 알 수 있다는 생각, 알려는 노력, 신존재증명

중세는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 이성과 계시, 자연과 신의 조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의 시대

토미즘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무한한 존재고, 인간을 창조한 존재다. 그런데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만한 철학. 


- 쿠자누스

유한자와 무한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라는 명제를 내놓았다. 신존재증명은 할 필요가 없어진다.

신은 알 수 없는 존재다, 다시 의심의 시대. 실존적 고민과 끝없는 갈증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이성과 신앙은 조회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토미즘,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도를 가지고 시스템을 세웠다.

유한자와 무한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버리면 기본적으로 플라톤 구도로 가는 것.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이분법의 체계, 초월형상과 그림자의 세계. 비유와 신화로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냉정하게 따져서 물어보면 증명이 안되는 것, 인간의 도달 범위를 넘어서 있는 것. 이것이 플라톤적 구도.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를 아리스토텔레스 체계를 가지고, 신존재증명을 가지고, 또는 이성과 신앙의 조화라는 명목으로 시도했던 중세철학이 깨져가기 시작하는 출발점에서 니콜라우스가 등장해서 플라톤을 다시 호출했다.


아리스토텔레스 구도가 가지고 있던 무한자와 유한자의 아슬아슬한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무한자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눈앞에 보이는 현상들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 쿠자누스 철학

니콜라우스는 인간 정신의 가능성에 대해 선을 긋는다. 합리적인 신학의 가능성을 봉쇄해 버린다. 다시 말해 인간정신의 능력을 가지고, 인간의 정신으로 신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보자라고 시작해서 별거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가버림. 신비주의로 빠져버림.

결과적으로는 '인간 인식 능력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결과에 이르렀지만 내가 철저하게 나의 인식의 가능성을 검토해본 다음에 그 결과로 간다면 소중한 성취. 무조건적으로 믿어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플라톤적인 구도가 다시 도입되면서부터 적어도 쿠자누스에게는 무한자의 영역은 합리적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성과 신앙의 조화는 거론 자체가 불가능한 테제가 되어 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가지고 신적인 것을 논할 수 없다.


인간의 인식이 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철저하게 질문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

결론은 신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부정신학, 신비신학. 여기서 출발한 독일관념철학은 피히테,쉘링,헤겔, 신의 인식가능성까지 올라갔다. 


1) docta ignorantia 독타 이그노란티아

docta 아는 ignorantia 무지. 아는 무지. 무지의 지. 


쿠자누스 <다른 것이 아닌 것>

무한자에 대한 인간의 사유 가능성에 대해 묻는것.

 알려고 하는 것, 앎에 대한 추구는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알려고 하는 사람은 무엇부터 배워야 하는가? 인간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무한자에 대한 인식은 우리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앎으로서 우리의 인식이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docta ignorantia.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깨뜨리는 명제.


docta ignorantia에서 바로 도출되는 것. "나는 신을 알 수 없다." 신은 숨어 있는 것. 숨은 신. 은폐된 신. 


2) deus absconditus 데우스 압스콘디투스

deus 신 absconditus 숨어있는. 숨어 있는 신.

과정은 지성적이었으나 결국 신은 숨어있다는 것만을 알아냈다. 지성적 신비주의로 귀결.

docta ignorantia에서 시작해서 지성적 신비주의에 이르렀다.

포기하지 않고 무한자를 향해서, deus absconditus를 향해서 그 신을 끊임없이 찾아내려는 노고를 지속적으로 한다. 그런점에서 인간은 탁월한 존재다라고 하는 것이 지성적 신비주의. 

신에게 도달할 수 없는 유한자임을 고백하고, 여기서 주저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알아보려고 하는 탐색과 추구를 그치지 않는 존재. 


# 사상(Gedanken)의 3대 요소: 초월성(transzendenz), 내면성(Innerlichkeit), 실정성(positivität)


3) identitas oppositorum 이덴티타스 오포지토룸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약간의 긍정위에 서 있다. 

다시말해 인간은, 인간의 정신은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인 사물들에서 시작해서 초월적인 무한자로 가는 문턱에 있다.

인간 정신은 무한자의 이를 수 없는 유한자이기는 한데 무한자에 끊임없이 다가서려고 노력한다.

오캄은 초월자·무한자·보편자를 논의에서 빼자고 했지만 쿠자누스는 초월적인 무한자를 향해가는 문턱에 있다고 했다.


ratio 오성: 지각, 또는 표상을 통해 얻은 통일적 인식

intellectus 지성: 초월자를 향해갈 수 있는 힘을 가르킬때는 이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함


지각이나 표상을 통해 얻는 통일적 인식은 낮은 단계이나 우리가 현상세계를 보면 +,-극이 있듯이 다투기도 하고 대립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 우주의 구성요소로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것. 

사물을 상위의 초월자의 관점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유한자의 관점에서 무언가를 파악해내면 ratio.

intellectus는 모든 대립적인 오성의 범주들을 무한자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힘.

인간에게는 무한자를 파악할수 없는데 여기서 그치면 안되고 intellectus까지는 가야함.

인간의 정신은 이런 모든 대립적인 것에 일치, 합치를 파악하는 intellectus가 있다. 

절대적인 총체성에 이르러 있는, 또는 전체에 이르러 있는, 절대적 통일성에 이르러 있는 바로 신. 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인간도 이 정도 되면 상대적으로 완전한 통일성에 가까이 간다. 신적 입장에 올라선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봄으로서 자기의 무지에 직면. 무지에 대해 알게되는 것이 무지의 지. 

기껏 궁리해서 알아낸 것이 무지하다는 것. '네가 무식하다는 것을 알아라.'라고 한 소크라테스와는 다르다. 

연구해서 알아낸 것이 무지한 것. 배울수록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식 가능성에 대해서 깊이 탐구할수록 무지함의 근거들이 더욱더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고, 이로써 인간의 앎은 철저한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진리 인식의 추구와 그 진리를 얻을 수 없다는 불가능성 사이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실존적으로 절망하는 것, 다시말해 인간 정신이 유한하다는 것, 정신의 유한성이 곧 인간 존재의 유한자임을 아는 것. 하지만 무한자를 알고 싶어하는, 정신의 그 뻗어나가고 싶음을  참을 수 없는 것.


총체성 Totalität 


읽지 않은 책이 많이 있다 해도 읽지 않은 책이 쌓이고 있다 해도 책을 사는 것이 그대 정신의 위대함의 증명입니다. 

쿠자누스: 아는 무지에 이르는 것. 유한자임을 알면서도 무한자를 열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정신이 신성함의 증거다.

 

* 마키아벨리, 루터, 베이컨, 홉스

마키아벨리, 루터, 베이컨, 홉스 순서로 공부. 생몰연대순

쿠자누스까지 하면서 르네상스는 끝났고, 이제는 르네상스에서 모던으로 넘어가는 사람들.

넓은 의미에서 마키아벨리, 루터, 베이컨은 르세상스 시대의 철학자들. 

르네상스를 역사적으로 규정할 때는 중세 가톨릭의 해체. 가톨릭의 해체가 완만하게 일어나는 게 좁은 의미의 르네상스, 급격하게 일어나는 것이 종교개혁. 


- 가톨릭의 해체

가톨릭의 해체라는 것이 르네상스인데 해체되니까 2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1) 세상이 어찌되려고하나.. 식의 반응(가톨릭의 해제에 관한 소극적 대응)

몽테뉴, 토마스모어. 


30년 전쟁 와중에 살았던 사람.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는 그 한권이면 끝.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도 읽어 볼 것.


2) 가톨릭에 해체에 대해 적극적 대응해 나간 사람. 마키아벨리, 루터, 베이컨, 홉스

이들이 처한 상황이 무엇인가. 중세 가톨릭의 세계가 무너져서 통일성이 무너진, 혼란한 세계. 

토마스 홉스· 존로크· 장자크 루소의 책을 보면 "자연상태"라는 말이 나오는데, 바로 이들 앞에 펼쳐진 세계가 자연상태의 세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섰을 때 이들이 처한상황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른바 '자연상태'

자연상태가 이들의 출발점. 이들은 새로운 세계에 서있는 것, 새로운 상황에 직면에 있는 것.


이 4명의 공통점은 transzendenz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

루터는 신에 대한 감각, 초월적인 것에 대한 감각은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실정성의 세계에 어떻게 아우러 볼 수 있는 감각이 없는, 다시말해 총체성은 있을 수 없었다.

세계와 우주와 인간에 대한 총체성이 파괴된 상태, 자연상태를 달리말하면 총체성이 파괴된 상태. 

쿠자누스까지만 해도 총체성이 있었다. 


총체성이 파괴된 상태에서 이 들은 무엇인가 하나의 측면만 가지고 있다.

마키아벨리: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운에 맡기는 것을 구별. 능력과 운명, virtu vs fortuna. 이 둘을 조화 시킬 수 없다. virtu을 신경쓰자는 것. 어느 정도 고대적인 측면하고 고대적인 측면이 병존하기는 하지만 한 쪽을 선택.

루터: 내면의 신앙. 내면과 신앙의 형식을 분리해서 내면에 몰두. 철저한 내면성의 추구

베이컨: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과거의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철저하게 관찰에 근거하여 경험적 방법과 실험.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완전히 폐기하고 경험적으로 안다는 새로운 방법론의 선택

홉스: 고전적 덕과 자유주의. 혼재되어 있지만 자유주의에 몰두. 자유주의의 정초자. 


베이컨과 루터는 자기가 폐기한 것을 완전히 없애버림. 르네상스 시대에 완전하게 모던적인 면모를 보여준 사람.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를 통해 고대적인 흔적이 보인다.

자기의 저작에 혼재를 남긴 사람은 마키아벨리, 홉스. 르네상스 시대이기 때문에 고대적인 것과 모던 한 것이 병존하고 있는데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는 읽는 사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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