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 부르크하르트: 세계 역사의 관찰


세계 역사의 관찰 - 10점
야콥 부르크하르트 지음, 안인희 옮김/휴머니스트



옮긴이의 말


제1부 역사의 관찰-되풀이되는 것, 항상 있는 것, 전형적인 것

제2부 역사에 나타나는 세 잠재력-국가.종교.문화

제3부 세 잠재력의 상호작용-여섯 가지 제약받음의 관찰

제4부 역사상의 위기들-전쟁과 혁명

제5부 위대한 개인들-개체성과 보편성

제6부 세계사의 행운과 불운에 대하여


원주(原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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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6 이 책은 니체가 그토록 큰 즐거움으로 청강했던 이 '역사 연구' 강의에서 남겨진 내용을 담고 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kob Burckhardt, 1818-1897)는 원래 이것을 책으로 펴낼 의도가 없었다. 그가 죽고 몇 해가 지난 다음 누이의 아들인 야코프 외리(Jakob Oeri)가 외삼촌의 유품에서 이 강의록을 끄집어냈다. 그는 외삼촌이 강의를 위해 이곳 저곳에 적어 놓은 짤막한 언급이나 키워드들을 지워버리고 남은 원고를 정리해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럽게 생각한 《세계역사의 관찰》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여서 1905년에 출간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세상에 나와 우리 손에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6 1870년 강의를 할 때 부르크하르트는 쉰두 살이었다. 이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시대》(1852), 《이탈리아 미술작품의 감상을 위한 여행 안내서》(1855),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1860) 등 세 권의 기념비적인 대규모 저술을 발표한 다음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을 다룬 《르네상스의 역사》(1867)도 아마 여기 끼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869년과 1870년에는 역시 그의 가장 중요한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리스 문화사》(1898-1902, 유작 )를 위한 자료를 모으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6 그는 바젤과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과 역사학을 전공했고, 역사를 공부하면서 언제나 문학과 미술도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바젤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를 지내면서 동시에 미술사 교수를 역임한 사람이다.

 

8 먼저 이것은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대략 5,000년에 걸친 인류 역사를 관찰하면서 역사를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를 다룬 강의록이다. 최근 몇 백 년이 아니고, 인류의 역사시대 전체가 관찰 대상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규모에서는 당연히 우리가 사는 현대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을 수 없다.

 

8 저자는 역사에 나타나는 '되풀이 되는 것, 항상 있는 것, 전형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곧 역사에서 발전이 아니라 '늘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상수'에 주목한 것이다.

 

제1부 역사의 관찰-되풀이되는 것, 항상 있는 것, 전형적인 것01 우리의 과제

25 이 책에서 우리의 과제는 역사관찰과 역사 탐구 일부를 절반쯤 우연에 속하는 사유 과정과 결합시키는 일이다. 다른 사유 과정과의 결합은 다음으로 다루기로 한다. 맨 먼저 여기서 다루어지는 영역에 대한 관점을 전반적으로 서술하고 뒤이어 세 잠재력인 국가, 종교, 문화를 다루기로 한다. 그 다음 이들의 지속적이고 점차적인 상호 작용을 관찰한다. 특히 움직이는 것(문화)이 고정된 두 잠재력 국가와 종교에 미치는 작용을 관찰한다. 이어서 세계 변화의 과정을 갑작스럽게 빨라지게 하는 움직임으로 넘어간다. 곧 위기와 혁명의 이론이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다른 움직임들을 모조리 빨아들여 삶의 나머지 영역도 함께 들끓게 하는 단절과 그에 대한 반동을 다루는 것으로서, '폭풍론'이라고 부를 만하다.

 

26 여기서는 독자를 학문적 의미에서의 역사 탐구로 안내하지 않고, 정신적 세계의 여러 영역에서 역사적인 것[=역사성]을 탐구하도록 자극하고자 한다. 나아가 체계를 모조리 포기한다. 우리는 '세계사적인 이념들을 탐색하는 게 아니라 지각하는 것에 만족하며 가능한 한 많은 방향에서 역사를 통한 가로 단면[=횡단면]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특히 역사철학을 제시하지 않는다.

 

33 우리는 정신적 연속체인 과거에 대한 우리의 거대한 의무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연속체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정신적 재산이다. 이것을 아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이라도 모두 극히 긴장하고 몹시 수고하여 수집해야 한다. 과거에 존재한 정신의 지평선들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래야 한다. 이 유산에 대한 각 세기의 관계는 그 자체가 이미 새로운 인식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도 다음 세대에는 다시 역사가 되고, 극복되면서 유산에 덧붙여진다.

 

02 역사 연구를 위한 19세기의 자격

44 우리 강의는 역사 연구, 나아가 그 서술에 헌신코자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역사가 특히 세계사 역사가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어느 정도는 내면에서 개발할 필요가 있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 앞서 이미 말했듯이 지금 우리는 역사의 연구보다는 역사성의 연구를 다루기 때문이다.

 

45 모든 것의 전제는 확고한 탐구다. 신학이나 법학, 또는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붙잡아 학문의 과정을 끝마쳐야 한다. 직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철저히 작업하는 법을 배우고, 특수한 학문분과들의 총합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학문에서 꼭 필요한 진지함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45 훌륭한 번역을 존중해야겠지만, 어떤 번역도 원서의 표현을 대체할 수는 없고, 원래의 언어는 그 낱말과 사용 방식 자체가 벌써 1등급의 역사적 증언이다.

 

48 진짜로 배우려는 사람, 즉 정신적으로 풍부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잘 고른 단 하나의 원전이 끝도 없이 많은 것을 어느 정도 대신할 수 있다. 자기 정신의 단순한 기능을 통해 개별적인 것 속에 있는 보편성을 발견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49 원전은 그것을 토대로 쓴 논문이나 학술적 작업(2차 문헌)에 비해 영원한 우선권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원전은 사실을 순수하게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우선 알아내야 한다. 그에 비해 2차 문헌은 우리에게서 이 마지막 과제를 빼앗고, 이미 가치 평가를 내린 채로 사실을 서술한다. 다시 말해 흔히 잘못된 다른 맥락에 집어넣어서 보여준다.


제2부 역사에 나타나는 세 잠재력-국가.종교.문화

58 세 잠재력은 서로 극히 이질적인 것이기에 나란히 늘어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안정된 두 가지, 곧 국가와 종교를 나란히 놓는다 해도 문화는 다시 본질적으로 다르다. 국가와 종교는 각기 정치적 욕구와 형이상학적 욕구의 표현인데, 이들은 적어도 해당 민족에게, 심지어는 그 세계에서 보편적 타당성을 요구한다. 더 좁은 의미에서의 물질적·정신적 욕구에 어울리는 문화는 우리에게는 다음의 뜻이다. 문화란 물질적인 삶을 후원하기 위해, 그리고 정신적·도덕적 삶의 표현으로서 임의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말하며, 온갖 사교, 기술, 예술, 문학, 학문 등이 여기 속한다. 문화는 움직이는 것, 자유로운 것의 세계로서 필연적인 보편성이 아니고, 따라서 억지로 타당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03 국가

64 만일 이런 위기가 정복이었다면 국가의 가장 초기 형태, 그 태도, 그 과제, 그 고난은 본질적으로 패배한 자들을 노예로 삼는 일이다.


67 큰 국가는 외적인 큰 목적들을 이루려고 역사에 존재한다. 그렇지 않으면 붕괴되고 말 특정한 문화를 확고히 붙잡아 유지하고, 작은 국가에서라면 위축되고 말 수동적인 주민들을 앞으로 밀어붙여 조 용히 거대한 집단의 힘을 형성하게 한다. 작은 국가는 가능한 많은 주민이 완전한 의미에서 시민이 되는 한 곳, 세계의 한 점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71 국가가 성취하는 최고의 것은 더 나은 사람들의 의무감, 곧 애국심이다. 애국심이란 국가의 두 단계인 원시적 문화와 발전된 문화의 단계에서 종족의 고귀한 미덕으로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 아닌 타인에 대한 미움에서 일부 자양분을 얻기도 하지만, 교육 받은 정신들 사이에서는 보편성에 대한 헌신의 욕구이자 각 개인의 이기심과 가족의 이기심을 넘어서려는 욕구에서 종교나 사회에 흡수되지 않은 부분이다. 국가가 직접 도덕성을 실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타락이며, 철학적·관료주의적 건방이다. 도덕성의 실현은 오로지 사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72 국가는 어딘가에 자리잡아야 할 '공정함과 선의 기준'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국가를 통한 '지상에서의 도덕성의 실현'은 인간 본성의 내적인 부족함으로 인해, 그 중에서도 특히 가장 뛰어난 사람들의 내적인 부족함으로 인해 수천 번이나 실패했다. 도덕성이란 본질적으로 국가와는 다른 장(場)이다. 국가가 전통적인 공정함만 똑바로 행해 도 벌써 대단한 일이다. 국가가 원래의 본성에(아마도 국가의 본질적인 기원에 맞는) 충실한 존재, 즉 긴급기관으로 남아 있는 것이 가장 건강한 방법이다. 


04 종교

74 종교란 인간 본성에 있는 파괴되지 않는 영원한 형이상학적 욕구의 표현이다. 종교의 위대함은 그것이 인간의 초감각적인 보충을 나타낸다는 것, 곧 인간 스스로 제게 줄 수 없는 모든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동시에 종교는 민족들 전부와 문화적인 시대들 전부를 위대한 다른 것 안에 집어넣어 반영한다. 또는 모든 민족들과 문화적인 시대들이 무한함 속에 끌어들여 만들어낸 각인이며 윤곽이다. 이런 윤곽은 스스로는 견고하고 영원하다고 여기지만 변할 수 있고, 그것도 부분이나 전체가 서서히 또는 갑자기 변할 수 있다. 국가의 생성과 종교의 생성 중 어느 쪽이 더 큰 과정인지 비교하기란 불가능하다. 


77 무의식적인 형이상학적 욕구를 인정하는 것이 신에 대한 최초의 의식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욱 옳다. 위대한, 또는 두려운 순간이, 또는 종교 창시자의 재능을 가진 인간이 이것을 인간의 의식에 가져왔다. 감추어져 있기는 해도 어차피 종족 중에서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살아있던 것이 그 표현을 얻는다. 민족들의 새로운 혼합과 분리가 일어날 때마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될 수 있다. 어쨌든 더 강력한 존재에게 종속된 감정, 주관적인 힘의 느낌과 폭력 행위 한가운데서 느끼는 두려움이 가장 결정적이다. 두려워할 계기 들, 즉 두려운 존재와 화해할 계기들이 많기에 다신교가 먼저 나타날 전제 조건이 훨씬 강하다. 원시 상태에서 〔사람들 사이에] 통일된 신의 의식이란 꿈에 지나지 않는다. 두려움이라는 태초 감정은 어쩌면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무한성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종교의 시작이란 한정이나 작아짐. 개념 정의 등으로서,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갑자기 안다고 믿는, 매우 편안한 요소를 지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불안함은 주물 봉사나 악마 봉사 등을 찾아갈 수도 있다.


78 종교는 어디까지 창시되는가? 본질적으로 종교는 개별 인간이나 개별적 순간들의 창조물, 곧 갑작스럽고 섬광과도 같은 고착의 순간들에 만들어진 창조물이다. 인간들 일부 가 여기 동참한다. 창시자나 창시의 사건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서 느껴지는 형이상학적 욕구의 핵심을 맞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중도 동참한다. 그들이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무정부주의적인 것에 비해 규정된 것은 모두 왕의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05 문화

98 임의로 일어나고, 또 그 어떤 보편적 타당성이나 강제적 타당성을 요구하지 않는 정신적 발전의 총합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문화는 고정된 삶의 두 장치들〔=국가와 종교〕에 대해 끊임없이 수정하고 녹이는 작용을 한다. 이들이 문화를 완전히 장악하여 자기들의 목적만을 위하도록 제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다. 그 밖에 문화는 국가와 종교에 대한 비판이며, 국가와 종교에서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시간을 보여주는 시계다. 나아가 문화는 종족적인 차원의 소박한 행동이 성찰의 능력으로 바뀌는 수많은 형태의 과정이다. 그 마지막의 가장 높은 단계, 곧 학문과 특히 철학에서 [이런 종족적인 차원의 소박한 행동이] 순수한 성찰로 바뀐다. 


102 학문은 한편으로는 실용적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의 정신적 측면이자, 무한히 많은 것의 체계적 측면이다. 곧 그것〔=학문〕의 관여 없이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수집하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학문은 더욱 앞으로 나아가 개별이든 법칙이든 상관 없이 그것[학문의 관여 없이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찾아 낸다. 마지막으로 철학은 존재하는 모든 것, 그러나 철학 없이도, 또 그보다 먼저 영원히 지속하는 것의 최고 법칙들을 밝히려고 한다. 


102 예술은 전혀 다르다. 예술은 제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과 관계하지 않으며, 법칙을 알려주지도 않고(예술은 학문이 아니므로), 예술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할 더욱 높은 삶을 드러내 보여준다. 


06 시문학에 대한 역사적 관찰

114 역사는 문학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순수하며 가장 아름다운 출전으로 삼는다. 역사는 우선 시문학이 인류의 본질을 인식하기 위한 것이므로 시문학에 감사한다. 그 다음으로 그 시대와 민족을 넉넉히 밝혀 보여주는 것에 감사한다. 역사 관찰을 위해 문학은 민족들에게서 그때 그때 나타나는 영원성의 모습이며, 나아가 모든 개별적인 모습들을 가르쳐주고, 또한 자주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것, 또는 가장 잘 보존된 모습이기도 하다.


128 종교적이며 기념비적이고 소박하던 시대에 미술은 인간에게 거룩한, 또는 강력한 모든 것의 피할 수 없는 형식이다. 그래서 조각과 회화에도 무엇보다도 종교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이집트, 오리엔트, 그리스, 중세와 현대의 미술은 신적인 것이나 또는 적어도 거룩한 것을 자기들에게 적합한 고귀한 인류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미술은 먼저 유형들로 드러난다. 둘째로 미술은 이야기로 드러난다. 신화 이야기, 거룩한 이야기와 전설에서 언어를 떼어 버릴 목적으로 미술이 생겨난다. 이것이 미술의 가장 크고 지속적이고 끊이지 않는 과제다. 미술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이런 과제에서 미술의 척도가 형성된다.



제3부 세 잠재력의 상호작용-여섯 가지 제약받음의 관찰

132 역사는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비학문적이다. 다만 이것은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잔뜩 전해준다. 예리한 개념 규정은 논리학에 속하고, 모든 것이 흔들리면서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넘어가 뒤섞이는 역사에는 속하지 않는다. 철학의 개념과 역사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고, 다른 기원을 갖는다. 철학의 개념들은 가능한 한 확고하면서 닫혀 있어야 하고, 역사의 개념들은 가능한 한 유연하면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체계적이지만 해롭지 않음이 이런 배치를 추천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나 민족에서 다른 시대와 민족들로 빠르게 넘어 가는 것이 실질적인 유사성을 허용한다 해도 이것이 연대기적으로 수행하는 역사철학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역사철학은 나란히 이어서 오는 시대와 민족들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에 더 많은 무게를 둔다. 우리는 동일함과 비슷함에 더 무게를 둔다. 역사 철학에서는 다르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여기서는 비슷한 것이 더 중요하다.


07 국가의 제약을 받는 문화

136 종교는 거룩한 권리를 통해 국가를 강하게 하고, 국가에 무제한의 지배권을 부여한다. 모든 지식과 사유, 온갖 물리적 힘과 탁월함이 이런 이중 권력 〔국가+종교〕에 봉사하게 된다. 최고의 지성이 ─ 시제, 칼데아 사람, 마법사 등 ─ 옥좌를 둘러싼다. 권력이 문화를 지배한다는 분명한 표시는 권력이 문화를 일방적으로 재판하고 정지시키는 것으로 드러난다. 


138 거룩한 권리를 가진 국가는 그로써 허락된 지식과 허락된 예술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가장 본질적인 것을 특정한 계급에만 가두고, 그런 가운데 예술은 분명히 온갖 방식으로 가장 높은 헌신을 다하여 지배 계급에 계속 봉사했다. 예술은 기념비적인 것을 최고로 표현하고, 정체된 것 안에서나마 양식을 가장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물론 내면적으로 천천히 죽어가면서 다시 젊어질 능력이 없어졌다.


139 비록 영원히 고정된 것은 아니라도 실질적인 계급제도와 거룩한 권리가 극복된 다음, 고전 시대의 자유로운 폴리스〔=도시국가〕는 이런 폭군 제도에 반대된다. 유일하게 알려진 폴리스의 선구자는 페니키아 도시들이다. 폴리스에서는 수가 많음과 여러 종류, 변화 속에 파악된 것. 스스로를 아는 것, 비교하고 서술하는 것 등이 효력을 가지며, 확고하게 고정된 국가 신조와 문화를 담은 그 어떤 거룩한 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143 세계 문화를 위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다행인 것은, 헬레니즘에 대한 사랑이 로마인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물론 해체되는 이방의 정신에 대한 분명한 혐오감도 동시에 있었지만 이런 행운 덕분에 우리는 〔서양의〕 정신적 전승의 계속성을 얻었다. 문화에 대한 로마 제국의 태도는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었다. 국가는 세금을 위해서라도 보편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지만, 그런 활동을 특별히 격려할 줄은 몰랐다. 로마는 본래의 통치만하고, 모든 것이 세금을 낼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


150 문학과 철학조차도 국가를 찬양하는 일에 봉사하고, 예술은 기념비적 사업에 달라붙었다. 어쨌든 그들은 궁정의 마음에 들 만한 것만 만들었다. 정신은 온갖 방식으로 비용 만 중시하고, '주어진 조건'에만 매달렸다. 돈받고 고용되어 만들어진 생산품 말고는 오로지 추방당한 사람들에게서만 자유로운 생산품이 나오고, 그 밖에는 보통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생산품이 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궁정들은 온갖 사교의 모범이 되었다. 궁정의 취향만이 유일하고 결정적인 취향이 된 것이다.


151 〔문화의 각 부분이 국가의〕 전적인 후견에 점차 길들어지면서 이것은 온갖 종류의 주도권을 죽이게 된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국가에 기대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권력이 이동하면서 모든 것을 국가에 요구하고 국가에 모든 짐을 떠맡기는 것이다.


08 종교의 제약을 받는 문화

159 두 고전 종교가〔=그리스, 로마의 종교〕 고위 성직자 체계가 없고, 성스런 경전도 없고, 내세에 대한 특별한 강조도 없는 종교였던 것이 문화에는 가장 덜 방해가 되는 일이었다.


161 오로지 종교와 예배만이 이 모든 것 속으로 최고의 능력을 집어넣어줄 저 찬란한 진동을 영혼 안에 일깨웠다. 그런 진동은 예술에서 더 높은 법칙에 대한 의식을 성숙하게 만들고, 그렇지 않았다면 스러지고 말았을 개별 예술가들이 양식〔=스타일〕을 만들어 내도록 한다. 양식이란 그와 나란히 존재하는 민중의 취향에 맞서 일단 성취된 정점을 붙잡는 것이다.


163 개별 예술이 종교의식에서 떨어져 나간 방식은 단계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맨 먼저 시문학이 본질적으로 떨어져 나가 중립적이고 영웅적이고 서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펼친다.


163 그런 다음 종교가 거룩한 권리를 통해 주인으로 남아 있지 않은 곳에서 인식의 영역이 하나씩 종교에서 분리된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세속적인 학문이 생겨난다.


09 종교의 제약을 받는 국가

166 거룩한 권리는 최고의 의미에서 그 권리에 봉사한 민족들의 운명에 속한다. 물론 그들은 자유를 위해서는 쓸모가 없다. 초기 세대들의 노예 상태가 혈통 속에 남아 오늘날 까지도 작용한다. 


167 경전들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방해와 억압을 견디고서 그 반대급부로 비로소 나타난다는 사실은 극히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176 이 모든 것은 기독교 제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뒤집어졌다. 이것은 일찍이 존재한 가장 큰 뒤집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어지는 기독교 황제들의 시대에, 그리고 비잔틴 시대에 그 발전에서 문화가 얼마나 종교의 제약을 받는지는 이미 앞에서 살펴 보았다. 머지 않아 국가도 종교의 제약을 받게 되고, 그 이후로 우리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온갖 전쟁 등등에서 형이상학적인 것이 어떻게든지, 어떤 자리든지 끼어드는 것을 보고, 그것이 주요 원인이 아닌 곳에서도 여전히 결정과 끼어들기, 또는 나중에라도 개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80 서양에서 종교와 국가가 동일하게 되는 일만은 다행스럽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삶과 나란히, 그리고 삶 속으로 섞여 들어가 국가의 최고 권력과 법의 체제에서 일정한 몫을 갖고 이곳 저곳에서 주권도 갖는, 거대한 재산을 지닌 단체〔=중세의 가톨릭교회 시스템〕가 만들어졌다. 


186 국가와 종교 사이에 그토록 밀접한 연관성과 그토록 다양한 상호 작용을 거친 다음, 우리 시대의〔=1870년〕 문제는 국가와 종교의 분리다. 이것은 관용의 논리적 결과이다. 곧 모든 사람의 평등이라는 이념이 점차 커지면서 실질적으로 피할 길이 없는 국가의 무관심의 결과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국가가 생기자마자 이런 일은 저절로 일어난다. 종교의 차이가 시민들의 권리의 차이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확신 가운데 하나이고, 동시에 이런 시민의 권리가 매우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187 누가 국가를 제약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기자마자 곧바로 국민들의 입장에서 문화가(이 낱말의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점점 더 많이 종교를 대신하게 된다. 문화가 전체적으로 국가에게 현재의 강령들을 지정해준다.


10 문화의 제약을 받는 국가

195 국가와 사회와 종교는 〔집단에서 벗어나〕 개체가 된 정신이 그런 영역 〔=교환 장소〕을 만들기도 전에 벌써 단단하고 굽히지 않는 형식들을 받아들였던 것이 분명하다.


196 자유로운 정신적 교환 장소의 진짜 작용은 모든 표현의 뚜렷함과 인간이 원하는 것의 확실함, 멋대로 구는 것과 기묘한 것을 없앰, 척도와 양식을 얻는 것, 예술과 학문의 상호 작용 등이다. 모든 시대의 생산품에서 그것이 그와 같은 영향 아래서 생겨난 것인지 아닌지를 아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 작용에서는 인습적인 부분이 더 작고, 고전적인 것이 더욱 고귀하다. 여기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끊임없이 한데 뒤섞인다.


209 국가는 한편으로는 모든 정당의 문화이념들의 실현이자 표현이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지 눈에 보이는 시민들의 삶의 의상일 뿐으로,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그토록 전능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209 국가의 거룩한 권리(생명과 재산에 대한 이전의 자의)가 점점 근본적으로 사라질수록, 사람들은 국가에게 세속의 권리를 더욱 넓혀 준다.


210 '기관' 또는 '시설'이라 불리는 것들이 오늘날 문헌과 언론을 통해 널리 돌아다니면서 어디서나 그것을 가지려고 할 뿐만 아니라, 사회가 하지 않으리라고 짐작되는 모든 것을 매일 커지는 국가의 의무 공책에 적어 올리고 있다. 어디서나 요구들이 생겨나고, 그에 알맞은 이론들도 생겨난다. 동시에 빚〔=국가 채무〕도 생겨나는데, 이것이야말로 탄식할만한, 19세기의 거대한 웃음거리이다.


11 국가의 제약을 받는 종교

215 지상의 특성과 접촉하는 것은 언제나 종교에 강력한 반작용을 남긴다. 외적인 권력 형성은 내적인 붕괴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억압받던 시대의 교회에서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때문에 그렇다.


216 교회는 각 민족들의 삶에서 도덕적 힘이 되는 대신, 스스로 정치화하고 스스로 국가가 됨으로써 피할 수 없이 세속적인 인적 자원을 내부에 지닌 두 번째 정치권력이 된다.


216 앞서 보았듯이 전통은 초기 교회와 박해의 시대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승리의 교회는 통일성을 지키기 위해 온갖 권력 수단을 다 이용하고, 그런 통일성으로부터 점점 더 많은 권력 수단을 발전시켰다.


222 16세기의 빠른 흐름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 개신교 국가교회는 처음부터 국가에 종속되어 있었고, 자주 끔찍한 느낌을 가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게 없었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종교개혁은 분명 도로 붕괴되었을 것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대중이 머지 않아 다시 가톨릭 교회로 돌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신교 국가교회가 아니었다면 가톨릭 교회도 가톨릭 국가들에게 개신교 국가들에 맞서 전투를 벌이도록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국가교회가 되는 것은 방어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12 문화의 제약을 받는 종교

226 기독교 교회의 역사는 처음에는 여러 민족들, 곧 그리스, 로마, 게르만, 켈트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함에 따라 일련의 조정들을 거친다. 그리고 각각의 시대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종교가 되는데, 곧 〔기독교라고는 해도〕 기본 정서들이 서로 대립한다. 인간이란 '계시'를 위해 자기 시대와 계층의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날 정도로 자유롭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제는 위선과 나쁜 양심을 만들어 낸다.


227 사도 시대의 기독교는 적어도 문화와 접촉이 있었다. 주님의 곧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가 지배했고, 이런 기대가 공동체를 본질적으로 결합시켰다.


227 이교도 황제의 시대에 주님의 다시 오심이라는 생각이 빛이 바래면서 내세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생각이 대신 나타난다. 하지만 그리스 교양이 사방에서 이 종교 안으로 밀려들어 오고, 동시에 다채로운 색깔의 오리엔탈리즘도 함께 들어왔다. 기독교 전체가 평화롭게 놓여 있었다면 이단들과 그노시스 계열의 유사 종교들이 기독교를 완전히 파괴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로마 제국의〕 박해야말로 단 하나의 지배적인, 기독교 핵심 관점만 계속 살아남도록 해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27 기독교 황제의 시대는 완전한 전환을 가져왔다. 교회는 제국 및 그 통일성과 유사한 것이 되고, 제국을 능가하게 되고, 고위 성직자들은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이 되었다. 


232 고위 성직자들이 정도 이상으로 미움을 받았지만, 반면에 종교는 실질적인 인기를 얻고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은 종교 속에서 살았다. 종교가 그들의 문화였다. 그렇다 여기서 한 종교가 진정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증거는 종교가 스스로의 위험을 무릅쓰고 언제나 대담하게 문화와 뒤섞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234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새로운 관계를 관찰하자. 첫째로 문화는 연구와 철학의 모습으로 나타나 기독교의 인간적 기원 및 인간적 제약을 입증했다. 《성서》를 다른 문헌들과 같은 방식으로 다룬 것이다. 


234 모든 방면을 향하는 정신의 삶을 향해 문자 그대로의 타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자연과 역사를 이성적으로 성찰하면서, 한 부분만 예외라고 주장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시도되면 그럴수록 적대 진영에서 온갖 신화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해체의 성향이 더욱 거세질 뿐이다.


235 둘째로 도덕이 가능한 한 종교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섰다. 어떤 종교든 후기로 가면서 도덕을 자신에 속한 딸로 여겨 거기 기대기를 좋아한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기독교에서 독립하여 순수하게 내면의 목소리에 근거한 도덕성이라는 신념과, 실천적으로는 오늘날의 의무 이행이 전체적으로 종교보다는 명예 감정과 좁은 의미에서의 독자적인 의무감에 의해 훨씬 더 많이 결정된다는 사실이 그것에 반기를 든다.


236 종합하면 사람들은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문화의 이점과 쾌감들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로써 내세에 대한 관점들이 변화를 겪고 있다는 증거를 내놓는다. 


236 저 칼뱅의 예정설에 따라 은총과 행복을 얻도록 '선별된 소수'라는 생각은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237 미술과 문학은 옛날부터 종교성을 표현하는 데 아주 많이 기여해 왔다. 다만 모든 것은 그런 표현을 통해 어딘지 외적인 것이 되고 거룩함을 잃는다. 


237 중요한 일들을 표현하는 말들이 벌써 그렇다. "그렇게 해서 의미가 표현을 이끌어야 할 자리에서 표현이 의미를 정해주게 된다."


238 예술은 철저히 폭로자다. 첫째로 예술은 종교의 내용을 겉으로 드러낸다. 곧 더욱 깊은 경건함의 능력을 뺏고, 대신 눈과 귀 그 능력에 바치고, 감정의 자리에 형태와 과정들이 대신하고 그로써 다만 순간적으로만 감정을 드높인다.


239 결국은 각각의 민족과 종교의 본성에 달린 일이다. 이 모든 것과 반대되는 모습은, 예술이 종교의 내용을 결정하는 일을 돕는 시대들이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와 페이디아스가 그리스 사람들에게 그 신들을 만들어 주던 시절, 중세에 일단의 그림들, 특히 그리스도 수난의 그림들이 전체 경건함과 기도를 하나씩 정해주던 시절, 또는 종교적 축제의 성격을 지닌 그리스 연극이 전 민족 앞에 공개적으로 최고의 질문들을 내놓던 시절, 그리고 중세의 가톨릭 연극들과 성사극들이 세속화에 대한 근심이 없이 가장 거룩한 사건들과 의식들을 튼튼한 민중의 상상력 앞에 내놓던 시절들이다.


제4부 역사상의 위기들-전쟁과 혁명

13 역사적 위기들

248 인간은 평화의 인간이며, 전쟁의 인간이다. 지상의 비참함은 두 상태에서 똑같이 인간들에게 맡겨져 있다. 그 이해관계가 어떻게든 우리의 것과 뒤섞인 당파들과 거기 속한 개인들에게 유리하도록 많은 시각적 기만이 존재한다. 긴 평화는 쇠약함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평화가 아니었다면 생겨나지도 않았을 비참하고도 두려움에 가득 찬 곤궁한 존재들의 생성을 허용한다.


249 전쟁은 모든 삶과 소유를 단 하나의 순간적인 목적 아래 종속시킨다. 전쟁은 개인의 단순하고 강력한 이기주의보다 도덕적으로 엄청나게 높은 곳에 있다. 곧 최고의 보편성에 봉사하도록 힘들을 발전시키는데, 그것도 기율 안에서 발전시킨다. 이런 기율은 최고의 영웅적인 미덕이 펼쳐지게 한다. 전쟁만이 인간에게 보편성 아래 보편적으로 복종하는 위대한 모습을 허용한다. 


289 위기들은 〔공간을〕 깨끗이 정리한다. 맨 먼저, 생활에서 이미 오래 전에 멀어져 버린 낡은 생활방식 한 무더기를 정리한다.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는 자신들의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면서 세상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다음 진짜 사이비 기관들도 정리해 버린다. 이런 기관들은 존재할 권리를 가진 적이 없었건만,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면서 전체 삶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증 받은 것이 되어서, 주로 온갖 중간 정도의 것에 대한 사랑과 특별한 것에 대한 미움을 담당한다. 위기는 또한 지나치게 웃자란 '방해'에 대한 혐오감도 없애고, 신선하고 강한 개인들에게 출세의 기회를 제공한다.


290 강력한 사상가나 시인, 예술가들은 강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위기의 분위기를 사랑하고 더욱 신선한 대기의 흐름에서 유쾌한 느낌을 갖는다. 위대하고 비극적인 경험들이 정신을 성숙하게 하고, 정신에 또 다른 사물의 척도를 제공한다. 곧 지상적인 것을 더욱 독립적으로 평가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도시》는 서로마 제국의 붕괴 없이는 의미가 깊고도 독립적인 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단테는 망명 중에 《신곡》을 썼다.


292 오늘날의 위기는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 버린 채 상황에 따라 흥분시키거나 가라 앉히는 작용을 하는 언론 및 소통의 영향을 주로 받는다. 이들은 매 순간 국민 전체의 특성을 지닌다.


292 따라서 수많은 모방들, 일부러 만든 가짜 위기, 인공적인 선동과 독서, 맞지 않는 자리에서 정당하지 않은 모방, 인위적 접종에 근거한 거짓 위기들이 폭발하면서 원래 목적 했던 것이나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드러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잠재해 있었기에 이미 오래 전에 알아챌 수도 있었겠지만, 권력의 이동을 통해서야 비로소 명백하게 드러나는 어떤 것이다.


14 오늘날의 위기의 기원과 특성에 대해 덧붙임, 19세기

294 1815년 이후로 긴 평화기간이 나타나 마치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세력 균형에 도달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만적인 인상을 일깨웠다. 어쨌든 사람들은 처음부터 민족들의 동적인 정신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복고와 복고세력이 내세우는 원칙, 곧 프랑스 혁명의 정신에 대한 반동을 뜻하는 정당성은 극히 고르지 못한 방식으로 상당수의 옛날 생활 방식과 법의 형식들, 그리고 국경선을 만들어냈다. 


295 국가 자신도 혁명의 결과들에서 한 가지만은 반드시 필요로 한다. 곧 국가의 권력개념의 거대한 확장이다. 이것은 그 사이 공포정치에 그리고 모두가 흉내 낸 나폴레옹의 황제 통치에서 생겨난 권력개념이다. 권력국가는 심지어 궁정의 직위와 군대의 직위들을 아직 귀족에게 내주면서도 평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에 맞서 민족들의 정신이 나타났는데, 이 정신의 가장 격한 민족주의적 흥분 아래서 1812년부터 1815년 사이의 여러 전쟁들이 벌어졌다.


제5부 위대한 개인들-개체성과 보편성

15 위대한 개인들, 역사적 위대성이란 무엇인가

320 유일함, 대체할 수 없음이라는 말들은 위대함을 〔똑 부러지게〕 설명하는 말이 아니고, 단순히 폭넓게 서술한 것일 뿐이다. 위대한 사람이란, 그의 시대와 환경에서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특정한 위업들이 이루어졌고, 그가 아니었다면 그런 위업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 그가 없이는 세계가 불완전하게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본질적으로 원인과 결과들의 거대한 흐름 속에 섞여있다.


321 모든 시대와 방향의 위대성들을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19세기에 〔유럽에〕 주어져 있다. 온갖 문헌들의 교류 및 맥락을 통해, 더욱 향상된 정보 소통을 통해, 유럽 사람들이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 것을 통해, 우리 연구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진 것을 통해, 우리 문화는 본질적 표지로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우리는 각각의 것들을 위한 관점을 갖고 있고, 극히 낯선 것과 극히 끔찍한 것에 대해서도 공정하려고 노력한다.


331 예술과 문학에서 1급의 인간들은 극히 드물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등급의 위대성도 있다. 이 영역에서 1차적인 대가들이 자유로운 창조로 선물해주는 것들은 전승이라는 방식 덕분에 뛰어난 2차적인 대가들에 의해 양식(Stil)으로 고정된다. 


345 역사적인 위대함의 입구에서 종교 창설자의 위치는 매우 독특하다. 그들은 가장 높은 의미에서 위대한 남자들에 속한다. 수천 년에 걸쳐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어쩌면 수많은 다른 민족들까지도 지배하고, 종교적·도덕적으로 그들을 붙잡아줄 수 있는 저 형이상학적인 것이 그들 안에서 살아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던 것이 그들에게서 의식으로 나타나고, 감추어져 있던 의지가 법칙이 된다. 그들은 자기들을 둘러싼 인간들을 냉혹하게 관찰해서 평균적인 계산을 통해 종교를 찾아낸 것이 아니다. 그들의 개체성 안에서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전체가 살고 있다. 


346 역사는 이따금 갑자기 한 인간에게서 응축되어 나타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세계가 그의 말에 복종한다. 이런 위대한 개인들은 보편성과 특수성, 지속적인 것과 변혁 등 이 한 인간에게서 동시에 출현한 경우다. 그들은 국가, 종교, 문화, 위기를 요약하고 있다.


354 세계사의 개인들에게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 바로 영혼의 위대함이다. 이것은 도덕성을 위해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능력, 단순히 영리함에서가 아니라 내면의 선의에서 나온 자발적 제한을 말한다. 그에 반해 정치적 위대함이란 이기적인 것으로서 모든 이익을 마지막까지 철저히 이용하려 한다. 우리는 영혼의 위대성을 선험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 앞서 이미 말했듯이 위대한 개인이란 모범으로가 아니라 예외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역사적 위대성이란 처음부터 자신을 주장하고 드높이는 것을 첫 번째 의무로 여기는 것이고, 권력이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는 않는다.


365 위대함을 규정하자면 다음의 것으로 보인다. 위대함이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선 어떤 의지, 곧 결말에 따라 신의 것, 민족이나 전체의 것, 시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6부 세계사의 행운과 불운에 대하여

16 역사 관찰에서의 의도와 인식

380 시대 전체가 행운 또는 불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른바 인류의 전성기들은 행운의 시대들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페리클레스의 시대가 흔히 이용된다.


380 이런 판결을 내리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역사 활동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일로서, 최근 시대의 움직임이다. 


381 전체적으로 이런 판결들을 내리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소망들과 계몽주의의 이성적 판단들로부터 그리고 많이 읽히는 다수 역사가들의 올바른 또는 멋대로의 결론들로부터 점차 누적된 일종의 문헌상의 공감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무런 의도 없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특정한 방향에 맞추어 또는 반대 입증을 위해 자주 악용된다.


393 악에서 선이, 불운에서 상대적 행운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악과 불운이 시작을 이루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없다. 모든 성공한 폭력은 악이고 불운이고, 적어도 하나의 위험한 예다. 하지만 이런 폭력 행동이 권력의 기초를 만든다면, 결국 인류는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동원해 단순한 권력을 질서와 법칙으로 변화시켰다.


400 우리가 운명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올바른 탄식은 예술과 시문학의 훌륭한 작품들이 몰락하는 것에 대한 탄식이다. 고대의 지식, 페르가몬과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등을 우리는 결국 포기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지식은 충분히 압도적이다. 다만 몰락한 최고 등급의 시인들만은 우리를 탄식으로 가득 채우고, 역사가들의 경우에도 대체 할 수 없는 손실을 겪었다. 길고도 중요한 기간 동안 정신적인 기억의 지속성이 단편적인 것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속성은 우리 인간 삶의 본질적인 관심이고, 그것이 지속되는 기간의 의미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증거다.


401 몰락해 버린 것에 대한 채울 길이 없는 동경은 가치가 있다. 수많은 조각들이 구원되어 쉬지 않는 학문을 통해 전체 맥락에 끼워 맞추어진 것은 오로지 그런 동경 덕분이다.


402 인간 정신의 지속적 생명은 마치 한 인간의 생명처럼 보인다. 역사에 나타나 역사를 통해 의식된 이런 생명은 사색하는 사람의 눈길을 점차 붙잡고, 그에 대한 온갖 탐구와 추적이 그의 노력을 요구하는 바람에 행운과 불운이라는 개념들이 점차 그 의미를 잃어버릴 정도가 된다. "성숙함이 전부다(Reif sein ist alles)." 유능한 사람들의 목표는 행운이 아니라 싫든 좋든 인식이다.


402 우리의 개체성을 완전히 포기한 채 뒤에 오는 시대의 역사성을 마치 자연의 장관을 구경할 때처럼, 곧 단단한 육지에서 바다의 폭풍을 볼 때와 똑같은 고요함과 불안감을 지니고 관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정신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들 하나를 의식을 지닌 채 함께 체험할 것이다. 


403 지금과 같은 시대에, 즉 우리가 성장하던 저 30년 동안의 기만적인 평화가 오래 전에 근본적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전쟁들이 여럿이나 이미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이는 이런 시대에, 최고의 문화 민족들이 그 정치적 형식에서 흔들리거나 다른 형태로 넘어가려는 시대에, 교육과 정보소통의 전파를 통해 고통의 의식과 초조함의 전파도 아주 빠르게 분명히 증가하는 이런 때에, 사회적 장치들이 지구의 움직임을 통해 전체적으로 불안해지는 이런 때에 ─ 또 다른 누적된,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위기들에 대해서는 생각 하지 않더라도 ─ 이 모든 현상들 위에서 흔들리면서 그런데도 온갖 것과 한데 뒤얽혀 새로운 집을 짓고 있는 인류의 정신을 인식을 통해 추적하는 일은 경이로운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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