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5 맥베스/오셀로 5

 

 

 

오셀로 - 10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아침이슬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718 22강 맥베스/오셀로(1)

20130725 23강 맥베스/오셀로(2)

20130801 24강 맥베스/오셀로(3)

20130808 25강 맥베스/오셀로(4)

20130822 26강 맥베스/오셀로(5)

 


20130822 26강 맥베스/오셀로(5)

서양 근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무관할 수는 없다.
다음 주에 공부할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시대도 아무런 역사적인 맥락 없이 읽으면 그것 자체로 훌륭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대적인 폭력성이 있다. 그런 것들과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결코 우리가 무관할 수 없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1850-1950년이라고 하고는 100년 시기를 놓고 그 시기에 서구에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한반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역사적으로 탐색을 해보는 것이 굉장히 많은 공부가 된다.
직접적으로 현재 2013년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공부가 된다. 다음 주부터 근대 세계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서구 근대 세계의 특징도 있지만 학적인 차원에서는 동아시아 세계의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황준헌: 조선책략, 야마무로 신이치: 러일전쟁의 세기 - 연쇄시점으로 보는 일본과 세계   
한번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114 에밀리아: 건수 때문에 질투를 품는게 아니라
          질투에 차 있기 때문에 질투는 하는 거거든요
          질투란 괴물이에요.
          자가 생산하는, 자기 스스로한테서 태어나는.
 
질투에 차있기 때문에 질투를 하는 것, 이 말이 중요한 포인트.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질투를 집어넣는게 아니라 오셀로가 질투에 차있기 때문인 것.
 
김정환씨의 역자 해설을 보면
186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관계는 왜곡된 서정의 극치를 이루지만 흑백미추 콤플렉스를 구현하는 오셀로보다 더 복잡한 것은 이아고의 심리다. '인물' 이아고의 형상화를 통해 <오셀로>는 일상적 사랑에 묻은 의심과 살기, 그것이 이루는 사랑의 '마음의 지옥'을 절체절명으로 드러내며 영원히 현대적인 차원에 달한다. 사실 이아고는 오셀로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분신이다.
 
'이아고의 형상화를 통해'가 포인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정말로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항상 우리 마음 속에 모순되는 것들이 들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끌어내는 형상화하는 계기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곧바로 뿜어져 나오는 것. 
그것이 가장 절체절명으로 드러나는 것이 <오셀로>.
 
3막 3장부터가 파국으로 가는 부분이다. 84페이지를 보자.
사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에게 뭔가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데스데모나는 철이 없다.
 
84 데스데모나: 그런 걱정 마세요. 여기 있는 에밀리아를 두고
          제가 보장하겠어요, 딩신의 자리를, 안심하세요,
          전 우정을 맹세하면 꼭 실천을 하죠,
          마지막 항목까지, 제 주인님은 쉬지를 못하실걸요,
          말을 들으실 때까지 잠 못 자게 하고, 못 견딜 정도로 계속 졸라 댈테니까요.
 
그리고 오셀로와 이아고가 등장한다.
 
84 에밀리아: 마님, 장군님이 오십니다.
 
캐시오는 퇴장하고 85 페이지 위에 보면
 
85 이아고: 하! 저건 아니지.
 
여기서부터 이아고가 음모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부분.
이 드라마가 비극이라면 일차적으로 오셀로의 비극인데 여기서부터가 오셀로 비극이 시작. 
자기 마음이 지옥이면 비극이다. 자기가 A라고 여겼던 것이 A가 아니면 지옥이 시작되는 것.
 
85 오셀로: 무슨 소린가?
85 이아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군님. 아니 혹시, 난 잘 모르겠어요.
85 오셀로: 내 아내와 헤어진 게 캐시오 아닌가?
85 이아고: 캐시오요, 장군님?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
          죄지운 놈처럼 슬그머니 사라졌잖습니까,
          장군님이 오는 걸 보고요.
85 오셀로: 분명그였어.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의심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그런데 철없는 데스데모나는 여기서 캐시오에 대해서 청원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오셀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게 잘 드러나는 것이 86페이지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대사가 짧게 오고 가는 부분. 어긋나는 대화가 오고 간다.
 
86 데스데모나: 오늘 밤 저녁 식사 때?
86 오셀로: 아니, 오늘밤은 안되오.
86 데스데모나: 그럼 내일 저녁 때요?
86 오셀로: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을 거요,
          성채에서 선장들을 만나기로 했소.
 
이제 데스데모나가 이제 길게 말을 한다. 그러니까 오셀로는
 
86 오셀로: 제발, 그만. 오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 하시오.
 
그리고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가 퇴장 전에
 
87 데스데모나: 그게 무엇이든, 전 따르겠어요.
 
퇴장 전에 오셀로는
 
87 오셀로: 귀여군 것! 파멸이 내 영혼을 사로잡더라도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그리고 그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시 혼돈이 오리로다.
 
지금 이 오셀로의 독백은 자기 확신을 위한 독백. 
그 다음에 이아고가 말한다.
 
87 이아고: 고결한 장군님.
87 오셀로: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이아고?
87 이아고: 마이클 캐시오가, 장군님께서 마님께 구혼하셨을 때,
          알았습니까, 장군님의 사랑을?
88 오셀로: 알았지, 처음부터 끝까지, 왜 묻는겐가?
[...]
88 오셀로: 그는 충직하잖나?
 
'충직'이라는 말. 오셀로가 잘 쓰는 말이 믿는다, 충직하다. 이런 단어들이 오셀로의 성격을 형상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아고가 충직이라는 단어를 물고 늘어진다.
 
88 이아고: 충직이오, 장군님?
88 오셀로: 충직? 그래, 충직.
88 이아고: 장군님, 제가 아는 일체로는.
88 오셀로: 무슨 생각을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데' 굉장히 긴박하거 절박하게 물어는 것. 
지금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는데'를 말하는 지점부터 오셀로는 이아고에게 포획되었다.
오셀로하고 이아고가 스타카토로 말을 주고 받는데 이런 부분들이 <오이디푸스왕> 읽을 때도 있었다. 오이디푸스와 테이레시아스, 오이디푸스와 크레온의 대화. 이런 부분들이 지나고 나면 오이푸스도 포획된다.
아주 전형적인 방식이다.
 
87 이아고: 생각이라뇨, 장군님?
88 오셀로: '생각이라뇨, 장군님?' 이런, 자네, 내 말을 따라 하는게
          마치 어떤 괴물이 자네 생각 속에 들어 있다는 투로군.
 
그러고 나서 오셀로가 89페이지를 보면
 
88 오셀로: 자네가 날 사랑한다면, 내게 보여주게, 자네 생각을.
 
이아고의 생각을 원하는 것. 이제 오셀로에게는 생각이 없어졌다.
이아고의 생각을 보고싶다. 난 니 생각대로 나는 움직일 수 있다고 하는 것. 타인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오셀로가 된 것.
 
89 오셀로: 아냐 뭔가가 더 있어. 자네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고.
          곰곰 생각하는 그대로, 그리고 최악의 생각을
          최악의 단어로 표현해 보란 말야.
         
자꾸 이아고의 생각을 원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셀로는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 최악의 경우를 자기 스스로도 가정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아고의 생각인 것처럼 받아 들인다. 자기가 짊어지게될 책임을 회피하는 것.
여기에 두가지 의미가 있다. 이아고의 생각대로 움직여 가는 것이 하나. 두번째가 자기 스스로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결국 이아고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인데 내가 생각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는 타인의 평판에 따라 움직여가는 것. 
자기의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타인의 평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소외된 삶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이아고는 사랑하는 장군님하며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다. 
 
91 오셀로: 하늘에 맹세코, 자네 생각을 알아야겠다.
91 이아고: 그러실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이 장군님 손아귀에 있더라두요,
 
이아고가 계속 말을 안해주니
 
91 오셀로: 오 비참이로다!
 
이아고의 생각을 모르니까 괴롭기는 하지만 이미 스며든 것. 그러니까 3막 3장 지금 읽은 부분이 오셀로로 하여금 의심과 질투로 가게하는 지점. 오셀로는 이제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다.
 
92 오셀로: 내가 질투의 생애를 살 것 같다는 말이냐.
 
이렇게 말하면서 질투의 생애를 살게된다.
 
92 오셀로: 의심한다면 증명하리라,
          그리고 증거를 잡으면, 이것뿐이다.
          사랑도 질투도 한꺼번에 끝장.
 
질투라는 것은 객관적이고 냉정한 상황이 아니다. 유죄를 가정하고 증거를 찾는다.
의심한다면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증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자위적으로 짜 맞추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타인의 평판에 의존하는 오셀로라고 하는 질적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아고는 여기서 못을 박는다.
 
93 이아고: 장군님 아내를 잘 살피십시오. 캐시오를 잘 관찰하세요.
          눈을 이렇게 뜨세요, 질투의 눈도, 안심한 눈도 아니게.
          전 원치 않아요, 장군님의 소탈하고 고결한 성격이
          스스로의 너그러움 때문에 기만당하는 것을요, 조심하십시오.
          전 우리 동네 기질을 잘 알지요,
          베니스에선 여자들이 간계를 하나님께 내보이죠,
          자기 남편한테는 감히 보여 주지 못하는 간계를,
 
여기서 '베니스에선' 이라는 말에 주의하자. 베니스에 대해서 오셀로는 무지하다. 베니스 사람들이 어떠한지를 모른다. 
베니스에 대한 오셀로의 무지를 이용해서 타인의 평판에 의식하는 오셀로의 심정에 최악의 카드를 내민다. 그리고 나서 
 
93 이아고: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장군님과 결혼하면서요,
          그리고 장군님 얼굴을 두려워하며 몸을 떠는 듯했을 때
          그때가 그녀 사랑이 최고였을 땝니다.
 
1막 3장에서 브라반치오가 한번 말했다. 이게 그러니까 앞에서 깔았던 것.
 
1막 3장
37 브라반치오: 그애를 잘 살피게, 무어 인, 보는 눈이 있다면,
          자기 아버지를 배반한 애야, 그리고 자네도 그럴 수 있어.
 
이제 여기에 와서 이아고에 의해서 되살아났다.
여기서 부터 오셀로는 자기의 생각은 없는 상태에서 브라반치오의 생각, 이아고의 생각이 필터없이 들어와서 오셀로의 생각으로, 확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반성해보면 이것은 자기가 생각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라는 것이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오셀로>를 읽어보면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편견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 너무나 매카니즘을 잘 잡아서 표현했다. 두려운 순간에 확신하는 편견이 생겨난다. 그리고 조급함.
 
그래서 이아고가 
 
93 이아고: 맞아, 바로 그거예요, 그렇다면.
          그토록 어린데 그런 시늉을 지을 수 있는 그녀,
          자기 아버지 눈을 오크 나무처럼 촘촘하게 가린 그녀 아닙니까,
          그가 마법이라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제 잘못이 큽니다.
 
여기서 최악의 카드를 내미는 것과 동시에 앞에서 브라반치오가 제시했던 암시를 일깨움으로서 오셀로에게 편견을 확신으로 갖게 한다. 이렇게 가면 그 다음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95 오셀로: 왜 결혼이란 걸 했지 나는? 이 정직한 자는 분명
          보고 아는게 많아, 훨씬 많지, 그가 털어놓은 것보다.
 
이 다음부터는 내가 못난 놈이야라고 하는 자기 비하가 들어간다. 극단적인 자기 비하를 통해서 자신의 불만을 터프리는 것이다. 배신감이 절정에 올랐다. 그때 자기 비하가 확 들어간다. 자기비하를 하는 순간이 인간이 자기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보는 것. 자기 비하가 깊으면 깊을 수록 반작용도 크다. 복수가 뿜어져 나오는 것. 96 페이지에 보자.
 
96 오셀로: 난 휘파람으로 그녀를 보내고 그녀가 바람을 가로지르며 내려가
          제 운명을 잡아채게 하리라. 아마도 내가 검기 때문에,
          그리고 그 부드러운 대화의 예의가 없기 때문에,
          한량들만 못할지 모르지, 아니면 내 나이
 
검다, 예의가 없다, 한량보다 못하다. 오셀로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이 기분이 한껏 고양되고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이 넘쳐 흐를때 말하는 것이면
여유있는 자의 독백이지만 이 시점에서 말하면 자기 비하. 
 
          인생의 골짜기에 들었으므로 - 하지만 많은 나이는 아닌데 - 
          그녀가 간 게야. 난 기만당했어.
 
난 기만당했어. 자기 비하와 배신감. 이제 복수가 들어간다.
 
           그리고 나의 구원은
          그녀를 혐오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 결혼의 저주로다.
 
그러면서 데스데모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못견디니까 다시 자기과시를 시작한다. 
 
          그건 위대한 자의 역병
 
자기 비하와 배신감과 복수의 다짐과 자기 과시와 이런 것들이 순서없이 엉키고 뿜어져 나온다. 
이 부분이 오셀로라고 하는자가 얼마나 굳건한지 자기정체성을 가진 사람인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굳건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자기 비하를 하고 나서 훅 턴다. 그런데 오셀로 복수와 자기과시를 통한 정당화까지 한다.
좋게 말하면 오셀로 내면의 복합성인 것이고, 하지만 이렇게 복합적인 것은 제정신이 아닌 것. 성격파탄.
 
그리고 나서 데스데모나가 나타났는데
 
96 데스데모나: 어쩌신가요, 나의 사랑하는 오셀로?
          저녁 식사, 그리고 고결한 섬 분들이
          당신 초대를 받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96 오셀로: 내 잘못이오.
96 데스데모나: 왜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으셔요? 아파요?
96 오셀로: 여기 이마가 쑤셔.
 
'여기 이마가 쑤셔' 영국에서는 오쟁이를 진 남편은 이마에 뿔이 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내가 지금 오쟁이진 남편이야라는 것을 암시하는 문장이다. 민음사 판에는 각주가 있다.
오셀로는 이제 차가와 졌다. 데스데모나에게 마음을 더이상 집어넣지 않는다.
 
그 다음은 흔히 거론되는 손수건 이야기
손수건이 나오는 장면이 이마가 쑤셔 대사 다음에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97 오셀로: 당신 손수건은 너무 작아.
          (그가 손수건을 떼어낸다. 손수건이 떨어진다)
          그냥 두시오. 갑시다. 당신과 함께 가리다.
 
<오셀로>를 말할 대 손수건이 흔히 중요하다고 한다.
손수건이 아무데서나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지점에서 나와야 이 드라마에서 필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오셀로가 이미 복수의 마음을 굳힌 상태에서 손수건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에밀리아가 손수건을 집어들며
 
97 에밀리아: 이건 마님이 무어 분한테서 받은 첫 기념 선물이지.
 
지금 오셀로는 여기서 손수건이 떨어졌는데 그것을 오셀로가 알고있는건지 아닌건지가 약간의 중요성이 있다.
'이마가 쑤셔'라는 대사로서 질투에 이어지는 자기 비하와 배신감이 이런 것들이 정리가 되었다. 
 
여기까지 3막 3장을 계속 읽어왔다. 이 부분을 촘촘하게 잘 읽어야 한다. 
<오셀로>에 대해서 무언가를 쓴다고 할때는 3막3장에서 이아고가 음모를 만들기 시작하는 장면부터 이마가 쑤셔까지의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없다면 드라마가 성립할수 없다.
 
여기까지 읽고다면 다음 부터의 오셀로 대사는빤하다.
 
3막 4장
104 오셀로: 이년을 갈갈이 찢어발길 테다.
 
김정환 씨가 이정도면 굉장히 쎄게 번역한 것. 그러고 나서 109페이지 손수건을 추적해보자.
 
109 오셀로: 당신 손수건 좀 빌려주시오.
109 오셀로: 내가 주었던 손수건.
 
마치 앞에서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109 오셀로: 그거 문제로군. 그 손수건은
          이집트 여인이 내 어머니한테 주었던 것.
          그녀는 마법사였소. 그리고 거의 읽을 수 있었지,
          사람의 생각들을. 그녀가 어머니한테 그랬어. 손수건을 지니고 있으면
          매력을 발산케 될 것이고, 내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홀딱 빠지게 될 거라고.
 
지금 오셀로도 나름 머리를 써서 손수건을 가지고 올가미를 걸었다.
그러고 나서 오셀로가 지금 
 
111 오셀로: 손수건
111 오셀로: 손수건
111 오셀로: 손수건
 
손수건을 세번이나 말한다.
그런데 데스데모나는
 
111 데스데모나: 정말, 이러시면 안 되죠
111 오셀로: 이런 제기랄(퇴장)
 
라며 퇴장을 했는데 에밀리아가
 
111 에밀리아: 이런데도 질투가 없다구요?
 
라고 말한다.
지금 에밀리아는 유일하게 제정신인 사람. 사태를 전혀 왜곡없이 보는 사람. 왜냐하면 에밀리아에게는 그 누구도 생각을 심어줄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본다. 앞에서 데스데모나가 장군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 이러고도 질투가 없냐고 한다.
 
오셀로, 데스데모나 모두 머리 속에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있고, 남에게 보여지는 자기모습이 자기꺼라고 생각하고 있고, 자기가 바라는 모습이 진정한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 그런데 에밀리아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114 에밀리아: 하지만 사람이 질투어 사로잡히면 그런 대답으로는 안되죠,
          건수 때문에 질투를 품는게 아니라
          질투에 차 있기 때문에 질투는 하는 거거든요
          질투란 괴물이에요.
          자가 생산하는, 자기 스스로한테서 태어나는.
 
에밀리아의 이 말이 지금 오셀로에 대한 정확한 판단.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말을 누군가가 자기에게 할 때 그말을 참고 들을 수 있을까. 
인정에 대한 욕망이 크다. 자기 실제의 증명이라는 것.
 
이제 4막으로 들어가면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막판으로 약을 먹인다.
 
4막 1장
120 이아고: 그녀 옆에 누웠든, 그녀 위를 덮쳤든, 어쨌거나.
 
오셀로는 그 말을 듣고 기절하여 쓰러진다. 그래서 이아고가
 
120 이아고: 내 약이 잘 듣는구나. 귀 앏은 놈은 이렇게 때려잡는 거야.
 
그리고 바로 
 
121 이아고: 장군께서 사내답게 자신의 운명을 견디기를 바라는 거죠.
 
그러니까 오셀로는
 
121 오셀로: 뿔 난 사내는 괴물이고 짐승이야.
 
뿔 난 사내라는 게 아까 말했던 이마에 뿔 난 사람.
 
121 이아고: 인구 많은 읍에는 짐승이 많죠,
          그리고 읍에 사는 괴물도 많구요.
 
이아고는 이죽거린다.
이렇게 되면 오셀로는 자기를 버텨주던 것이 자기 과시인데 이 말을 듣고나서는 자기 과시마저도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처음에 오셀로가 등장했을 때 제가 이렇게 잘난놈입니다 라고 등장했다. 그것이 없어지면 시작이 없어지면 끝날 때 그것이 없어지면 이 드라마는 끝나는 것.
 
그런 것이 하나의 징후로써 드러나는 부분이 데스데모나와 대화하는 부분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133페이지
 
 
4막 2장
133 데스데모나: 주인님, 부르셨나요?
133 오셀로: 이리 오라, 이쁜 것.
 
이쁜 것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데스데모나를 부르는 호칭의 변화가 일어나났다.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관계가 오셀로가 생각하기에 더 이상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오셀로는 이렇게 함으로 해서 자기가 스스로 가지고 있던 가장 원초적인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자존감이 폐기된 상태.
자존감이라는 것은 데데스데모나에게 어떻게 말하느냐가 징후를 나타내는 가장 큰 포인트. 호칭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오셀로 내면에 있는 자존감의 폐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대화가 아주 엇박자가 나타나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134 데스데모나: 당신의 아내예요, 여보, 당신의 진실하고 충성스런 아내.
134 오셀로: 네 자신을 저주하라, 아니면, 하늘에 속한 듯한 외모 때문에, 악마들 자신도
          두려워 너를 잡지 못할까 두렵노라. 그러므로 이중으로 저주 받아야 해.
 
134 오셀로: 하늘이 정녕 알고 있다, 네가 지옥처럼 거짓되다는 것을.
 
데스데모나에게 더이상 이보다 더 한 말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나서 계속 얘기하다가 135페이지
 
135 데스데모나: 아 저도 모르는 어떤 죄를 제가 저질렀던가요?
135 오셀로: 이 아름다운 종이, 이 훌륭한 책이,
          그 위에 창녀라 쓰라고 만들어졌단 말인가? 무슨 짓을 저질렀냐고?
          저질렀냐고? 오 이런 대 놓고 하는 창녀 같으니.
 
저질렀다는 말이 영어판을 보면 commit. 오늘날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commit은 뜻이 딱 하나 밖에 없었다. 간통을 범하다. 
이 단어를 데스데모나와 오셀로가 주고 받았다. 이런 단어들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잘 모르는 맥락.
데스데모나도 사태를 깨닫고 5막으로 간다.
 
 
5막 2장
160 오셀로: 대의명분, 대의명분이 중요하다, 내 영혼이여.
160 오셀로: 하지만 그녀는 죽어야해, 아니면 더 많은 사내를 배반할 테니까.
 
여기서 데스데모나가 죽는데 이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오셀로는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나서
 
161 오셀로: 그대가 죽으면 난 그대를 죽인
          그 후에 그대를 사랑하리라.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데스데모나는 계속 철없이 
 
162 오셀로: 당신 죄를 생각해 봐.
162 데스데모나: 당신에 대해 품은 사랑이 죄죠.
162 오셀로: 맞아, 그래서 당신은 죽는 거야.
 
여기서 끝장이 난다. 그러고 나서 오셀로가 정말로 가증스럽다. 용서의 여지가 없다.
 
165 오셀로: 내 안내, 내 아내! 무슨 아내? 난 아내가 없어.
          오 버티기 힘든, 오 무거운 시간이다!
 
자기가 아내를 죽여놓고 그렇게 해서 죽인 자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또 경멸하고, 자기 비하보다도 더한 것.
이걸로써 오셀로는 끝. 
 
이제 착실한 에밀리아가 모든 것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172 에밀리아: 오 이런 아둔한 무어 인, 당신이 말하는 손수건은
          내가 우연히 발견하여 내 남편한테 준 거야.
          그가 하도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
          이런 사소한 물건에는 어울리지 않게 - 
          훔쳐 달라고 애걸복걸을 해서 말야.
 
에밀리아의 대사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사소한 이라는 단어가 포인트.
사실은 거기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오셀로는 사소하고도 하찮은 것에 무너졌다. 에밀리아가 보기에는 그렇다.
 
172 에밀리아: 오 살인이나 일삼는 멍청이! 
 
지금 에밀리아가 오셀로를 최종적으로 규정한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라파엘의 입을 빌려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다고 했다. 모두 르네상스 시대에 읽었던 책들. 아무리 작게 잡아도 그 당시로 보면 800년 전에 나온 텍스트들를 르네상스 시대에 읽은 것이다. 그래서 르네상스를 고전의 재생이라고 한 것. 왜 읽었는가. 중세라는 시대의 질서가 무너져 가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기 위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은 것. 그러면 우리는. 지금부터 800년 전이면 1200년인데 그 당시 텍스트는 삼국사기, 한반도에는 고전 텍스트의 전통 자체가 없다. 불행한 것. 계속해서 외국에서 만들어진 텍스트를 읽는 것. 우리가 지금 혼란의 시대다라고 할 때 읽을만한 텍스트가 없다. 현재 2000년 대 한국사회 가장 큰 불행이 뭐냐. 우리가 아이디어를 길어올릴 고전텍스트가 우리 자체적으로 생산된 적이 없다는 것.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와 같은 것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현재에도 심리를 파고드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좋다.
 
 

 


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저자
르네 데카르트 지음
출판사
문예출판사 | 1997-10-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데카르트의 초기사상을 엿볼 수 있는 철학서. 정신지도 규칙과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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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근대사회를 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규정할 때는 데카르트의 텍스트, 즉 <방법서설>을 말한다.프랑스 사람들은 데카르트를 많이 연구한다. 프랑스철학의 원조. 현대 프랑스 철학은 안읽어도 괜찮다. 철학 고전 강의를 할 때는 <방법서설>이 아닌 <철학의 원리>를 강의 한다. 이건 형이상학이어서 어렵다. <방법서설>은 말그대로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
데카르트 시대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겠다.서양에서 근대라고 하는 말을 할때 근대라는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예를 들어서 조국 근대화라고 할 때 울산에 가면 '조국 근대화의 메카 울산' 이렇게 써있다. 울산 사람이 생각하는 근대화가 뭘까. 울산사람들이 이해하는 근대화는 공업화다. 공업화를 근대화로 이해한다. 또 조국 근대화는 박정희의 조어. 한국에서 근대라는 말이 사용되는 맥락이 이렇다.  사실 한국에서는 근대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이해되고 그것에 걸맞게 뭐가 만들어진 적은 없다.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또한 <방법서설>에 나타나는 학문 방법론의 논의들이 근대 철학의 밑바탕이 된다. 본래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사실 우리에게 근대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복합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나 한국은 근대라는 개념 자체를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근대로 이해된 것이 다시 우리에게 와서 근대로 이해된 것.
서양에서는 대체로 17세기부터를 근대라고 보는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원래적인 의미에서 근대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바로 이번 데카르트이다. <방법서설> 자체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방법서설>을 읽음으로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대적인 것들이 원래 무엇인었는지를 좀 알아보고 비추어서 볼 수 있겠다.
그러면 근대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첫째 어떤 사람들은 철저하게 중세와의 단절이라고 말하는데 역사에 대해 우리가 보는 태도 중에 가장 위험한 태도가 완전한 의미에서 단절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한 태도. 어떠한 의미에서도 단절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근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제일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지속되어온 큰 흐름들이 17세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 다시말해서 르네상스 시대부터 몇가지 큰 흐름들이 있었는데 로만 가톨릭 Roman Catholic 세계.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서양 중세를 하나의 체제로써 설명할 때 로만 가톨릭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라고 하는 신앙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데 기독교는 종교적인 신앙체계다. 다시말해서 현실세계를 규율하는 구체적인 정치조직이 아니다. 
 그 신앙이 현실 세계 속에서 드러날 때 교회라고하는 제도 속에서 드러난다. 로마 교황이 있고, 대주교가 있고, 주교가 있고, 신부가 있다. 그런 제도가 로마법 체계 위에서 서 있다. 로만이라는말은 로마법적인 이런 말. 로마법적인 체계 위에 서있는 기독교라는 뜻.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서양 중세를 이해할 때는 로만 가톨릭이라고 해서 이해를 하고 알고있어야 한다. 로마법이라고 하는 것이 중세인의 삶 전체를 규율하는 것.
이러한 로만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체계가 조가조각 나기시작하는 것이 근대의 출발점이다.데카르트를 근대인이다 라고하면 그는 신앙이 없었느냐, 아니다. 굉장히 경건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사람. 신을 믿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근대는 탈종교다 라고 생각하면 잘못 이해하는 것이며 신앙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봐야한다. 신앙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방식이 다른 것. 
르세상스는 크게봐서 르네상스 전기, 후기로 나뉘는데 후기를 종교개혁이라고 한다. 다시말해서 넓은 의미의 르네상스는 고전시대의 재생이라는 특징을 가진 르네상스 전기와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르네상스 후기로 나눈다.그래서 프레테스탄트가 등장했다고 하는 것, 이점을 우선 알아두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서양에서 근대라고 할 때 1차적으로는 고대 문헌의 부활과 가톨릭의 보편체계가 현실세계에서 깨져 나가고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하는 것. 여기까지가 근대라는 의미의 제일 첫번째이다. 서양 근대사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출발점은 로만 가톨릭 쳬계의 붕괴. 즉 종교적인 것에서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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