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2 오이디푸스왕 1
- 강의노트/인문고전강의 2013
- 2014. 6. 3.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외 -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문예출판사 |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321 07강 오이디푸스왕(1)
20130328 08강 오이디푸스왕(2)
20130404 09강 오이디푸스왕(3)
20130411 10강 오이디푸스왕(4)
20130321 07강 오이디푸스왕(1)
번역본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면 되고, 영어판으로는 <오뒷세이아>를 번역했던 Robert Fagles의 <The Three Theban Plays>을 준비하면 된다.
지난 번까지 읽었던 <오뒷세이아>, <일리아스>나 이번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와 같은 문헌들을 대개 고전이다 라고 얘기를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1차문헌이라고 한다. 1차 문헌을 '읽는' 사람을 학자라고 한다. 학자들이라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는가를 배우는 것. 1차 문헌을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지난번까지 <오뒷세이아>를 '읽었다'. 그러면 '읽는다'고 했는데 읽는다는 것은 번역을 한다는 것과 그 다음에 번역된 것들을 해석하는 것이 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해석의 성과물을 내놓는 것이 학자가 하는일이다. 1차 문헌을 번역 한다고 하면 먼저 해당 1차문헌의 외국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오뒷세이아>는 천병희 교수가 번역을 했다. 번역가이다. 해석은 없다. 뒤에 해설은 있지만 해석은 없기 때문에 번역가라고 한다. 1차 문헌을 번역하는 사람이다. Robert Fagles은 번역도 하고 해석도 한다. 그런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 다음에 <오뒷세이아>, <일리아스>를 보면 강대진 박사 쓴 해설서가 있다. 이는 해석한 것. 번역을 하는 것과 해석하는 것은 다르다. 번역에다가 view point, 즉 관점을 덧붙이면 해석이 되는 것. 관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인가를, 1차 문헌이라는 텍스트에서 어느 부분을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본인은 희랍어을 하지 못하니까 번역은 못하고, 변역된 것을 호모프로쉬네, 같은 마음이라고 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해석을 해야한다고 지난 시간에 얘기했다. 강대진 박사가 쓴 해설서를 보면 그런 얘기는 안나온다. 그건 그 사람의 view point인 것이고, 본인의 view point를 가지고 해석을 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 그러니까 번역이 안되니까 어디가서 전문가 소리는 안해도 적어도 1차 문헌을 읽을 때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게 중요 포인트이다. <오뒷세이아>를 수백번 읽어서 같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도 있지만 <오뒷세이아>와 버금가는 1차 문헌들을 함께 읽어서 대조해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수없이 많은 고전을 읽어서 한방울의 지혜를 만들면 바로 이것이 view point이다. 이런 사람들을 학자, 학자 중에서도 진짜 탁월한 학자가 누구인가. 지금까지 아무도 1차 문헌이라고 간주하지 않았던 텍스트를 끄집어 올려서 1차 문헌으로 올려내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학자의 독자는 학자다. 그러면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연구 성과물을 가지고 쓰는 것을 2차 문헌. 이걸 가지고 읽어서 쓰면 3차 문헌이 된다. 1차 문헌은 읽는 사람은 학자, 문헌을 읽을 때 view point를 만드려면 철학과에서 읽는 1차 문헌만 가지고는 view point가 안나온다. 역사책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의 <헬레니카>를 가지고 왔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412년에서 서술이 끝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얘기가 바로 <헬레니카>이다. 여기에 중요한 얘기가 있다. 이 것을 왜 읽어야 하는가, 오늘부터 배울 소포클레스하고도 관계가 있다.
오늘 소포클레스의 첫 시간이니 소포클레스를 읽는 view point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그러면 어떤 텍스트를 1차 문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1차 문헌을 확정을 하려면 문헌학적으로 체크를 해봐야 한다. 1차 문헌을 확정하는 작업을 하는 학문을 기초학문이라고 한다. 철학은 기초학문이 아니다. 기초학문은 역사학. 아주 기본적으로는 문헌학으로서 역사학, 또는 출토 유물을 다루는 학문인 금석문, 갑골문을 연구하는 고고학이 있다. 이 사람들은 관점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문화적 활동의 산물들을 기본적으로 만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리학, 천문학이 자연과학의 기초학문이라면 이 쪽의 기초학문은 문헌학, 고고학이다. 이 둘을 묶어서 역사학에서 다룬다.
내가 1차 문헌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구나, 이 얘기가 궁극적으로 어디에 뿌리를 두고 이야기하고 았는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섣불리 다른 학자가 쓴 2차 문헌이나 3차 문헌이나 해설서를 읽어버릇하면 나중에는 겁이 난다.1차 문헌을 읽으려면 문헌학이나 고고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니체를 보자. 굉장히 탁월한 사람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니체를 문학으로써 읽는다. 사실 학자로서 굉장히 탁월한 사람. 니체는 일단 바젤대학의 문헌학과 교수였다. 1차 문헌을 확정하는 문헌학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 특히 고대 그리스 비극을 읽는, 희랍어에 능통한 사람이며 어린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니체는 1차 문헌을 읽어서 자기의 이야기도 만들어낸 사람으로 이 바닥에서 대단한 사람. 현대철학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1차 문헌을 읽으려면 문헌학 책을 많이 봐야 한다. Kennedy, J. B. 의 <The Musical Structure of Plato's Dialogues>, 즉 플라톤 대화편의 음악적 구조라는 책이 있다. 문헌학에 해당하는 책이다. 요즘은 컴퓨터가 발전하니까 우리가 읽고 있는 플라톤 대화편들의 번역본이 아닌 우리가 읽는 구두점으로 하지 않고, 희랍시대 구두점에 따라서 희랍어 문헌을 재배열 해보니 놀랍게도 규칙성이 발견된다는 내용이다. 거의 시의 각운을 맞추듯이 그런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연구한 책. 어떻게 해석 해야 하느냐 가 아니라 <향연>에 보면 파이드로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가 나와서 말을 하는데 이 것들이 마치 음악적인 구조로 하모니, 이런 단어들이 규칙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한 책. 이런 것들은 리딩 이전에 기초적인 것이다.
이번 주부터 오이디푸스 왕을 읽는데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 적인 것. geopolitics라는 용어가 있는데 지정학이라는 말이다. 제국의 학문. 독일에서 지정학으로 쓰이는데 그런 뜻과는 무관하게 지금 사용할 것이다. 호메로스 서사시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를 읽으려면 그들이 처해있는 지리적인 여건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인 상황을 충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가 지금 정치적인 상황을 가지고 희랍의 비극들을 해석해 들어가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자신할 수 없지만 몇가지 희망적인 것은 있다.
비극은 고대 아테나이에서만 괄목할만하게 나타났던 장르인데 아테나이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정치적인 상황이 개개인의 삶 속에 파고 들었던 시기이다. 다시말해서 정치적인 소외라는 것이 없는, 배제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키워드를 가지고 읽을 만한 것이 있다. 비극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아테나이 전성기와 일치한다. 함께 태어나서 함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동시대의 것. 그리고 특히나 소포클레스의 생몰연대를 보면 서기전 496년에서 406년을 살았으니 실제로 90년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포클레스가 살았던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극도로 달했을 때이다. 이 시기의 아테나이 사람들은 내분이 장난 아니던 시기이다. 아테나이 역사 속에서 가장 살육과 번민과 고통이 난무하던 시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비극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곧 우리가 지난번까지 읽었던 호메로스 서사시들에 비하면 굉장히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것. 비극작품은 곧바로 정치적인 맥락들과 일대일대응이될 정도로 붙어있었다. 특히 비극이 상연된 것은 아테나이 폴리스/도시국가가 집단적으로 조직한 행사였기 때문에 모두 봐야만 하는 것. 해마다 열리는 정기공연이고 계획에 따라서 경연이 일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강제성을 띠고 있다. 작가들은 사람들에게 공연을 하면 사람들한테서 박수를 받아야 하는 압박이 강력했다. 공동체에 살고 있는 사람들하고 직접적으로 소통이 되어야 하는 장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나 정치적인 맥락들을 많이 살펴봐야 한다. 이것들이 비극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까닭에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희랍 비극을 '읽는' 1차 문헌으로써, 읽는다고 했는데 번역하는 것이 아니고 번역된 것을 인터프리테이션 해야 한다. 그 밑바닥에 기초학문으로서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필요한 책이 <헬레니카>. 이 책은 서기전 411년 가을에서 362년 여름까지 49년 동안의 그리스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특히 폴리스 체제가 붕괴되고 참주정치인 30인 독재정치가 있다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계급투쟁이 격렬하고, 그 와중에 10년 정도씩 체제가 바뀐다. 체제가 바뀌면 보복이 일어난다. 민주정이 회복되면서 참주정인 사람을 죽이고 추방하기 시작한다, 그런 과정들이 생생하게 적혀있는 텍스트.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고대 희랍세계에서의 특히 아테나이에서의 격렬했던 정치적인 쟁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정치적인 쟁투와 입장들이 비극작품에도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를 틀어서 펠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을 보면 우리 아테나이는 헬라스의 학교다, 모든 희랍에서의 모범이 되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데모크라티아, 민주정을 하고 있다, 민주정의 핵심적인 요소로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라고 말을한다. 과연 그것이 페리클레스가 말한 립서비스인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적혀잇다.
<헬레니카>를 보자.
페이시아낙스의 아들 에우립톨레모스와 몇몇 사람들은 칼릭세노스가 불법으로 표결을 제안했다고 비난했다. 일부 민중들은 이 말에 박수를 쳤으나, 많은 사람들이 민중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처사라며 고함을 질렀다.
'민중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처사, 민중이 원하는 대로 할 자유, 그게 사실은 그 당시의 희랍의 특히 아테나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법에 따라서 실천되는 것이 아니라 민회에서 결정하면 실행되는 것. 사람들이 민회에 모여서 의쌰의쌰해서 결정나면 그대로 실행이 된다. 직접 민주주의. 그런데 그게 잘못하면 데마고고스 demagogos, 민중선동가에 의해서 이끌려갈 위험이 있다. 중간에 법에 의한 지배가 개입되지 않으면 민주정이 곧바로 데마고고스를 따라가는 참주정이 되어버린다. 최선의 민주정치는 독재정치다라고 한다. 나중에 <안티고네>를 읽을 때 이 부분이 떠오르는데,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이 아버지 마음대로 하지 마세요, 그것은 참주가 하는 짓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대사가 왜 소포클레스에게 나왔는가. 정치적인 맥락이 있는 것.
소프로니스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를 뺀 나머지 대표 행정위원들은 모두 겁에 질려 표결에 찬성했다.
이때 소크라테스가 대표 행정 위원 중에 한 명이었다.
소크라테스는 합법적이 아닌 일에는 동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면 선동에 의한 통치는 가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미운 털이 박힌 것.
우리가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에 반대해서 독약을 받아먹었다 라고 얘기를 하는데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을 반대했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람은 법에 의한 통치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 희랍에서는 아직 법에 의한 통치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노모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 것이다.
그때 에우립톨레모스는 연단으로 나와 장군들을 위해 이렇게 말했다… 에우립톨레모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칸노노스 법에 따라 개인별로 표결할 것을 제안했다.
'칸노노스 법에 따라', 법이라고 하는게 있긴 있는데 민회에서 얼마든지 뒤엎어질 수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회는 모두 일괄 표결로 처리하자는 반대 의견을 냈다.
그 후 해전에 참가했던 여덟 장군은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 자리에 있던 여섯 명이 처형되었다.
그래서 여기서 오래 지나지 않아 6명을 처형 시켰다. 오래지나지 않아 아테나이 사라믈은 후회를 한다.
사회과학에서는 transitional justice, 이행기 정의/올바름이라고 부른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나이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의 다툼이다. 이 다툼의 와중에 아테나이 안에서는 읍내파와 페이라이에우스 항구 쪽의 항구파의 다툼이 벌어진다. 큰 정쟁을 치루는 와중에 안에서 다툰다. <향연>에 나오는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도 그 다툼에 놓여있다.모든 사건이 끝난 다음에 플라톤이 써놓은 <향연>을 읽는 독자는 어떻겠나, 여기서 지금 잘나가는 놈들은 나중에 다 망명하고 배신하는 구나.. 이런 기억을 떠올리면서 읽는것.
<국가>를 보면 '아리스톤의 아들인 글라우콘과 함께 페이라이에우스로 내려갔었네' 거기서 폴레마르코스를 만난다. 폴레마르코스는 나중에 30인 참주정때 사형을 당하는 민주파이다. 독자들은 다 알고 있는 것. <오이디푸스 왕>이나 <안티고네>를 읽을 때는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빗대서 얘기하는데 이것을 보는 사람은 누구 닮은 것 같은데 하고 다 알아차릴 수 있는 것.
30인 참주의 우두머리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리티아스. 그당시가 404년으로 소포클레스가 살던 시기다. 소크라테스는 30인 참주정의 핵심멤버는 아니었지만 어쨋든 읍내파에 속했다. 나중에 읍내파들은 항구파에 의해서 보복을 당한다.
엘레우시스에서 이방인 용병을 고용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온 민중이 궐기하여 원정에 나서 그 장군들을 협의하기 위해 왔을 때 그들을 잡아 죽였다. 한편, 다른 이들에게는 친구와 친지들을 보내 화합하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사를 들추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는 양측이 오늘날까지 함께 살고 있으며, 민중은 서약을 신실하게 지켰다
<헬레니카>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보다 훨씬 더 박진감이 있다.
올바름만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쉽게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은 신이 정해준 운명. <오이디푸스 왕>의 스토리는 모두다 알고 있는데 그 스토리에 따르면 오이디푸스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말할 수 없다. 무지 갈등적인 상황에 들어가는 것. 실존적으로 고통스러운데 이런 문제들을 소포클레스가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현실적으로 고통스러운 문제가 있었다. 이 정도로 심난한 이율배반이 닥쳤다는것. <헬레니카> 구절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을 읽으면서 단순히 옛날 얘기을 가져다가 하나의 신화로써 보여줬다고 생각하면 안되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서 투사해서 거기에 나타나고 있는 사람들이 어른어른 거리는것, 우리는 당시 희랍 비극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말하자면 어떤 멘탈을 가지고 읽어 들어가야하는가를 생각해봐야한다.
박찬승의 <마을로간 한국 전쟁>이 있다. 며칠 사이에 좌익이 지배하는 마을에서 우익이 지배하는 마을로 바뀐다. 그런 경험속에서 사람들이 이제 강요된 침묵을 갖게 되는 것이고 학습된 무능력으로 빠져들어가는것.
<안티고네> 같은 것을 보면 사람들은 드라마가 상연되면 안티고네 입장에서 오빠의 장례를 지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안티고네에게 자기를 투사하여 안티고네편이 될 것이고, 반역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또 반대의 편이 될 것이다. 관객들이 비극을 보면 보면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입장들에 서있다.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자체가 고도로 정치적인 긴장감이 차오른다. 모든 이율배반적인 생황을 놓고 이 드라마를 읽을 때 함께 믹싱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 드라마가 그냥 단순히 서기전 5세기 희랍에서 나온 고전이 아니라 내가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적어도 이렇게 극단적인 정치적 내용을 담고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서 경연 대회까지 했다는 점에서는 아테나이가 지금의 우리보다 나은 점이 있다. <헬레니카>를 충돌이 심하다. 이런 와중에서도 이러한 드라마를 했다. 이런 점에서 지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지금의 우린 못하다. 적어도 아테나이에서는 했다는 것. 그래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남겨진 것. 민족/특정 집단의 위대함은 그걸로 증명되는 것이다. 자기들이 처한 상황과는 별도로 이렇게 한 발자국 물러서서 볼 수 았게 해주는 심리적 마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이 드라마를 읽을 때 생각해봐야 할 것이 이 지역사람들은 굉장히 좁다는 것이다. 누구의 아들 소크라테스인지 다 안다. 읍내파와 항구파가 서로 다투던 이 지역에서 비극경연대회가 열렸다. 정치적 내용을 담고 있는 텍스트를 무대에 올린 것. 드라마를 읽을 때 가장 유념해야 하는 것은 폴리스라고 하는 것은 소도시였다는 것이다, 특히 아테나이 폴리스는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밀치고 사는 곳. 도시의 차가운.. 이런 것은 없다. 또 전쟁에 함께 나갔던 동지들이었기 때문에 말그대로 우정의 연대가 이루어져 있었고, 팔랑크스 대형으로 전쟁을 치른 사람. 이런 사람들 사이에 전우애가 바로 우정이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우정을 높이 평가 했다 누가 어디 사는지 다 알고 있고, 그런 소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 드라마의 배경에 들어가 있다. 이게 바로 희랍비극아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세계.
희랍비극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짚어야할 포인트가 있다.
소포클레스를 읽든 에우리피데스를 읽든 아이스퀼로스를 읽던 형식적인 것은 아이스퀼로스부터 에우리피데스로 가면서 조금씩 바뀌고 주제도 바뀌지만 희랍 비극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코로스. 합창가무단.
<안티고네>의 크레온과 안티고네는 파르티잔 partisan, 각자의 당파를 가지고 있는것.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 드라마 안에서 보편적 입장에서 서야 한다. 보편적 입장에 서서 이 드라마가 어떻게 가고 있다라든가 배우들이 대사로서 미쳐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보충설명도 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크레온에게 한마디도 해주고, 오이디푸스가 너무 나댄다하면 너무 나대시는거아니에요 이런 말도 해줘야 하고,.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것이 코러스. 그래서 코러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희랍 비극을 읽는 핵심 키워드중 하나가 코러스를 충실하게 보는 것. 사실 코러스야말로 희랍비극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이 지점에서 코러스는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가, 그것이 코러스를 해석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희랍 비극이 끝나면서 서사시의 시대에서 핀다로스 같은 서정시의 시대, 인간의 내면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서정시를 거쳐서 극단적인 파르티잔적인 입장들이 부딪치는 비극시대를 거쳐서 에우피데스 시대에 가면 파르티잔도 없어진다. 시대 자체가 저스티스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않는 시대. 에우리피데스로 가면 적어도 현대에 나온 부조리 분위기가 나온다. 주인공 이름만 현대이름으로 바꾸면 현대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 희랍비극의 절정은 소포클레스에게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에서 오이디푸스 왕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리고 그런 파르티잔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코러스가 있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페데스 이 세사람이 희랍 비극 3대 작가인데 아이스퀼로스는 <아가멤논> Agamemnon,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Choephoroi, <자비로운 여신들> Eumenides 를 묶어서 오레스테스 3부작이 유명하다. 3부작. 트릴로기 Trilogy. 3부작이라는 것이 희랍에서 나왔다. 아이스퀼로스는 형식적인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나중에는 대체로 가서 해피엔드로 간다. 법과 질서, 규범. 인간이 만든 것이든 아테네 여신이 권하는 것이든 노모스 안에서 노모스의 회복으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희랍비극이 가지고 있는 장엄함은 아이스퀼로스에게 나타난다. 다시말하자면 올바른 소리는 아이스퀼로스에게 제일 많고, 쓰라린 얘기는 소포클레스. 페이소스, 비꼬는 듯한 얘기는 에우리피데스에게 많다.
3대 작가의 작품 특징들을 쭈욱 살펴보면 코러스라고 하는 것은 3명의 작가에게 모두에게 공통되는 것이고, 희랍비극 읽을 때 코러스를 잘 읽는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희랍비극에 코러스가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드라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로까지 올려갈 수 있었고 그것이 철학으로 이행해간다.
자클린 드 로미이의 <왜 그리스인가>를 보면 철학이 맨 나중에 나온다. 비극과 철학이 딱 코러스에서 접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는게 반쪽짜리인 이유가 희랍비극이 커리큐럼에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나온게 아니다. 소크라테스도 이런 갈등 상황속에서 고민하고 이런 비극 드라마를 봤을 것. 보면서 이것에 대해서 아고라를 돌아다면서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상황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올바름. 체제는 계속 바뀌고, 보구가 이어진다. 이와중에 소크라테스의 머릿 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것이 뭘까를 생각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좋은 것을 내 것으로 해야한다고 <향연>에서 말하게 된다. 비극에 나오는 코러스는 철학자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날 철학이 아니라 거리에서 떠도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말이다.
다음주에 소포클레스, 희랍비극의 기본적인 형식들, 그리고 텍스트로 들어간다.
출처: 선생님 블로그인 frost pathway
<<헬레니카>>
한편, 페이시아낙스의 아들 에우립톨레모스와 몇몇 사람들은 칼릭세노스가 불법으로 표결을 제안했다고 비난했다. 일부 민중들은 이 말에 박수를 쳤으나, 많은 사람들이 민중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처사라며 고함을 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리키스코스가, 이의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도 장군들에 대한 판결과 같은 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군중이 다시 소동을 부리는 바람에 이들의 이의는 묵살되었다. 그런데 일부 ‘대표 행정위원’들이 이런 불법적 표결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자, 칼릭세노스는 다시 연단으로 올라가 장군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소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소프로니스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를 뺀 나머지 대표 행정위원들은 모두 겁에 질려 표결에 찬성했다. 소크라테스는 합법적이 아닌 일에는 동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때 에우립톨레모스는 연단으로 나와 장군들을 위해 이렇게 말했다… 에우립톨레모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칸노노스 법에 따라 개인별로 표결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의회는 모두 일괄 표결로 처리하자는 반대 의견을 냈다. 처음에 표결을 했을 때는 에우립톨레모스의 제안이 가결되었다. 그러나 다음에 메네클레스가 맹서를 한 후 다시 표결했을 때는 의회의 제안이 채택되었다. 그 후 해전에 참가했던 여덟 장군은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 자리에 있던 여섯 명이 처형되었다.(I.7.11-I.7.34)
아테나이에서는 30명이 선출되자 곧 (아테나이와 페이라이에우스를 잇는) 장벽과 페이라이에우스 주변의 방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은 통치의 기반으로 삼을 법을 기초하기 위해서 선출되었으나 자꾸만 법의 기록과 공포를 늦추었다. 그 대신 자신들을 따를 것 같은 사람들로 의회를 구성하고 다른 관리들을 임명했다. 그런 다음 민주정치 시절에 ‘험담(sykophantia)’을 일삼고 ‘훌륭한 사람(kaloi kagathoi)’들을 괴롭혔다고 생각되는 자들을 체포하여 처형했다. 의회는 기꺼이 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그 밖에 자신이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때 30인 일당은 테라메네스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음해하면서, 의원들 개개인에게 각기 정부를 해치는 사람으로 그를 매도했다. 그리고 가장 대담해 보이는 청년들을 동원하여 단검을 소매에 숨긴 채 의사당에 모이도록 했다. 테라메네스가 들어오자 크리티아스가 일어서서 말했다. “의원 여러분, 만일 여러분 가운데 상황에 준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치체제가 변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그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곳에는 정부를 과두정 체제로 바꾸는 사람들의 적이 많게 마련입니다. 이 도시에는 헬라스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또 이곳 민중은 가장 오랫동안 자유로운 체제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여러분 같은 사람들에게는 민주정이 아주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으며, 또 민중은 우리를 구해준 라케다이몬 인들의 친구가 절대로 될 수 없으나 고귀한 사람(beltistoi)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신실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런 (과두정) 체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만일 과두정에 반대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되면 무슨 수를 쓰든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테라메네스는 이렇게 죽었다. 30인은 이제 거리낌 없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생각에, (3,000인) 명단에 없는 사람들은 시내(asty)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쫒아내고는 자신과 그 친구들이 그 농토를 장악했다. 페이라이에우스로 간 사람들은 거기서도 쫒겨났다. 그래서 메가라와 테바이에는 아테나이에서 온 망명객들로 가득했다. 이윽고 트라시불로스가 테바이에서 출발하여 70명 정도의 남자들과 함께 요새인 필레를 장악했다…
비의(秘儀)의 전령관으로 목소리가 좋은 클레오크리토스가 조용히 말했다. “… 30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십시오. 그들은 사리(私利)를 위하여 여덟 달 동안에 펠로폰네소스 인이 10년 동안 싸우면서 죽인 것보다 더 많은 아테나이 인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체제에서 살 수 있었는데도, 30인은 신과 사람 앞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저질이며 가장 불경스럽고 가장 가증스러운 상잔의 내란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듯이, 지금 우리가 죽인 사람들 중 몇몇에 대해서는 여러분뿐만 아니라 우리도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 이튿날, 낙심천만한 데다 고립된 30인이 의사당에 모여 회의를 했다. 한편 3,000인은 어디에 있었든지 간이 서로 입장이 달랐다.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페이라이에우스에 있는 사람들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아무런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곤혹스러움에 처해 있을 필요가 없으며, 30인의 말에 넘어가 도시를 파멸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입장을 전했다. 이들은 마침내 30인을 축출하고 다른 사람들을 뽑기로 했다…
(라케다이몬의) 장관(에포로스)들과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열다섯 명을 아테나이로 파견하여 파우사니아스를 도와 양측의 화해를 도모하도록 했다. 양측은 평화를 유지하고, 30인과 11인, 그리고 페이라이에우스의 10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는 데 동의했다… 일이 성사되자 파우사니아스는 군대를 해산했고, 페이라이에우스에 있던 사람들은 무장한 채로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 아테나 여신에에 제물을 드렸다. 그들이 내려오자 트라시불로스가 아테나이 인을 향해 말했다. “(아테나이) 시내에 있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자신을 잘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 여러분의 무모함을 잘 반성해본다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두 편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정당할까요? 민중은 여러분보다 더 가난하지만 지금까지 돈 때문에 부정한 짓을 한 적이 없으나, 여러분은 다른 어떤 이보다 부유하면서도 이를 도모하기 위해 염치없는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서약을 어기지 말고, 모든 일에 선의로 임하여 맹서를 지키고 신들을 경외하기를 바랍니다.” 트라시불로스는 이와 같이 말하고, 또 어떤 혼란도 있어서는 안 되며 전통의 법을 지켜달라고 당부한 다음 민회를 해산했다. 그런 다음 장관들을 뽑고 질서를 회복시켰다. 후에 엘레우시스에서 이방인 용병을 고용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온 민중이 궐기하여 원정에 나서 그 장군들을 협의하기 위해 왔을 때 그들을 잡아 죽였다. 한편, 다른 이들에게는 친구와 친지들을 보내 화합하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사를 들추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는 양측이 오늘날까지 함께 살고 있으며, 민중은 서약을 신실하게 지켰다.(II.3.11-II.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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